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대만 민주화의 대모’ 뤼슈렌 전 부총통

“리설주·김여정·현송월 초대합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만 독립과 민주화에 앞장선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열린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아시아 중립국 그룹을 제안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사진 가운데)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왼쪽은 국제 콘퍼런스를 주최한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앞으로 중소국들은 자국의 발전을 추구하고, 평화와 중립 입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중립적 국가 그룹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제 콘퍼런스 축사를 맡은 뤼슈렌 전 부총통이 제안한 내용이다.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도 그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현송월·김여정·이설주 등 북한을 대표하는 여성 3인방을 남한에 초청하는 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파격 제안했다.

다음은 뤼슈렌 전 부총통과의 일문일답.

- 대만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은 중국에 대한 독립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도 이에 호응하는 입장입니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고수합니다. 향후 양안정책에 대한 생각은?
▲하나의 중국은 논리적 모순을 가졌습니다. 하나의 중국이라 하면 대만은 중국의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의 주권을 갖는다고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대만이 독립된 주권국가라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창조적 모호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해 대만의 평화와 중립을 추구해야 합니다.

- 대만이 미중 간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태평양 안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식의 가교인지?
▲대만은 태평양의 제1도련(중국이 작전계획을 위해 나눈 지역, 오키나와-대만-남중국해)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만은 자체적으로 민주화와 평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중립화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차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 ▲▲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

- 한반도와 대만이 당면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에 기인합니다. 두 국가 중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두 국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다섯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동해와 서해, 대만의 동해와 양안 사이에 있는 해협,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것입니다. 한반도는 두 개의 바다, 대만은 세 개의 바다에 에워싸여져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전략적 위치에 있습니다. 바다는 어떤 한 나라가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바다에서는 어떤 분쟁도, 핵실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례가 남극입니다. 이를 바다로까지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민진당이 집권할 당시 대만은 아시아태평양해협서 평화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공해를 해소하고 항해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서 분쟁이 있으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바다를 보존하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축사 차 방한
고래싸움에 새우등? 중립국 그룹 제안

- 현재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의 핵심은 북핵문제 해결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북핵문제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입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 인류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비핵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내년 봄에는 조금 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핵전쟁을 저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화책도 핵전쟁을 저지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한국인은 자유와 민주, 그리고 부유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서 북한과 교류를 이어간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요청하자, 북한에서 3명의 고위급 여성이 한국을 찾아 남북한의 냉랭한 기운을 누그러뜨렸습니다. 남북한의 우수한 여성인력들이 여성 특유의 소프트함으로 남북문제에 접근한다면 좀 더 창조적인 해결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 오히려 북한을 더욱 압박해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북한 내 화장품 공장을 참관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화장품 산업을 발전시키면 외화를 더욱 많이 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했습니다. 지난해 김 위원장의 관심사는 핵이었습니다. 올해는 화장품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을 대표하는 3명의 여성인 현송월·김여정·이설주가 북한의 지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이 3명의 여성을 한국에 초청하는 일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많습니다. 남북 여성 지도자의 교류를 통해 강함을 추구하는 남성적인 부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체크앤밸런스’라는 이론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강대국 간 경쟁으로 주위의 중소국가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소국가들은 자기발전을 계속하며 평화와 중립이라는 입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저는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의 중립국 선언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필리핀도 이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립국을 표방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그룹을 만든다면 강대국도 중립국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올 것입니다.

- 대만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있지만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개발할 의도도 없다고 이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자위적 조치라며 핵개발을 정당화해왔습니다.
▲대만과 북한은 두 개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핵개발을 함으로써 주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대만은 핵을 개발할 능력과 과학적 기술이 있음에도 국민들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가서 이러한 생각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 한국의 지도자들이 바뀔 때마다 대북기조도 널뛰기하듯이 바뀝니다. 대만도 어떤 지도자가 대만을 통치하느냐에 따라 중국에 대한 입장이 바뀝니다. 결국 추진력이나 응집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번영의 측면서 점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맞춰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하나의 기조로 통일해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지도자가 바뀌면 정책도 바뀝니다. 하지만 국가 통합과 주권문제에 있어서는 여야 합의가 중요합니다. 대만은 선거 때마다 모든 정책을 꺼내서 토론합니다. 앞으로 대만이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합의가 되고 있지 않아 우려스럽습니다. 대만의 중립을 추진하려는 이유도 중국과의 통합과 독립의 중간노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 ▲&nbsp;‘미국과 중국,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앞서 인사말하는 유준상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 문재인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대만도 위안부 문제가 큰 사안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 국회로 가서 공청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만과 일본은 정식 국교가 없어 교섭하는 데 한국만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못합니다. 대만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유감입니다.

한국에만 위안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피해자가 많이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피해 국가들에게 사과를 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다툰다면 평화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하루빨리 단결해 평화적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북한 비핵화? 여성의 유연함이 해법
여성운동가 출신 “무분별한 미투 NO”

- 한국사회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 직장 내 성차별 이슈가 끊이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젠더 대결 양상을 띠고 있는데요. 여성 지도자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역사를 보면 압박을 가하는 자와 압박을 받는 자의 투쟁입니다. 빈부, 계급이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성별로 옮겨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여성의 육체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해왔습니다. 최근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가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해 미투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미투운동의 긍정적인 의미는 어떤 누구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 우려스러운 점은 미투가 무분별하게 남용돼 누군가 피해를 입게 되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 남녀 사이에 긴장감마저 돕니다.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친구에게 들은 농담인데 많은 여성들은 미투(Me Too)라고 외치고, 남성들은 낫 미(Not Me)라고 외친다고 합니다. 성별이 불필요하게 충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 대만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 가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지난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생각한 건 ‘지금 이 시점에 북한을 방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였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바꿀 능력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의 민감한 관찰력과 소프트함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북한에 구금된 외국인을 하루빨리 석방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한두 달이 흐른 뒤 북한이 한 미국인을 풀어줬습니다.

물론 이 석방이 저의 메시지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권문제를 다루는 게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면 인도적인 차원으로 접근해도 된다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의 많은 종교단체들이 만약 부총통과 함께 북한에 간다면 겨울이고 하니 북한 주민들에게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준다면 북한 주민들을 더욱 감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지도자의 실수로 국민들이 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뤼슈렌은 누구? 


뤼슈렌 대만 전 부총통은 대만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가다. 뤼슈렌은 대만의 첫 여성 부총통으로 천수이볜 총통 시절 10대·11대 부총통을 지냈다. 뤼슈렌은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창당 멤버로 '민진당 출신 첫 부총통'이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민진당 대표 등을 역임한 그는 민진당을 대표하는 원로 중 한 사람이다.

뤼슈렌은 대만 민주화 운동으로 설명된다. 그는 대만의 민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뤼슈렌은 지난 1970~1980년대 대만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와 감옥서 투쟁했다. 뤼슈렌은 1979년 대만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중 하나인 '메이리다오 사건'의 1급 주동자로 체포됐다. 

메이리다오 사건은 1979년 12월10일 발생했다. 뤼슈렌 등 민주화 인사들은 대만 가오슝서 잡지 <메이리다오>를 창간하는데 잡지의 이름은 노래 제목서 따왔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를 불허했지만 이날 뤼슈렌 등은 잡지 창간 기념집회를 열었다.

뤼슈렌 등은 이날 대만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경찰과 충돌했고,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 주동자들을 강경 탄압했다. 당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인물이 뤼슈렌과 함께 대만 총통을 지냈던 천수이볜이다. 

뤼슈렌은 이 사건으로 1980년 1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만의 민주화와 함께 1985년 특별사면됐다.


뤼슈렌은 석방 이후 민진당을 창당했다. 한편 '메이리다오'는 현재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뤼슈렌은 여성운동에도 앞장섰다. 뤼 전 부총통은 페미니즘 문학 전문출판사를 이끌어 여성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뤼슈렌은 지난 2000년과 2004년 총통 선거서 민진당 소속으로 천 총통과 함께 승리했다. 8년간 부총통을 역임한 그는 대만의 독립과 반중국을 지향한다. 뤼슈렌은 취임 이후 대중정책과 여러 차례 부딪쳤다. 

뤼슈렌은 첫 취임해인 2000년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해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논의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뉠 수 없고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중국 정부 하나라는 중국의 주장이다.  

2004년 중국이 ‘반분열국가법’을 추진하던 때에도 뤼슈렌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뤼슈렌은 “중국은 대만을 합병하려는 의도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뤼슈렌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므로 ‘분열’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뤼슈렌과 함께 대만을 이끌었던 천수이볜 총통은 재임기간 중의 뇌물수수, 총통 기밀비 횡령 등의 혐의로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천수이볜은 5년 복역 후 2015년 치료를 위해 가석방됐다. 뤼슈렌은 천수이볜의 가석방을 위해 2014년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다.


<kjs0814@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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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두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내 3당으로 자리 잡았다. 조국 대표는 비례순번 2번으로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문재인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과 66대 법무부 장관 등 굵직한 이력을 지녔지만 초선인 만큼 처음부터 입지를 다져야 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난 10일, 민주당의 압승에 가까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국당 지지자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국당이 기대하던 ‘10석+알파(α)’가 확실해졌다. 주먹을 쥔 지지자들은 연신 “조국”을 외쳤다. 총선 뒤흔든 조국혁신당 조 대표는 이날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국민께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총선 승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간 수많은 실정과 비리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국민께 보고하라”며 “총선은 끝났지만 조국당이 만들 우리 정치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개표 현황에 따르면, 조국당은 12석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4석을 얻었으며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국당은 2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신생정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거두자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조국당 비례대표 12번까지는 무난히 당선권에 들었다. 차례대로 ▲박은정 ▲조국 ▲이해민 ▲신장식 ▲김선민 ▲김준형 ▲김재원 ▲황운하 ▲정춘생 ▲차규근 ▲강경숙 ▲서왕진 등의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때 여권서 “조국이 나오면 땡큐”인 ‘조나땡’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조국당의 돌풍은 거셌다. 조 대표가 부산 민주공원서 신당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세 좋게 제3지대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국 열풍’ 또한 금세 식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조 대표는 지난 2월8일 자녀들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항소심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총선 한 달 앞두고 등장한 루키 정당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 쌍끌이 전략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조국당은 이번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건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는 조국당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조국당의 슬로건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3년은 너무 길다”였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윤정부 무력화’를 거침없이 외치는 조국당에 심판을 벼르던 강성 유권자들이 동참한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다소 약한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던 지지층의 표를 흡수한 셈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조 대표는 완벽한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형이 나온 만큼 조 대표가 22대 국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의 대표이자 간판인 조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사실상 조국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 대표가 집어든 여의도 생존 전략은 ‘검찰 탄압 프레임’을 굳히는 것이다. 자신을 여의도로 이끈 ‘검찰 탄압’이라는 명분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면서 원포인트 전략으로 내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조 대표가 출소 후 여의도로 돌아오기 위한 명분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에 입성한 조 대표는 그동안 강조해온 한동훈 특검법을 띄우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동안 조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한동훈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동훈 특검법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관련 의혹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문 대필 등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조 대표는 ‘윤석열정권 관권선거운동 의혹 국정조사’를 실시하거나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조사’를 추진해 윤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12석 확보 완벽한 성공 당선권에 진입하자 조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11일 조국당은 총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김건희를 수사하라”고 외쳤다. 조 대표는 “이번 총선서 확인된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전하려 한다”며 “검찰은 즉각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은 ‘몰카 공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며 “몰카 공작이라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처벌하라. 그것과 별개로 김 여사도 당장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조국당은 검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조국당이 검찰만 정조준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는 여론 때문이다. 따라서 조 대표를 향한 동정론도 조국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찰에게 탄압받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조 대표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지지자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조 대표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를 시작으로 조 대표와 그의 일가족이 잘못한 부분은 있지만 죄명에 비해 과도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론이 형성됐다. 동정론은 조국당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강한 무기다. 오래전부터 조 대표를 지지해 왔다는 A씨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만나 “조 대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B씨도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지 않았나.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역경을 딛고 나선 것을 보면 마음이 이쪽(조국당)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VS 조 동상이몽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이 대표의 재판에 익숙해져 있기 떄문에 조 대표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희석됐다는 평도 나온다. 조국당이 총선 직전까지 지지율을 견인하자 여권에서는 급하게 견제에 나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총선 기간 동안 조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범죄자들에게 미래를,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에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에 동의부터 하라”며 맞불을 놨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동의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조 대표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의도 신입인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일선상서 바라보는 모양새다. 총선 다음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던 (윤석열)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라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하루빨리 이재명·조국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뿐만이 아니라 조 대표까지 함께 언급된 만큼 조 대표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은 닫아뒀지만 민주당에서는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현해 “야권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이) 윤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갖고 거대 의석을 이뤘지만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시간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법 리스크 여전 대법 판결 정치생명 마침표될 수도 현재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만 남은 만큼 모든 일정을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과 견줄 만큼 몸집을 키우거나 진보 진영서 대권을 잡아 스스로의 힘으로 사면해야 한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시나리오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기 때문에 서서히 조여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속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두 세력의 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조국당의 원동력을 유지하거나 추후 여의도 복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데 그칠 뿐이다. 조국당의 정치 공간을 넓히고 다른 당과 손을 잡기 위해 매력적인 묘수를 꾀어내는 게 조 대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조국당 의석은 12석으로 교섭단체를 충족시키는 20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8석이 더 필요하다. 1석씩 얻은 새로운 미래와 진보당, 혹은 소수 야당과 손을 잡고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조국당이 내세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 슬로건에 민주당은 ‘몰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얻은 지금으로서는 조국당이 거대야당에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의외의 성적을 거둔 조국당이 22대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민주연합·조국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의석수가 국회의원 전체의 5분의 3인 180을 넘기게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안을 강행할 수 있다. 아울러 패스트트랙에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혼자일 때 더 강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 대표가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민주당서 탈당할 의원이나 제3지대 의원이 합류한다면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이 충분한 만큼 조 대표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적으로 조 대표의 판단에 달렸지만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지금과 같은 선명성이 묻히고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게 된다”며 “조 대표는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다.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급해진 대법원? 대법원이 업무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상고심 사건의 재판부를 결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주심은 엄상필 대법관으로 2021년 조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엄 대법관이 상고심 재판을 맡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 대표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엄 대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있으므로 조 대표 측은 재판부를 교체해달라는 기피 신청을 낼 수는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