문재인정부 이후…경찰 특수수사의 이면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09:32:04
  • 호수 1206호
  • 댓글 0개

무디고 무뎠던 경찰의 칼날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번 문재인정부서 경찰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았다. 최근 경찰은 검찰의 전유물이었던 대기업·특수수사의 최전선에 나서며 기업 총수들을 포토라인에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칼날은 무뎠다. <일요시사>가 문재인정부 들어 경찰이 수사했던 특수수사 8건을 분석한 결과 핵심 피의자들을 모두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 ▲▲경찰 대기업-특수 수사 결과

경찰은 2017년 7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택공사 비리 수사를 시작으로 삼성물산, 대림산업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같은 해 연말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강단을 보이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시작은 창대
그 끝은 미약

경찰은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필두로 대기업을 비롯한 굵직한 사건을 진두지휘 중이다. 특수수사과는 오랫동안 공직·기업 비리 등을 수사했다. 하지만 검찰의 옛 중앙수사부와 특수부에 밀려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특수수사과의 시초는 1972년 설치된 치안본부 소속 ‘특수수사대’다. 1976년 특수수사1대(일명 사직동팀)와 2대(일명 신길동팀)로 나뉘었다가 1991년 특수수사1대가 조사과로 이름이 바뀌고, 2대는 수사2과로 소속을 옮겼다. 이어 1994년 수사2과가 특수수사과로 개칭됐고 조사과는 2000년 폐지됐다.

과거에는 공직자 비위 등과 관련한 청와대의 ‘하명’ 사건을 주로 다루는 부서로 알려졌다. 오늘날에도 정부서 수사의뢰한 사건을 특수수사과서 맡는 경우가 있지만, 그밖에 자체 첩보를 토대로 공직자·기업의 뇌물이나 횡령·배임, 조세포탈 사건 등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13년 6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수도권 인근 별장서 건설업자 윤모씨로부터 성접대 등 불법로비를 받은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특수수사과는 경찰 조직서 특수사건 전문성을 인정받는 수사관들이 근무해 자존심이 강한 부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특수수사과의 자존심에 흠집이 많이 났다. <일요시사>가 2017년부터 경찰청 특수수사과와 지능범죄수사대가 벌인 8건의 대기업 사건 결과를 분석한 결과 핵심 피의자들이 모두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대기업 수사 8건 분석 
핵심 피의자 모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  

▲한진그룹 자택 비리 사건(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2017년 11월22일. 경찰이 30억원대 배임 혐의를 받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입건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회장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같은 혐의로 조 회장의 아내 이명희씨와 대한항공 소속 조모 전무, 인테리어 업체 ㄱ사의 대표 장모씨도 검찰에 송치했다.

조 회장 등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8월 사이 조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용 70억원 중 30억원을 인천 영종도에 짓고 있던 그랜드하얏트 호텔 신관 신축 공사비에 전가한 혐의를 받는다. 조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와 호텔 신축 공사는 ㄱ사가 동시에 맡았다.

▲삼성그룹 일가의 자택공사 비리와 수백여개의 차명계좌 의혹 사건(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및 임직원 세 명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2018년 2월8일. 차명계좌로 수천억원의 재산을 빼돌리고 자택공사에 회삿돈을 쓴 혐의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특가법을 적용해 조세·횡령 혐의로 이 회장과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소속 임원 A씨(사장)와 삼성물산 임원 B씨를 불구속 기소하고, 삼성물산 현장소장 C씨는 구속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삼성그룹 임원 72명 명의로 차명계좌 260개를 개설한 후 차명재산 4000억원을 관리했다. 이 회장과 임원 A씨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양도소득세와 종합소득세 등 82억원 상당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용산구 한남동 소재 이 회장의 자택 수리비용에 삼성물산 법인 자금 약 30억원을 유용한 혐의도 받는다.

기업 총수들
포토라인에만

▲홈앤쇼핑 신사옥 입찰·채용 비리 사건(강남훈 전 홈앤쇼핑 대표이사 신사옥 비리 혐의 없음 의견·채용비리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2018년 3월15일. 강남훈 전 홈앤쇼핑 대표이사는 대주주 회사의 고위 간부로부터 청탁을 받고 일부 지원자를 부당하게 채용한 혐의를 받아 검찰에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다만 신사옥 비리와 관련해서는 혐의 없음 의견으로 나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강 전 대표이사가 중소기업중앙회 임원 등의 부탁을 받고 직원 10명을 부당하게 채용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신사옥 건설업체 입찰 과정에서 회사에 174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혐의는 무혐의 의견이 나왔다.
 

▲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황창규 KT 회장

▲대림산업 전 대표 등 청탁·배임수재 사건(대림산업 전 대표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2018년 3월20일. 경찰은 하청업체로부터 토목공사 추가 수주 및 설계 변경을 통한 공사비 허위 증액 등의 부정한 청탁과 함께 6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전직 대림산업 대표이사 등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입건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대림산업 간부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 이후 대림산업 본사 사무실 압수수색·계좌추적·관련자 조사 등으로 혐의사실을 밝혀냈다. 혐의가 무거운 현장소장 2명은 구속하고 전직 대표 등 9명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가천 길병원 뇌물수수 사건(병원장과 비서실장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보건복지부 공무원 구속)= 2018년 5월29일. 국책사업인 연구중심병원 선정을 도와주는 대가로 가천 길병원서 받은 법인카드로 수억원을 쓴 보건복지부 국장급 고위공무원이 구속됐다. 이 과정서 길병원이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에게 일명 ‘쪼깨기’ 방식으로 불법 정치후원금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복지부 소속 국장급 공무원 허모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하고, 뇌물을 준 길병원 병원장 이모씨 등 2명을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우병우 법조 비리 사건(우병우 전 민정수석 영장 네 차례 기각)= 2018년 10월17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변호사 시절 몰래 변론 혐의를 수사한 경찰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수사 확대 방지 등을 검찰에 청탁할 목적으로 의뢰인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우 전 수석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우 전 수석은 2013∼2014년 검찰이 수사한 가천대 길병원 횡령사건 당시 병원 측으로부터 “수사가 더 확대되지 않고 이 상태서 마무리되게 해달라”는 조건을 제시받자 “3개월 내 끝내주겠다”고 답한 뒤 착수금 1억원을 받고 계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사건은 실제로 3개월가량 지난 뒤 종결됐고 우 전 수석은 2억원의 성공보수를 받았다.

검 vs 경 기싸움
수사권 갈등탓?

▲오리온그룹 별장 신축 사건(이화경 부회장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2018년 10월24일. 개인 별장을 신축하는 과정서 200억원 넘는 회삿돈을 유용한 혐의를 받는 이화경 오리온 그룹 부회장이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횡령) 혐의로 이 부회장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 부회장은 2008∼2014년까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일대에 개인 목적의 호화별장을 신축하는 과정서 법인자금 203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KT 불법 정치 후원금 사건(황창규 KT 회장 및 전·현직 임원 7명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 2019년 1월17일. 황창규 KT 회장이 국회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황 회장과 구모 사장, 맹모 전 사장 등 KT 전·현직 임직원 7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KT 대관부서인 CR부문을 통해 제19·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3790만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임직원 29명이 송금에 동원됐고, 이 중 일부 직원들의 아내나 지인 명의까지 동원된 것으로 조사됐다.
 

▲ ▲

경찰청 특수수사과서 벌였던 대기업 사건의 핵심 몸통들이 대부분 불구속 상태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 때문에 경찰 수사가 ‘용두사미’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경찰 측도 반론은 있다. 그동안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에 대해 ‘보강 수사’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빈번히 기각했다는 점이다. 

검찰은 조양호 회장과 황창규 회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각각 두 차례 기각했다.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영장은 무려 네 차례나 기각됐다. 이화경 부회장의 영장도 기각했으며 삼성 차명 사건 관련자인 삼성 임원들의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했다. 

일각에선 피의자 구속으로 유·무죄를 가르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 수사력에 강한 의구심? 
검 구속영장 빈번히 기각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며, 구속 수사가 유·무죄를 가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다만 핵심 피의자의 구속 여부가 수사의 진척 여부를 알 수 있는 가늠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경찰 수사가 빈번히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내놨다.

하나는 ‘경찰 수사력 부재’이다.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민생 치안 등 단순 형사 사건 위주로 처리했기 때문에 법리적인 세밀함이 필요한 고소·고발 사건 등을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해왔다.

또 하나는 수사권 조정을 사이에 둔 ‘검·경 갈등설’이다. 현재 검·경은 수사권 조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특히나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특수사건 등을 도맡으며, 수사권 독립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견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의자 구속 여부로 수사를 ‘잘했다’ ‘못 했다’로 나누는 건 적절치 않다. 법원서 유죄 판결률로 보는 게 적절하다”며 “검·경의 갈등적 측면으로 봤을 때 검찰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 수사 구조 자체가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대기업 수사를 잘하는 건 노하우와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대기업 수사를 많이 할수록 노하우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노하우와 권한은 비례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수부 검사였던 한 변호사는 “경찰의 수사 역량이나 인권 의식이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어느 정도 수사권 조정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대기업이라든지 특수수사에 있어서 경찰이 검찰 수사력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 이번에 빈번히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두고 검·경 수사권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검사들이 괜히 영장을 기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자는 “일반 시민의 눈높이로 봤을 때 수사권 조정은 꼭 필요하다. 현재 기소권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쟁점이다. 과거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며 경찰을 지휘했던 이유는 두 가지”라며 “경찰의 수사 전문성과 인권 침해 요소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경찰이 수사력이 없을까? 변호사 출신 경찰들도 많다. 또 인권침해 요소가 옛날처럼 많을까? 옛날에 비하면 거의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권한 필요”
“아직 멀어”

이어 “현재 검찰 수사 지휘는 이걸 전제로 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건 과거 유물이나 마찬가지다. 제도적으로 바꾸는 게 맞다. 검찰은 수사 지휘권을 놓고 싶지 않을 거다. 기득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