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9인 잠룡’ 기해년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1.02 11:15:54
  • 호수 1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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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해 용꿈 꾸게 해주소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다가왔다.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를 맞은 잠룡들은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2019년 한 해 몸값을 올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의 향배가 결정될 공산이 크다. 복이 들어온다는 돼지해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 (사진 왼쪽부터)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

2019년 잠룡들은 어느 해보다 활발한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잠룡들이 운신할 폭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이다. 여권 잠룡들에게는 자기 정치를 할 기회가 찾아왔으며, 보수야권 잠룡들에게는 발목을 잡던 박근혜 탄핵정국서 벗어날 기회가 주어졌다.

이낙연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치권이 예상하는 대권 1순위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서 1위에 올라 있다. ‘이낙연 대망론’이 여의도서 가장 뜨거운 이유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인 데 반해 이 총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는 아이러니가 2019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세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그에 대한 위상은 굳건하다. 경제 투톱으로 불리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 인선에 이 총리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 대통령도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친문(친 문재인)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기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이다.


관건은 총리직을 내려놓은 다음의 행보다. 대선 전까지 대권주자로서 존재감을 계속 보일지는 미지수다. 당내 경선서의 경쟁력도 장담할 수 없다. 총리 퇴임 후 야인 신분이 된다면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대 총리들의 대권도전 실패 사례가 주는 교훈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이 총리의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에 주목한다.

황교안

보수야권의 희망으로 불린다. 각종 여론조사서 이 총리에 이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선 1위다. 최근 강연정치로 자신의 주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절제된 언어로 문재인정부 정책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모습이 몸값을 높이는 데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관건은 행정가서 탈피해 정치가로의 변신에 성공하느냐다. 오는 2월에 열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당대회가 변신의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 전 총리는 당 대표 출마를 결정하지 못한 채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여의도 안팎으론 취약점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장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들린다.

이낙연 VS 황교안 총리 매치 임박
19대 대선 상종가 유승민·심상정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황 전 총리의 경우 박근혜정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며 “당 대표로 나오든 총선에 나오든 집권여당에선 이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프레임에 완전히 노출돼있다고 보면 된다.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시민

전망이 가장 밝은 대권주자 중 한 명이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앉기 전부터 연예인 뺨치는 인지도를 가졌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얻은 잡초와도 같은 생명력은 유 이사장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그 외 요소들도 긍정적이다. 국회의원을 하며 현실정치에 단련됐으며,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해 관료사회에 대한 이해도도 갖췄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라는 평가는 여권 최대 계파인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에게 크게 어필하는 부분이다.

상승세는 2019년에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 이사장은 내년 1월 유튜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중에 판치는 가짜뉴스에 엄중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이유다. 정치권은 유 이사장의 다음 행보를 정계복귀로 조심스레 내다본다.

관건은 유 이사장의 의지다. 그는 자신의 이사장 취임식서 “정치를 하고 말고는 의지의 문제”라며 “다시 공무원이 되거나 선거에 출마할 의지가 현재로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1959년생인 유 이사장은 황금돼지띠다.

유승민

19대 대선 때의 기세가 무색하게 현재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바른미래당 내에서 우군이었던 측근들이 탈당하거나 탈당설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당내 입지가 좁아진 건 당연지사.

2019년 유 전 대표에게 있어 키워드는 ‘홀로서기’와 ‘복당’이다. 측근들의 이탈로 홀로서기 시험대에 올랐다. 혼자서도 이전만큼의 정치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따라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이어가느냐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에는 유 전 대표를 둘러싼 복당설의 실체가 밝혀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12월17일 대구에 내려와 강대식 전 동구청장 등 측근들과 긴급회동을 갖고 한국당 복당과 관련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최근 기자들과 만나 “유 전 대표는 탈당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태를 수습했다. 정치권에선 2월 중으로 열릴 예정인 전당대회가 바른미래당 탈당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상정

19대 대선이 낳은 또 한 명의 대권주자다. 대표직을 내려놓아 미디어 노출도가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여성 정치인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


2019년은 정의당을 제1야당으로 성장시킨다는 약속을 지켜낼 수 있느냐가 결정되는 해다. 이미 교두보는 마련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발간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배분 방식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난 20대 총선에 대입했을 시 정의당의 의석수는 36석으로 증가한다. 기존 5석에서 비약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 (사진 왼쪽부터)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노 전 원내대표가 유명을 달리하기 전 정의당 관계자는 당내 최대 숙제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심상정, 노회찬 이후의 인물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답한 바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존재감이 당내서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심 의원에게는 한쪽 날개를 잃은 정의당을 총선 대박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숙제가 안겨졌다. 심 의원 역시 1959년생으로 황금돼지띠다.

안철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한때 ‘안철수 신드롬’의 당사자였으나 잇단 패배로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다. 현재 독일로 건너가 국책연구기관인 막스프랑크 연구소에 머물고 있는데 2019년 귀국이 유력하다. 귀국 후 곧바로 정계복귀를 할지 주목된다. 

최근 안 전 공동대표는 지지자들에게 손편지를 써 주목받았다. 편지를 통해 그는 “무더위와 강추위를 겪으면서 우리들은 나이테처럼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는데 이는 곧 정계 복귀설로 번졌다.


안 전 대표 측은 “독일로 떠날 때 인사도 하지 못한 지지자들에게 안부를 전한 것뿐”이라며 “(정계 복귀는)전혀 아니다”라고 설을 일축했다.

안 전 대표에게 2018년은 잊고 싶은 해다. 6·13지방선거서 서울시장으로 출마했지만, 박원순 시장을 꺾기는커녕 한국당 김문수 전 후보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다. 대권주자로서 믿기 어려운 참패였다. 귀국 후 탈당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른미래당을 되살려낼지가 관건이다.

이재명

굴곡진 한 해였다. 지난 대선 때 비록 문 대통령에게 경선서 졌지만, 체급을 올리는 데 성공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세를 몰아 6·13지방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현재의 자리로 올라섰다.

그러나 곧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이 봇물 터지 듯 제기되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이후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등에 대한 의혹으로 기소됐다. 이 중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관련 혐의에 대한 증인 심문, 증거조사 등은 오는 10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내상 입은 안철수 “재기 가능할까?”
‘도지사 듀오’ 이재명·김경수 닮은꼴

자신에 대한 혐의를 벗는 게 최우선 과제다. 2019년은 이 지사에게 위기이자 기회의 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26일 “의혹 중 핵심인 혜경궁 김씨에 대한 부분은 기소를 피했다”며 “만약 지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면 모든 의혹을 털고 대선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수

이재명 경기도지사 입장에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부러울법하다.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선거 과정서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지사의 1심 재판은 지난 12월28일 마무리됐다. 오는 1월 중 김 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김 지사 사건은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했던 사건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특별검사팀은 김씨 일당의 진술 외 핵심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김 지사를 무너뜨릴 ‘결정적 한방’이 없다는 평가다.

김 지사와 민주당 입장에선 오는 1월 선고공판 때 무죄를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야당에 반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지난 5월 해당 사건의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는 단식 투쟁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빠지면 특검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당시 한국당의 논리였다. 

김부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김부겸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장관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눈여겨보는 대권주자로 알려져 있다.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서 태어나 민주당계 최초로 영남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 장관은 이해찬식 민주당 장기집권 플랜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다.

장관 임기를 잘 마치는 일이 우선이다. 2018년 한 해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시끄러웠다. 야권은 사고가 있을 때마다 행안부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한국당은 최근 울산을 찾은 김 장관에게 “대권병에 걸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지난 12월18일 원내대책 회의에 참석해 “민생 파탄, 공권력 실종, 빈발한 안전사고에 대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행안부장관이 벌써부터 대권 놀음이나 하고,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만 열을 올리니 국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쏘아붙였다.

정치권은 김 장관이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여의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 대통령이 내년 상반기에 개각 카드를 꺼내들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김 장관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는 여의도로 복귀하는 시점에 시작될 예정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황금돼지띠

황금돼지띠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정의당 심상정 의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권에는 1959년생 정치인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름 있는 정치인이 많이 포진해 있다.

여의도에만 1959년생 국회의원이 심 의원을 포함해 13명이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영선·김두관·박재호·권미혁 의원, 자유한국당 한선교·함진규·강석진·이종명·곽상도 의원,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이 그들이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6·13지방선거에 나가 당선된 민주당 소속 양승조 충남도지사도 1959년에 태어났다. 민주당 소속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역시 같은 해에 태어났다. 원외 인사로는 ‘보수논객’ 전여옥 전 의원이 대표적인 황금돼지띠 인사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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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