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당 5색’ 기해년 현안

‘산 넘어 산’ 올해도 싸우다 끝낼 거요?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새해를 바라보는 5당의 속내가 복잡하다. 각 정당이 처한 난국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5당 각각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더 나은 한 해를 기대하고 있다. 기해년을 맞아 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들은 무엇이 있을까.
 

 

20대 국회의 2018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올 한 해 국회는 꽤나 시끄러웠다. 원내 5당을 둘러싼 정치적 사건·사고들이 한몫했다. 해당 사안들은 앞으로도 각 정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5당 각각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집안 단속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2019년은 ‘집안 단속’으로 시작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지난 6·13지방선거서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은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서 대구와 경북 그리고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 깃발을 꽂았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서도 크게 승리했다. 민주당은 기초단체 226곳 가운데 151곳서 당선인을 배출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문재인정부의 중간평가는 후한 점수를 받았다. 당시 민주당의 지지율은 50%를 훌쩍 넘겼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집권 20년론’은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그 기세는 최근 들어 한풀 꺾였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어느덧 40% 아래로 추락했다. 집권 여당인 까닭에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악재가 작용한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당내 인사들의 파문은 결정적이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박범계·김정호 의원 등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관통하면서 여론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지사를 향한 의혹은 오는 1월 말에 열리는 ‘친형 강제입원 혐의’와 관련된 재판으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배우 김부선과의 스캔들은 고소 취하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 지사는 이 과정서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를 언급해 논란을 야기했다. 민주당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여론도 ‘진흙탕 싸움’을 지적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민주당은 김소연 대전 시의원의 폭로로 야당과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박 의원의 전략공천으로 김 의원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시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은 당선 이후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박 의원 측근들의 불법 정치자금 요구 정황을 폭로했고 박 의원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의원은 박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방조죄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했지만 검찰은 지난 12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오히려 민주당은 김 의원을 닷새 뒤 제명 처리했다.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사건과 관련된 전문학 전 대전시의원을 ‘혐의 없음’으로 처리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검찰이 전 전 의원에 대한 구속 수사 결정을 내리자 그를 제명했다. 이를 두고 지역 정가는 물론 정치권서도 모순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 소속 정치인 잇단 논란에 촉각
한국, 계파·복당·태극기 등 과제 산적

최근 발생한 ‘공항 갑질’ 논란의 주인공도 민주당 소속의 김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공항 내 신분확인 절차 과정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거짓 해명 논란에 이어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갑질은 내가 당했다”며 당시 근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을 보였던 그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소속 정치인들의 연이은 논란은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공교롭게도 논란의 주인공들은 지난 6월 지방선거서 당선된 인사들이다. 공항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김 의원은 지난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서 당선됐다.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 국면을 타개하고, 후반기 국정 동력을 좌우하는 총선 결과를 위해 본격적인 집안 단속에 나설 공산이 크다.


지지율 제고를 위한 당 차원의 대책도 강구될 전망이다. 최근 민주당은 경제악화로 등 돌린 민심을 다시 붙잡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당은 현장 목소리를 중심으로 민생 경제 정책을 세우고자 ‘청책투어’에 나섰다. 민심 이반이 확장되는 것에 경각심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은 핵심 지지층을 다잡는 데에도 힘쓸 예정이다. 특히 민주당은 노동계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적극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등으로 노동계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 홍영표 원내대표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민주당과 노동계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민주당 박주민·이수진 최고위원과 을지로위원회 박홍근 위원장은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인 민주노총 소속 파인텍 노동자들을 만났다.

갈등 봉합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최대 과제는 ‘계파 갈등 봉합’으로 꼽힌다. 한국당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 체제로 인적쇄신을 단행하고 있다. 한국당은 최근 현역 의원 21명을 ‘물갈이’하면서 1차 인적쇄신을 마무리했다. 인적쇄신에 대한 평가가 난무하는 상황서 시선은 자연스레 전당대회로 쏠리고 있다.

차기 총선서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 대표가 누가 되는지에 따라 한국당의 해묵은 계파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김 비대위원장은 계파주의를 ‘한국당의 병’이라 지적했지만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의 갈등은 쉽사리 봉합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국당 전대는 곧 계파 갈등 해소와 심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해석이다.
 

▲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친박계 한국당 홍문종 의원은 지난 26일 비대위·중진연석회의서 “얼마 전 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모 잡지와의 인터뷰서 친박당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며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이냐”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김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하였다’ ‘신하 대접을 받았다’는 김 의원이 대통령을 ‘가시나’라고 불렀으면서 대통령 대접을 했느냐”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말하라면 수많은 사건을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은 올해가 지난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대가 다가올수록 당내 영향력 확보를 위해 두 계파의 갈등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차기 당 대표의 선출에 따라 계파 갈등은 ‘교통정리’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이탈자들의 복당 역시 지나치기 어렵다. 한국당 전대 전후를 기점으로 추가 이탈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한국당 내 친박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때 ‘당을 버렸던 사람들’이란 이유에서다. 이들의 복귀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태극기 부대의 수용 여부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당 내에선 태극기 부대를 두고 이견이 맞서고 있다. 한국당 오세훈 국가미래비전 특별위원장은 복당 기자회견서 “태극기 부대의 충정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박계 인사인 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극단적 주장은 배척돼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물론 태극기 부대서도 한국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일각에선 김무성·정진석·권성동·김성태 의원과 바미당 유승민·이혜훈·하태경 의원을 ‘탄핵 7적’이라 칭하는 등 노골적으로 비박계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시위 과정서 해당 의원들의 사진에 낙서를 하며 처단식을 거행하고, 문자폭탄을 보내는 등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탈 저지
바른미래당

바미당은 한국당 이학재 의원(전 바미당 의원)의 탈당 이후 소속 의원들의 이탈을 막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의원을 비롯해 신용한 전 바미당 충북지사 후보와 전·현직 국회의원과 기초의원 등이 짐을 쌌다. 이 의원의 탈당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지느냐에 따라 바미당의 향배가 좌우될 전망이다. 손학규 대표는 지난달 26일 “바미당을 창당한 그 뜻을 우리 당원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기를 바란다”며 호소했다. 이외에도 바미당은 고질적인 ‘당내 화학적 결합’ 문제를 봉합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바미당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도 공식화됐다. 바미당은 손 대표 체제 이후에도 지지율에 변화가 없다. 이를 두고 일찌감치 바미당 내부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바미, 이탈자 막고 평화·외연 넓히고
정의, ‘포스트 노회찬’ 발굴로 도약?

바미당 권오을 경북도당 위원장은 지난 11월25일, 서울 여의도 모처서 열린 전·현직 지역위원장 모임에 참석해 “내년 3월까지 당 지지율이 15%를 넘지 못하면 지도부가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자리엔 손 대표와 오신환 사무총장, 권은희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를 비롯해 전·현직 지역위원장 150여명이 참석했다. 바미당의 지지율은 한 차례를 제외하고 10%를 넘은 적이 없다.

손 대표의 단식 이후에도 선거제 개편이 불투명한 점 역시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바미당은 선거제 개혁에 사활을 걸었지만 연일 험로를 걷고 있다.

일각에선 흔들리는 당을 바로잡기 위한 처방으로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복귀를 기대한다. 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여러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서 당내 구심점이 될 만한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재 잡기
민주평화당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은 호남 정당서 외연을 확장해 저조한 지지율을 타개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평화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서 미미한 성과를 보였다. 평화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서 한 곳도 차지하지 못했고, 기초단체장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5석도 모두 호남지역이었다. 평화당은 선거 과정서 ‘인재난’을 겪기도 했다. 평화당은 선거 결과에 대해 창당 이후 4개월 만의 지방선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의 존재감은 최근까지도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평화당 지지율은 5개 정당 중 가장 낮다. 1%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던 평화당은 최근까지 5% 내외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평화당 관계자는 “총선 이후 당이 어떻게 될지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정동영(민주평화당, 사진 왼쪽)·이정미(정의당) 대표

평화당은 창당 이후 이렇다 할 국정 이슈를 주도하지 못했다. 다만 정동영 대표가 취임 이후 선거제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평화당은 당력을 총 집중할 전망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선거제도에 비해 소수 정당에 유리할 뿐 아니라 평화당의 존재감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선거제 개혁이 이뤄진다면 평화당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 개혁은 야3당의 공조 아래 진행되고 있지만 평화당은 가장 적극적으로 선거제 개혁을 주창한 정당으로 꼽힌다. 평화당은 정 대표 취임 이후 선거제도 공동개혁 상황실 설치에 앞장서는 등 선거제 개편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수혈 급한
정의당

정의당은 총선 전까지 진보 진영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 위해 애쓸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올해 고 노회찬 전 의원을 떠나보냈다. 고 노 전 의원의 작고로 정의당은 큰 슬픔에 휘청거리는 듯했지만 오히려 똘똘 뭉치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정의당은 한때 창당 이후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최근까지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의당은 바미당, 평화당과 함께 선거제 개혁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공식 논의 기구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심상정 의원이라는 점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소다. 이정미 대표는 단식 이후 일궈낸 여야 합의를 어떻게든 지켜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선거제 개혁의 골자인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며 민주당 역시 같은 맥락이다. 최근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으면서 민주당의 향후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정의당은 다가오는 총선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고삐를 당길 전망이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한국당에 이어 지지율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차기 총선서 ‘해볼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정의당은 간판 정치인이었던 고 노 전 의원을 떠나보냈지만 이른바 ‘포스트 노회찬’을 발굴하기 위해 힘쓸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고 노 전 의원의 별세 이후 설립된 ‘노회찬 재단’을 정치학교 형태로 설립, 진보정치 후계자를 양성할 예정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5당 지지율은?

최근 5당의 지지율은 민주당, 한국당, 정의당, 그리고 바미당과 평화당 순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4일과 26일 이틀간 조사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은 36.3%로 1위를 기록했지만 전주 대비 1.7%포인트 하락했다.

한국당은 전주 대비 0.2%포인트 오른 25.6%를 기록해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정의당 8.6%, 바미당 8.2%, 평화당 2.3% 순이었다.

정의당과 바미당은 각각 전주 대비 0.5%포인트, 2.6%포인트 상승했으며 평화당은 전주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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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