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투어 ③청주 삼겹살거리

두툼한 생삼겹살이 지글지글

▲ 서문시장에 삼겹살 식당 15곳이 옹기종기 모인 청주 삼겹살거리

두툼한 생삼겹살, 간장 소스, 지글지글 불판에 고기 익는 소리…. ‘청주 삼겹살거리’의 낯익은 모습이다. 충북 청주 서문시장에는 삼겹살거리가 있다. 삼겹살 식당이야 전국 곳곳에 널렸지만 삼겹살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청주가 유일하다. 삼겹살 식당 15곳이 옹기종기 모여 추억의 돼지고기 맛을 전한다.
 

▲ 청주 삼겹살거리에 들어선 조형물

삼겹살 먹자골목이 들어선 상당구 서문시장은 청주 시민에게 향수 어린 장소다. 버스터미널이 있던 서문시장 일대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두툼한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려고 부담 없이 찾던 공간은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경동으로 이전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 삼겹살을 간장 소스에 담갔다가 구우면 잡냄새가 없어지고, 육질이 부드럽다.

두께 0.8cm

한때 육거리종합시장 못지않게 번성했던 서문시장은 유동 인구가 감소하며 동력을 잃어 공동화현상을 겪었다. 상인들이 이전하고 삼겹살 식당도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 삼겹살 식당들이 의기투합해 삼겹살거리로 재탄생시킨 것은 2012년이다. 시장 골목은 리모델링을 거쳐 간판과 조형물이 새롭게 들어선 추억의 삼겹살 특화 거리로 다시 출발했다. 초창기 7곳이던 삼겹살 식당은 현재 15곳으로 늘었다. ‘충주돌구이집’ ‘삼남매’ ‘야간비행’ ‘금순이은순이’ ‘함지락’ 등이 삼겹살거리를 굳건하게 지켜온 식당들이다.
 

▲ 국산 생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내놓는다.

청주에서는 삼겹살을 먹는 방식이 약간 독특하다.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간장 소스에 담갔다가 굽는다. 소금을 뿌려 먹는 데서 간장 소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으로 변모한 것이 청주 삼겹살의 트레이드마크다. 일본식 소금구이를 뜻하는 ‘시오야키’ 간판을 내건 청주 삼겹살집에서는 예부터 간장 소스가 함께 나왔다. 간장 소스는 수퇘지를 식육으로 사용하던 시절, 잡냄새를 없애려고 쓰기 시작했다. 달인 간장은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곳 삼겹살거리의 식당은 조선간장에 생강, 당귀, 계핏가루, 마늘, 녹차 등 10여가지 재료를 넣어 특유의 소스를 만든다.
 

▲ 삼겹살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파절이

청주 일대의 돼지고기는 예전에 진상했을 정도로 맛이 유명했다. 삼겹살거리의 식당들은 오랜 시간 국산 생고기를 숙성시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켜왔다. 삼겹살은 0.8cm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 내놓는다. 너무 얇으면 구울 때 육즙이 쉽게 사라져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먹음직스럽게 익은 삼겹살

청주 삼겹살거리를 제안하고 <썰며 쓴, 삽겹살 이야기>를 발간한 함지락의 김동진 대표는 “삼겹살은 짜글이와 함께 청주의 대표 음식”이라며 “선홍빛이 선명한 등살에, 구웠을 때 고소한 냄새가 나야 좋은 삼겹살”이라고 강조한다.
 

▲ 삼겹살거리에 마련된 포토 존

간장 소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
새콤한 파절임·묵은지 함께 삼합

간장 소스와 함께 청주 삼겹살의 맛을 돕는 음식이 파절이다. 이곳 상인들은 파절이가 청주에서 태동했다고 주장한다. 식초, 설탕,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 달콤, 새콤한 파절이는 두툼한 삼겹살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묵은지까지 곁들이면 ‘간장 소스 삼겹살+파절이+묵은지’를 같이 먹는 삼겹살 삼합이 완성된다.
 

▲ 청주 삼겹살거리 입구

삼겹살거리의 식당들은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서문시장에서 수십년 정육점을 운영하다가 오픈한 식당도 있고, 채소 장사하던 형수와 함께 식당을 꾸린 가게도 있다. 자매의 손맛이 야무진 집, 야간 손님만 받는 식당도 있다. 메뉴 역시 간장 소스 곁들인 전통의 맛을 이어오는 곳이 있고, 새로운 변신을 모색한 식당도 있다. 능이버섯을 곁들인 삼겹살, 연탄 구이, 백반식 삼겹살, 등갈비 삼겹살 등 손님 취향을 고려해 식당이 다변화했다.
 

▲ 청주중앙공원의 운치를 더하는 망선루

겨울 해가 지는 오후 5시 무렵이 되면 삼겹살거리에 불이 들어온다. 본격적인 저녁 영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간판에 돼지 그림이 있고, 골목 한쪽에는 돼지 모형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됐다. 삼겹살거리에서는 매달 첫째 토요일이면 삼겹살과 소주가 어우러진 ‘삼소데이’ 행사가 열려 버스킹을 비롯한 문화 행사와 경품 이벤트가 펼쳐진다. 중앙 통로에 설치된 좌판에서 돼지고기 김밥, 삼겹살 햄버거 등 퓨전 돼지고기 음식을 선보인다.
 

▲ 대청호 변에 자리한 문의문화재단지

최근에는 브랜드 공모전을 실시해 ‘와우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청주 삼겹살을 전국에 알리는 야심 찬 계획도 진행 중이다. 청주 삼겹살거리는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열며, 일부 식당은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영업한다. 삼겹살 값은 200g에 1만2000원 선. 식당에서 제공하는 무료 주차권으로 서문시장 주차장, 인근 홈플러스 주차장, 청주중앙공원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 청주 상당산성에는 걷기 좋은 ‘상당산성길’이 조성됐다.

삼겹살로 배를 채웠으면 슬슬 주변 산책에 나설 일이다. 삼겹살거리에서 인근 청주중앙공원까지 걸어서 5분 거리다. 공원에는 900년이 넘은 은행나무인 압각수와 목조 누문인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망선루 등이 운치를 더한다. 공원 뒷길은 청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성안길로 이어진다.
청주 외곽으로 나가면 본격적인 겨울 경치가 펼쳐진다. 대청호 변에 자리한 문의문화재단지는 옛 문의면 지역의 유적을 만나는 오붓한 공간이다. 단지에는 고인돌 같은 선사 유적과 문산관을 비롯한 전통 가옥이 대청호를 배경으로 이전·복원됐다.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에는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해 단지 내 풍경과 절묘한 반전을 보여준다.
 

▲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lt;직지심체요절&gt;을 인쇄한 흥덕사 터에 건립됐다.

호젓한 겨울 산성을 걷고 싶으면 청주 상당산성(사적 212호)으로 향한다. 상당산성은 원형이 잘 보존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석성으로 ‘상당산성길’이 조성돼 걷기 좋다. 산성 둘레는 약 4.2km이며 동문과 서문, 남문 외에 암문이 2개 있다. 성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30분쯤 걸린다.
 

▲ 청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수암골전망대

청주고인쇄박물관

시내에서는 국내 유일의 고인쇄 박물관인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볼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흥덕사 터에 건립됐다. 최근 내부 재단장을 끝냈으며, 흥덕사지 출토 유물을 비롯해 목판에서 금속활자까지 인쇄 발달 과정을 가상현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 골목 따라 그려진 벽화 너머로 청주 시내 전경이 보이는 수암골전망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 조각공원이 운치 있는 운보의 집 등을 둘러볼 만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문의문화재단지→청주 상당산성→청주고인쇄박물관→삼겹살거리→수암골전망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문의문화재단지→청주고인쇄박물관→삼겹살거리→청주중앙공원
둘째 날: 청주 상당산성→운보의집→청남대→수암골전망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청주시 문화관광 www.cheongju.go.kr/tour/index.do
- 청주고인쇄박물관 http://jikjiworld.cheongju.go.kr

문의 전화
- 청주시청 관광정책과 043)201-2042
- 문의문화재단지 043)201-0915
- 청주고인쇄박물관 043)201-4266
- 청주 상당산성 043)201-2043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청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0~15분 간격(05:40~24:00) 운행, 약 1시간40분 소요. 청주터미널에서 삼겹살거리까지 50-1·105·105-1·311·502·511·516·832번 버스 운행.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청주 IC→국도36호선 가로수길→터미널사거리 직진→청주대교 지나 서문시장 방면 

숙박 정보    
- 상당산성자연휴양림: 청원구 내수읍 덕암2길, 043)216-0052
- 그랜드플라자청주호텔: 청원구 충청대로, 043)290-1000 
- 초정약수세종스파텔: 청원구 내수읍 신기초정로, 043)213-2332, www.cjspatel.co.kr
- 호텔 린: 흥덕구 풍년로142번길, 043)231 -0207

식당 정보
- 함지락(삼겹살): 상당구 무심동로372번길, 043)223-2379
- 금순이은순이(삼겹살): 상당구 남사로89번길, 043)255-1141
- 야간비행(삼겹살·목살): 상당구 남사로89번길, 043)257-8222
- 충주돌구이(삼겹살): 상당구 남사로89번길, 043)253-0531
- 서문우동(우동): 상당구 남사로89번길, 043)256-3334
- 경주집(표고버섯 요리): 상당구 남사로93번길, 043)221-6523
- 상당집(두부전골): 상당구 성내로118번길, 043)252-3291


주변 볼거리
청남대, 청주백제유물전시관, 청주랜드, 초정약수, 상춘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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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