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잠룡에게 듣는다 ①원희룡 제주도지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1.28 10:08:45
  • 호수 12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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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적요? 제주도민당이요!”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신년을 맞아 <일요시사>는 차세대 대권주자들을 차례로 만나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로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 잠룡으로 거듭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만났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6·13지방선거가 낳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승부수’가 제대로 통했다. 원 지사는 선거 전 비관론을 뚫고 당당히 과반 이상의 득표를 얻어내 재선에 성공했다. 무소속 출마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더불어민주당 필승론’을 뚫고 거둔 의미 있는 승리였다. 단숨에 몸값을 올리는 데 성공한 대권주자는 자만에 빠지기 쉽지만, 원 지사는 달랐다. 현재 당적에 대해 ‘제주도민당’이라고 밝힌 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다음은 원 지사와의 일문일답.

-지사님의 새해 소망은?
▲복과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황금돼지의 해, 기해년이 밝았습니다.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도 많지만, 국민 모두가 황금돼지의 기운을 받아 민생경제가 나아지고 지난해보다 더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해 제주는 폭설로 시작해 폭염, 가뭄, 태풍이 이어지면서 많은 도민들이 힘들었습니다. 올해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이 걱정 없는 해가 되고,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제주 사회 전반의 갈등이 해소돼 도민 통합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을 이루는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2018년을 되돌아봤을 때 아쉬운 부분과 만족한 부분이 있다면?
▲도민들께서 다시 한 번 제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거를 통해 도민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었고,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잘못된 점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람 있었던 일은 첫째 30년 만에 개편된 대중교통 체제 개편의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타의 시·도 대중교통 이용률이 대체로 떨어지고 있는 반면, 제주도는 개편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이 11% 이상 증가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대중교통 고객만족도 결과 전국 1위를 차지했습니다.


둘째 도민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가 안착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주의 핵심가치인 청정 제주를 지키고, 자원순환형 사회로 가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이제는 전국 모범사례가 되어 다른 시·도서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지난해 70주년이었던 제주4·3이 대한민국의 당당한 역사로 자리매김했음에도, 4·3특별법 개정이 끝내 이뤄지지 못한 부분입니다. 또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주민들에 대한 사면복권 역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4·3특별법 개정, 강정마을 주민 사면복권을 위해 정부·국회·정당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지난 6·13지방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하셨습니다. 원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도민들께 더 가까이 다가가 진솔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잘못된 점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경청하는 모습을 도민들께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도민들이 가장 원하셨던 정책 분야는 복지와 일자리였습니다. 이를 반영해 복지예산을 1조원 넘게 배정했고, 청년 일자리 창출과 인재 양성에 많은 예산을 책정했습니다. 앞으로 4년은 도민과 약속했던 공약을 실천하고,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해 미래성장 동력을 키우면서, 성장의 열매가 도민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선도할 ‘더 큰 제주’
김정은의 한라산 등반 의미는?

-2기 제주도정의 핵심 키워드를 꼽아주신다면?
▲임기 동안 경제 체질을 바꿔 제주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다변화해 나가려고 합니다. 도민자본을 키우고, 성장의 과실이 도민에게 고루 돌아가는 내생적·포용적 성장의 정책 기조를 잡아나가겠습니다. 도정에 전념하면서 도민과 함께 새로운 제주를 만들고, 제주의 변화가 대한민국을 견인할 수 있도록 ‘더 큰 제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서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예상했습니다. 두 정상의 한라산 등반이 제주도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신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백두산 정상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이 한라산에서 재현되는 것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에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또 ‘한라서 백두까지 한반도 평화를 이룬다’는 역사적 바람에 부응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세계평화의 섬’ 제주서 발신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교류의 강력한 추진동력으로서 작용할 것입니다. 지자체 차원서 남북교류를 선도해온 제주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입니다.
 

-향후 제주도의 남북교류협력 계획은?
▲남북교류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와 관심에 부응해 지금의 대북제제 하에서 추진이 가능한 문화·스포츠·환경 분야의 교류협력 사업을 우선 시작할 계획입니다. 오는 5월에 제14회 제주포럼이 열릴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 북한 측을 공식 초청할 계획입니다. 또 2019 코리아컵삼다수 제주국제체조대회, 2019 제주 국제유스축구대회와 씨름·축구·체조 등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 북한 선수들의 참여를 유도하려고 합니다. 2020년엔 제주 세계지질공원 총회에 북한 대표단을 초청해 청정 환경을 보호하고 지켜가는 데 남북이 함께 힘을 모아나갈 방침입니다.


제주도는 향후 대북제재 완화 여건이 조성되면 경제 등 다양한 방면서 교류협력이 추진될 수 있도록 ‘5+1 대북협력’ 사업을 중심으로 착실히 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남북교류협력기금도 2019년 1월 현재 약 53억원서 2023년까지 100억원으로 확대 조성할 방침입니다.

-올해 제주도 경제정책의 목표를 발표하면서 투자유치 업종 및 대상 국가를 다변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셨습니다.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양질의 외국인 투자유치를 추진하고, 내실 있는 투자환경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제주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역경제 규모 대비 매우 높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실제 도착액이 전국 3∼6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투자유치의 대부분은 부동산업과 중국자본에 편중된 현상을 보이면서 중국정부의 투자제한 정책에 큰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는 지난해부터 투자유치 산업 분야와 대상국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를 더욱 본격화해 나갈 방침입니다. 투자유치 분야를 IT·BT·CT산업, 신재생에너지, 블록체인, 스마트시티, 6차 산업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대상국가도 유럽, 일본, 북미 등으로 다변화해 투자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여나가려 합니다.

-여성가족부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 및 지역 성평등지수’서 제주도의 성평등 지수가 상위권에 진입했습니다. 특히 경제활동 분야의 성평등 수준 점수가 전국서 가장 높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제주도는 ‘함께 만들어가는 양성평등한 제주 사회’라는 비전 아래 일·생활의 균형 및 일자리 창출, 건강한 양성평등 사회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안심하고 편안한 육아 및 일·생활의 균형을 지원하기 위해 제주형 수눌음육아나눔터를 운영하고, 사회적 돌봄공동체를 육성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또 일자리 미스매칭 해소를 위한 맞춤형 여성 전문인력 양성과 다양한 일자리 창출 및 취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고령 여성인력 양성 교육과정과 농어촌여성 새로일하기센터 운영, 제주지역 특성을 살린 여성공동체 창업 지원도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국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해 지자체 중 전국 최초로 성평등정책관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평등정책의 실행력을 강화하고, 도정 전반의 영역에 성평등 관점 확산, 성인지정책 내실화를 통한 지역사회의 성 주류화 확산사업을 확대·강화할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개별공시지가 발표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는 전년 대비 17.51%가 오르면서 전국 시도 중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부동산 대책이 궁금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제주 이주열풍이 뜨거웠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내총생산(GRDP)의 성장률은 높았으나,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고 주택매매 거래량은 줄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종합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주거종합계획(2018~2027년)은 급속한 인구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사회적 변화에 맞춰 효율적인 주택공급을 통한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2025년까지 행복주택 7000호, 국민임대 3000호, 임대 후 분양 1만호 등 총 2만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올해 목표? 청년육성!
도정에 ‘올인’ 약속

-지난해 7월 “협치와 연정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협치와 연정을 평가해주신다면?
▲제주의 정책 방향을 잡아가는 데 도민의 선택을 받은 도의회와 협력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해나가는 일은 당연합니다. 이미 행정시장 임명 과정서 도의회의 의견을 적극 청취했고, 여당 출신의 제주시장님을 모셨습니다. 의회 사무처 인사권도 대폭 이양해서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도록 보장했습니다. 지난해 7월 도의회와 ‘상설정책협의회’ 제도화에 합의했고, 11월 관련 조례 개정안이 가결됐습니다. 앞으로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이 협의회의 공동의장을 맡아 다양한 사안을 논의해 나가겠습니다.

-올해 꼭 매듭짓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최근 어려워지는 민생 경제와 일자리 문제의 해법 중 하나가 청년 인재육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 하반기쯤에 제주형 일자리 혁신 모델인 ‘더 큰 내일센터’가 출범합니다. 더 큰 내일센터는 2년간의 ‘선 취업, 후 교육’을 통한 취업·인재육성 시스템으로 참여자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최종적으로는 혁신적인 기업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통한 지역과 기업의 공존, 기반산업의 혁신과 미래 동력산업을 견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잘 추진해나가겠습니다.
 

-6·13지방선거를 통해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그러한 세간의 평가를 체감하시는지?
▲저는 도민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를 바라보지 않겠다고 도민들과 약속했습니다. 정치 진로를 전적으로 도민에게 위임했습니다.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저는 앞으로도 도정에 전념하면서 도민과 함께 새로운 제주를 만들고, 제주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미래 모델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큰 제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온 힘 쏟겠습니다. 도정에 성과를 내고 도민행복과 제주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 지금의 가장 중요한 계획입니다. 그 과정서 지방분권과 국가적 차원의 발전을 위해 여러 정치권과 논의하고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겠습니다.

-설 명절을 맞은 <일요시사> 독자들께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해년 새해를 맞아 만사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 지표를 보면 올해 경제 전망이 좋지 않습니다. 힘든 한 해가 예상되지만, 지난 역사에서 보듯 우리 국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한 해로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도정에 ‘올인’하면서 도민에게 희망을 드리고, 성과가 도민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hm@ilyosisa.co.kr>


[원희룡은?]

▲제주 서귀포 출생
▲제주대 대학원 정치학 명예박사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제16·17·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제37·38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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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생전 걸음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송사를 치르느라 법정을 오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떤 실수는 손쓸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실수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계약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더욱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김모씨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놀라서 해줬다가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김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 거주할 목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보증금은 2억200만원으로 했다. 해당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새로운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전세 계약 기간 만료 후인 2019년 9월 해당 빌라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임차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주택에 거주할 때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도 대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퇴거하게 되면 이사하는 곳으로 주소를 옮겨야 하니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대항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차권등기명령은 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만큼, 강한 대항력을 가진다”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있다는 것은 세입자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지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에 가입해 뒀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은 전세 계약이 종료됐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을 HUG가 대신 돌려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가 임차인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청구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2019년 10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전액인 2억200만원을 받았다. 전세 살다 보증금 못 받아 전세보증금 보험으로 구제 이후 김씨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고 해당 빌라와 관련한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이후 5년여 동안 해당 빌라와 관련해 김씨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해당 빌라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유권 변동이 일어났지만 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다 지난해 11월 김씨에게 임차권등기명령 취소 신청서가 날아들었다. 김씨는 “법원에서 문서가 송달돼 크게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문서에 기재된 번호로 연락했더니 7년 전 전세로 살았던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집주인이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갑자기 법원에서 종이가 날아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임차권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를 직접 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20일 김씨가 해당 빌라에 걸어놨던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 해당 빌라에 김씨가 행사할 수 있던 권한이 소멸한 것이다. 동시에 집주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줄줄이 꼬였다 이때 김씨가 간과한 사실은 HUG의 존재였다. 김씨가 해당 빌라의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임차권등기를 말소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가 돈을 받은 뒤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주는 게 실제 일반적인 절차다. 이 과정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HUG에서 받았다. HUG 입장에서는 해당 빌라의 집주인에게 2억200만원 즉,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으로 말소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김씨가 배당 순위에서 밀리게 되면서 HUG는 대위변제한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여기에 은행, 지자체 등 후순위 채권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김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HUG 경기관리센터(이하 HUG 경기센터)는 “모든 임차인은 HUG에 대위변제를 받으면서 대위변제증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을 당시 작성한 대위변제증서에는 ‘본인(김씨)은 HUG가 대위변제금 및 제반 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HUG의 동의 없이 주택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겠으며 본인의 주택임차권등기 말소로 인해 HUG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HUG 경기센터는 “HUG는 대위변제 물건을 경매에 넘겨서 배당을 회수하는데 임차권등기명령을 무단 말소하면 경매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UG에 연락했으면 대신 응소해 임차권등기를 지켰을 텐데 당시 김씨가 연로해 이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낙장불입 그러나…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집주인이) 내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본인(집주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며 “내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주인 말에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김씨가 집주인과 해당 빌라의 채권자들에게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피고(집주인)가 원고(김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기망행위를 했다거나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청 취하 행위 자체에 착오에 빠져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속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김씨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HUG 경기센터는 대위변제한 보증금 회수를 위해 일단 김씨의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상황을 참작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차권등기 무단 말소 무효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HUG 측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번도 진행한 적 없는 소송이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원 인정 안 해 HUG, 구제 위해 소송 제기 HUG 경기센터는 “그동안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는 것(낙장불입)으로 보고 임차인 손해배상 청구로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임차권등기 말소 무효 소송을 통해 원상복구 가능성이 있다’는 법률 자문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이 HUG의 승소로 종결돼 임차권등기가 부활하면 김씨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다. 이때 김씨는 소송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HUG 경기센터가 제기한 소송은 김씨에게 해당 빌라에 걸려 있던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만큼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도 HUG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김씨의 임차권등기 말소 행위는 무효라는 게 골자다. HUG 경기센터는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 말소하면서 채권 선순위로 올라온 은행, 세무서, 지자체 등이 김씨의 억울함을 헤아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소하지 않길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씨가 별도로 제기했던 소송에 모두 대응한 전력이 있어 HUG가 제기한 소송에도 응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HUG가 김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구제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이들 후순위 채권자들도 집주인의 허위 소송에 안타깝게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한 김씨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실제 김씨가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은행 한 곳은 대응하지 않았다. 순간 실수 인정될까? 김씨는 집주인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HUG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일이 벌어지고 HUG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재산은 (가압류로) 묶였고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