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베트남 영웅’ 박항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21 17:41:44
  • 호수 11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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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세오 신드롬에 두 나라 ‘들썩’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경질 위기부터 스즈키컵 우승까지. 베트남의 영웅으로 등극한 ‘바캉서’ 박항서 감독. 그의 여정이 베트남 현지서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언론은 박 감독을 올해 ‘최고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야말로 박항서 신드롬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밤 9시30분(한국시각)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미딘 국립경기장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동남아시아 국가 대항전) 결승 2차전 경기서 1-0으로 승리했다.

A매치 무패행진
가장 긴 기록

이로써 베트남은 1, 2차전 합계서 3-2로 앞서며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베트남은 결승 2차전 승리로 A매치 무패행진을 16경기(9승7무)로 늘렸다. 이는 현재 A매치 무패행진을 이어가는 국가 가운데 가장 긴 기록이다.

베트남의 우승이 확정되자 홈 관중 4만여명의 함성으로 경기장은 열광에 빠졌다. 현장서 경기를 관람하던 베트남 권력서열 2위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서열 3위인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도 자리서 벌떡 일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악수하며 기뻐했다. 이어진 시상식서 푹 총리는 박 감독을 한참이나 안은 뒤 양쪽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웠다. 

베트남 주요 도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흔들거나 부부젤라를 불며 축제를 즐겼고, 곳곳서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외쳤다.


박 감독은 지난 15일 베트남 ‘탄니엔’을 통해 “굉장히 기쁘다.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베트남 국민들도 엄청난 응원을 보내주셨다. 베트남 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영광스럽다. 이 우승컵을 베트남 국민 모두에게 바치고 싶다”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어 그는 “팀으로 이뤄낸 성과다. 내가 감독으로서 하는 역할은 많지 않다. 23명의 선수 모두가 노력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아주 행복하다. 베트남과 한국의 연결고리가 된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흡족해했다.

베트남은 ‘박항서 매직’에 흠뻑 취했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1은 축구대표팀을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을 올해 최고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VTV1은 해마다 그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인물을 뽑는데, 이번에는 극히 이례적으로 외국인인 박 감독이 선정됐다. VTV1은 조만간 박 감독을 초청해 내년 1월1일 방영할 신년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즈키컵 10년 만에 우승 ‘승승장구’
현지 언론들 2018 최고의 인물로 선정

국내서도 박항서 신드롬이 불었다. 토요일 밤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2018 결승 2차전 베트남-말레이시아 시청률이 18%를 넘은 것으로 나왔다. 지난 16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8분부터 11시21분까지 SBS가 생중계한 베트남-말레이시아전 시청률은 전국 18.1%, 수도권 19.0%로 집계됐다. 

SBS는 그동안 SBS스포츠를 통해 베트남의 스즈키컵 경기를 중계했다. SBS는 베트남-말레이시아 결승 1차전 경기를 SBS스포츠로 중계한 뒤 2차전 생중계를 결정했다. SBS에 따르면 1차전 시청률은 4.7%를 기록했고, 경기 후반에는 무려 7%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청률은 한국프로야구 중계(KBO)를 포함한 2018년 한 해 케이블 채널서 방송된 스포츠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차지한 것이다.  


1차전 시청률은 2010년 이후 케이블 채널서 방송된 모든 스포츠 콘텐츠 중에서도 최고를 기록한 수치다. 심지어 결승 1차전 경기는 당일 동 시간대 방송된 일부 지상파 드라마까지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2차전을 지상파로 중계한 SBS는 우승 세리머니까지 중계했다.
 

박항서 신드롬의 요체는 ‘탈권위’에 있다. 박 감독은 천진난만하게 선수들과 베트남 국민에게 다가섰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은 박 감독을 '파파 리더십'이라고 부르며 마음을 훔치는 영적 지도라라고 호평했다.

축구 전술을 넘어 선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력 이상의 성과를 얻는 데 특화된 지도자라는 평이다. 축구뿐 아니라 베트남 사회 고유의 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칭찬했다. 말이 안 통해 스킨십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간 박 감독의 능력은 빼어난 실적에 힘입어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다. 

탈권위 행보
특화된 지도자

선수들은 박 감독을 ‘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베트남서 짜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인간적인 면이 부각된 덕분이다. 부상 선수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고, 쌓인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발을 마사지해줬다. 선수들이 먼저 입국 절차를 마칠 수 있도록 입국심사 대기줄의 맨 끝에 선 모습 등은 베트남 언론서 스포트라이트와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박 감독은 또 실수하더라도 꾸짖기보다 “다음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의 ‘수평적 리더십’에 베트남은 열광하고 있다. 이런 리더십에 기반한 탁월한 지도력은 축구변방으로 분류됐던 베트남을 단기간에 동남아 최강, 아시아의 다크호스로 조련했다. 

박 감독은 우승 축하금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와 메달도 기부했다. 지난 16일,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의 초청으로 꽝남 경제특구 15주년 기념행사장을 방문했을 때 받은 것이다. 이 자리서 베트남 자동차 업체 타코 그룹은 우승 축하금으로 베트남 대표팀에 20억동(약 9700만원), 박 감독에게 10만달러를 쾌척했다.

박 감독은 이 축하금을 받자마자 “베트남 축구 발전과 빈곤층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또 기념촬영 중 푹 베트남 총리로부터 받은 우승 메달을 쩐 꾸옥 투안 베트남축구협회(VFF) 부회장의 목에 걸어줬다. 우승 축하금에 이어 우승 메달까지 양보한 것이다. 푹 총리는 이 자리서 박 감독과 베트남 대표팀에 대해 “그들의 영웅 정신, 용기, 의지 덕분에 스즈키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베트남에 부는 박항서 신드롬 덕분에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박 감독의 선전이 한국 기업들에도 후광효과를 낳은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베트남 시장서 지난달까지 2017년(2만6881대)보다 2배가량 증가한 5만548대의 차를 팔았다. 현대차는 베트남 기업인 탄콩과 세운 합작법인 HTMV를 통해 차를 생산 및 판매한다. 기아자동차도 지난 10월 지난해 전체 판매량인 2만2136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업계는 현대차의 품질 및 판매 증대 노력과 함께 박항서 매직이 판매량 신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브랜드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박 감독의 선전을 누구보다도 반기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주력 계열사를 통해 현지인 13만여명을 고용 중인 삼성그룹은 베트남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끌고 있는 박 감독이 회사와 제품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현지서 베트남 수출의 20∼30%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삼성그룹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9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별수행단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은 발칵 뒤집혔다. 삼성이 베트남에 있는 생산기지를 북한으로 옮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이 지난 10월 베트남을 방문한 데는 베트남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데도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 외에도 LG, SK, 포스코, 효성도 후광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SK의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응웬 쑤언 푹 총리와 만나 베트남 국영기업 민영화 참여, 환경문제 해결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눠 주목을 모았다. 이 자리서 응웬 총리는 “이렇게 매년 만나는 해외기업의 총수는 최태원 회장뿐일 정도로 SK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며 SK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진출 기업들
박 특수 만끽

박 감독을 모델로 기용한 국내 기업들이 크게 선전하고 있다. 동아ST서 생산하고 있는 자양강장제인 박카스가 베트남서 대박을 쳤다. 박항서가 박카스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박카스는 지난 5월 박 감독을 모델로 내세워 베트남시장에 진출한지 4개월 만에 280만개 판매량을 돌파했다.

지난 18일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스즈키컵 준결승전 직후인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현지 GS25 점포 24곳의 점당 평균 매출이 전월 대비 1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에 진출한 은행도 박항서 특수를 만끽하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박 감독과 베트남 축구선수 쯔엉을 홍보모델로 기용하면서 고객수가 10% 이상 늘었다. 
 

더불어 박 감독의 브랜드가 갖는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서 그 어떤 정치인이나 외교관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박 감독이 이룬 것이다. 박 감독은 우승 인터뷰서 “베트남 국민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처럼 한국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며 “조국 대한민국서 23세 이하(U-23) 아시아 챔피언십, 아시안게임, 스즈키컵까지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스즈키컵 우승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박항서에게 훈장을 지급하라’거나 ‘베트남 명예대사로 임명하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고 한국을 빛내주셨다. 살면서 한국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은 처음”이라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박 감독에게 열광하는 분위기가 얼어붙은 경제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박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해냈다’는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며 “경제가 어렵고 개개인의 현실이 불안정하다 보니 특정 인물의 성공신화에 더 열광한다”고 말했다.

서민적인 말·행동 ‘파파 리더십’
실력·리더십으로 자신 가치 입증

국내 축구팬, 스포츠팬들에게도 박 감독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축구계서 사실상 퇴출당한 뒤 늦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더불어 박 감독은 ‘흙수저’에 비유할 수 있다. 선수와 지도자로 주목받은 적이 없다. 스타덤과는 인연이 없었고 지명도서 밀려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베트남대표팀을 맡은 뒤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박 감독은 키(170㎝)는 작았지만 힘과 기동력이 좋은 선수였다. 경신고와 한양대서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신체적인 불리함을 부지런함과 악바리 근성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선수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기록에 따르면 국가대표팀에는 총 2번 소집됐고, A매치 출전은 단 한 번이다. 그는 1981년 실업축구 제일은행에 입단해 1988년 럭키 금성 황소서 은퇴했다. 1985년 리그 ‘베스트 11’에 뽑힌 적도 있지만 ‘선수 박항서’는 ‘스타’와 거리가 멀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선 김호 감독의 국가대표팀서 트레이너로 활동했고, 1997년 수원 삼성으로 옮겨 코치생활을 하다가 2000년에 수석코치로 발탁됐다. 이때가 박 감독에게 인생의 전환점. 2002년 한일월드컵을 위해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부터다. 

4강 신화 덕에 박 감독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법도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2002년 8월6일 대한축구협회는 박 감독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선임 70여일 만에 박 감독을 경질했다. 애초 약속한 임기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였다. 

탄탄대로?
비주류의 성공

당시 박 감독과 협회 간 빚어진 갈등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후 그는 K리그 여러 구단을 전전했지만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운도 환경도 따르지 않았을 터. 그러다 한국 지도자들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는 베트남에 정착해 비로소 다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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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