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법 시행 1년, 그 후…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 죽는 법’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고민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이 과정서 존엄사나 안락사에 대한 논의 역시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2월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이른바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회가 변화하면서 잘 사는 법만큼이나 잘 죽는 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 데 반해 노후 대비가 부족한 노년층이 늘면서 인간답게 생을 마감하는 법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어졌다. 존엄사나 안락사 등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전 세계적인 주제다.

오래된 논쟁

존엄사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존엄사는 법적, 의학적, 윤리적, 종교적 문제가 한데 얽혀 있어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란거리다. 국가별로도 존엄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존엄사를 찬성하는 입장은 생사결정권이 개인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연명치료를 통해 억지로 생명을 연장했을 때 환자 본인과 가족에게 끼칠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죽고 사는 문제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계 등의 반대 입장도 뚜렷하다.

국내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불거진 것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기점으로부터다. 1997124일 김모씨가 경막외 출혈상을 입고 후송됐다. 경막외 혈종은 성공적으로 제거됐지만 뇌부종이 남아 있어 김씨는 자가호흡을 하지 못했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치료를 받게 됐다.


문제는 김씨의 아내 이모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병원 측에 퇴원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김씨가 사망한다고 말렸지만 결국 이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지 5분 만에 사망했다. 이후 올케가 이씨와 의료진을 살인혐의로 고발했다.

법정 공방은 7년 동안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이씨를 살인죄 공범(교사범)으로, 의료진은 살인죄의 공동정범으로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이씨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으로, 의료진은 공범(방조범)으로 판단했다. 상고를 포기한 이씨는 항소심서 징역 3, 집행유예 4년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까지 간 의료진은 2004년 징역 16개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존엄사법 국회 통과
지난해 2월 4일 본격 시행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의료계에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쉽게 퇴원시키지 않도록 조치했다.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가족의 강력한 요청이 있더라도 의료진이 연명치료를 중단해 환자가 사망하면 그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는 법적 판단이 나오면서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다시 바뀌었다.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의 평소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의료진에 요구했다. 하지만 세브란스 병원 측은 가족의 요구를 거부했다.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20095월 대법원은 가족의 손을 들어주면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도록 했다. 김 할머니는 의식이 없는 상태서 스스로 호흡하며 201일을 생존하다 20101월에 숨을 거뒀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을 내리면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제화를 권고했다.

두 사건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촉발된 존엄사 논란은 지난 2016년 회생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가 의료기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국회는 20161월 본회의서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하 존엄사법)을 통과시켰다. 20171023일부터 지난해 115일까지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 24일 본격 시행됐다.

존엄사법에 따라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전제된 환자는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와 같은 의학적 시술들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 후천성 면역 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에 걸린 후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의학적 판단은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이 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기 위해서는 서류가 필요하다. 존엄사법상 요건에 맞는 사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본인의 의사를 남겨둘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건강한 사람도 미리 작성할 수 있다. 작성 이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서식을 작성해야 법적으로 유효하다.

개인의 의사+가족 동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진이 작성한다.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을 통해 임종 과정 환자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환자가 스스로 서명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통해 의사를 확인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모두 없고 환자의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가족의 진술이나 합의가 필요하다.
 

존엄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35431명에 달했다. 유보는 연명치료를 아예 하지 않는 것, 중단은 시행하고 있던 연명치료를 멈추는 것을 말한다. 시행 6개월 14787, 7개월 17830, 8개월 2742, 9개월 24331, 10개월 28256, 11개월 32211명 등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유보환자도 늘고 있다.

연명치료 중단과 유보의 경우, 환자의 의사보다 가족의 의사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치된 진술이나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가 각각 11255, 12731명으로 전체의 67.7%를 차지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는 0.8%에 그쳤다. 존엄사법 시행 이후 시범사업 기간을 포함해 지난달 28일까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13059명이었다. 남자(36508)보다 여자(76551)2배 가까이 많았다.

개인보다 가족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1년여가 흐르면서 임종 문화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존엄사법을 통해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보다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측면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일각에선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엄격한 원칙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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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