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닥다닥’ 현대판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고시원에 고시생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가 발전할수록 성장만큼 분배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사회의 소외된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호응을 얻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평소에는 사각지대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고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다.
 

20144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서 침몰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과 일반인 등 300명이 넘는 승객이 수장됐다. 전 국민은 TV를 통해 중계된 세월호 침몰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과 동시에 사회 적폐의 민낯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사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몸살을 앓았다. 전직 대통령과 비선 실세가 진행한 일은 도려내야 할 적폐로 지목됐다. 사회 모든 분야서 청산해야 할 문제가 쏟아졌다.

소외되는 약자
그들만의 세상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과정서 국민들은 생각지도 못한 정치사회경제 분야는 물론 생활 적폐와 맞닥뜨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문제들로 사회는 진통을 겪었다.

문재인정부는 경제나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이전 정부와 노선을 달리했다. 문 대통령은 첫 번째 대선 출마 당시부터 포용적 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배제적 성장과 달리 성장의 결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지난 9월에는 포용국가전략회의에 참석해 많은 나라들이 성장에 의한 혜택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을 주장하고 있다우리 정부서도 포용이 보편적 가치가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포용국가는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내세운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확장한 개념이다.

복지를 통해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포용적 성장은 문재인정부 3대 경제기조인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의 바탕 아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서 사회의 소외된 사각지대가 불의의 사고를 통해 불거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고시원, 쪽방촌, 여관 등 공간적 사각지대에 사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 안타까움은 배가 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의 한 고시원서 화재로 1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처음 소식이 알려졌을 때 누리꾼들은 고시원에 살고 있던 투숙객들의 안전을 빌었다. 안전에 취약한 고시원의 구조와 투숙객들의 상황이 맞물려 사회적 약자가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시텔 ‧쪽방촌 ‧여관 ‘신 빈민가 ’
저렴한 거주비에 목숨 내놓고 살아

당초 고시원은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고시생을 위한 공간이었다. 고시원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던 고시생의 수요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때문에 주로 학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고시생들에게 고시원은 주거공간인 동시에 학습공간으로의 역할을 했다.


욕실과 부엌이 딸려 있는 원룸과는 달리, 고시원에는 침대와 책상만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방과 화장실은 따로 떨어져 공용으로 이용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창문이 없고 얇은 벽 때문에 옆방의 대화가 들리는 등의 문제는 고시원 투숙객들의 주요 불만사항이었다. 그럼에도 투숙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원룸 등과 비교해 저렴한 가격은 하루 살기 버거운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공시생이 늘어나자 일부 고시원은 고시텔(고시원+호텔)이라며 내부 환경을 개선했다. 돈이 더 들더라도 욕실과 화장실이 방에 딸려 있는, 과거보다 나은 주거공간을 선호하는 공시생들을 위한 변화였다.

그 사이 고시원을 찾는 이용자들의 연령대는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고시생들의 전유물이었던 고시원은 값이 싸면서도 당장 내 몸 하나 뉘일 공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곳으로 그 의미가 변화했다. 각종 고시원 관련 사건사고의 피해자가 중장년층이 많다는 점은 고시원이 최근 들어 빈민층의 주거지로 변모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방증이다.
 

▲ 검거되는 종로여관 방화 용의자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같은 사실은 종로 고시원 화재 사건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9일 오전 5시경,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고시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관 173명과 장비 52대가 투입됐고 오전 7시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됐다.

이 고시원에는 주변 사업장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당시 사상자들 또한 대부분 50대 이상의 남성들이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사망자 중 최연소는 35, 최고령은 79세였다. 사상자는 대부분 생계형 노동자로, 말 그대로 일을 하고 돌아와 고시원에선 잠만 자고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계속되는
불의의 사고

해당 건물은 지상 3, 지하 1층 규모로, 1층은 일반음식점, 2~3층은 고시원으로 이뤄졌다. 소방당국은 화재가 3층 출입구 쪽에서 발생해 대피로를 막았다고 보고 있다. 최초 발화지점은 301호로 추정 중이다.

301호 거주자는 전기난로 전원을 켜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전열기서 불이 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옷가지와 이불로 불을 끄려 했지만 주변으로 옮겨 붙는 바람에 대피했다는 것.

문제는 이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이다. 노후 건물인데다 과거 안전시설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던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다중이용업소 특별법에 따르면 2009년부터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나 문제의 고시원은 그 이전인 2007년에 지어졌다. 이번 사건으로 고시원의 실상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고시원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의 안전대책이 뒤늦게 생기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오갈 데 없는 중장년층과 외국인 노동자가 고시원으로 몰리면서 고시생 없는 고시원’ ‘() 판자촌’ ‘현대판 판자촌이라는 말이 새롭게 쏟아졌다.
 

지난 6월 도시연구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151553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시원의 평균 월세는 328000, 가구 평균 소득은 약 180만원이었다. 국내 전체가구 평균소득인 371만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연달아 겪은 도심 청년층이 빈곤주거지로 밀려나고 그대로 나이가 들어 현재까지도 고시원에 사는 주요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외환위기 당시의 가난한 청년이 지금의 가난한 중장년이 됐다고시원의 폭증 시기는 지났지만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낙후된 시설
피해는 커져

일각에선 이미 수차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사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방청의 최근 5년간 다중이용업소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다중이용업소 화재 3035건 중 252(8.3%)이 고시원서 일어났다. 또 올해 화재 사망자 306명 중 96명이 고시원, 쪽방 등 비주택에서 사망했다는 통계자료도 나왔다.

20041월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2가 상가건물 3층의 고시원서 촛불로 인해 불이 났다. 이 사고로 투숙객 4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는 8명에 달했다. 200512월에는 마포구 노고산동 신촌 로터리 인근 고시원서 불이나 1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20067월 송파구 잠실동 고시원서 일어난 화재사건은 21명의 사상자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00810월에는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서 희대의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방화와 흉기 난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피해가 막심했다. 고시원에 살고 있던 A씨는 미리 준비한 지포라이터용 휘발유 2통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잠들어 있던 투숙객들은 불이야라는 외침과 연기에 놀라 방을 빠져나왔다.

A씨는 연기를 피해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심지어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부 투숙객들을 찾아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6명이 사망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살기가 싫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A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언론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범행을 저지른 A씨의 묻지마 살인행각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과정서 사실상 무허가 숙박시설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고시원의 실상이 조명됐다. 사건 당시에도 언론은 고시원이 원래 용도보다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화재 등 사고에 취약한 내부 구조가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매번 대책 세운다지만…
불 났다하면 대형사고

앞서 20087월에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고시원서 방화로 인한 화재 사고가 발생했지만 스프링클러 등 장비가 설치돼있지 않고 고시원 방 칸막이가 화재에 취약했던 탓에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8년에 연달아 일어난 화재 사건으로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과거에 지어진 건물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임대료 동결 등의 조건이 붙다보니 건물주의 동의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이번에 불이 난 종로의 고시원의 경우 2015년 운영자가 서울시에 비용 지원을 신청했지만 건물주가 최종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종로 고시원 화재 생존자들은 건물주와 고시원장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고시원에 앞서 빈자들의 주거지 역할을 했던 쪽방촌이나 여관도 화재 등 사건사고에 취약하기는 매한가지다. 쪽방촌은 대부분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가 태반이라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여관도 고시원과 마찬가지로 화재 대책이 갖춰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 ▲▲ 화마에 전소된 종로의 한 고시원

올해 1월 서울 돈의동의 한 쪽방 건물서 불이 나 1명이 숨졌다. 불이 난 곳은 좁은 골목에 건물이 밀집해 있어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당시 화재 현장을 방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쪽방촌에 대한 전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남 구룡마을, 영등포 쪽방촌 등이 대표적인 화재 취약지역으로 손꼽힌다.

지난 1월에는 여관 방화사건도 있었다. 이날 사고는 여관 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주유소서 산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B씨에 의해 일어났다. B씨의 방화로 7명이 숨졌다.

특히 전남 장흥서 서울 나들이를 온 30대 엄마와 10대 딸 2명 등 3명이 한꺼번에 변을 당해 그 충격을 더했다. 이들은 국내 여행을 하면서 비교적 저렴한 여관에 묵은 것으로 확인됐다. 2년 이상 장기투숙한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다.

시민단체들은 종로 고시원 화재를 단순 사고로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사회의 취약한 구조 문제로 인해 발생한 참사라는 비판이다. 이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도시빈민층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0년 전에도…
취약한 구조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와 주거권네트워크, 빈곤사회연대, 민주노총 등은 지난 13일 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여관이나 쪽방 외에도 고시원은 치솟는 집값, 월세의 만연, 부족한 공공임대주택과 소극적인 공공부조 등의 환경에서 저소득·빈곤 1인 가구들이 목돈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도시빈민들의 주거환경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는 한편 현재 도시빈민들의 주요 주거지인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화재경보기 등 화재 예방 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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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