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베트남 영웅’ 박항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21 17:41:44
  • 호수 11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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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세오 신드롬에 두 나라 ‘들썩’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경질 위기부터 스즈키컵 우승까지. 베트남의 영웅으로 등극한 ‘바캉서’ 박항서 감독. 그의 여정이 베트남 현지서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언론은 박 감독을 올해 ‘최고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야말로 박항서 신드롬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밤 9시30분(한국시각)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미딘 국립경기장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동남아시아 국가 대항전) 결승 2차전 경기서 1-0으로 승리했다.

A매치 무패행진
가장 긴 기록

이로써 베트남은 1, 2차전 합계서 3-2로 앞서며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베트남은 결승 2차전 승리로 A매치 무패행진을 16경기(9승7무)로 늘렸다. 이는 현재 A매치 무패행진을 이어가는 국가 가운데 가장 긴 기록이다.

베트남의 우승이 확정되자 홈 관중 4만여명의 함성으로 경기장은 열광에 빠졌다. 현장서 경기를 관람하던 베트남 권력서열 2위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서열 3위인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도 자리서 벌떡 일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악수하며 기뻐했다. 이어진 시상식서 푹 총리는 박 감독을 한참이나 안은 뒤 양쪽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웠다. 

베트남 주요 도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흔들거나 부부젤라를 불며 축제를 즐겼고, 곳곳서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외쳤다.


박 감독은 지난 15일 베트남 ‘탄니엔’을 통해 “굉장히 기쁘다.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베트남 국민들도 엄청난 응원을 보내주셨다. 베트남 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영광스럽다. 이 우승컵을 베트남 국민 모두에게 바치고 싶다”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어 그는 “팀으로 이뤄낸 성과다. 내가 감독으로서 하는 역할은 많지 않다. 23명의 선수 모두가 노력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아주 행복하다. 베트남과 한국의 연결고리가 된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흡족해했다.

베트남은 ‘박항서 매직’에 흠뻑 취했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1은 축구대표팀을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을 올해 최고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VTV1은 해마다 그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인물을 뽑는데, 이번에는 극히 이례적으로 외국인인 박 감독이 선정됐다. VTV1은 조만간 박 감독을 초청해 내년 1월1일 방영할 신년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즈키컵 10년 만에 우승 ‘승승장구’
현지 언론들 2018 최고의 인물로 선정

국내서도 박항서 신드롬이 불었다. 토요일 밤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2018 결승 2차전 베트남-말레이시아 시청률이 18%를 넘은 것으로 나왔다. 지난 16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8분부터 11시21분까지 SBS가 생중계한 베트남-말레이시아전 시청률은 전국 18.1%, 수도권 19.0%로 집계됐다. 

SBS는 그동안 SBS스포츠를 통해 베트남의 스즈키컵 경기를 중계했다. SBS는 베트남-말레이시아 결승 1차전 경기를 SBS스포츠로 중계한 뒤 2차전 생중계를 결정했다. SBS에 따르면 1차전 시청률은 4.7%를 기록했고, 경기 후반에는 무려 7%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청률은 한국프로야구 중계(KBO)를 포함한 2018년 한 해 케이블 채널서 방송된 스포츠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차지한 것이다.  


1차전 시청률은 2010년 이후 케이블 채널서 방송된 모든 스포츠 콘텐츠 중에서도 최고를 기록한 수치다. 심지어 결승 1차전 경기는 당일 동 시간대 방송된 일부 지상파 드라마까지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2차전을 지상파로 중계한 SBS는 우승 세리머니까지 중계했다.
 

박항서 신드롬의 요체는 ‘탈권위’에 있다. 박 감독은 천진난만하게 선수들과 베트남 국민에게 다가섰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은 박 감독을 '파파 리더십'이라고 부르며 마음을 훔치는 영적 지도라라고 호평했다.

축구 전술을 넘어 선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력 이상의 성과를 얻는 데 특화된 지도자라는 평이다. 축구뿐 아니라 베트남 사회 고유의 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칭찬했다. 말이 안 통해 스킨십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간 박 감독의 능력은 빼어난 실적에 힘입어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다. 

탈권위 행보
특화된 지도자

선수들은 박 감독을 ‘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베트남서 짜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인간적인 면이 부각된 덕분이다. 부상 선수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고, 쌓인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발을 마사지해줬다. 선수들이 먼저 입국 절차를 마칠 수 있도록 입국심사 대기줄의 맨 끝에 선 모습 등은 베트남 언론서 스포트라이트와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박 감독은 또 실수하더라도 꾸짖기보다 “다음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의 ‘수평적 리더십’에 베트남은 열광하고 있다. 이런 리더십에 기반한 탁월한 지도력은 축구변방으로 분류됐던 베트남을 단기간에 동남아 최강, 아시아의 다크호스로 조련했다. 

박 감독은 우승 축하금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와 메달도 기부했다. 지난 16일,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의 초청으로 꽝남 경제특구 15주년 기념행사장을 방문했을 때 받은 것이다. 이 자리서 베트남 자동차 업체 타코 그룹은 우승 축하금으로 베트남 대표팀에 20억동(약 9700만원), 박 감독에게 10만달러를 쾌척했다.

박 감독은 이 축하금을 받자마자 “베트남 축구 발전과 빈곤층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또 기념촬영 중 푹 베트남 총리로부터 받은 우승 메달을 쩐 꾸옥 투안 베트남축구협회(VFF) 부회장의 목에 걸어줬다. 우승 축하금에 이어 우승 메달까지 양보한 것이다. 푹 총리는 이 자리서 박 감독과 베트남 대표팀에 대해 “그들의 영웅 정신, 용기, 의지 덕분에 스즈키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베트남에 부는 박항서 신드롬 덕분에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박 감독의 선전이 한국 기업들에도 후광효과를 낳은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베트남 시장서 지난달까지 2017년(2만6881대)보다 2배가량 증가한 5만548대의 차를 팔았다. 현대차는 베트남 기업인 탄콩과 세운 합작법인 HTMV를 통해 차를 생산 및 판매한다. 기아자동차도 지난 10월 지난해 전체 판매량인 2만2136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업계는 현대차의 품질 및 판매 증대 노력과 함께 박항서 매직이 판매량 신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브랜드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박 감독의 선전을 누구보다도 반기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주력 계열사를 통해 현지인 13만여명을 고용 중인 삼성그룹은 베트남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끌고 있는 박 감독이 회사와 제품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현지서 베트남 수출의 20∼30%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삼성그룹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9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별수행단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은 발칵 뒤집혔다. 삼성이 베트남에 있는 생산기지를 북한으로 옮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이 지난 10월 베트남을 방문한 데는 베트남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데도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 외에도 LG, SK, 포스코, 효성도 후광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SK의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응웬 쑤언 푹 총리와 만나 베트남 국영기업 민영화 참여, 환경문제 해결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눠 주목을 모았다. 이 자리서 응웬 총리는 “이렇게 매년 만나는 해외기업의 총수는 최태원 회장뿐일 정도로 SK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며 SK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진출 기업들
박 특수 만끽

박 감독을 모델로 기용한 국내 기업들이 크게 선전하고 있다. 동아ST서 생산하고 있는 자양강장제인 박카스가 베트남서 대박을 쳤다. 박항서가 박카스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박카스는 지난 5월 박 감독을 모델로 내세워 베트남시장에 진출한지 4개월 만에 280만개 판매량을 돌파했다.

지난 18일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스즈키컵 준결승전 직후인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현지 GS25 점포 24곳의 점당 평균 매출이 전월 대비 1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에 진출한 은행도 박항서 특수를 만끽하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박 감독과 베트남 축구선수 쯔엉을 홍보모델로 기용하면서 고객수가 10% 이상 늘었다. 
 

더불어 박 감독의 브랜드가 갖는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서 그 어떤 정치인이나 외교관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박 감독이 이룬 것이다. 박 감독은 우승 인터뷰서 “베트남 국민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처럼 한국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며 “조국 대한민국서 23세 이하(U-23) 아시아 챔피언십, 아시안게임, 스즈키컵까지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스즈키컵 우승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박항서에게 훈장을 지급하라’거나 ‘베트남 명예대사로 임명하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고 한국을 빛내주셨다. 살면서 한국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은 처음”이라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박 감독에게 열광하는 분위기가 얼어붙은 경제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박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해냈다’는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며 “경제가 어렵고 개개인의 현실이 불안정하다 보니 특정 인물의 성공신화에 더 열광한다”고 말했다.

서민적인 말·행동 ‘파파 리더십’
실력·리더십으로 자신 가치 입증

국내 축구팬, 스포츠팬들에게도 박 감독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축구계서 사실상 퇴출당한 뒤 늦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더불어 박 감독은 ‘흙수저’에 비유할 수 있다. 선수와 지도자로 주목받은 적이 없다. 스타덤과는 인연이 없었고 지명도서 밀려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베트남대표팀을 맡은 뒤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박 감독은 키(170㎝)는 작았지만 힘과 기동력이 좋은 선수였다. 경신고와 한양대서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신체적인 불리함을 부지런함과 악바리 근성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선수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기록에 따르면 국가대표팀에는 총 2번 소집됐고, A매치 출전은 단 한 번이다. 그는 1981년 실업축구 제일은행에 입단해 1988년 럭키 금성 황소서 은퇴했다. 1985년 리그 ‘베스트 11’에 뽑힌 적도 있지만 ‘선수 박항서’는 ‘스타’와 거리가 멀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선 김호 감독의 국가대표팀서 트레이너로 활동했고, 1997년 수원 삼성으로 옮겨 코치생활을 하다가 2000년에 수석코치로 발탁됐다. 이때가 박 감독에게 인생의 전환점. 2002년 한일월드컵을 위해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부터다. 

4강 신화 덕에 박 감독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법도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2002년 8월6일 대한축구협회는 박 감독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선임 70여일 만에 박 감독을 경질했다. 애초 약속한 임기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였다. 

탄탄대로?
비주류의 성공

당시 박 감독과 협회 간 빚어진 갈등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후 그는 K리그 여러 구단을 전전했지만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운도 환경도 따르지 않았을 터. 그러다 한국 지도자들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는 베트남에 정착해 비로소 다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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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