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3·1정신 기리고 계승하는 김영진 3·1운동 기념재단 이사장

착한 백성들의 선한 싸움 세계에 알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19년 3월1일 일제의 식민지배에 분노한 조선 민중이 거리로 나왔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을 향해 일제 경찰은 총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만세운동은 점차 확산돼 전국 규모로 발전했다. 2019년은 3·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 <일요시사>가 김영진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 이사장을 만나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들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김영진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 이사장

3·1운동은 여러 갈래의 도화선서 시작된 불씨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1918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주창했다. ‘민족은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윌슨 대통령의 말은 민중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1919121일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고종의 사인이 독살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라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19192월 일본 유학생들이 먼저 나섰다. 이들은 일본의 수도 도쿄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

민족 자결주의와 2·8독립선언서의 영향으로 191931일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이날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 태화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했다. 같은 시각 탑골 공원에 모인 학생, 시민들도 만세를 외쳤다.

민중 분노 폭발
일제 강력 탄압

3·1운동은 국내 전역과 해외로 확산됐다. 일제의 진압은 무자비했다. 음력 31일 충남 천안의 아우내장터서 만세를 부른 유관순 열사는 헌병대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다 1920년 옥사했다. 3·1운동은 지식인과 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이 폭넓게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한국 독립운동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줬다. 또 독립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 항일전선을 체계화·조직화·활성화하는 기반이 됐다.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3·1운동은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진 이사장은 3·1운동을 착하디 착한 우리 백성의 선한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5선 국회의원, 전 농림부장관, 대학 석좌교수, 재단 이사장, 기념사업회 위원장 등 김 이사장을 수식하는 직책은 10여개가 넘는다. 그중 김 이사장이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은 바로 3·1운동.

김 이사장은 2008년부터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으로 정의한 5·18광주민주화운동, 4·19혁명, 3·1운동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201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4·19혁명은 UN·유네스코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은 김 이사장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나 다름없다.
 

▲ 3·1절 행사

지난 17일 김 이사장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위치한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이하 3·1운동 기념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10(33) 남짓한 기념재단 사무실은 김 이사장을 만나기 위한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북적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5선 국회의원과 농림부 장관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나 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근황을 물을 때마다 빈직다사(貧職多事, 직책이 대단하진 않지만 일이 바쁘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만큼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지만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자산인 3·1운동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대한독립만세’ 3·1 운동 100 주년 맞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앞장


-한국 독립사에서 3·1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어느 정도일까요.

3·1운동은 일제 36년 억압통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진행한 치열하고 선한 싸움입니다.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항거운동에 나섰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잔인하고 반역사적인 일제의 폭압지배에 맞서 3·1운동에서 시작된 비폭력저항을 조국 광복이 이뤄진 1945815일까지 이어간 유일한 나라입니다.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면, 1000번 정도의 외침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넘본 경우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착하디 착한 백성들이죠. 많은 인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 운동 등에 엄청난 동기를 부여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훌륭한 민족 자산입니다.

-10년 넘게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을 진행 중이십니다.

이 사무실이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인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3·1운동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본부입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2011년 이미 등재가 완료됐고, 4·19혁명은 올해 상반기 UN·유네스코 등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제 3·1운동 하나만 남았는데 100주년을 맞기 전 UN·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국회의원 시절 아시아-태평양 지역 교육위원연맹에 야당 중진의원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한국 관련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 세계기록유산 자료를 보기 전까진 UN·유네스코 등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100주년 맞아
기록유산 신청

UN·유네스코는 2년에 한 번씩 각국서 들어온 자료를 검토해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순조롭게 진행한다고 해도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을 전부 등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순 계산으로 최소 6년이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서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5·18민주화운동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김 이사장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3·1운동의 등재 작업에 돌입했다.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던 5·18민주화운동 등재 과정서 일어난 정치적 공세 같은 굴곡은 덜했지만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은 장기 프로젝트였기에 긴 호흡이 필요했다. 김 이사장은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 등재 사업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재단 구성에 나섰다.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서, 4·19혁명은 서울서 승인받아 재단을 꾸렸다. 이와 달리 3·1운동 기념재단은 국회 법인으로 등록했다. 201712월 발기인 총회를 시작으로 3·1운동 기념재단이 출범했다. 당시 3·1운동 기념재단은 100주년 이전에 UN·유네스코에 등재 관련 서류를 접수, 한 맺힌 영령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3·1운동 기념재단을 국회 법인으로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대부분 종교인으로 구성됐습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 민족종교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민족대표는 가장 수가 많았던 기독교가 아니라 천도교서 나왔습니다. 천도교 손병희 선생, 종교 간의 밀어붙이기, 주도권 쟁탈 같은 게 전혀 없던 거죠. 그 부분에서 저는 3·1정신을 발견했습니다.


3·1정신은 남북도 없고 동서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습니다. 종교마저도 초월했습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진행된 귀한 운동이기 때문에 국회 법인으로 재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당시 국회의장을 만나 여러 자료와 내용을 공유했고, 여야 합의로 국회기념재단법인으로 승인받게 됐습니다.

민족운동 성격
국회 법인으로

-3·1운동 기념재단 창립, 운영 과정에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 등재를 준비할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이 지배 권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반대급부가 존재했는데 가짜뉴스나 거짓말이 횡행했습니다. 저에 대한 음해가 나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일제의 무자비하고 억압적인 식민지배에 분노하는 과정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원로들께서 저를 만나면 왜 내 이름이 3·1운동 기념재단서 빠졌지?”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전화도 여기저기서 자주 걸려옵니다. 언론서도 관심이 많고요.

국민의 쌈짓돈으로 시작
다양한 사업 전개할 것 


그러면서도 김 이사장은 재정 부분서 고민이 없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3·1운동 기념재단의 취지를 알게 된 유명 기업서 종잣돈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3·1운동 등재에 필요한 종잣돈만큼은 할아버지 쌈짓돈, 아이들 코흘리개 저금통, 주부들이 조금씩 남긴 잔돈 등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국민의 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야, 진보보수, 남북을 초월한 3·1정신을 받들 수 있다고 봤다. 실제 3·1운동 기념재단의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서 작은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상황을 IMF 때 금모으기 운동, 해외동포의 달러 보내기 운동에 비유했다. 국가적 위기에 기꺼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던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또 한 번 확인했다고 했다.

2000, 5000, 1만원 등 총 426명의 마음이 3·1운동 기념재단의 종잣돈이 됐다. 그리고 16개월 후 국회 법인으로 등록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언론서 앞 다퉈 3·1운동 기념재단을 조명했고 국민모금운동에 대한 승인도 떨어졌다. 돈을 지원하겠다는 기업도 나왔다. 3·1운동 기념재단은 이 같은 재정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여러 사업을 계획 중이다.

-재단서 어떤 사업을 준비 중인가요.

먼저 남쪽 5000, 북쪽 2700, 해외동포 750만을 대표하는 발기인들이 모여 228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서 국회기념재단의 기념식을 진행합니다. 3·1운동 기념재단에서는 해외지부를 만들어 당시 해외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 미국 등지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산증인들을 모시고 기념식을 열려 합니다.

3·1운동 기념재단은 중국 북간도, 미국 워싱턴·뉴욕·필라델피아·시카고·덴버 등 7개 지역에 해외지부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해외 동포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 신문 기록 등 자료를 수집해 기록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기해 해외의 자료가 한 데 모일 예정이다.

3·1운동 기념재단은 7가지 목표와 방향에 따라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적인 목표는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이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자료 수집과 정리가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 3·1운동 기념재단에서는 전문가 집단을 구성했다. 정해구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자 성공회대 교수가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3·1운동 당시 전국서 낭독된 선언문, 일본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민중들을 찾아 나섰다. 국내 신문뿐만 아니라 국외서 3·1운동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고,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모았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등재 신청에 쓸 책자를 만들었다. 김 이사장은 “(3·1운동 자료로 구성한 책자는) 정말 소중한, 국보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3·1정신을 지구촌에 확산시키기 위한 ‘3·1운동 UN·유네스코 국제평화대상을 제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국제 부문으로 나누어 UN의 지향점인 인류 공영과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수상자들의 활동과 사상, 생애를 조명하면서 3·1정신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다. 3·1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국내외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재단 설립을 목표로 두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1년에 2, 상반기와 하반기에 초청해 국제 강연회를 개최하는 사업도 준비 중에 있다. 수상자들의 강연을 통해 국민과 해외동포에게 평화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는 취지다. 전통가락과 농악, 창 등 한()의 정서가 담긴 우리 가락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국악경연대회도 진행한다. 국내·국제 부문으로 2년에 1번씩 격년제로 개최할 계획이다.

6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회 잔디 광장서 3·1운동 기념재단이 주관하는 평화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열 생각도 갖고 있다. 현재는 정부기념식만 진행되고 있는 3·1절과 8·15광복절에 대해 3·1운동 기념재단 주최로 국회서도 기념식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3·1운동 알리기와 3·1정신 전파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3·1운동 등재 가능성과 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0%입니다. 올해 하반기 4·19혁명이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 등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등재 절차를 경험했기 때문에 3·1운동은 절차상으로는 조금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국민적 지지가 강하기 때문에 순항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중한 역사
전 세계로

김 이사장은 기성세대들, 구체적으로 정부와 역사학자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3·1운동의 전국화, 세계화를 외쳐 왔지만 실제 제대로 이뤄진 부분은 없었다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5·18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4·19혁명, 3·1운동까지 자랑스럽고 소중한 민족의 자산인 우리의 역사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만방에 선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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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