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망신살 뻗친 손석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2 08:37:16
  • 호수 12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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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에 휘말린 ‘국민 앵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민 앵커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스캔들에 휘말렸다.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를 폭행해 경찰에 입건됐다. 이 둘은 언론계 선·후배 사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두고 당사자 간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 더불어 두 사람의 갈등 배경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 JTBC <뉴스룸> 진행자 손석희 대표이사

프리랜서 기자인 김웅씨가 손석희 JTBC 대표이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손 대표 측은 “상대방 신고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당사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2월10일 오후 11시50분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일본식 주점서 손 대표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지구대를 방문해 근무일지에 이 신고 내용을 남겨달라 요청했고, 이틀 뒤인 13일 다시 지구대를 찾아 정식 신고 절차를 밟았다.

폭행 사건서 
온갖 논란으로

김씨는 당시 주점서 손씨와 단둘이 식사를 하던 중 얼굴을 수차례 폭행당했다고 주장하고, 전치 3주의 상해 진단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양측은 정반대 주장을 하는 중이다. 김씨는 손 대표에 관한 제보를 받고 취재하던 도중 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서 손 대표가 JTBC 일자리를 제안했으나 거절하자 폭행을 당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건 당시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파일에는 손 대표로 추정되는 남성이 “아팠다면 폭행이고 사과한다”고 말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 대표 측은 “상대방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김씨가 손 대표에게 불법적으로 취업을 청탁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오히려 손 대표를 협박한 게 이번 사안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주장하는 폭행 사실에 대해선 “‘정신 좀 차려라’ 하고 손으로 툭툭 건드린 게 사안의 전부”라고 설명했다. 

서울서부지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저녁 늦게 손 대표 측이 김씨를 공갈 미수·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마포경찰서에서 병합해 수사할 예정이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손 대표와 김씨 측의 경찰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다. 김씨는 이메일을 통해 폭행 당시 상황을 담은 진술서와 전치 3주 상해진단서, 사건 당일 손 대표와의 대화를 녹음한 음성 파일 등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폭행 신고 관련 추가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앞서 김씨는 손 대표에 관한 제보를 취재 중이었다고 밝혔다. 어떤 제보였을까. 김씨는 손 대표의 뻥소니 사건을 제보 받아 취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 대표는 한 주차장에서 후진을 하다 견인 차량과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손 대표는 접촉 자체를 모고 자리를 떠났지만, 차에 닿았다는 견인 차량 운전자의 말을 듣고 자비로 쌍방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운전자는 접촉사고 발생 후 손 대표가 사고 처리를 하지 않고, 현장서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2.5km 정도를 추격해 도로변서 손 대표의 차를 멈추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명함을 주고 받으며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했다. 


프리랜서 기자 폭행해 경찰에 입건
내막 두고 양측 주장 첨예하게 갈려

이런 일이 있은 이후 김씨는 “손 대표가 경기 과천의 한 주차장에서 뺑소니 사고를 낸 뒤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로 찾아가 손 대표를 직접 만났다고 한다.

김씨는 이후 손 대표에게 전화해 “당시 (피해자들이) 손 대표가 차를 받고 도망갔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김씨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손 대표은 “난 (차를) 받은 줄도 몰랐다. 그래서 경찰을 부르자고 했는데 경찰이 오고 있는 상황서 ‘보험으로 할 거냐, 현금으로 할 거냐’ 해서 난 그냥 ‘현금으로 해도 된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손 대표로부터 받은 손 대표 명의 계좌 내역을 보면, 2017년 4월17일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A씨에게 15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돼있다. 

그런데 사건의 논란은 다른 방향으로 옮겨붙었다. 당시 손 대표와 ‘동승했던 인사가 누구였느냐’다. 김씨는 당시 손 대표와의 통화서 “접촉사고 당시 차량의 조수석에 동승자가 있었다”는 제보의 사실 여부를 물었다.

손 대표은 “동승자는 없었다. 그들이 (뺑소니라고) 협박해서 돈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그마한 것으로 침소봉대 돼서 공격당할 수 있고 여러 모로 타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JTBC는 보도자료를 통해 “동승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며 “이를 증명할 근거도 수사기관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또 “김씨가 이번 사안을 의도적으로 ‘손석희 흠집내기’로 몰고 간다”고 주장했다.  

교통사고 당시
동승자 누구?

논란은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씨는 손 대표가 자신을 회유·배임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5개월가량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수십건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주로 김씨의 채용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손 대표가 김씨에게 “이력서를 하나 받아뒀으면 한다” “내가 밀어넣으려 한다고 말들이 많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라도 해보지 않는 건 내가 너한테 미안한 일인 것 같다”고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씨는 “손 대표는 저를 통해 세상에 사실이 알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며 “저를 회유하기 위해 JTBC 작가직 등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고, 폭행 당일에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 합류시키겠다고 했다가 또다시 거절당하자 이에 격분해 폭행했다”고 했다.


김씨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2017년 4월16일 심야 시간에 손 대표가 경기 과천의 한 교회 인근 공터서 접촉사고를 내고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라며 “사고 직후 피해자들에게 추적당해 4차로 도로변에 정차했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사고 피해자들은 조수석에 젊은 여성 동승자가 있었다고 전했다”고 언급했다.

이 젊은 여성은 손 대표와 함께 뉴스룸을 진행하는 안나경 앵커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JTBC는 지난달 29일 입장문을 내고 “현재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포되고 있는 안나경 앵커에 대한 각종 소문은 모두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가짜뉴스로 명백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 작성되고 유포된 근거 없는 SNS 글과 일부 매체 기사를 수집하고, 이를 작성하고 유통하는 모든 개인과 매체를 상대로 강력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손 대표의 배임 의혹도 나왔다. 김씨에 따르면 손 대표는 지난달 19일 김씨의 변호인에게 월 1000만원을 보장하는 2년 계약의 용역 체결을 논의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본인의 교통사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기자직 등 회사 일자리를 제공하고 회삿돈을 용역비 형태로 주려고 했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자유청년연합은 손 대표를 배임 및 배임미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서부지검이 사건을 배당받았으며 관련 수사는 마포경찰서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젊은 여성?
명백한 허위?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시민단체 자유청년연합이 손 대표를 배임 및 배임미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사건을 서부지검에서 배당받을 예정”이라며 “이후 마포경찰서로 보내 수사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 대표는 1956년 서울서 출생해 2남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방송반원이 됐는데, 이때의 경험이 훗날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6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79년 군대에 입대하고 부산에 있던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 배치됐다. 군 시절 동안 10·26사건, 12·12군사반란, 5·18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사건을 겪는다.

손 대표는 1984년 MBC에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조선일보> 판매국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을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MBC의 대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지다가 1986년 앵커 이미지가 강렬해지는 것을 우려한 MBC 사측서 보도국으로 발령 내 기자가 됐다. 하지만 본인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9년 4월23일 새로 신설된 일요일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으며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손 대표는 1989년 10월까지 토요일 <뉴스데스크>와 일요일 <뉴스센터>를 진행한다. 1990년에는 저녁뉴스 앵커를 맡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뉴스를 진행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 노조가 정부의 방송 관련법에 맞서 쟁위가 발생했다.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기로 했지만 모두 빼앗긴다. 손 대표는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으며, 당시 이 문제로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고소·고발로 이어진 진실공방

손 대표는 1992년 가을, MBC 노조 활동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전두환정권은 여당에게 비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했다.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 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즉시 노조가 반발을 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손 대표는 이때 주동자로 몰려 동료들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당시 손 대표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언론은 그가 포승줄에 묶인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손 대표는 체포된 이후 “상식적 판단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는 말을 남겨서 대중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가 1997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2년 뒤 귀국해 MBC <아침뉴스 2000>를 통해 방송에 복귀. 2000년 MBC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진행을 맡았다.

<시선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의 시사보도와 의제설정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뒤를 이어서 <100분 토론>의 3대 진행자가 됐다. 손 대표는 2009년 11월19일 10주년 방송 때까지 진행한 역대 최장수 진행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MBC 아나운서 국장으로 재직했으며, 2006년 MBC를 퇴사 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5월 <시선집중> 진행자와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직서 사임하고 JTBC 보도부문 총괄 사장을 맡았다. 2013년 9월16일부터 2014년 9월까지 JTBC <뉴스 9> 주중 진행을 담당했으며 2014년 9월22일부터 1시간40분 동안 진행되는 JTBC의 메인뉴스 <뉴스룸>을 진행하고 있다. 

신뢰도 1위
여기서 끝?

손 대표는 JTBC를 종합편성채널을 넘어 지상파와 경쟁하는 매체로 만들었다. 이제 7년 차에 접어든 JTBC가 전통을 자랑하는 유력 언론매체들을 따돌리며 쾌속질주를 펼치고 있다. 올해로 29회째인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언론매체 조사에서 JTBC는 영향력·신뢰도 부문서 2위와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열독률 부문서도 1위 네이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2위에 올랐다. 손 대표는 더불어 <시사저널>의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서 14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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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