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갑질’은 범죄와 다르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1.21 10:35:07
  • 호수 1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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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계약 관계 쌍방 중 우위에 있는 측을 주로 뜻하는 갑(甲)이라는 한자어에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인 용어다.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5년가량 된 신조어지만 국어사전에 등재돼도 좋을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갑질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 정도로 인식되며 대개 도덕적 문제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갑질의 상당수는 도덕이나 인성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형사 책임을 져야 하는 행동이다.

가령 계약에 따라 주기로 한 대금을 정당한 사유 없이 주지 않는다면 민사상 채무불이행 책임을 진다.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했다면 이는 형사상 책임이 발생하는 범죄가 된다. 물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자에게 반말을 일삼는 소비자처럼 도덕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갑질 유형도 있다. 도덕과 품성의 문제부터 범죄에 이르는 다양한 언행들을 갑질이라 통칭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 갑질이라는 용어가 처음 회자되기 시작했을 때는 그간 무관심했던 약자에 대한 횡포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갑질이라는 단어가 남용되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형사상 범죄임이 분명한 행위까지도 싸잡아 갑질이라 부르는 바람에 범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인식하게끔 하고 있다. 

상사가 공개된 장소서 부하 직원에게 폭언을 하거나 망신을 주는 것은 갑질이 아니라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 폭행은 말 그대로 폭행죄가 된다. 위계질서나 속칭 갑을관계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여 단순히 갑질이라고 표현할 것이 아니다.

특히 근로관계서 업무와 관련해 일어난 폭행은 근로기준법상 폭행 금지 조항의 적용을 받아 형법상 폭행죄보다 더 엄중하게 다뤄질 수 있다. 이밖에 대중매체나 언론을 통해 갑질 사례로 알려진 것 중에는 금품갈취나 협박 같은 중대한 범죄행위가 많다. 


이 같은 범죄행위들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와 더불어 갑질로 통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폭행, 폭언, 모욕, 금품갈취, 협박, 강요, 강제추행 등 그 사실관계에 가장 부합하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형사 기소가 되기도 전에 특정 죄목을 명시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에게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대등한 당사자 간에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해법이 있다. 

만약 길을 가던 이에게 주먹질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무엇이라 표현할 것인가. 아마 ‘행인 폭행’ 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웹하드 회사 사장이 직원의 뺨을 때린 것은 ‘직원 폭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보도한 상당수 언론은 ‘양모 회장의 갑질’로 기사제목을 작성했다. 지위를 이용한 폭행은 일반적인 폭행보다 더 심각하게 다뤄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신문기사를 보면 더 가볍게 처리된 느낌이 없지 않다.

갑질이라는 용어는 법률로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부당하거나 무례한 행위를 지칭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언어란 사회적 약속이므로 어느 누가 주장을 하거나 캠페인을 벌여서 그 용례를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여러 사람이 보는 대중매체와 각종 서적 등에서만이라도 갑질과 그 이상의 범죄 혐의를 구분해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부당하고 위법한 행동들을 잘 구별해 명명하게 되면, 대중들이 그 심각성을 올바로 인지하게 될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개선해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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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