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표적’ 법관 6인 대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26 11:03:27
  • 호수 11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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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법복 벗겨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현직 판사를 입법부가 탄핵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국회는 사법 농단 연루 법관 탄핵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끄럽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2018년 사법 농단 연루 법관 탄핵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요시사>는 탄핵안 발의 및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과 탄핵안 포함이 확실시되는 법관 6인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 한다.”

법관 대표들
공감 분위기

지난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결의안 중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 부분이다. 현직 법관들도 사법 농단 사건을 심각한 헌법위반행위로 본다는 게 요지다. 법관 대표들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검토돼야 한다”고 입장을 공식 표명하며 탄핵소추를 촉구했다.

이날 모인 법관 대표들은 총 114명, 그 중 105명의 법관 대표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결과는 찬성 53명, 반대 43명, 기권 9명이었다. 반대와 기권표를 합치면 찬성과 불과 1표 차이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법관대표회의 공보간사인 송승용(44·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민감한 사안이라)오래 논의를 했고 어느 한 의견이 압도적인 방향으로 의결되지는 않았다”며 “반대하는 대표 판사들의 주장과 근거도 설득력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대 입장을 낸 법관 대표들은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법원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법관대표회의는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지난 20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자문서 형태로 전달했는데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말을 아꼈다. 오전 9시8분께 출근길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소추 검토로 의견이 모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회에 의견 전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 사법부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사안이 엄중했다. 

탄핵소추에 대한 대표 판사들의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거나 촉구하는 방안은 권력분립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인 만큼 채택되지는 않았다. 송 부장판사는 “자문기구 성격의 대표회의가 제3의 국가기관인 국회에 탄핵소추를 촉구할 수 있냐는 부분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논의돼야 할 사안이 즐비하다. 먼저 법관대표회의가 법관들을 대표할 수 있냐는 부분이다. 법관대표회의의 현재 총원은 119명인데, 그 중 서울중앙지법 소속이 9명으로 가장 많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대법원장·대법관을 포함한 전체 법관은 2933명, 4.1%인 119명이 나머지 법관을 대표할 수 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법관회의 사법 농단 탄핵 검토 의결
정치권은 공 넘겨받고 저울질 중

절차적 하자 논란도 제기된다. 법관대표회의 규칙상 출석한 구성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지난 19일, 의결정족수는 출석자(114명) 기준으로 볼 때 58명이었으나 표결 참여자(105명)의 과반인 53명이 찬성했다는 이유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탄핵 대상과 범위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 농단과 관련된’이라고 말했을 뿐 대상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적시한 관련자만 현직 법관이 70명이 넘는다.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임 전 차장 등은 현직이 아니라 탄핵 대상이 될 수 없다.

탄핵 대상·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법관 6인을 탄핵소추 대상자로 꼽아 주목된다. 권순일 대법관,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가 그들이다. 

권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 2012년 8월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하면서 일제 강제노역 사건과 통상임금 사건 등에 관해 청와대 인사와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민걸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축소를 위한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를 시행하고 일제 강제징용 사건,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침묵하는
김명수

이규진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선고기일 연기 등을 지시한 의혹, 판사 뒷조사 의혹,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로부터 헌재 재판관 평의 내용을 넘겨받은 의혹 등에 연루됐다.

그 외 정다주·박상언·김민수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법관 탄압이나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로 의심되는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변은 “법원서 자체 조사한 3차 조사 보고서와 지금까지 나온 검찰의 수사 결과만으로도 6명에 대한 탄핵소추 요건을 갖춘 상태”라고 주장한다.

비단 민변만 이들 6인을 지목한 게 아니다. 지난 10월30일 ‘양승태 사법 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국회 정론관서 이들 6인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징계를 청구한 현직 판사 13명에도 이들 6인이 포함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서 ‘탄핵 대상이 6명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정도에 사실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분석하면 더 언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 대법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5인은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간여 혐의가 드러나 현재 재판 업무서 배제된 상태다.

이미 탄핵소추 요건을 갖췄다는 법관대표회의와 민변, 시국회의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탄핵과 관련된 사항은 헌법 65조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이 가능하다고 적시돼있다. 

더 있을 수도…
국회 선택은? 

또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103조) 등 주요한 헌법 조항을 위반해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혐의는 향후 검찰의 기소와 재판 과정서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변은 향후 검찰 조사에 따라 탄핵 대상을 추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 조사를 본 국민들의 여론이 실제 탄핵안 발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과 관련한 논의가 국회서 착수됐다는 점만 봐도 정치권이 여론의 추이를 궁금해한다는 증거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관대표회의의 탄핵소추 의견에 즉각 답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서 “이제는 국회가 답할 차례”라며 “탄핵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회의를 열어 실무 검토를 시작했다.

정의당 역시 법관회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한 각 정당 간 논의 테이블 구성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평화당 역시 논평을 통해 “옳은 결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경우 반대 입장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판사가 정치 행위를 하려면 정치계로 진출해야 한다”며 “인민재판식 마녀사냥으로 이렇게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일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특별재판부보다 위헌 소지가 없다”며 찬성 입장을 밝힌 반면, 김관영 원내대표는 “법관 탄핵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탄핵 대상을 국회가 특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발의되는 일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국회 재적의원(현 299명)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발의가 가능하다. 여당인 민주당만 해도 129석으로 탄핵소추안 발의 요건인 100석을 웃돈다. 발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

소추안 발의 무난, 통과는 미지수
문제의 법관들 어떤 불이익 받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때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72시간 이내에 표결에 부쳐져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찬성 입장을 분명히 한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석수의 합은 148석이다.

본회의 통과를 위해 필요한 의석 150석에 2석 모자라는데 바른미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사위원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관 탄핵은 요건 자체가 어렵지 않다”며 “얘기만 잘 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도 (처리가)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 다음 개혁적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면 과반이 된다”며 “물론 다른 야당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의결 조건은 갖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법사위원장이자 소추위원인 한국당 소속 여상규 의원은 지난 22일 “탄핵소추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단 “기소가 완료되면 탄핵 여부를 논의할 순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는 곧바로 탄핵심판 절차에 돌입한다. 대통령 탄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파면이 최종 결정된다. 현직 법관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 권순일 대법관

탄핵소추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6인 중 이규진 부장판사는 내년 2월로 지난 10년의 법관 임기를 만료한다. 본인이 재임용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퇴직 처리된다. 탄핵 대상서 제외되는 것이다. 임종헌 전 차장도 의혹이 불거지자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3월 임기만료 퇴직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탄핵과 임기만료는 천지차이다. 임기만료로 퇴직할 경우 정상적으로 변호사 개업이 가능하고 퇴직연금도 모두 수령 가능하다. 반면 탄핵을 당할 경우 변호사법에 따라 5년 이내 변호사 등록이 제한되며 퇴직연금도 줄어든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공무원 중 법관의 신분을 가장 엄격히 보장한다.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법관을 파면할 수 없게 해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법관 징계처분도 ‘정직’ ‘감봉’ ‘견책’ 등 3종류에 그친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판사에게 ‘해임’이나 ‘파면’ 등의 징계는 없다.

되면?
안 되면?

사실상 판사에 대한 가장 강한 징계는 ‘정직 1년’이다. 징계를 받아도 변호사 개업에 제한이 없으며 퇴직금에 불이익도 없다. 이 때문에 탄핵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비리 법관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탄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탄핵에 따르는 불이익을 판사들에게 보여줘서 일선 판사들에게도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법관회의 진정성 논란

현직 탄핵소추를 두고 사법부 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체 판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 아니면 특정 집단만을 대표하는지를 두고 내부 구성원 간 충돌이 벌어졌다.

청주지법 법관 대표는 지난 19일 회의서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대표 본인의 의사로 자유롭게 결정이 가능하다”며 ‘법관 탄핵소추’ 결의문에 대한 찬성 주장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대표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표결이 단 한 표 차로 갈려 논란은 더욱 크게 일었다. 법관대표회의서 내놓은 법관 탄핵소추 검토 결의안은 찬성 53표, 반대 43표, 기권 9표로 통과됐다. 한 표만 부족해도 과반(53표)에 미달돼 부결될 뻔했다.

법관대표회의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뭉친 진보적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하며 표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관대표회의에는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다수 있다.

법관대표회의 부의장으로 탄핵 안건을 대표 발의한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비롯,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등이 대표적인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인권법연구회는 2015년 7월 연구회 내부에 ‘인권보장을위한사법제도소모임(이하 인사모)’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지며 진보적 성격이 짙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표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쪽은 박근혜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억압받던 진보 판사들의 반격으로 해석한다. 

이번 사태 역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판사들과 인사모, 그리고 인사모를 뒷받침했던 김 대법원장 간의 구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김 대법원장은 춘천지법원장으로 근무했던 지난해 3월 인사모 소속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배제 명단)’가 논란이 되자 ‘전국 법원장 간담회’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무배제를 가장 먼저 요구한 바 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세월 주류 세력에게서 박해받았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이제 와서 일종의 정치 보복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앙갚음은 국민에게 ‘정치 판사’라는 인식만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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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