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9인 잠룡’ 기해년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1.02 11:15:54
  • 호수 1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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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해 용꿈 꾸게 해주소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다가왔다.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를 맞은 잠룡들은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2019년 한 해 몸값을 올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의 향배가 결정될 공산이 크다. 복이 들어온다는 돼지해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 (사진 왼쪽부터)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

2019년 잠룡들은 어느 해보다 활발한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잠룡들이 운신할 폭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이다. 여권 잠룡들에게는 자기 정치를 할 기회가 찾아왔으며, 보수야권 잠룡들에게는 발목을 잡던 박근혜 탄핵정국서 벗어날 기회가 주어졌다.

이낙연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치권이 예상하는 대권 1순위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서 1위에 올라 있다. ‘이낙연 대망론’이 여의도서 가장 뜨거운 이유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인 데 반해 이 총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는 아이러니가 2019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세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그에 대한 위상은 굳건하다. 경제 투톱으로 불리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 인선에 이 총리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 대통령도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친문(친 문재인)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기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이다.


관건은 총리직을 내려놓은 다음의 행보다. 대선 전까지 대권주자로서 존재감을 계속 보일지는 미지수다. 당내 경선서의 경쟁력도 장담할 수 없다. 총리 퇴임 후 야인 신분이 된다면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대 총리들의 대권도전 실패 사례가 주는 교훈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이 총리의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에 주목한다.

황교안

보수야권의 희망으로 불린다. 각종 여론조사서 이 총리에 이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선 1위다. 최근 강연정치로 자신의 주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절제된 언어로 문재인정부 정책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모습이 몸값을 높이는 데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관건은 행정가서 탈피해 정치가로의 변신에 성공하느냐다. 오는 2월에 열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당대회가 변신의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 전 총리는 당 대표 출마를 결정하지 못한 채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여의도 안팎으론 취약점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장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들린다.

이낙연 VS 황교안 총리 매치 임박
19대 대선 상종가 유승민·심상정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황 전 총리의 경우 박근혜정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며 “당 대표로 나오든 총선에 나오든 집권여당에선 이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프레임에 완전히 노출돼있다고 보면 된다.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시민

전망이 가장 밝은 대권주자 중 한 명이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앉기 전부터 연예인 뺨치는 인지도를 가졌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얻은 잡초와도 같은 생명력은 유 이사장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그 외 요소들도 긍정적이다. 국회의원을 하며 현실정치에 단련됐으며,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해 관료사회에 대한 이해도도 갖췄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라는 평가는 여권 최대 계파인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에게 크게 어필하는 부분이다.

상승세는 2019년에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 이사장은 내년 1월 유튜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중에 판치는 가짜뉴스에 엄중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이유다. 정치권은 유 이사장의 다음 행보를 정계복귀로 조심스레 내다본다.

관건은 유 이사장의 의지다. 그는 자신의 이사장 취임식서 “정치를 하고 말고는 의지의 문제”라며 “다시 공무원이 되거나 선거에 출마할 의지가 현재로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1959년생인 유 이사장은 황금돼지띠다.

유승민

19대 대선 때의 기세가 무색하게 현재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바른미래당 내에서 우군이었던 측근들이 탈당하거나 탈당설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당내 입지가 좁아진 건 당연지사.

2019년 유 전 대표에게 있어 키워드는 ‘홀로서기’와 ‘복당’이다. 측근들의 이탈로 홀로서기 시험대에 올랐다. 혼자서도 이전만큼의 정치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따라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이어가느냐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에는 유 전 대표를 둘러싼 복당설의 실체가 밝혀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12월17일 대구에 내려와 강대식 전 동구청장 등 측근들과 긴급회동을 갖고 한국당 복당과 관련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최근 기자들과 만나 “유 전 대표는 탈당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태를 수습했다. 정치권에선 2월 중으로 열릴 예정인 전당대회가 바른미래당 탈당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상정

19대 대선이 낳은 또 한 명의 대권주자다. 대표직을 내려놓아 미디어 노출도가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여성 정치인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


2019년은 정의당을 제1야당으로 성장시킨다는 약속을 지켜낼 수 있느냐가 결정되는 해다. 이미 교두보는 마련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발간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배분 방식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난 20대 총선에 대입했을 시 정의당의 의석수는 36석으로 증가한다. 기존 5석에서 비약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 (사진 왼쪽부터)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노 전 원내대표가 유명을 달리하기 전 정의당 관계자는 당내 최대 숙제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심상정, 노회찬 이후의 인물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답한 바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존재감이 당내서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심 의원에게는 한쪽 날개를 잃은 정의당을 총선 대박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숙제가 안겨졌다. 심 의원 역시 1959년생으로 황금돼지띠다.

안철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한때 ‘안철수 신드롬’의 당사자였으나 잇단 패배로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다. 현재 독일로 건너가 국책연구기관인 막스프랑크 연구소에 머물고 있는데 2019년 귀국이 유력하다. 귀국 후 곧바로 정계복귀를 할지 주목된다. 

최근 안 전 공동대표는 지지자들에게 손편지를 써 주목받았다. 편지를 통해 그는 “무더위와 강추위를 겪으면서 우리들은 나이테처럼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는데 이는 곧 정계 복귀설로 번졌다.


안 전 대표 측은 “독일로 떠날 때 인사도 하지 못한 지지자들에게 안부를 전한 것뿐”이라며 “(정계 복귀는)전혀 아니다”라고 설을 일축했다.

안 전 대표에게 2018년은 잊고 싶은 해다. 6·13지방선거서 서울시장으로 출마했지만, 박원순 시장을 꺾기는커녕 한국당 김문수 전 후보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다. 대권주자로서 믿기 어려운 참패였다. 귀국 후 탈당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른미래당을 되살려낼지가 관건이다.

이재명

굴곡진 한 해였다. 지난 대선 때 비록 문 대통령에게 경선서 졌지만, 체급을 올리는 데 성공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세를 몰아 6·13지방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현재의 자리로 올라섰다.

그러나 곧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이 봇물 터지 듯 제기되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이후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등에 대한 의혹으로 기소됐다. 이 중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관련 혐의에 대한 증인 심문, 증거조사 등은 오는 10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내상 입은 안철수 “재기 가능할까?”
‘도지사 듀오’ 이재명·김경수 닮은꼴

자신에 대한 혐의를 벗는 게 최우선 과제다. 2019년은 이 지사에게 위기이자 기회의 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26일 “의혹 중 핵심인 혜경궁 김씨에 대한 부분은 기소를 피했다”며 “만약 지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면 모든 의혹을 털고 대선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수

이재명 경기도지사 입장에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부러울법하다.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선거 과정서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지사의 1심 재판은 지난 12월28일 마무리됐다. 오는 1월 중 김 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김 지사 사건은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했던 사건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특별검사팀은 김씨 일당의 진술 외 핵심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김 지사를 무너뜨릴 ‘결정적 한방’이 없다는 평가다.

김 지사와 민주당 입장에선 오는 1월 선고공판 때 무죄를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야당에 반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지난 5월 해당 사건의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는 단식 투쟁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빠지면 특검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당시 한국당의 논리였다. 

김부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김부겸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장관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눈여겨보는 대권주자로 알려져 있다.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서 태어나 민주당계 최초로 영남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 장관은 이해찬식 민주당 장기집권 플랜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다.

장관 임기를 잘 마치는 일이 우선이다. 2018년 한 해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시끄러웠다. 야권은 사고가 있을 때마다 행안부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한국당은 최근 울산을 찾은 김 장관에게 “대권병에 걸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지난 12월18일 원내대책 회의에 참석해 “민생 파탄, 공권력 실종, 빈발한 안전사고에 대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행안부장관이 벌써부터 대권 놀음이나 하고,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만 열을 올리니 국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쏘아붙였다.

정치권은 김 장관이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여의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 대통령이 내년 상반기에 개각 카드를 꺼내들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김 장관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는 여의도로 복귀하는 시점에 시작될 예정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황금돼지띠

황금돼지띠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정의당 심상정 의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권에는 1959년생 정치인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름 있는 정치인이 많이 포진해 있다.

여의도에만 1959년생 국회의원이 심 의원을 포함해 13명이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영선·김두관·박재호·권미혁 의원, 자유한국당 한선교·함진규·강석진·이종명·곽상도 의원,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이 그들이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6·13지방선거에 나가 당선된 민주당 소속 양승조 충남도지사도 1959년에 태어났다. 민주당 소속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역시 같은 해에 태어났다. 원외 인사로는 ‘보수논객’ 전여옥 전 의원이 대표적인 황금돼지띠 인사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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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