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3·1정신 기리고 계승하는 김영진 3·1운동 기념재단 이사장

착한 백성들의 선한 싸움 세계에 알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19년 3월1일 일제의 식민지배에 분노한 조선 민중이 거리로 나왔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을 향해 일제 경찰은 총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만세운동은 점차 확산돼 전국 규모로 발전했다. 2019년은 3·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 <일요시사>가 김영진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 이사장을 만나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들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김영진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 이사장

3·1운동은 여러 갈래의 도화선서 시작된 불씨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1918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주창했다. ‘민족은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윌슨 대통령의 말은 민중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1919121일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고종의 사인이 독살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라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19192월 일본 유학생들이 먼저 나섰다. 이들은 일본의 수도 도쿄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

민족 자결주의와 2·8독립선언서의 영향으로 191931일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이날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 태화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했다. 같은 시각 탑골 공원에 모인 학생, 시민들도 만세를 외쳤다.

민중 분노 폭발
일제 강력 탄압

3·1운동은 국내 전역과 해외로 확산됐다. 일제의 진압은 무자비했다. 음력 31일 충남 천안의 아우내장터서 만세를 부른 유관순 열사는 헌병대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다 1920년 옥사했다. 3·1운동은 지식인과 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이 폭넓게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한국 독립운동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줬다. 또 독립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 항일전선을 체계화·조직화·활성화하는 기반이 됐다.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3·1운동은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진 이사장은 3·1운동을 착하디 착한 우리 백성의 선한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5선 국회의원, 전 농림부장관, 대학 석좌교수, 재단 이사장, 기념사업회 위원장 등 김 이사장을 수식하는 직책은 10여개가 넘는다. 그중 김 이사장이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은 바로 3·1운동.

김 이사장은 2008년부터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으로 정의한 5·18광주민주화운동, 4·19혁명, 3·1운동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201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4·19혁명은 UN·유네스코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은 김 이사장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나 다름없다.
 

▲ 3·1절 행사

지난 17일 김 이사장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위치한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이하 3·1운동 기념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10(33) 남짓한 기념재단 사무실은 김 이사장을 만나기 위한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북적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5선 국회의원과 농림부 장관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나 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근황을 물을 때마다 빈직다사(貧職多事, 직책이 대단하진 않지만 일이 바쁘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만큼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지만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자산인 3·1운동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대한독립만세’ 3·1 운동 100 주년 맞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앞장


-한국 독립사에서 3·1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어느 정도일까요.

3·1운동은 일제 36년 억압통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진행한 치열하고 선한 싸움입니다.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항거운동에 나섰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잔인하고 반역사적인 일제의 폭압지배에 맞서 3·1운동에서 시작된 비폭력저항을 조국 광복이 이뤄진 1945815일까지 이어간 유일한 나라입니다.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면, 1000번 정도의 외침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넘본 경우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착하디 착한 백성들이죠. 많은 인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 운동 등에 엄청난 동기를 부여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훌륭한 민족 자산입니다.

-10년 넘게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을 진행 중이십니다.

이 사무실이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인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3·1운동을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본부입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2011년 이미 등재가 완료됐고, 4·19혁명은 올해 상반기 UN·유네스코 등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제 3·1운동 하나만 남았는데 100주년을 맞기 전 UN·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국회의원 시절 아시아-태평양 지역 교육위원연맹에 야당 중진의원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한국 관련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 세계기록유산 자료를 보기 전까진 UN·유네스코 등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100주년 맞아
기록유산 신청

UN·유네스코는 2년에 한 번씩 각국서 들어온 자료를 검토해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순조롭게 진행한다고 해도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을 전부 등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순 계산으로 최소 6년이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서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5·18민주화운동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김 이사장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3·1운동의 등재 작업에 돌입했다.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던 5·18민주화운동 등재 과정서 일어난 정치적 공세 같은 굴곡은 덜했지만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은 장기 프로젝트였기에 긴 호흡이 필요했다. 김 이사장은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 등재 사업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재단 구성에 나섰다.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서, 4·19혁명은 서울서 승인받아 재단을 꾸렸다. 이와 달리 3·1운동 기념재단은 국회 법인으로 등록했다. 201712월 발기인 총회를 시작으로 3·1운동 기념재단이 출범했다. 당시 3·1운동 기념재단은 100주년 이전에 UN·유네스코에 등재 관련 서류를 접수, 한 맺힌 영령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3·1운동 기념재단을 국회 법인으로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대부분 종교인으로 구성됐습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 민족종교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민족대표는 가장 수가 많았던 기독교가 아니라 천도교서 나왔습니다. 천도교 손병희 선생, 종교 간의 밀어붙이기, 주도권 쟁탈 같은 게 전혀 없던 거죠. 그 부분에서 저는 3·1정신을 발견했습니다.


3·1정신은 남북도 없고 동서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습니다. 종교마저도 초월했습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진행된 귀한 운동이기 때문에 국회 법인으로 재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당시 국회의장을 만나 여러 자료와 내용을 공유했고, 여야 합의로 국회기념재단법인으로 승인받게 됐습니다.

민족운동 성격
국회 법인으로

-3·1운동 기념재단 창립, 운영 과정에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 등재를 준비할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이 지배 권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반대급부가 존재했는데 가짜뉴스나 거짓말이 횡행했습니다. 저에 대한 음해가 나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일제의 무자비하고 억압적인 식민지배에 분노하는 과정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원로들께서 저를 만나면 왜 내 이름이 3·1운동 기념재단서 빠졌지?”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전화도 여기저기서 자주 걸려옵니다. 언론서도 관심이 많고요.

국민의 쌈짓돈으로 시작
다양한 사업 전개할 것 


그러면서도 김 이사장은 재정 부분서 고민이 없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3·1운동 기념재단의 취지를 알게 된 유명 기업서 종잣돈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3·1운동 등재에 필요한 종잣돈만큼은 할아버지 쌈짓돈, 아이들 코흘리개 저금통, 주부들이 조금씩 남긴 잔돈 등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국민의 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야, 진보보수, 남북을 초월한 3·1정신을 받들 수 있다고 봤다. 실제 3·1운동 기념재단의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서 작은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상황을 IMF 때 금모으기 운동, 해외동포의 달러 보내기 운동에 비유했다. 국가적 위기에 기꺼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던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또 한 번 확인했다고 했다.

2000, 5000, 1만원 등 총 426명의 마음이 3·1운동 기념재단의 종잣돈이 됐다. 그리고 16개월 후 국회 법인으로 등록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언론서 앞 다퉈 3·1운동 기념재단을 조명했고 국민모금운동에 대한 승인도 떨어졌다. 돈을 지원하겠다는 기업도 나왔다. 3·1운동 기념재단은 이 같은 재정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여러 사업을 계획 중이다.

-재단서 어떤 사업을 준비 중인가요.

먼저 남쪽 5000, 북쪽 2700, 해외동포 750만을 대표하는 발기인들이 모여 228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서 국회기념재단의 기념식을 진행합니다. 3·1운동 기념재단에서는 해외지부를 만들어 당시 해외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 미국 등지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산증인들을 모시고 기념식을 열려 합니다.

3·1운동 기념재단은 중국 북간도, 미국 워싱턴·뉴욕·필라델피아·시카고·덴버 등 7개 지역에 해외지부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해외 동포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 신문 기록 등 자료를 수집해 기록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기해 해외의 자료가 한 데 모일 예정이다.

3·1운동 기념재단은 7가지 목표와 방향에 따라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적인 목표는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이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자료 수집과 정리가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 3·1운동 기념재단에서는 전문가 집단을 구성했다. 정해구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자 성공회대 교수가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3·1운동 당시 전국서 낭독된 선언문, 일본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민중들을 찾아 나섰다. 국내 신문뿐만 아니라 국외서 3·1운동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고,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모았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등재 신청에 쓸 책자를 만들었다. 김 이사장은 “(3·1운동 자료로 구성한 책자는) 정말 소중한, 국보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3·1정신을 지구촌에 확산시키기 위한 ‘3·1운동 UN·유네스코 국제평화대상을 제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국제 부문으로 나누어 UN의 지향점인 인류 공영과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수상자들의 활동과 사상, 생애를 조명하면서 3·1정신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다. 3·1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국내외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재단 설립을 목표로 두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1년에 2, 상반기와 하반기에 초청해 국제 강연회를 개최하는 사업도 준비 중에 있다. 수상자들의 강연을 통해 국민과 해외동포에게 평화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는 취지다. 전통가락과 농악, 창 등 한()의 정서가 담긴 우리 가락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국악경연대회도 진행한다. 국내·국제 부문으로 2년에 1번씩 격년제로 개최할 계획이다.

6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회 잔디 광장서 3·1운동 기념재단이 주관하는 평화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열 생각도 갖고 있다. 현재는 정부기념식만 진행되고 있는 3·1절과 8·15광복절에 대해 3·1운동 기념재단 주최로 국회서도 기념식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3·1운동 알리기와 3·1정신 전파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3·1운동 등재 가능성과 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0%입니다. 올해 하반기 4·19혁명이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 등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등재 절차를 경험했기 때문에 3·1운동은 절차상으로는 조금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국민적 지지가 강하기 때문에 순항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중한 역사
전 세계로

김 이사장은 기성세대들, 구체적으로 정부와 역사학자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3·1운동의 전국화, 세계화를 외쳐 왔지만 실제 제대로 이뤄진 부분은 없었다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5·18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4·19혁명, 3·1운동까지 자랑스럽고 소중한 민족의 자산인 우리의 역사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만방에 선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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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