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표적’ 법관 6인 대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26 11:03:27
  • 호수 1194호
  • 댓글 0개

강제로 법복 벗겨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현직 판사를 입법부가 탄핵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국회는 사법 농단 연루 법관 탄핵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끄럽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2018년 사법 농단 연루 법관 탄핵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요시사>는 탄핵안 발의 및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과 탄핵안 포함이 확실시되는 법관 6인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 한다.”

법관 대표들
공감 분위기

지난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결의안 중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 부분이다. 현직 법관들도 사법 농단 사건을 심각한 헌법위반행위로 본다는 게 요지다. 법관 대표들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검토돼야 한다”고 입장을 공식 표명하며 탄핵소추를 촉구했다.

이날 모인 법관 대표들은 총 114명, 그 중 105명의 법관 대표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결과는 찬성 53명, 반대 43명, 기권 9명이었다. 반대와 기권표를 합치면 찬성과 불과 1표 차이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법관대표회의 공보간사인 송승용(44·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민감한 사안이라)오래 논의를 했고 어느 한 의견이 압도적인 방향으로 의결되지는 않았다”며 “반대하는 대표 판사들의 주장과 근거도 설득력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대 입장을 낸 법관 대표들은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법원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법관대표회의는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지난 20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자문서 형태로 전달했는데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말을 아꼈다. 오전 9시8분께 출근길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소추 검토로 의견이 모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회에 의견 전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 사법부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사안이 엄중했다. 

탄핵소추에 대한 대표 판사들의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거나 촉구하는 방안은 권력분립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인 만큼 채택되지는 않았다. 송 부장판사는 “자문기구 성격의 대표회의가 제3의 국가기관인 국회에 탄핵소추를 촉구할 수 있냐는 부분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논의돼야 할 사안이 즐비하다. 먼저 법관대표회의가 법관들을 대표할 수 있냐는 부분이다. 법관대표회의의 현재 총원은 119명인데, 그 중 서울중앙지법 소속이 9명으로 가장 많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대법원장·대법관을 포함한 전체 법관은 2933명, 4.1%인 119명이 나머지 법관을 대표할 수 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법관회의 사법 농단 탄핵 검토 의결
정치권은 공 넘겨받고 저울질 중

절차적 하자 논란도 제기된다. 법관대표회의 규칙상 출석한 구성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지난 19일, 의결정족수는 출석자(114명) 기준으로 볼 때 58명이었으나 표결 참여자(105명)의 과반인 53명이 찬성했다는 이유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탄핵 대상과 범위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 농단과 관련된’이라고 말했을 뿐 대상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적시한 관련자만 현직 법관이 70명이 넘는다.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임 전 차장 등은 현직이 아니라 탄핵 대상이 될 수 없다.

탄핵 대상·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법관 6인을 탄핵소추 대상자로 꼽아 주목된다. 권순일 대법관,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가 그들이다. 


권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 2012년 8월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하면서 일제 강제노역 사건과 통상임금 사건 등에 관해 청와대 인사와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민걸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축소를 위한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를 시행하고 일제 강제징용 사건,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침묵하는
김명수

이규진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선고기일 연기 등을 지시한 의혹, 판사 뒷조사 의혹,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로부터 헌재 재판관 평의 내용을 넘겨받은 의혹 등에 연루됐다.

그 외 정다주·박상언·김민수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법관 탄압이나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로 의심되는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변은 “법원서 자체 조사한 3차 조사 보고서와 지금까지 나온 검찰의 수사 결과만으로도 6명에 대한 탄핵소추 요건을 갖춘 상태”라고 주장한다.

비단 민변만 이들 6인을 지목한 게 아니다. 지난 10월30일 ‘양승태 사법 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국회 정론관서 이들 6인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징계를 청구한 현직 판사 13명에도 이들 6인이 포함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서 ‘탄핵 대상이 6명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정도에 사실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분석하면 더 언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 대법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5인은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간여 혐의가 드러나 현재 재판 업무서 배제된 상태다.

이미 탄핵소추 요건을 갖췄다는 법관대표회의와 민변, 시국회의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탄핵과 관련된 사항은 헌법 65조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이 가능하다고 적시돼있다. 

더 있을 수도…
국회 선택은? 

또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103조) 등 주요한 헌법 조항을 위반해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혐의는 향후 검찰의 기소와 재판 과정서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변은 향후 검찰 조사에 따라 탄핵 대상을 추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 조사를 본 국민들의 여론이 실제 탄핵안 발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과 관련한 논의가 국회서 착수됐다는 점만 봐도 정치권이 여론의 추이를 궁금해한다는 증거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관대표회의의 탄핵소추 의견에 즉각 답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서 “이제는 국회가 답할 차례”라며 “탄핵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회의를 열어 실무 검토를 시작했다.


정의당 역시 법관회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한 각 정당 간 논의 테이블 구성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평화당 역시 논평을 통해 “옳은 결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경우 반대 입장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판사가 정치 행위를 하려면 정치계로 진출해야 한다”며 “인민재판식 마녀사냥으로 이렇게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일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특별재판부보다 위헌 소지가 없다”며 찬성 입장을 밝힌 반면, 김관영 원내대표는 “법관 탄핵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탄핵 대상을 국회가 특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발의되는 일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국회 재적의원(현 299명)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발의가 가능하다. 여당인 민주당만 해도 129석으로 탄핵소추안 발의 요건인 100석을 웃돈다. 발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

소추안 발의 무난, 통과는 미지수
문제의 법관들 어떤 불이익 받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때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72시간 이내에 표결에 부쳐져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찬성 입장을 분명히 한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석수의 합은 148석이다.


본회의 통과를 위해 필요한 의석 150석에 2석 모자라는데 바른미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사위원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관 탄핵은 요건 자체가 어렵지 않다”며 “얘기만 잘 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도 (처리가)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 다음 개혁적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면 과반이 된다”며 “물론 다른 야당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의결 조건은 갖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법사위원장이자 소추위원인 한국당 소속 여상규 의원은 지난 22일 “탄핵소추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단 “기소가 완료되면 탄핵 여부를 논의할 순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는 곧바로 탄핵심판 절차에 돌입한다. 대통령 탄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파면이 최종 결정된다. 현직 법관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 권순일 대법관

탄핵소추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6인 중 이규진 부장판사는 내년 2월로 지난 10년의 법관 임기를 만료한다. 본인이 재임용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퇴직 처리된다. 탄핵 대상서 제외되는 것이다. 임종헌 전 차장도 의혹이 불거지자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3월 임기만료 퇴직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탄핵과 임기만료는 천지차이다. 임기만료로 퇴직할 경우 정상적으로 변호사 개업이 가능하고 퇴직연금도 모두 수령 가능하다. 반면 탄핵을 당할 경우 변호사법에 따라 5년 이내 변호사 등록이 제한되며 퇴직연금도 줄어든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공무원 중 법관의 신분을 가장 엄격히 보장한다.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법관을 파면할 수 없게 해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법관 징계처분도 ‘정직’ ‘감봉’ ‘견책’ 등 3종류에 그친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판사에게 ‘해임’이나 ‘파면’ 등의 징계는 없다.

되면?
안 되면?

사실상 판사에 대한 가장 강한 징계는 ‘정직 1년’이다. 징계를 받아도 변호사 개업에 제한이 없으며 퇴직금에 불이익도 없다. 이 때문에 탄핵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비리 법관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탄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탄핵에 따르는 불이익을 판사들에게 보여줘서 일선 판사들에게도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법관회의 진정성 논란

현직 탄핵소추를 두고 사법부 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체 판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 아니면 특정 집단만을 대표하는지를 두고 내부 구성원 간 충돌이 벌어졌다.

청주지법 법관 대표는 지난 19일 회의서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대표 본인의 의사로 자유롭게 결정이 가능하다”며 ‘법관 탄핵소추’ 결의문에 대한 찬성 주장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대표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표결이 단 한 표 차로 갈려 논란은 더욱 크게 일었다. 법관대표회의서 내놓은 법관 탄핵소추 검토 결의안은 찬성 53표, 반대 43표, 기권 9표로 통과됐다. 한 표만 부족해도 과반(53표)에 미달돼 부결될 뻔했다.

법관대표회의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뭉친 진보적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하며 표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관대표회의에는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다수 있다.

법관대표회의 부의장으로 탄핵 안건을 대표 발의한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비롯,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등이 대표적인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인권법연구회는 2015년 7월 연구회 내부에 ‘인권보장을위한사법제도소모임(이하 인사모)’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지며 진보적 성격이 짙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표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쪽은 박근혜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억압받던 진보 판사들의 반격으로 해석한다. 

이번 사태 역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판사들과 인사모, 그리고 인사모를 뒷받침했던 김 대법원장 간의 구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김 대법원장은 춘천지법원장으로 근무했던 지난해 3월 인사모 소속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배제 명단)’가 논란이 되자 ‘전국 법원장 간담회’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무배제를 가장 먼저 요구한 바 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세월 주류 세력에게서 박해받았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이제 와서 일종의 정치 보복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앙갚음은 국민에게 ‘정치 판사’라는 인식만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