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기록 세운 파인텍 농성자들

그들은 왜 굴뚝에 올랐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얼마 전 파인텍 고공농성이 ‘세계 최장 기간’이라는 씁쓸한 기록을 남겼다. 두 노동자는 400일이 넘는 기간을 굴뚝 위에서 버텨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노사의 갈등은 최고조를 달렸다. 이런 상황에 이뤄진 410일 만의 노사 첫 만남은 큰 진전 없이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들은 언제까지 굴뚝 위의 농성을 해야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 서울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서 세계 최장 고공농성 기록이 새롭게 쓰였다. 이날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에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굴뚝에 오른 지 409일째를 맞았다.

두 번째 농성
씁쓸한 기록

이들의 농성은 모회사의 공장 가동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27일부터 2015년 7월8일까지 408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차광호 지회장에 이은 두 번째 농성이다.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 차 지회장은 모두 ‘한국합섬’ 출신 노동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높은 굴뚝서 장기 농성을 벌여야 했을까? 

노조에 따르면 장기간 노사분규를 겪던 한국합섬은 2007년 5월 파산했고 2010년 7월 새 인수자를 찾게 됐다.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스타케미칼’이라는 신설법인을 만들어 이듬해 공장이 재가동됐지만 스타케미칼은 2013년 1월 경영난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말았다. 

이에 차 지회장 등 일부 노조원은 회사가 이익을 챙기고 빠지는 식으로 ‘먹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때문에 차 지회장은 2014년 5월27일 새벽 공장 가동을 요구하며 스타케미칼 공장 45m 높이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굴뚝 농성이 시작된 지 408일이 흐른 2015년 7월8일 사용자 측과 노조는 고용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과 관련한 합의를 이뤘고 차 지회장은 농성을 풀었다. 당시 합의서에는 회사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노조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신설법인은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며 단체협약은 2016년 1월 내 단체교섭을 진행해 체결을 완료하기로 했다. 이에 이들은 스타플렉스가 충남 아산에 만든 새로운 회사인 ‘파인텍’으로 복직해 2016년 1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2014년 첫 번째 고공농성…약속 흐지부지 
두 번째 고공농성 강행 “이번에는 확실히”

하지만 1월 안으로 맺기로 한 단체협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노조는 같은 해 10월 파업에 들어갔으며 회사는 또 다시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에 2017년 11월12일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다시 고공농성을 결심했다. 

당시 합의 내용을 두고 노조와 회사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파인텍 노조 측은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책임은 명백히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에게 있다”며 “김 대표는 공장을 헐값에 인수해 2년 만에 폐업하며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그에 맞선 408일의 고공농성으로 이룬 노사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맞섰다.


스타플렉스 관계자는 “한국합섬 시절 5년간 가동을 멈췄던 공장을 180억원을 들여 재가동했다”며 “초기에 30억원씩 발생하던 적자 폭을 4억원대로 줄였지만 노조가 또 파업을 벌여 영업이익이 급전직하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으로 공장 운영이 어려워져 가동을 멈춘 것이지 공장을 위장폐업했다는 노조 측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노조 측 주장과 달리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은 게 없다”며 “공장은 아직 폐업하지 않고 회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종교·정치권
각계각층 관심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의 고공농성이 크리스마스에도 계속된 가운데 두 사람의 건강도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청년한의사회 등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두 사람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의료진은 두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한 심각성을 우려했다.

심희준 한의사는 “위는 매우 좁다.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수준도 안 된다. 노동자들이 허리 통증, 목 통증을 호소했다. 공장이 가동되면 아침저녁으로 떨림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굴뚝이)많이 흔들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규진 의사는 “정말 사람이 있을 공간이 아니었다. 건강 유지란 말이 적용될 수 없는 공간서 어떻게 버텼는지 의학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며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상태가 ‘양호하다’고 말했는데 진찰을 위해 겉옷을 올리자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활력 징후가 모두 매우 안 좋다. 심장 소리도 불규칙하고, 혈압과 혈당도 너무 낮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진으로서 매우 불안하다. 당장 내려와서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의료진으로서 위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오히려 여기 계신 분들한테 부탁하고 싶다. 저분들이 하루빨리 내려와서 건강을 체크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두 노동자의 고공농성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강력한 연대행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연대단체들을 대표해 나선 송경동 시인은 “현재 시민사회, 종교계, 정치권까지 나선 상황이다. 한국사회의 참혹과 비참의 상징인 75m 굴뚝 고공농성을 해지하기 위해 마음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연내에 문제 해결하고 고공농성 풀고 저들이 내려오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사람이 많지도 않고 5명이다. 충분히 고용을 보장할 공장도 있고 자본력도 충분하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 한 사람의 고집, 아집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피눈물 흘리고 아파해야 하는 현실이 분노스럽다. 본인이 과거에 했던 (고용)약속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는 ‘12월29일 노동인권 사수의 날-스타플렉스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복직시켰듯,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이번에도 두 사람을 땅 위로 내려오게 할 것으로 기대했다. 


411째 첫 만남
의견 차이 극명

내년부터는 스타플렉스의 해외 거래처들에게 이들의 노동 탄압 실태를 알리는 사업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송 시인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간절함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참여토록 할 것”이라며 “차광호 지회장도 단식 16일 차, 시민사회 인사들의 무기한 동조단식도 8일째를 맞고 있다. 힘을 모아달라”고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고공농성을 시작 한 지 411일째가 되는 지난 27일 드디어 노사는 교섭을 위한 첫 만남을 가졌다.

천주교·불교·개신교 3개 종단 사회노동 기구 연합인 ‘3개종교노동연대’는 411일간 노조 고공농성으로 갈등하는 파인텍 노사가 마침내 교섭에 나선 것과 관련해 “노사가 부정적 감정의 유혹을 이겨내고 상호 진지한 대화를 통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종교노동연대는 이날 ‘파인텍 고공농성 장기화 관련 종교계 중재에 대한 입장’을 통해 “하루빨리 진솔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길 기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노사 간 교섭 재개는 이들 3대 종단 노동기구의 중재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노동연대는 “종교인들은 당사자 간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사 양측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마음의 불을 조금 꺼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번에 걸쳐 대화로 설득했다”며 “구체적 해결책을 만드는 일은 노사 당사자의 의견 조율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각계각층의 관심 이어져…정치권도 들썩
교섭 성사됐지만 극명한 의견차이만 확인

종교노동연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로 구성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번 교섭은 서로 간의 의견 차이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 중구 프란치코 교육회관서 3시간에 걸쳐 노사교섭이 진행됐다. 

노조 측에서는 2014년 408일간 굴뚝 농성을 했고 현재 무기한 단식투쟁 중인 차광호 지회장과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사 측에서는 김세권 사장과 강만표 전무 등이 자리했다. 
 

고공농성 이후 410일 만의 첫 만남이었지만 3시간의 교섭에선 큰 진전 없이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공동행동 측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공방이 있었고 입장차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라고 했다. 

차 지회장은 첫 교섭을 마치고 오후 1시30분경 기자들과 만나 “의견 차이만 확인했다. 이견이 명확해 다시 협상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굴뚝 농성을 해제할 것이냐는 물음엔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 마무리돼야 내려올 수 있다”며 “고생하는 분들이 있기에 단 한 시간이라도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노사가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선 “노코멘트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교섭 한 번 더?
“쉽지 않을 것”

다만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협상을 재개할 방침이다. 양측은 지난 29일 다시 만나 해법을 찾기로 했다. 협상은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진행된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기탁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은 한 매체와의 통화서 “전날 교섭이 확정됐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론과 정치적 압박 등에 못 이겨서 나왔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29일에 다시 한 번 만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빠른 시일 내 해결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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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