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기록 세운 파인텍 농성자들

그들은 왜 굴뚝에 올랐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얼마 전 파인텍 고공농성이 ‘세계 최장 기간’이라는 씁쓸한 기록을 남겼다. 두 노동자는 400일이 넘는 기간을 굴뚝 위에서 버텨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노사의 갈등은 최고조를 달렸다. 이런 상황에 이뤄진 410일 만의 노사 첫 만남은 큰 진전 없이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들은 언제까지 굴뚝 위의 농성을 해야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 서울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서 세계 최장 고공농성 기록이 새롭게 쓰였다. 이날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에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굴뚝에 오른 지 409일째를 맞았다.

두 번째 농성
씁쓸한 기록

이들의 농성은 모회사의 공장 가동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27일부터 2015년 7월8일까지 408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차광호 지회장에 이은 두 번째 농성이다.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 차 지회장은 모두 ‘한국합섬’ 출신 노동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높은 굴뚝서 장기 농성을 벌여야 했을까? 

노조에 따르면 장기간 노사분규를 겪던 한국합섬은 2007년 5월 파산했고 2010년 7월 새 인수자를 찾게 됐다.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스타케미칼’이라는 신설법인을 만들어 이듬해 공장이 재가동됐지만 스타케미칼은 2013년 1월 경영난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말았다. 

이에 차 지회장 등 일부 노조원은 회사가 이익을 챙기고 빠지는 식으로 ‘먹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때문에 차 지회장은 2014년 5월27일 새벽 공장 가동을 요구하며 스타케미칼 공장 45m 높이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굴뚝 농성이 시작된 지 408일이 흐른 2015년 7월8일 사용자 측과 노조는 고용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과 관련한 합의를 이뤘고 차 지회장은 농성을 풀었다. 당시 합의서에는 회사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노조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신설법인은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며 단체협약은 2016년 1월 내 단체교섭을 진행해 체결을 완료하기로 했다. 이에 이들은 스타플렉스가 충남 아산에 만든 새로운 회사인 ‘파인텍’으로 복직해 2016년 1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2014년 첫 번째 고공농성…약속 흐지부지 
두 번째 고공농성 강행 “이번에는 확실히”

하지만 1월 안으로 맺기로 한 단체협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노조는 같은 해 10월 파업에 들어갔으며 회사는 또 다시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에 2017년 11월12일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다시 고공농성을 결심했다. 

당시 합의 내용을 두고 노조와 회사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파인텍 노조 측은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책임은 명백히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에게 있다”며 “김 대표는 공장을 헐값에 인수해 2년 만에 폐업하며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그에 맞선 408일의 고공농성으로 이룬 노사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맞섰다.


스타플렉스 관계자는 “한국합섬 시절 5년간 가동을 멈췄던 공장을 180억원을 들여 재가동했다”며 “초기에 30억원씩 발생하던 적자 폭을 4억원대로 줄였지만 노조가 또 파업을 벌여 영업이익이 급전직하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으로 공장 운영이 어려워져 가동을 멈춘 것이지 공장을 위장폐업했다는 노조 측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노조 측 주장과 달리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은 게 없다”며 “공장은 아직 폐업하지 않고 회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종교·정치권
각계각층 관심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의 고공농성이 크리스마스에도 계속된 가운데 두 사람의 건강도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청년한의사회 등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두 사람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의료진은 두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한 심각성을 우려했다.

심희준 한의사는 “위는 매우 좁다.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수준도 안 된다. 노동자들이 허리 통증, 목 통증을 호소했다. 공장이 가동되면 아침저녁으로 떨림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굴뚝이)많이 흔들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규진 의사는 “정말 사람이 있을 공간이 아니었다. 건강 유지란 말이 적용될 수 없는 공간서 어떻게 버텼는지 의학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며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상태가 ‘양호하다’고 말했는데 진찰을 위해 겉옷을 올리자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활력 징후가 모두 매우 안 좋다. 심장 소리도 불규칙하고, 혈압과 혈당도 너무 낮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진으로서 매우 불안하다. 당장 내려와서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의료진으로서 위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오히려 여기 계신 분들한테 부탁하고 싶다. 저분들이 하루빨리 내려와서 건강을 체크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두 노동자의 고공농성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강력한 연대행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연대단체들을 대표해 나선 송경동 시인은 “현재 시민사회, 종교계, 정치권까지 나선 상황이다. 한국사회의 참혹과 비참의 상징인 75m 굴뚝 고공농성을 해지하기 위해 마음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연내에 문제 해결하고 고공농성 풀고 저들이 내려오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사람이 많지도 않고 5명이다. 충분히 고용을 보장할 공장도 있고 자본력도 충분하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 한 사람의 고집, 아집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피눈물 흘리고 아파해야 하는 현실이 분노스럽다. 본인이 과거에 했던 (고용)약속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는 ‘12월29일 노동인권 사수의 날-스타플렉스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복직시켰듯,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이번에도 두 사람을 땅 위로 내려오게 할 것으로 기대했다. 


411째 첫 만남
의견 차이 극명

내년부터는 스타플렉스의 해외 거래처들에게 이들의 노동 탄압 실태를 알리는 사업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송 시인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간절함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참여토록 할 것”이라며 “차광호 지회장도 단식 16일 차, 시민사회 인사들의 무기한 동조단식도 8일째를 맞고 있다. 힘을 모아달라”고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고공농성을 시작 한 지 411일째가 되는 지난 27일 드디어 노사는 교섭을 위한 첫 만남을 가졌다.

천주교·불교·개신교 3개 종단 사회노동 기구 연합인 ‘3개종교노동연대’는 411일간 노조 고공농성으로 갈등하는 파인텍 노사가 마침내 교섭에 나선 것과 관련해 “노사가 부정적 감정의 유혹을 이겨내고 상호 진지한 대화를 통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종교노동연대는 이날 ‘파인텍 고공농성 장기화 관련 종교계 중재에 대한 입장’을 통해 “하루빨리 진솔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길 기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노사 간 교섭 재개는 이들 3대 종단 노동기구의 중재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노동연대는 “종교인들은 당사자 간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사 양측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마음의 불을 조금 꺼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번에 걸쳐 대화로 설득했다”며 “구체적 해결책을 만드는 일은 노사 당사자의 의견 조율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각계각층의 관심 이어져…정치권도 들썩
교섭 성사됐지만 극명한 의견차이만 확인

종교노동연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로 구성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번 교섭은 서로 간의 의견 차이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 중구 프란치코 교육회관서 3시간에 걸쳐 노사교섭이 진행됐다. 

노조 측에서는 2014년 408일간 굴뚝 농성을 했고 현재 무기한 단식투쟁 중인 차광호 지회장과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사 측에서는 김세권 사장과 강만표 전무 등이 자리했다. 
 

고공농성 이후 410일 만의 첫 만남이었지만 3시간의 교섭에선 큰 진전 없이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공동행동 측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공방이 있었고 입장차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라고 했다. 

차 지회장은 첫 교섭을 마치고 오후 1시30분경 기자들과 만나 “의견 차이만 확인했다. 이견이 명확해 다시 협상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굴뚝 농성을 해제할 것이냐는 물음엔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 마무리돼야 내려올 수 있다”며 “고생하는 분들이 있기에 단 한 시간이라도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노사가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선 “노코멘트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교섭 한 번 더?
“쉽지 않을 것”

다만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협상을 재개할 방침이다. 양측은 지난 29일 다시 만나 해법을 찾기로 했다. 협상은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진행된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기탁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은 한 매체와의 통화서 “전날 교섭이 확정됐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론과 정치적 압박 등에 못 이겨서 나왔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29일에 다시 한 번 만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빠른 시일 내 해결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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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