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캐슬>보다 더한 ‘스포츠 캐슬’ 실상

부모 등골 빼는 예체능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먹고살기 팍팍해지면서 많은 부모들이 내 자식만큼은 좀 더 나은 환경서 살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런 부모의 마음은 자식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다. 최근에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들을 그린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선 고3 수험생보다 예체능계 자녀를 둔 부모의 삶이 더 치열하다고 말한다.
 

▲ 드라마 스카이 캐슬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성인남녀 1336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사회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에 대한 응답자들의 답변이다. 응답자의 37.1%경제적 뒷받침, 부모님의 재력이라고 답했다. ‘개인의 역량(18.1%)’이라고 답한 응답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개인 능력보다

최근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온·오프라인을 점령했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호평을 받고 있는 것. 드라마를 통해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생소한 직업도 관심을 받고 있다. 입시 코디는 수험생의 내신, 자기소개서, 외부 활동 등을 관리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과거에 비해 학생이 챙겨야 할 부분이 크게 늘어나면서 등장한 직업이다.

문제는 이다. 입시 코디를 받는 데 수억원이 든다는 드라마 속 표현은 부풀려진 감이 있지만, 돈이 없으면 쉽게 경험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학교 수업, 학원, 과외 등으로 공부해 수능점수로 대학입시가 결정되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자녀의 앞날에 끼치는 영향이 커진 셈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대학입시보다 부모의 능력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야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운동 등 예체능계 분야이다. 이들은 예체능계가 명문대 입학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 명문대 보내려고
성적관리 코디까지 등장

#1.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한 빙상장. 주차장에 외제차가 드문드문 보였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지상층이 아닌 선수 레슨을 주로 하는 지하층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3040대 여성들이 보였다. 대부분 링크 안에서 레슨을 받고 있는 선수의 어머니들. 발 옆에는 스케이트, 연습복, 외투, 영양제 등이 담긴 캐리어가 있다. 이 캐리어들은 링크 밖에도 줄지어 놓여있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학교로 자녀를 데리러 갔다가 빙상장으로 온다. 링크 대여 시간에 맞춰 레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연습 시간에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가 끝나면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들 역시 꽉 짜인 스케줄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일부 선수들은 관람석을 따라 달리면서 체력훈련을 했다.

빙상장 관계자는 올림픽 이후 피겨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늘었다며 주말에는 외제차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의 발에 맞춤 제작된 스케이트화, 레슨비, 링크 대여비 등 부모가 부담해야 할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귀띔했다.
 

▲ 김연아 선수

많은 부모와 자녀들이 제2, 3의 김연아를 꿈꾸지만 성공하는 선수는 극소수다. 피겨맘 A씨는 예체능계는 살아남는 사람도 정말 적지만, 실패하면 정말 막다른 길에 몰린다.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운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나도 애도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2018년 서울대 의대 입학정원은 135명이다. 수시에서 일반전형으로 75, 지역균형선발전형 30명 등 105명을 선발하고, 정시 가군에서 30명을 뽑는다. 그에 비해 예체능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야만 그나마 불안한 미래라도 보장된다고 한다.

#2. 아들이 대학 축구부서 선수로 뛰고 있는 축구맘 B씨는 개인 시간이 거의 없다. 아들이 경기에라도 나갈라치면 관중석서 마음 졸이는 게 일상이다. 선발 선수로 뽑히지 못하면 마음고생은 더욱 심해진다. 합숙훈련 때도 몸에 좋다는 음식을 넣어주기 바쁘고, 해외 전지훈련도 사비를 들여 따라간다. 코치나 감독에게 가는 도시락 등도 부모들의 몫이다.


운전기사, 짐꾼, 훈련사…
더 힘든 예체능 뒷바라지

모든 일정이 축구하는 아들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다른 가족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소홀해진다. 가족끼리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도 아들의 훈련이 끝나는 시기에나 가능하다. 장비가 많지 않아 다른 운동에 비해 돈이 적게 들 것 같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축구화나 유니폼은 기본이고 개인 훈련, 식사, 기타 부대비용 등 말 그대로 허리가 휜다.

피겨여왕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올댓스포츠 대표이사는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는 책에 김연아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까지 10여년간의 시간을 담았다. 책에 따르면 박 대표는 김연아에게 재능이 있다는 코치의 말에 모든 생활을 정리했다. 김연아가 박 대표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가 된 것이다.

박 대표와 김연아는 오전 9시에 일어나서 다음날 새벽 1시가 넘어 잠들 때까지 모든 생활을 함께했다. 박 대표는 운전은 물론 기초체력 운동까지 지도했다. 그 사이 연습에 지쳐 울고 짜증 내는 김연아를 달래는 것도 박 대표의 몫이었다. 극성 엄마라는 말이 박 대표를 따라다녔지만, 박 대표는 자신이 김연아를 가장 잘 알고 분석할 수 있는데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낭비라고 일축했다.

부모 능력 중요

예체능계서 성공은 바늘구멍보다 좁기 때문에 엄마들의 행동은 극성스럽게 비쳐지기도 한다. 실제 운동선수 엄마들에게는 치맛바람, 극성 엄마 등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자식을 위한 헌신이 극성으로 비쳐지는 현 사회 세태에 불만을 표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예체능계 관계자는 자녀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극성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엄마들이 보통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학가서도?  취업해서도?

헬리콥터 맘은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해도 주변을 맴돌면서 참견하는 엄마를 뜻하는 말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성적 공표 기간이 되면 학생의 엄마들에게 특히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성적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학생이 아닌 엄마가 한다는 설명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이 엄마가 자신을 잘 부탁한다며 회사에 찾아온 것에 대해 걱정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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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