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과 도박, 그리고 판돈 막전막후

하룻밤 수십억 왔다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돈이 많은 기업인들은 상대적으로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밑천이 두둑하기 때문. 이들이 거는 액수는 보통 사람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인 경우가 많다. 하룻밤 새 판돈이 수천억에 달하는 도박판이 부지기수다. 서민들을 허탈감에 빠뜨리는 기업인들의 도박 ‘사이즈’를 확인했다.
 

중견기업 오너 일가 2세 A씨가 원정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과정서 회삿돈으로 밑천을 마련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판돈이 100억원에 달해 세간의 눈길이 쏠렸다.

판돈 수천억
서민은 허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지난달 29일 상습도박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견기업 A사의 최대주주 박모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횡령한 자금은 상당 부분 도박과 관련이 있다”며 “이번 상습도박의 규모와 방법을 감안하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간접적인 해악도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수사 초기부터 범행 대부분을 자백하고 반성했다”며 “횡령금액은 거액이지만 오랜 기간 횡령 후에 다시 돈을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 피해금액보다 자금이 불어난 측면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회삿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필리핀 등 해외서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기업인들은 도박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쉽다는 점 때문에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서민층의 도박판과는 스케일 면에서부터가 다르다. 20년 전에는 100억원대 해외카지노 도박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7년 서울지검은 카지노서 거액을 빌려 도박을 한 혐의로 오종섭 대전 동양백화점 부회장과 박종섭 서울 강남구 스위스안경점 대표 등 4명을 기소했다. 오 전 부회장은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서 한국인 마케터 최모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55만달러를 빌려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그를 구속 기소했으나,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

동양백화점은 대전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지역민의 오랜 사랑을 받았지만 경영난으로 한화갤러리아에 매각됐다. 오 전 회장은 2011년 향년 5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회삿돈 들고 도박판으로 ‘고∼’
필리핀 등 해외 원정도박 적발

김인태 경남종합건설 전 대표는 1997년 20만달러의 도박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한 혐의로 도피행각을 벌이다 2002년 구속됐다. 김 회장은 마카오 등지서 수억원의 도박을 벌이며 외화를 반출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수차례 마카오호텔 카지노 등에서 원정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박 판돈 액수가 기업인치고 많다고 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IMF 등으로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때라 국민들의 분노는 컸다.


김 전 대표는 5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하고 같은 해 12월 위조여권을 사용해 해외서 도피행각을 벌인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한때 재계 서열 3위였던 그룹의 회장도 도박 구설에 올랐다. 1978년 김창원 거화그룹 회장도 원정도박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김 전 회장은 1984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당시 23만달러를 카지노 도박으로 날린 혐의를 받고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거화그룹은 김 전 회장의 구속으로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계열사 거화자동차와 신진자동차는 쌍용차와 대우차로 각각 매각됐다. 이후 주력 계열사들이 그룹의 품을 떠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77년 7월 설경동 대한그룹 창업주의 차남 설원철씨가 대규모 도박판을 벌인 혐의가 드러났다. 설씨 등 6명은 상습도박을 벌이고 도박장을 개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는 L관광호텔서 하룻밤 새 1000여만원이 넘는 판돈을 놓고 포커를 쳤다. 모두 열두 번에 걸쳐 오고 간 판돈 총액은 2억8000만원에 달했다.

회사 어려워도 
카지노에 펑펑

당시 자장면 가격이 2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하룻밤 새 오고 간 판돈은 대략 75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당시 검찰은 도박판 현장에 급습해 미화 5199달러, 엔화 2만2500엔, 한화 110만원 등을 회수했다. 설씨는 도박 사건 이후 경영권서 멀어졌다.

설경동 창업주는 장남 설원식 전 회장에게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물려주고 3남에게는 대한전선을 줬다. 4남인 설원봉 회장은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설원철씨는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고문직을 맡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적은 없다.

일각에선 당시의 도박 논란이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보그룹 역시 도박 스캔들이 있었다. 1997년 당시 정태수 총회장의 차남인 정원근 상아제약 회장은 1996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당했다.

서울지검 회사부에 따르면 정 회장은 30만달러의 자금을 빌려 카지노 도박을 했다. 당시 외국환관리법에 따르면 1만달러 이상의 외화를 송금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정 회장은 이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 회장이 도박 스캔들에 연루된 시기가 한보그룹이 경영난을 겪고 있던 와중이라 비난의 목소리는 높았다. 1997년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은 15억원의 자금을 해결하지 못해 부도가 났다. 이후 지급 보증을 섰던 다른 계열사가 쓰러지면 한보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돈 많은 호구
설계자 타깃

여성 기업인도 도박판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1992년 검찰에 따르면 이춘자 한국광학 대표는 1987년부터 강남 일대서 벌어진 판돈 100억원 규모의 도박을 한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됐다. 이 대표를 비롯해 도박에 빠진 도박꾼들은 하루 평균 300만∼1800만원의 판돈이 걸린 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에는 북악파크호텔의 기업인이 도박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구판서 북악파크호텔 회장의 4남 구상회(당시 37세)씨가 100만달러를 빼돌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구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로 비디오테이프를 수입하는 사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악파크호텔은 70~80년 북악을 대표하는 호텔이었으나 1990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어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1966년에 하루 판돈 2000만원이 넘는 돈이 오간 도박판도 있었다. 당시 유화열 인천올림포스호텔 회장을 비롯해 전락원 구왕건설사 대표 등 3명이 대규모 카드 도박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유 회장 일행은 호텔 등을 전전하며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 회장은 카지노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유 회장은 사위 함양섭 회계계장이 손님으로 가장해 딜러가 보관 중인 게임용 칩을 현금으로 바꿔 수입금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90년부터 3년 동안 14억3000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후계자 밀리거나
회사 사라지거나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수억원대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2016년 항소심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박 회장도 정킷방서 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이근수)는 2017년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에 대한 항소심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해외서 자금을 조달해가며 도박을 벌여 죄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피고인의 연령·건강 상태와 범행을 반성하는 태도 등을 참작해 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2014년 2월부터 3월까지 마카오 한 호텔의 정킷방서 판돈 190만홍콩달러(약 2억6000여만원)를 베팅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바카라 도박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4년 5월 서울 한 호텔서 고스톱 도박을 하던 이모(64)씨 등에게 2800여만원의 판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상습적으로 도박하고 도박 참여자들에게 도박자금으로 수백만원서 수천만원까지 대여해 이득을 취하는 등 죄질이 무겁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논란이 된 점은 박 회장이 상습도박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다. 앞서 박 회장은 2002년 상습도박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2013년 6월과 2014년 6~7월 총 3차례에 걸쳐 총 48억원을 대출받도록 알선해준 대가로 한 생수업체 대표로부터 4억946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돼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화장품 업계의 신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도 원정도박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대표가 2012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마카오, 필리핀의 카지노 호텔에 설치된 정킷방서 100억원대의 도박을 한 것으로 보고 구속 기소했다. 정씨는 해당 정킷방서 한 판에 500∼2000만홍콩달러의 판돈을 베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대표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극구 부인하며 지루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지만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정 전 대표는 1심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심서 8개월로 감형됐다. 이후 검찰과 정 전 대표 측이 대법원 상고를 원치 않아 사건은 일단락됐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미 삼아…
두 번 세 번

재계의 한 관계자는 “도박판에 걸려 거액의 빚을 진 참여자가 다른 물주를 물색하는 조건으로 갚을 돈을 탕감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이런 과정서 기업인들이 주요 타깃이 돼 도박판에 참여하게 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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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10번째 해외순방 부푼 보따리 풀어보니…

윤, 10번째 해외순방 부푼 보따리 풀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해외순방을 떠났다. 그에 맞는 성과를 낸다면 우주라도 갈 수 있다지만, 여태까지 성적표는 처참해,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1호 영업사원’의 의미가 대통령 부부와는 달랐던 걸까? 오히려 나갔다 하면 터지는 사고로 불안할 지경이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성남 서울 공항서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타고 첫 순방지인 투르크메니스탄으로 향했다. 시작은 화려하게 서울 공항엔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홍철호 정무수석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등이 나와 윤 대통령을 환송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짙은 남색 정장에 연한 회색 넥타이를 맸고, 김 여사는 밝은 베이지색 정장 차림에 에코백을 들었다. 윤 대통령 부부는 공군 1호기에 올라 각각 손 인사와 목례 인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첫 순방국인 투르크메니스탄서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며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담대한 구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에게 ‘한-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과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개최 계획’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해주셨다”고 설명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우리의 한-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대한민국 간 관계의 확대를 지지한다”면서 “우리는 본 구상을 구현하는 데 양국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번 양국 간 공동성명에는 가스 및 화학, 조선, 섬유, 운송, 정보통신, 환경보호 등 분야서 협력 강화도 담겨있다. 해외순방이 잘 끝나면 좋지만, 이번 해외순방은 시기가 좋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여태까지의 실적보다는 리스크가 더 컸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스스로를 ‘1호 영업사원’이라고 지칭한 윤 대통령의 위신은 무너진 지 오래다. 조국혁신당은 윤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김 여사가 동행하는 데 대해 ‘검찰 수사 회피용 외유’라고 규정했다. 한 번 나갔다 하면 터지는 논란 총선 이후 숨었다가 해외서 등장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디올백 수수 영상이 공개된 뒤 4·10 총선 ‘도둑 투표’서 보듯이 국민과 언론의 눈을 피해 꼭꼭 숨어다니더니, 이제 대놓고 활보한다. 검찰을 향해 ‘어디서 감히? 소환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검찰은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과 양주, 고급 화장품을 대가성 뇌물로 제공한 최재영 목사를 소환해 다수의 증거와 증언을 이미 확보했다. 따라서 김 여사는 대가성 뇌물을 받은 의혹이 있는 피의자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피의자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이어 “공범들은 이미 처벌받았다. 재판에 제출된 검찰 의견서에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의 수익이 23억원이라고 적혀 있다. 검찰은 언제까지 김 여사 소환조사를 미룰 건가? 청탁성 선물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는 억지 주장을 듣고만 있을 것이냐”고 성토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 검찰은 압수수색도, 소환조사도 피해 가는 ‘특권계급’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언론에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해도 믿는 국민은 없다. 아무리 달달한 말을 해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 앞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부부가 무사히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한다. 귀국 즉시, 요새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심이 많은 기내 식비와 음료, 술값 내역을 꼭 공개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김 여사는 검찰이 귀국 뒤에도 소환하지 않거든 서울중앙지검에 제 발로 찾아가길 바란다. 그래야 검찰 소환을 피하려고 외유를 택했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으로 시작됐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여태까지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서 사고가 끊임없이 터졌던 것에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논란은 독일·덴마크 해외순방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2월18일 윤 대통령은 일주일 일정으로 독일과 덴마크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계획을 돌연 연기했다. 지난 2월14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올해 첫 해외순방 일정인 독일과 덴마크 방문 계획이 여러 요인을 검토한 끝에 연기됐다. 과거에도 순방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순방을 연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민간인은 왜 태워? 독일 주요 종합지와 방송사는 윤 대통령의 방문 연기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고, 일부 온라인 언론이 <로이터 통신>의 단신을 번역해 소개했다. 덴마크서 발행되는 주요 언론들도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실과 덴마크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실도 별다른 언급이나 공식적인 설명하지 않았다. 독일과 덴마크 국민은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무관심한 분위기였다. 외신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 순방 연기 소식을 전했던 <로이터 통신>은 “한국 대통령실은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다양한 문제 때문에 연기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결정은 4‧10 총선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대통령 내외가 성과도 없이 너무 잦은 해외순방을 하고 있다고 야당이 비판하고 있고, 특히 김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하는 과정이 담긴 몰래카메라가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이 곤란을 겪고 있다”며 디올백 사건이 연기 결정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함께 전했다. 반면 현지 한인 교민과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전례가 없는 일에 황당해했다. 현지 한국 공관들은 해외순방이 있기 한 달 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동포 행사 보조요원을 모집했고, 교민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고 비공식 공지까지 한 상황이었다. 독일 일정의 경우 수도인 베를린에 있는 독일대사관이 아닌 독일 중북부에 있는 함부르크 총영사관이 행사 요원을 모집한 사실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곳에서 있을 만찬은 독일과 유럽의 귀빈들이 주로 참석하는 사교 파티 형식이어서 대통령 부부가 함께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모든 게 돌연 취소된 것이다. 외교가에선 이를 두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는 반응이 불거졌다. 가장 격이 높은 국빈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취소한 건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도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도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12월1일 네덜란드 측이 한국의 과도한 경호 및 의전 요구에 우려를 표하기 위해 최형찬 주네덜란드 한국대사를 초치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최 대사를 불러 국빈 방문 경호와 의전을 둘러싼 한국의 다양한 요구에 ‘우려와 당부사항’을 전달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경호상의 필요를 이유로 방문지 엘리베이터 면적까지 요구한 것 등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해 불만을 표했다. 특히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기밀 시설 ‘클린룸’ 방문 일정과 관련해 한국 측이 정해진 제한 인원 이상의 방문을 요구한 데 대한 우려도 컸다. 한 소식통은 “네덜란드가 상대국 정상의 방문을 앞두고 주재 대사를 불러 항의한 건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외교부는 “최 대사와 네덜란드 측 간 협의는 국빈 방문이 임박한 시점서 일정 및 의전 관련 세부적인 사항들을 신속하게 조율하기 위한 목적서 이뤄진 소통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국빈 방문이 ‘대통령의 외교’가 아닌 화려한 의전만 챙기는 ‘왕의 외교’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대통령 부부가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는데, 김 여사가 경호원과 수행원 16명을 대동한 채 수도 빌뉴스의 명품 편집매장에 들린 것이 문제가 됐다. 리투아니아 매체 <15min>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김 여사)는 50세의 스타일 아이콘 : 빌뉴스(리투아니아의 수도)서 일정 중 유명한 상점에 방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는 김 여사가 대통령실 직원들과 함께 ‘두 브롤리아이(Du Broliai)’라는 매장(명품 브랜드 편집숍)에 방문한 사진이 담겼다. 이 기사에 따르면 김 여사는 총 16명을 대동한 채 매장에 왔고, 김 여사가 쇼핑하는 동안 6명의 경호원이 매장 앞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배치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두 브롤리아이 관계자는 김 여사 일행이 매장 방문 이후에도 이곳을 다시 찾아서 추가로 물건을 구입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김 여사가 무엇을 샀고 얼마어치를 샀는지는 기밀”이라고 말했다. 해당 일에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상점을 방문한 건 맞고 안내를 받았지만, 물건은 사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물 폭탄과 문자폭탄에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 서민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기사”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로 인해 국가적 재난 상황에 처했는데 국내 사정을 우선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지난해 1월에 있었던 아랍에미리트 해외순방에선 윤 대통령의 말이 문제가 됐다.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UAE 군사훈련 협력단(아크부대)을 방문해 “UAE의 적이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UAE는 우리의 형제 국가다. 형제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다. 명품, 노룩 악수, 경례… “김 여사 귀국 후 검찰로?” 이란이 윤 대통령의 주장에 반발해 성명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란이슬람공화국은 대한민국 공식 채널 특히 외교부를 통해 이란이슬람공화국과 아랍에미리트 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 사안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달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현지서 UAE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아크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차원서 하신 말씀이다. 따라서 한-이란 관계와 무관한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란 나자피 외무부 차관은 윤강형 주이란 한국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2022년 11월 순방에서는 ▲MBC 취재진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논란 ▲윤석열정부 정상회담 취재 제한 논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김 여사가 팔짱을 낀 사진 논란 ▲해외순방 중 윤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채널A, CBS 기자 2명만 따로 부른 것 ▲김 여사가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신 비공개로 캄보디아 병원과 가정에 방문하면서 발생한 논란 등이 있었다. 2022년 9월에 있었던 영국-미국-캐나다 해외순방에서는 나라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부부는 당시 사망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조문하러 영국으로 출국했지만, 조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교통 상황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미 교통 혼잡이 충분히 예상됐고, 영국 정부는 이미 방문하는 국가 원수들의 전용기 탑승 자제 및 의전차량 제공 불가를 7일 전에 알렸다. 미국에서는 ▲한일 약식회담 ▲48초 한미정상회담 ▲욕설 발언으로 논란이 됐고, 캐나다에서는 동포 간담회를 열었지만, 내용이 실속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 오타와 전쟁 기념비 앞 참배 과정서 캐나다 국가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캐나다 국기에 경례하는 의전 실수를 저질렀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의 첫 번째 해외순방이었던 나토 정상회의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에게 인사하려던 도중 윤 대통령이 악수를 건네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윤 대통령이 건넨 악수만 받은 채 루멘 라데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불가리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돼 ‘노룩 악수’ 논란이 일어났다. 국제적 망신도 이 밖에도 연출된 업무 사진,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에 대통령실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씨가 동행한 것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3월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한일 양국의 주장이 엇갈렸으며,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출국 전 윤 대통령이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서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해 논란을 키웠다. <alswn@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