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표적’ 법관 6인 대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26 11:03:27
  • 호수 11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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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법복 벗겨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현직 판사를 입법부가 탄핵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국회는 사법 농단 연루 법관 탄핵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끄럽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2018년 사법 농단 연루 법관 탄핵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요시사>는 탄핵안 발의 및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과 탄핵안 포함이 확실시되는 법관 6인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 한다.”

법관 대표들
공감 분위기

지난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결의안 중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 부분이다. 현직 법관들도 사법 농단 사건을 심각한 헌법위반행위로 본다는 게 요지다. 법관 대표들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검토돼야 한다”고 입장을 공식 표명하며 탄핵소추를 촉구했다.

이날 모인 법관 대표들은 총 114명, 그 중 105명의 법관 대표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결과는 찬성 53명, 반대 43명, 기권 9명이었다. 반대와 기권표를 합치면 찬성과 불과 1표 차이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법관대표회의 공보간사인 송승용(44·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민감한 사안이라)오래 논의를 했고 어느 한 의견이 압도적인 방향으로 의결되지는 않았다”며 “반대하는 대표 판사들의 주장과 근거도 설득력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대 입장을 낸 법관 대표들은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법원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법관대표회의는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지난 20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자문서 형태로 전달했는데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말을 아꼈다. 오전 9시8분께 출근길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소추 검토로 의견이 모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회에 의견 전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 사법부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사안이 엄중했다. 

탄핵소추에 대한 대표 판사들의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거나 촉구하는 방안은 권력분립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인 만큼 채택되지는 않았다. 송 부장판사는 “자문기구 성격의 대표회의가 제3의 국가기관인 국회에 탄핵소추를 촉구할 수 있냐는 부분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논의돼야 할 사안이 즐비하다. 먼저 법관대표회의가 법관들을 대표할 수 있냐는 부분이다. 법관대표회의의 현재 총원은 119명인데, 그 중 서울중앙지법 소속이 9명으로 가장 많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대법원장·대법관을 포함한 전체 법관은 2933명, 4.1%인 119명이 나머지 법관을 대표할 수 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법관회의 사법 농단 탄핵 검토 의결
정치권은 공 넘겨받고 저울질 중

절차적 하자 논란도 제기된다. 법관대표회의 규칙상 출석한 구성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지난 19일, 의결정족수는 출석자(114명) 기준으로 볼 때 58명이었으나 표결 참여자(105명)의 과반인 53명이 찬성했다는 이유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탄핵 대상과 범위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 농단과 관련된’이라고 말했을 뿐 대상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적시한 관련자만 현직 법관이 70명이 넘는다.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임 전 차장 등은 현직이 아니라 탄핵 대상이 될 수 없다.

탄핵 대상·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법관 6인을 탄핵소추 대상자로 꼽아 주목된다. 권순일 대법관,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가 그들이다. 


권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 2012년 8월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하면서 일제 강제노역 사건과 통상임금 사건 등에 관해 청와대 인사와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민걸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축소를 위한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를 시행하고 일제 강제징용 사건,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침묵하는
김명수

이규진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선고기일 연기 등을 지시한 의혹, 판사 뒷조사 의혹,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로부터 헌재 재판관 평의 내용을 넘겨받은 의혹 등에 연루됐다.

그 외 정다주·박상언·김민수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법관 탄압이나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로 의심되는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변은 “법원서 자체 조사한 3차 조사 보고서와 지금까지 나온 검찰의 수사 결과만으로도 6명에 대한 탄핵소추 요건을 갖춘 상태”라고 주장한다.

비단 민변만 이들 6인을 지목한 게 아니다. 지난 10월30일 ‘양승태 사법 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국회 정론관서 이들 6인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징계를 청구한 현직 판사 13명에도 이들 6인이 포함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서 ‘탄핵 대상이 6명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정도에 사실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분석하면 더 언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 대법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5인은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간여 혐의가 드러나 현재 재판 업무서 배제된 상태다.

이미 탄핵소추 요건을 갖췄다는 법관대표회의와 민변, 시국회의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탄핵과 관련된 사항은 헌법 65조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이 가능하다고 적시돼있다. 

더 있을 수도…
국회 선택은? 

또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103조) 등 주요한 헌법 조항을 위반해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혐의는 향후 검찰의 기소와 재판 과정서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변은 향후 검찰 조사에 따라 탄핵 대상을 추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 조사를 본 국민들의 여론이 실제 탄핵안 발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과 관련한 논의가 국회서 착수됐다는 점만 봐도 정치권이 여론의 추이를 궁금해한다는 증거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관대표회의의 탄핵소추 의견에 즉각 답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서 “이제는 국회가 답할 차례”라며 “탄핵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회의를 열어 실무 검토를 시작했다.


정의당 역시 법관회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한 각 정당 간 논의 테이블 구성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평화당 역시 논평을 통해 “옳은 결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경우 반대 입장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판사가 정치 행위를 하려면 정치계로 진출해야 한다”며 “인민재판식 마녀사냥으로 이렇게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일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특별재판부보다 위헌 소지가 없다”며 찬성 입장을 밝힌 반면, 김관영 원내대표는 “법관 탄핵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탄핵 대상을 국회가 특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발의되는 일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국회 재적의원(현 299명)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발의가 가능하다. 여당인 민주당만 해도 129석으로 탄핵소추안 발의 요건인 100석을 웃돈다. 발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

소추안 발의 무난, 통과는 미지수
문제의 법관들 어떤 불이익 받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때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72시간 이내에 표결에 부쳐져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찬성 입장을 분명히 한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석수의 합은 148석이다.


본회의 통과를 위해 필요한 의석 150석에 2석 모자라는데 바른미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사위원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관 탄핵은 요건 자체가 어렵지 않다”며 “얘기만 잘 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도 (처리가)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 다음 개혁적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면 과반이 된다”며 “물론 다른 야당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의결 조건은 갖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법사위원장이자 소추위원인 한국당 소속 여상규 의원은 지난 22일 “탄핵소추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단 “기소가 완료되면 탄핵 여부를 논의할 순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는 곧바로 탄핵심판 절차에 돌입한다. 대통령 탄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파면이 최종 결정된다. 현직 법관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 권순일 대법관

탄핵소추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6인 중 이규진 부장판사는 내년 2월로 지난 10년의 법관 임기를 만료한다. 본인이 재임용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퇴직 처리된다. 탄핵 대상서 제외되는 것이다. 임종헌 전 차장도 의혹이 불거지자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3월 임기만료 퇴직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탄핵과 임기만료는 천지차이다. 임기만료로 퇴직할 경우 정상적으로 변호사 개업이 가능하고 퇴직연금도 모두 수령 가능하다. 반면 탄핵을 당할 경우 변호사법에 따라 5년 이내 변호사 등록이 제한되며 퇴직연금도 줄어든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공무원 중 법관의 신분을 가장 엄격히 보장한다.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법관을 파면할 수 없게 해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법관 징계처분도 ‘정직’ ‘감봉’ ‘견책’ 등 3종류에 그친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판사에게 ‘해임’이나 ‘파면’ 등의 징계는 없다.

되면?
안 되면?

사실상 판사에 대한 가장 강한 징계는 ‘정직 1년’이다. 징계를 받아도 변호사 개업에 제한이 없으며 퇴직금에 불이익도 없다. 이 때문에 탄핵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비리 법관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탄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탄핵에 따르는 불이익을 판사들에게 보여줘서 일선 판사들에게도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법관회의 진정성 논란

현직 탄핵소추를 두고 사법부 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체 판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 아니면 특정 집단만을 대표하는지를 두고 내부 구성원 간 충돌이 벌어졌다.

청주지법 법관 대표는 지난 19일 회의서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대표 본인의 의사로 자유롭게 결정이 가능하다”며 ‘법관 탄핵소추’ 결의문에 대한 찬성 주장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대표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표결이 단 한 표 차로 갈려 논란은 더욱 크게 일었다. 법관대표회의서 내놓은 법관 탄핵소추 검토 결의안은 찬성 53표, 반대 43표, 기권 9표로 통과됐다. 한 표만 부족해도 과반(53표)에 미달돼 부결될 뻔했다.

법관대표회의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뭉친 진보적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하며 표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관대표회의에는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다수 있다.

법관대표회의 부의장으로 탄핵 안건을 대표 발의한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비롯,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등이 대표적인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인권법연구회는 2015년 7월 연구회 내부에 ‘인권보장을위한사법제도소모임(이하 인사모)’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지며 진보적 성격이 짙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표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쪽은 박근혜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억압받던 진보 판사들의 반격으로 해석한다. 

이번 사태 역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판사들과 인사모, 그리고 인사모를 뒷받침했던 김 대법원장 간의 구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김 대법원장은 춘천지법원장으로 근무했던 지난해 3월 인사모 소속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배제 명단)’가 논란이 되자 ‘전국 법원장 간담회’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무배제를 가장 먼저 요구한 바 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세월 주류 세력에게서 박해받았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이제 와서 일종의 정치 보복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앙갚음은 국민에게 ‘정치 판사’라는 인식만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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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