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흔들리는 촛불 시민혁명
<황천우의 시사펀치> 흔들리는 촛불 시민혁명
  • 황천우 소설가
  • 승인 2019.01.28 10:38
  • 호수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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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지인들이 필자에게 5·16이 혁명인지 쿠테타인지 묻고는 한다. 그러면 필자는 곧바로 답한다. “우리말로는 혁명이고 외래어로는 쿠테타”라고. 그러면 상대방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이어서 이렇게 얘기한다. “혁명이든 쿠테타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로 인해 나라와 국민에게 어떠한 변화가 찾아왔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시간을 조선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조선조 역사를 살피면 문재인정권의 시각에 비춰볼 때 두 건의 혁명과 두 건의 쿠테타가 있었다. 두 건의 혁명은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권좌서 밀어낸 인조반정이다.

또 문정권 시각으로 바라볼 때 두 건의 쿠테타는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역성 혁명과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보위서 밀어내고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던 수양대군, 세조의 계유정난이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사건, 즉 혁명과 쿠테타의 결과는 흥미롭게도 상이하게 나타난다. 우리 역사에서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아 쿠테타의 주역이 된 태조 이성계와 수양대군 세조에 대해 혹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 그들은 쿠테타를 통해 권력을 잡음으로써 자신들이 품었던 소기의 목적인 권력 획득과 함께 권력의 기반인 민생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정권의 시각으로 혁명이었던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의 결과에 대해 살펴보자. 막상 살펴보자고 했으나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기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간략하게 서술해보자. 먼저 중종의 경우다. 

보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 시절 행해진 적폐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이상주의에 빠져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등용하며 혼란을 초래한다. 또 문정왕후의 오빠와 동생인 윤원로와 윤원형이 왕비의 세를 업고 횡포를 부려 국가의 기강이 무너진다. 

안에서 곪기 시작하자 밖으로도 편할 턱이 없다. 남쪽에서는 왜(일본)의 침입이 이어져 급기야 삼포왜란이 발생하고 북에서는 야인들의 침입이 지속되면서 민생은 그야말로 곤궁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음은 인조의 경우다. 사실 인조에게는 지면을 할애하는 게 아까울 정도다. 왜냐, 그가 보위에 앉아 있을 당시 발생했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문이다. 그로 인해 권력은 물론 민생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상기서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현상을 낳았다. 반정, 즉 문정권 시각서 혁명으로 권력을 잡으면 이전 정권서 행해졌던 적폐를 청산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바로 권력을 잡고자 했던 동기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즉 문정권에게 주어진 권력은 자기 의지로 쟁취한 게 아니라 나무서 떨어진 사과를 그냥 입에 넣은 경우기 때문이다.

작금에 발생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는 액션까지 취한 손혜원 의원의 목포 사랑을 살피면 문득 윤원형의 첩이었던 정난정이 떠오른다. 벌려놓은 일들을 살피면 초선에 불과한 손 의원의 위세가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정청래를 제치고 금배지를 달 정도로 현 정권의 실세인 손 의원이 등에 업은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혹시라도 그와 연계된 사람들이 문정왕후를 의식한 경우라면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 역시 일어난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