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윤모 산자부 장관 장인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19 10:27:52
  • 호수 1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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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박희도 사위를 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의 장인이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임을 <일요시사>가 단독 확인했다. 박 전 총장은 12·12쿠데타 때 병력을 이끌고 서울을 점령하는 등 전두환씨(전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또 6월 민주항쟁 때 계엄령을 선포하려 한 의혹이 최근 불거져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호남의 전폭적 지지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신군부 핵심 인사의 친·인척을 산자부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일까, 아니면 호남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이 사실을 숨겼던 것일까.
 

▲ &lt;사진=청와대&gt;

성윤모 산자부장관과 부인 박씨는 지난 1993년 결혼했다(당시 성 장관의 나이 31세, 박씨의 나이 28세). 박씨의 아버지는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박 전 총장은 성 장관의 장인으로 서로 친·인척 관계다. 산자부 관계자는 “성 장관이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지인 소개로 박씨를 만났다”며 “장인이 그분(박 전 총장)이라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정권
최고의 실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성윤모 당시 특허청장을 신임 산자부장관으로 지명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성 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무조정실, 중소기업청, 특허청 등에서도 정책 총괄업무를 맡아 경제 전반의 다양한 현안을 경험하면서 탁월한 문제해결 능력과 조정능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혁신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산자부장관의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성 장관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지난 9월21일부터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자녀의 이중국적 의혹이 불거졌지만, 성 장관은 큰 지적사항 없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장인의 과거 행적이다. 박 전 총장은 전두환씨의 비호를 받고 성장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2기 졸업생인 박 전 총장은 생도 시절부터 박준병, 박세직과 함께 일명 ‘쓰리박’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1960년대 중반에는 하나회에 가입했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 사조직이다.


전씨는 박 전 총장을 장군으로 진급시켰다. 1976년 제1공수특전여단장이던 전씨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령을 받게 되자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병주 소장(육사 9기)에게 찾아가 하나회 후배인 박 전 총장을 자신의 후임 지휘관으로 앉혀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총장에 대한 전씨의 두터운 신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60년대 중반 하나회 가입 ‘전두환 오른팔’
12·12쿠데타 당시 병력 이끌고 서울 점령

박 전 총장은 12·12쿠데타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제1공수특전여단장직을 물려받은 그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인솔 하에 유학성 중장(국방부 군수차관보, 육사 8기), 차규헌 중장(육군 수도군단장, 육사8기), 황영시 중장(육군 제1군단장, 육사 10기), 백운택 준장(육군 제71방위사단장, 육사 11기) 등과 함께 무장을 하고 청와대를 찾아가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조사하는 재가를 요구했다.
 

▲ 전두환씨 &lt;사진=사진공동취재단&gt;

최규하 대통령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박 전 총장은 자신이 이끌던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돌아가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을 장악했다. 반란군의 무력시위를 버티지 못한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를 하게 되면서 12·12쿠데타는 반란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박 전 총장은 공을 인정받아 승진가도를 달린다. 제1공수특전여단장, 육군 제26보병사단장, 특전사령관,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다. 1985년 12월에는 육군 최고의 자리인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다.

12·12 지휘
중추적 역할


최근 박 전 총장이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려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MBC <PD수첩>은 지난 8월14일자 방송을 통해 ‘작전명령 제87-4호’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당시 군이 시민들을 진압하려 했던 내용이 담겼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발포 명령 계획까지 세웠다. ‘가스탄 발사 등 폭도의 전투 의지를 약화시킨 후 진압봉 사용’ ‘발포 명령은 선 육본 건의 후, 승인 하 조치’ ‘초기에 강력하고 완벽한 작전 실시’ 등 살벌한 표현이 문건에 적시돼있다.

문건은 전두환씨의 지시로 1987년 6월 서울 용산 육군본부서 작성됐으며, 박 전 총장은 계엄군으로 편성되는 부대지휘관들을 불러 이를 직접 하달했다. 민병돈 전 특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이 이 명령서를 나한테 직접 줬다”고 <PD수첩>과 인터뷰서 밝혔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박희도였다.

지난 8월 시민단체들과 육해공군 출신 예비역들은 전두환씨와 박 전 총장을 내란예비음모로 고발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은 “작전명령 행위 자체만으로도 명백한 불법행위고, 이 작전명령이 실행됐다면 수많은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친위 쿠데타(내란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일부 정치군인들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예비역들과 시민단체들이 책임자들을 고발하고자 한다”고 고발 사유를 설명했다.

박 전 총장에 대한 과거사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95년 11월 김영삼정부가 12·12쿠데타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진행하자 박 전 총장은 돌연 “LA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며 미국으로 도피했다. 박 전 총장은 1998년이 돼서야 귀국해 자수했다.
 

▲ 성윤모 산업자원통상부장관

1999년 7월 재판부는 그에게 반란지휘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도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12·12쿠데타 가담자들이 모두 사면·복권된 후였기 때문이다.

대불총 결성
박근혜 변호

2006년 10월 박 전 총장은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을 결성했다. 반미·친북세력과 북한의 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게 대불총을 결성한 이유다. 문제는 대불총이 제주4·3사건과 12·12쿠데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대불총은 2010년 6월 자유북한군인연합과 함께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출판기념회를 열어 물의를 빚었다. 2016년 행정자치부 국정감사 때에는 이명박·박근혜정권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총 2억3200만원의 예산을 대불총에 지원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집회에 참석해 연설을 한 적도 있다. 지난해 1월 열린 태극기집회서 연단에 오른 박 전 총장은 “죄도 없는 대통령을 무너트리고 촛불 세력이 연합해서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다”며 “빨갱이들에게 넘어가서야 되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박 전 총장과 대불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박 전 총장은 지난 9월13일자 <조선일보>에 ‘변희재 석방하고, 즉각 태블릿PC 정밀 감정하라!’는 광고를 ‘전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게재했다.

과연 청와대는 성 장관의 장인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인사검증에 있어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일까.


야당 측은 해당 사실을 청와대가 몰랐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진단한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청와대서 가장 먼저하는 게 후보자와 그 후보자의 친·인척에 대한 서류를 떼보는 것”이라며 “청와대서 몰랐다면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고, 알았다면 호남을 기만한 일이다. 호남의 지지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호남을 탄압했던 사람의 친·인척을 데려와 중용하는 모습은 자가당착”이라고 평가했다.

6월 항쟁 계엄 만지작
5·18 사기극 주장도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때 호남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대선이 있기 전 호남을 기반으로 창당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더 많은 호남표를 받을 것이라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60% 이상(광주 61.14%, 전북 64.84%, 전남 59.87%)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호남서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안 후보가 20% 중반대였다는 점만 봐도 문 대통령이 호남서 얼마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지 확인 가능하다.

호남의 지지에 화답하듯 문 대통령은 여러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넣는 헌법 개정안을 지난 3월 공개한 바 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전문에 삽입했다. 그러나 12·12쿠데타를 일으키고 6월 민주항쟁 때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으며, 5·18민주화운동을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박 전 총장의 친·인척을 산자부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됐다.
 

▲ 악수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성운모 산자부장관 &lt;사진=청와대&gt;

자가당착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겨뤘던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는 박 전 총장을 영입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논평을 낸 바 있다.


2012년 12월7일 김현 문재인캠프 대변인은 현안 관련 서면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후보는 12·12쿠테타 주역으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책을 출판해 5·18민주화운동을 매도한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을 영입했다”며 “지금 호남에 필요한 것은 ‘선거용 찬가’가 아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선거용 호남찬가’에 앞서 호남 홀대정책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남 민심
등 돌리나 

대통령이 가지는 막강한 권한 중 하나가 장관에 대한 임명권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비전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성 장관도 마찬가지다. 장인이 12·12쿠데타를 지휘한 정치군인이라는 부분과 장관으로서 산자부를 잘 이끌어가는 부분은 별개다. 성 장관을 지명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연좌제(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논란을 자초하는 인선을 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희도 사는 집은?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사는 집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현대슈퍼빌이다. 공급면적은 90평, 전용면적은 65평 규모다.

박 전 총장은 2003년 12월에 이 집을 매입했다. 시세는 약 21억원으로 추정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다. 해당 건물은 군인공제회의 자금력으로 지어졌으며 박 전 총장을 비롯해 퇴역 장성들이 많이 살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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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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