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로 시집 간 아나운서들 열전

방송 접고 청담동 며느리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벌은 정치·사회·경제 심지어 연예면까지 달군다. 재벌과 일반인의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이미 넘칠 만큼 많다. 재벌의 사생활은 언제나 핫이슈다. 실제 재벌과 아나운서의 조합은 이전에 비해 신선한 느낌은 아니지만 여전히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다. <일요시사>가 재벌-아나운서 커플을 조명해봤다.
 

한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 아나운서의 이름은 단숨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올랐다. 이후 약 2일간 여러 사건·사고들이 일어났지만 검색어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결혼 상대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대중들은 재벌과 아나운서의 조합에 뜨겁게 반응했다.

지난 20일, 한 언론매체는 조수애 JTBC 아나운서와 박서원 두산 전무의 결혼 소식을 보도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 아나운서와 박 전무는 다음달 8일, 서울의 한 예식장서 결혼식을 올린다. 조 아나운서는 현재 휴가 중으로 JTBC에는 이미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소식
실검 장악

1992년생으로 올해 27세인 조 아나운서는 홍익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2016년 JTBC에 입사했다. 당시 JTBC 아나운서 공채 경쟁률은 1800대 1에 육박했다. 아침뉴스 <JTBC 아침&>서 ‘국내 이모저모’ ‘해외 이모저모’ ‘스포츠 뉴스’ 등의 코너를 맡았다. 최근에는 <LPGA 탐구생활> <오늘, 굿데이> <전(錢) 국민 프로젝트 슈퍼리치> <골프 어택> 등을 진행했다.

조 아나운서와 화촉을 밝힐 박 전무는 두산가 4세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장남이다. 단국대에 다니다가 중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2005년 미국의 문화예술 명문대로 알려진 SVA(School of Visual Arts,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를 졸업했다.


박 전무는 광고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대학 동기들과 광고회사 ‘빅앤트’를 차렸다. 2009년에는 반전 포스터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뉴욕광고제 옥외광고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두산그룹 광고계열사인 오리콤 총괄부사장을 거쳐 유통사업 최고전략책임자이자 두산매거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나이차, 가정사 등 사생활에 대한 누리꾼의 관심이 폭발했다. 조 아나운서와 박 전무는 각각 27세, 40세로 13살 차이다. 또 박 전무가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전력이 있고 딸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심은 증폭됐다.

박 전무는 2005년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의 딸 구원희씨와 결혼했다가 2010년 이혼했다. 2009년부터 별거에 들어간 두 사람은 박 전무가 구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소송 과정서 두 사람은 딸 양육권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무의 딸은 2006년생으로, 조 아나운서와는 14살 차이다.
 

▲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과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 부부

아나운서는 참하고 똑똑한 이미지의 직업군으로 손꼽힌다. 재색을 겸비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재벌가서 아나운서를 며느리감으로 선호한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아나운서가 재벌가 며느리가 된 사례는 조수애-박서원 커플 외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깜짝 발표
퇴사 결정

앞서 이다희 전 스카이티브이 아나운서가 이선호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관리팀장(부장)과 서울 근교서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팀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이 전 아나운서와 이 팀장은 지난달 8일, 서울 근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식은 이 회장 부부 등 양가 직계가족만 참석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이 전 아나운서는 미국 퍼듀대학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2016년 5월 스카이티브이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남편인 이 팀장은 재혼으로 알려졌다. 이 팀장은 지난 2016년 그룹 코리아나의 멤버 이용규씨의 딸이자 방송인 클라라의 사촌동인 고(故) 이래나씨와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사별했다.


재벌가 자제와 아나운서가 결혼한 사례 중에 대표적으로 꼽히는 커플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이다. 2006년 노 전 아나운서가 정 사장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불거졌다.

노 전 아나운서는 2003년 KBS에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 뉴스뿐만 아니라 <스타골든벨> <상상플러스> 등 예능MC로 활약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전성기를 누리던 노 전 아나운서는 결혼과 동시에 2006년 KBS를 퇴사했다.

정 사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4남인 고(故)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미국 버클리대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비앤지스틸 이사를 지냈다. 노 전 아나운서와 정 사장 사이에는 두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아나운서와 정 사장의 결혼 생활이 대중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꾸준한 언론 노출 때문으로 보인다. 노 전 아나운서가 현대가 행사에 남편과 함께 참석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자주 포착되면서 대중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는 것. 특히 이번 조수애-박서원 커플 소식이 전해지면서 노현정-정대선 부부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 아나운서-재벌 남자
누리꾼들 관심 폭발해

지난해 7월에는 고(故) 정주영 회장의 부인 고(故) 변중석 여사 기일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3월에도 고(故) 정주영 회장의 17주기 제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아나운서가 현대가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패션과 메이크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모양새다. 노 전 아나운서는 결혼 이후 내조에 전념하면서 방송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성주 전 아나운서도 재벌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우다. 한 전 아나운서는 1994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된 후 1996년 S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 방송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9년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삼남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과 결혼했지만 10개월 만에 이혼하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후 한 전 아나운서는 SBS도 퇴사했다.

한 전 아나운서는 대만 출신 전 남자친구의 동영상 유포와 폭행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난 2012년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전 아나운서의 전 남친 타이완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수에 대해 기소 중지 결정을 내리고 잠정적으로 수사를 종결지었다. 검찰은 크리스토퍼 수가 외국에 머물면서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어 더 이상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이다희 스카이티브이 아나운서

1999년에는 장은영 전 KBS 아나운서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화촉으로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27살로, 당시 장 전 아나운서는 KBS 간판 프로그램 <열린음악회> MC를 맡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장 전 아나운서는 1992년 미스코리아 대회 선 출신이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최 전 회장과 결혼 당시 세간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했지만 장 전 아나운서는 KBS를 퇴사하고 내조에만 힘을 기울였다. 2007년 <열린음악회> 700회 특집 때 당시 함께 진행했던 유인촌 전 장관과 출연한 게 전부였다.

화려한 시작
끝 안 좋기도

최 전 회장은 1971년 대한통운 사장을 거쳐 2001년까지 동아그룹 회장을 지냈다. 배우 김혜정과 결혼한 뒤 이혼한 최 전 회장은 펄시스터즈의 배인순과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이후 장 전 아나운서를 만나 결혼했다.


순탄하게 이어지나 했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11년 만인 2010년 파국을 맞았다. 두 사람은 이혼 당시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두 사람의 이혼은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서로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차원서 성립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 전 회장은 “(장 전 아나운서는)10년 넘게 아내로서 뿐만 아니라 여러 역할을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성으로 돌봐주고 변호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며 “이혼은 내 미안함의 표현이다. 서로 가장 염려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 장은영 전 아나운서

장 전 아나운서도 “회장님은 정말 남다른 인물이다. 그릇 자체가 다르다. 그런 큰 사람의 아내로서 나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라 버거움이 누적돼있었나 보다”라며 “여전히 회장님을 존경하고 세상 누구보다 인정한다. 연로하신 시어머님께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전 아나운서는 2011년 대학 시절 만났던 동갑내기 사업가와 재혼했다.

최원정 KBS 아나운서는 KBS 보도국 최영철 기자와 2004년 화촉을 밝혔다. 최 기자는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전 사장의 아들이다. 최 아나운서와 최 기자는 2000년 KBS 입사 동기로 두 사람은 동기모임서 만나는 과정서 교제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아나운서와 최 기자는 결혼 후에도 KBS서 활동 중이다.

황현정 전 KBS 아나운서는 ‘벤처 재벌’로 불린 이재웅 쏘카 대표와 2001년 결혼했다. 황 전 아나운서는 1993년 KBS 공채로 입사해 <KBS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꿰차면서 간판 아나운서로 성장했다. 당시 수많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꼽힐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 2001년 이 대표와 결혼한 후 퇴직,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결혼과 동시에 활동 중단 많아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 이혼도


포털사이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이기도 한 이 대표는 고(故) 이철형 전 한국종합건설 대표의 장남이다. 1995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초의 포털 다음을 만들어 벤처계의 전설로 떠올랐다.

이후 1997년에는 국내 최초의 이메일 서비스 ‘한메일’, 1999년에는 다음 카페를 론칭하는 등 성공신화를 이끌었다. 2007년 다음 대표직서 물러나 스타트업 양성에 몰두하던 그는 쏘카 대표로 경영에 복귀했다. 지난 9월에는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석, 평양에 방문했다.

연세대 선후배 사이인 황 전 아나운서와 이 대표는 2000년 서울 압구정동이나 예술의 전당 등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열애설에 휩싸였다. 이후 2001년 웨딩마치를 울리고 열애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당시 황 전 아나운서와 이 대표의 결혼은 국내 최초로 비공개 결혼식으로 진행됐다.
 

▲ 조수애 아나운서

최윤영 전 MBC 아나운서는 2004년 외국계 증권사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장세윤씨와 결혼했다. 최 전 아나운서는 2001년 MBC에 입사,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로 활동하면서 간판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렸다.

남편 장씨는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장 회장은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대우 무역부문 사장을 지냈다.

대중 관심
이어질 듯

여성 아나운서와 재벌가 자제의 만남은 대중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돈이 목적’ ‘시집 잘 가려고 아나운서가 됐냐’ 등의 원색적인 비난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는 아나운서에 대해서는 뾰족한 말이 오가기도 한다. 반면 결혼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행사에 전혀 관계없는 제 3자가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예나 지금이나 아나운서와 재벌가의 조합은 대중에게는 흥미로운 이슈인 셈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벌-연예인 결혼과 이혼

▲ (사진 왼쪽부터)배우 심은하·고현정·최정윤

재벌과 아나운서의 조합만큼이나 재벌과 연예인의 조합도 대중의 흥미를 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배우 고현정이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서 혜린 역을 맡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고현정은 1995년 돌연 정용진 현 신세계 부회장과 결혼을 발표했다. 당시 고현정의 나이는 22세였다.

결혼과 동시에 방송서 사라졌던 고현정은 8년6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고현정의 이혼 소식이 전해지자 이유에 대한 억측과 추측이 쏟아졌다. 상대가 재벌이니만큼 위자료나 양육권에 대한 관심도 폭발했다. 현재 고현정의 두 자녀에 대한 양육권은 정 부회장이 갖고 있다.

고현정은 방송에 복귀하면서 출연한 <무릎팍도사>서 “너무 어려서 뭘 모르고 결혼한 것 같다. 조금 더 내가 배우고 다듬어진 상태서 만났더라면 서로 원하는 모습으로 잘 다듬어가고 맞춰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배우 최정윤은 2011년 이랜드 그룹 박성경 부회장의 장남인 윤태준씨와 결혼했다. 윤씨는 1998년 5인조 아이돌그룹 이글파이브로 데뷔해 활동한 색다른 전적이 있다. 최정윤이 윤씨보다 4살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다.

윤씨는 지난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2014년 9월 한 상장사의 사장으로 취임한 후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주가를 조작해 40여억원의 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윤씨가 D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대만 회사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이 중국 최대 통신사인 차이나 모바일의 앱스토어에 입점한다는 거짓 정보를 퍼트려 D사의 주가를 높인 것으로 봤다.

1990년대 인기를 누렸던 배우 심은하 역시 2001년 돌연 은퇴한 뒤 2005년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의 외아들인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과 결혼했다. 청순미의 대명사로 불렸던 심은하는 은퇴 이후에도 방송계로부터 숱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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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