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박물관 여행 ⑤밀양 한천박물관

한천과 함께 건강한 시간을 나누다

▲ 한천박물관 내 체험관에서 한천을 맛보는 어린이

천은 몸에 이롭고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강식품이다.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우무를 만들어 건조한 것이 바로 한천이다. 양갱이나 젤리 등에 들어가는 재료로 생각하면 쉽다. 밀양시 산내면에는 한천을 주제로 한 한천박물관이 있다. 한천체험관과 함께 들어선 박물관에는 한천의 유래와 역사, 제조 과정, 효능 등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 한천박물관 내부 전경

한천박물관은 1층 460㎡ 규모로 작지만 알찬 공간이다. 한천은 식이섬유가 많아 건강식품이자 다이어트 식품으로 잘 알려졌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천박물관에 가면 한천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우뭇가사리를 세척하는 데 쓰는 세척기, 우뭇가사리를 삶을 때 쓰는 자숙용 가마솥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채취한 우뭇가사리와 건조 과정을 거쳐 붉게 변한 우뭇가사리(오른쪽)

만드는 데 1년

한천에 대해 알려면 원재료인 우뭇가사리부터 알아야 한다.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만드는 우무는 1300여년 전 중국에서 전파됐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기호식품으로 많이 애용했다. 우무로 한천을 만든 것은 일본이다. 360여년 전에 차가운 바깥에 내놓은 우무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 바짝 마른 것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한천이다. 처음에는 ‘우무 말린 것’이라 부르다가, 한 스님이 맛을 보고 ‘추운 겨울날 하늘의 차가운 기운으로 만든 것’이란 뜻으로 한천(寒天)이라 했다.
 

▲ 밀양한천테마파크 옆 너른 논에 마련된 우무 건조장

한천은 일부 공정을 제외하면 모두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하며 만드는 데 꼬박 1년이 걸린다. 첫 과정은 5월부터 시작되는데 우뭇가사리의 채취와 건조가 그 시작이다. 8월이면 건조시킨 우뭇가사리를 밀양으로 옮긴다. 그다음은 우뭇가사리를 세척하고 가마솥에 삶아 우무를 만든다. 우무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너른 논에 마련된 건조장에서 20여일 동안 얼었다 녹았다 하며 바짝 마르는데, 이것이 한천이다. 
 

▲ 한천으로 만든 면발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우뭇가사리는 바다에서 나는데 왜 한천은 밀양의 첩첩산골에서 만들까? 밀양이 한천을 만드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밀양한천테마파크가 위치한 산내면은 지명 그대로 산 안쪽에 자리 잡았다. 너른 분지를 가로막은 재약산, 운문산, 가지산 등 1000m가 넘는 산이 제법 기세등등하게 에워싼다. 산이 많으니 그만큼 일교차가 크다. 우무는 황태를 만드는 과정과 같아서 일교차가 큰 곳에서 얼었다 녹았다 해야 한다. 한천은 -5℃ 이하와 5℃ 이상이 유지돼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산내면이다.
 

▲ 한천체험관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

한천박물관 내에 있는 한천체험관에서는 한천을 이용한 먹거리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과일젤리와 구슬양갱 만들기, 창의력 양갱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한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한천에 물을 넣어 다시 우무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무를 맛보기도 한다. 과일젤리 만들기는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인 뒤 선택한 한천 가루를 넣고 젓는다.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 컵에 넣고 식힌 한천 물을 부으면 된다. 구슬양갱 만들기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창의력 양갱 만들기는 천연색소로 색을 낸 슬라이스 양갱을 모양틀로 자른 뒤 큰 슬라이스 양갱에 붙여 완성한다. 체험이 끝나면 수료증과 체험할 때 촬영한 사진을 기념품으로 준다.
 

▲ ‘한천명가’에서 판매하는 한천 가공식품

한천에 대해 배우고 체험했으니 이제 한천을 직접 맛볼 차례다. 한천박물관 건너편 1층에는 한천 제품을 판매하는 ‘한천명가’가 있고, 2층에는 한천레스토랑 ‘마중’이 있다. 한천명가에서는 직접 생산한 한천을 비롯해 양갱, 젤리 등 한천 가공식품을 판매한다. 마중에서는 한천 샐러드를 곁들인 돈가스, 한천을 넣은 비빔밥, 한천이 들어간 라멘 등 건강한 음식을 낸다. 커다란 창으로 넓은 논이 내려다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우무 건조장이다. 12월부터 겨우내 우무를 건조해 한천을 만들기 때문에 겨울철 밀양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한천박물관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연중무휴)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표충사 경내

식이섬유 많고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식
한천의 역사·제조 과정·효능 등 전시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표충사’도 가볼 만한 곳이다. 죽림사로 창건해 영정사를 거쳐 조선시대에 표충사가 됐다. 쇠락한 절집에 임진왜란 때 활약한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당의 위패를 모신 표충서원이 옮겨오면서 이름도 표충사로 바뀌었다.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절집으로, 표충사 너머 천황산과 재약산의 풍경이 어우러진다. 밀양한천테마파크에서 표충사로 가는 길에 석골사,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 시례호박소 등도 둘러보자.
 

▲ 밀양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밀양 월연대 일원(명승 87호)

밀양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지점에 월연정이 있다. 조선 중종 때 월연 이태가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머무른 곳이다. 석축을 쌓고 자연 암반에 건물을 올렸다. 월연정으로 가는 짧은 길은 벼룻길을 따라 이어진 숲이 인상적이다. 밀양팔경 중 하나이며, 지난 2012년 밀양 월연대 일원이 명승 87호로 지정됐다. 월연정 입구에는 정우성이 주연한 영화 〈똥개〉를 촬영한 월연터널이 있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사용한 터널로 경부선이 이설되면서 일반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 영남루는 좌우로 능파당과 침류각이 계단식 지붕인 월랑으로 이어진다.

월연정을 휘감아 흐르는 밀양강은 밀양 읍내에 이르러 다시 한 굽이 휘감고 지난다. 밀양강이 감입곡류 하는 높은 절벽 위에 밀양 영남루(보물 147호)가 있다.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규모가 제법 크고 좌우로 능파당과 침류각이 월랑(계단식 지붕)으로 이어져 웅장하고 아름답다. 능파당의 계단을 이용해 영남루에 오르면 밀양강과 주변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천진궁, 아랑각과 아랑유지비, 무봉사, 박시춘 선생의 옛집과 아동산을 끼고 쌓은 밀양읍성도 만날 수 있다. 영남루 북쪽에 자리한 밀양 관아지, 밀양독립운동기념관과 밀양화석전시관이 있는 밀양시립박물관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 의열기념관 앞으로 흐르는 해천을 따라 조성된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영남루 인근에 위치한 의열기념관은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등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담은 곳이다. 2015 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이 재조명된 후 문을 열었다. 김원봉의 생가 터에 마련된 2층 공간에 ‘의로운 일을 맹렬히 행한’ 의열단과 그들의 행적을 꼼꼼히 전시한다. 의열기념관 앞으로 해천이 흐른다. 해천은 조선 성종 때 외부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밀양읍성의 해자다. 해천을 따라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가 조성돼 영남루부터 밀양아리랑시장을 거쳐 의열기념관까지 둘러보기 좋다.
 

▲ 영화 〈밀양〉을 촬영한 준피아노학원 세트장이 카페 ‘밀양’으로 바뀌었다.

영화 촬영지 추억

밀양시는 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밀양〉의 고장이다. 준피아노학원 세트장은 카페 ‘밀양’으로 바뀌어 〈밀양〉을 추억하는 여행자들이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됐다. 영화의 스틸사진, 작품에 등장한 오르간도 있다. 커피, 주스, 커피콩빵 등 먹거리와 경남밀양지역자활센터에서 만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토요일 정오~오후 6시) 영업하며, 일요일은 휴무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표충사→한천박물관→월연정→의열기념관→영남루→카페 밀양(영화 〈밀양〉 촬영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표충사→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한천박물관 
둘째 날: 월연정, 월연터널(영화 〈똥개〉 촬영지)→밀양시립박물관→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산책→밀양아리랑시장→영남루→카페 밀양(영화 〈밀양〉 촬영지)→만어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밀양시문화관광 http://tour.miryang.go.kr
- 한천박물관(밀양한천테마파크) www.miryangagaragar.com
- 표충사 www.pyochungsa.or.kr
- 의열기념관 www. euiyeol815.or.kr  

문의 전화
- 밀양시청 문화관광과 055)359-5646
- 밀양종합관광안내소 055)356-1355
- 한천박물관(밀양한천테마파크) 1577-6526
- 표충사 055)352-1150
- 의열기념관 055) 351-0815
- 월연정(밀양시청 문화관광과) 055)359-5639
- 카페 밀양 055)353-9860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밀양,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4회(08:10〜18:30) 운행, 약 4시간 소요.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얼음골행 버스 하루 12회 운행, 송백 정류장 하차. 한천박물관까지 도보 약 600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밀양시외버스터미널 1688-6007
기차: 서울역-밀양역, KTX 하루 15~19회(05:05~22:10) 운행, 약 2시간20분 소요. 밀양역에서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얼음골행 버스 이용, 송백 정류장 하차. 한천박물관까지 도보 약 600m. 
*문의: 레츠코레일 1588-7788, www.letskorail.com

자가 운전
밀양IC교차로에서 울산 방면 국도24호선 오른쪽, 14km 직진→임고교차로에서 산내면 방면 오른쪽→산내로→산내면사무소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봉의교 건너 우회전→한천박물관(밀양한천테마파크)   

숙박 정보
- 향우당: 산내면 산내야촌1길, 010-4902-7216, https://hanok1900.modoo.at
- 밀양관광호텔: 밀양시 가곡7길, 055)356-3882
- 참좋은펜션: 밀양시 표충로, 055)351-0071, http://참좋은팬션.com
- 오솔레미오카페&게스트하우스: 산외면 밀양대로, 010-4441-3336, https://site.onda.me/34436

식당 정보
- 한천레스토랑 마중(한천야채비빔밥): 산내면 봉의로(밀양한천테마파크 내), 055) 354-2157
- 단골집(돼지국밥): 밀양시 상설시장3길, 055)354-7980
- 행랑채(비빔밥): 산외면 산외로, 055)352-8927
- 에르모사(스파게티·피자): 장면 표충로, 055)352-8188
- 항아리(항아리수제비): 상동면 안인로, 055)355-1577
- 입소문맷돌순두부(삼색두부버섯전골): 단장면 시전2길, 055)353-7703

주변 볼거리
시례호박소, 사명대사유적지, 표충비, 추원재, 미리벌민속박물관, 석골사,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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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