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간석식구파 광주 습격사건 전말

“감히 우리 식구를 건드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광주의 조직폭력배에게 조직원이 폭행당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광주에 집결한 수도권 조폭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 조직원을 볼모로 잡고 세력을 과시하던 이들의 복수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급습으로 좌절됐다. 이 복수극을 주도한 조직은 인천 최대 조직인 ‘간석식구파’로 밝혀졌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동료가 광주 폭력조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보복한 인천 폭력조직원 12명 중 11명이 구속됐다. 수도권 조직원들은 술자리서 광주 조직원들과 서로 주먹질을 한 뒤 앙갚음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서 뺨맞고
선후배 뭉쳤다

지난달 24일 낮 12시40분쯤 광주북부경찰서 강력반 등 형사과 소속 12개팀과 형사기동대,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와 특공대 등 경찰관 100여명에게 비상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수도권 조폭들이 광주 폭력조직 S파와 한판 겨루기 위해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첩보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인천 조폭들은 전날 밤 광주 상무지구의 한 포장마차서 전국의 조폭 조직원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졌다. 비슷한 또래로 친목모임을 하던 광주의 한 조폭 가족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술자리에는 전국의 20대 조폭 30여명이 참석했다.

술잔이 연거푸 돌아가자 불쾌해진 인천 조폭 노모(26)씨가 종업원에게 “불친절하다”며 행패를 부렸다. 동석한 광주 S파 1년 후배 김모(25)씨가 말리자 노씨는 언성을 더 높였다. 그는 “후배가 건방지다”며 김씨의 뺨을 때렸고 순식간에 술자리는 험악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김씨와 S파 조직원들은 노씨를 데리고 나가 “남의 잔치에 와서 재 뿌리지 말라”고 했지만 노씨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S파 조직원들은 완력으로 노씨를 제압했다. 


노씨는 “광주 애들에게 된통 당했다. 복수해야 한다”고 인천 K파와 B파 조직원들에게 SOS를 쳤고 30여명이 집결했다. 결혼식장 인근인 광주 북구 각화동 한 모텔을 통째로 빌린 노씨 일행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텔 건물 내외부의 CCTV 카메라를 모두 떼어내기도 했다. 

날이 샌 후 노씨 등은 중재에 나선 광주 S파 조직원 1명을 볼모로 잡고 2시간 동안 무릎을 꿇린 채 “김씨를 데려오지 않으면 땅에 묻어 죽여버리겠다”고 세력을 과시했지만 노씨가 꿈꾸던 복수는 좌절됐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결혼식 1시간 전 모텔을 급습해 조직원 12명을 검거한 것이다. 

경찰은 일부 조직원들이 급습 전 모텔을 빠져나갔고 모텔에 있던 일부 조폭들이 반항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노씨 등의 숙소서 야구방망이 등 다수의 폭력도구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2개 파 30명 집결… 상대 조직원 린치 
첩보 입수한 경찰 100명 중무장 출동

광주 북부경찰서는 같은 달 25일, 다른 조폭 조직원을 붙잡아 감금·폭행한 혐의(범죄 단체 조직·활동죄 등)로 노씨와 이모(23)씨 등 1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규현 광주경찰청장은 “조직폭력배 간 도심활극을 막기 위해 선제 검거작전을 펼쳤다”며 “조폭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복을 위해 수도권 일대 폭력조직원들을 집결시킨 인천 폭력조직원은 ‘간석식구파’ 소속으로 확인됐다. 2011년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앞 집단 난투극으로 유명세를 탄 인천의 폭력조직 ‘간석식구파’는 지난 1989년 결성됐다.

당시 인천 남동구 간석동 일대 유흥가를 활동 무대로 삼은 간석동파와 남구 주안동 일대를 주무른 금강산파가 통합해 만들어졌다. 


두목, 부두목을 두고 아래 조직원들은 나이 순대로 서열을 정했다. 서로를 ‘형님·동생’으로 부르며 ‘식구’처럼 대했다. 간석동 일대 유흥업소부터 장악했고 당시 이 지역에 들어선 호텔 2곳의 영업권도 이들이 관리했다. 2007년에는 서구 석남동 일대 유흥가서 활동하던 ‘석남파’ 조직원을 영입하며 세를 불렸다. 

타 조직과의 마찰이 있으면 비상연락망에 따라 위에서 밑으로 지시를 내리는 체계를 갖췄다. ‘또래 리더’가 또래 조직원들과 바로 아래 ‘또래 리더’에게 연락해 상황을 전파하는 식이었다. 

간석식구파 조직원들은 ‘선배를 보면 90도로 인사하고 지시에 복종한다’ ‘선배나 후배가 다른 조직원에게 무시당하면 반드시 복수한다’ ‘인천 외 지역으로 갈 때는 1년 위 선배들에게 보고한다’ ‘선배들의 전화는 무조건 받는다’ 등 자체 행동강령에 따라 죽고 살았다. 

금강산파 전신
행동강령 준수

2011년 10월21일. 간석식구파는 인천시 남동구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라이벌 조직인 ‘크라운파’와 크게 붙었다. 속칭 ‘전쟁’이었다. 간석식구파 조직원이 크라운파로 자리를 옮긴 조직원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것이다.

부인상을 당한 조직원을 문상 왔던 크라운파 조직원 100여명은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속속 장례식장 앞으로 집결했고 신간석파 조직원 30여명도 긴급 호출을 받고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의 날’에 벌어졌던 이 난투극으로 간석식구파 조직원 11명이 징역 1∼13년을 선고받았고 조직은 와해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뒤 행동대장 등 핵심 조직원들이 잇따라 석방되면서 다시 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2014년 8월에는 크라운파에서 활동하다가 조직 내부 문제로 이탈한 조직원 21명과 신포동식구파(일명 ‘꼴망파’) 소속 3명을 잇달아 영입했다. 신규 조직원이 늘자 일명 ‘줄빠따(기수별 폭행)’로 기강을 다잡았다.
 

기존 조직원과 크라운파에서 이적한 조직원 간에 갈등이 생겼고 A씨 등은 한 살 위인 선배의 지시에 따라 바로 아래 29∼30세 조직원들을 불러 야구방망이로 10차례씩 폭행했다. 

A씨는 2015년 후배 조직원이 서울의 한 폭력조직원과 통화하다가 말다툼 벌인 사실을 알고, 비상연락망을 취해 후배 10여명을 집합시킨 후 서울로 가 서울 폭력조직원들과 대치했다. 

2014년 9월에도 흉기를 들고 인천의 다른 폭력조직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비상대기’를 했다. 

허물어진 기반
SNS로 교류 중


경찰이 올해 3∼6월 100일 작전을 펼쳐 전국서 잡아들인 조폭만 1385명이었고 이 중 232명이 구속됐다.

행태만 바뀌었을 뿐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불법행위를 일삼는 조폭은 여전히 존재한다. 흔히 조폭이라고 하면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 간 영역 다툼하고 자신을 깡패가 아닌 건달이라 칭하며 화려하지만 위험한 삶을 사는 영화 속 모습을 떠올리지만 요즘 조폭들은 먹고살기 바쁘다.

경찰의 전언에 따르면 과거의 모습과 달리 요즘은 돈을 좇아 이합집산하거나 철새처럼 여러 지역을 오가며 돈벌이를 찾는 것이 조폭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번 인천-광주 간 조폭 보복전 사건서도 이 같은 경향이 드러났다.

요즘 조폭들은 SNS를 통해 인맥을 넓히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 지역 조직을 뛰어넘는 이합집산을 한다. 광주 조폭 한 명은 이번 사건 과정서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해 가족의 결혼 사실을 널리 알렸다. 이 내용을 접한 인천 등 수도권 지역 조폭들은 광주로 직접 찾아와 광주 조폭과 얼굴을 텄다.

SNS를 통해 서로 경조사를 알리고 이것을 계기로 서로 만나며 조폭 간 인맥을 늘리는 것이다. 경조사에 조직원이 많이 모일수록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덤도 얻는다.

이 과정서 조폭들 간의 서열은 나이로 정해진다. 이번 사건서도 나이가 한 살 어린 광주 조폭이 술 취한 인천 조폭을 말렸다는 이유로 시비가 시작돼 폭행 사건으로까지 번졌다.


89년 결성… 장례식장 난투극으로 유명세
타 조직과 마찰 시 체계적 비상연락 가동

시대는 바뀌었지만 조직원이 당한 피해는 반드시 보복한다는 조폭의 행태는 여전했다. 인천 조폭은 자신이 폭행당하자 평소 친분이 있던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조폭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이들은 소속은 각자 달랐지만 평소 필요에 따라 함께 행동하기도 했기에 전화 한 통화에 상대 조직을 응징하기 위해 수도권서 광주까지 새벽같이 달려왔던 것이다.

다만 조폭들은 자신들의 신원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조심했다. 수도권 조폭들은 광주의 한 모텔에 집결하면서 신원이 드러날까 봐 모텔을 통째로 빌려 손님을 못 받게 했고 모텔 CCTV를 뜯어가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들의 지역 기반이 허물어지면서 타 조직 간 교류로 세를 불리려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사건도 경조사를 통해 교류하려던 조폭들 사이의 다툼이 보복전으로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잇따라 적발
소탕해도 재건

인천경찰청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크라운파·간석식구파·부평식구파·꼴망파·주안식구파를 잇따라 적발했다. 올해 현재 인천경찰청의 관리 대상 폭력조직은 13개 파로 해당 조직원 수는 320여명이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폭력조직을 소탕해도 구속한 핵심 조직원 외 불구속된 하부 조직원들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지역 폭력조직원들을 지속해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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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