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반기문 광폭행보의 이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13 09:46:13
  • 호수 1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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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의지? 상황이 잠룡을 만든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베이징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서 귀국한 뒤 ‘강연 정치’에 힘써왔던 반 전 총장이 해외 공식 행사로까지 운신의 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자신의 최대 강점이자 정체성인 외교분야 능력을 활용하는 모습에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의 대권도전 여부를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반 전 총장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서 열린 포럼에 참석했다. 재단법인 여시재(원장 이광재)와 중국 칭화대 지속가능발전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신문명 도시와 지속가능발전’ 포럼이었다. 반 전 총장은 기조연설서 “대도시는 지속 불가능하다”며 “일과 교육, 의료가 집에서 이뤄지는 신문명 도시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서 포럼
도시모델 제안

새로운 도시모델에 대한 제안이었다. 그는 대도시가 기후 온난화의 주범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0%를 차지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대도시의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때문에 실리콘밸리 등지서 창조적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반 전 총장은 “산업혁명의 대량 생산·소비 시대에는 대도시가 주인공이었지만, 맞춤 생산·소비시대에는 중소도시와 농촌이 주인공으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대도시 못지않은 지속가능한 중소 창조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이 신문명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반 전 총장은 아시아의 어느 도시서 신문명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나는 그 도시가 중국의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변화는 앞으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이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따라 인류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 문정인 전 청와대 특보와 대화 나누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반 전 총장의 발언만 주목받은 게 아니다. 이날 포럼에는 반 전 총장을 따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포럼 주최자인 이헌재 여시재 이사장을 비롯해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등 600명이 참석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참석도 눈에 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국회 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 조은희 서초구청장, 황명선 논산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류태호 태백시장, 최승준 정선군수 등 기초단체장 20여명도 함께했다.

앞서 반 전 총장은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뒤 귀국해 대권에 도전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귀국한 그는 대권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구설에 오르며 어려운 길을 걸었다.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역서 7500원짜리 표를 구매하며 1만원권 2장을 무인발매기에 동시에 투입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베이징 포럼 행차에 정치권 30명 동행
“정치는 생물” 움직임 주목하는 여의도

다음날에는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며 미리 작성해 온 쪽지를 힐끗 본 뒤 방명록을 쓰는 모습도 보였다. 14일에는 이른바 '턱받이 사건'으로 알려진, 충북 음성군 꽃동네서 노인에게 죽을 먹이는 봉사활동이 도마에 올랐다. 같은 날 음성군 행치마을에 조성된 선친 묘소를 참배하면서 퇴주잔을 마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여러 구설에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문재인 당시 예비후보와 비등했던 지지율은 구설에 오른 후 반 토막 수준으로 하락했다. 


반 전 총장 측은 대선 완주를 자신했었다. 반 전 총장 측 정무담당을 맡았던 새누리당 이상일 전 의원은 지난해 1월 인터뷰서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중도 포기할 가능성은 0%”라며 “지켜보면 좋겠다. 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했고 지지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2월 국회 정론관에 모습을 드러낸 반 전 총장은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며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출마 포기를 선언해버렸다. 20여일간의 짧았던 대권 행보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반 전 총장은 마지막까지 대권에 대한 꿈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기문 캠프 측은 불출마 선언 직전까지 중도포기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불출마 선언 하루 전만해도 반 전 총장은 대선 전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통합을 시도했다. 대권에 대한 반 전 총장의 의지가 엿보였던 대목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일시적인 선언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즉 상황과 여론이 만들어지면 반 전 총장이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각계 총출동
정치권도 다수

다수의 캠프서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전직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활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주목할 가치는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큰 인물 아닌가”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4월 하버드대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제니퍼 염 박 하버드대 과학사학과 전임강사가 <월간조선>을 통해 밝힌 지난해 6월 반 전 총장의 근황에 따르면 그는 ‘안젤로풀로스 펠로우’로 선임됐는데, 이는 케네디 스쿨에 사무실을 마련해 공직 분야서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들에게만 주어지는 자리다. 전임 펠로우들은 모두 전직 대통령들이었다.

그곳에서 반 전 총장은 약 2개월간 교수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6월 귀국했다. 귀국 후 반 전 총장은 곧바로 그해 5월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70분 동안 회동을 가졌다. 한미정상회담과 북핵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이 주제였다.

회동은 문 대통령이 반 전 총장을 청와대로 초대해 성사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내 정치는 소통으로 풀면 되지만 외교가 걱정이다. 반 전 총장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 전 총장은 문재인정부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조력을 구한다면 기꺼이 함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로 있다. 당시 반 전 총장은 연세대서 기자들과 만나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반기문센터를 설립, 교육을 통해 지난 10년간 열정적으로 추진해왔던 인류의 행복과 건강, 평화 등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지난 7년간 유엔사무총장을 하며 지켜본 어젠다를 국내에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마침 연세대 측과 대학의 사회공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돼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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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측이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직을 맡아달라고 반 전 총장에게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글로벌사회공헌원은 교내 의료관이나 본관 등에서 기관별로 진행하던 선교 및 봉사활동을 통합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개원했다.


강연 정치로
존재감 과시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었다. 지난해 9월 한국외국어대, 10월 한동대·숭실대·명지대·한국교통대, 11월 한양대·서울대, 12월 고려대, 올해 3월 대구보건대, 4월·9월 연세대, 10월 국민대 등 확인할 수 있는 강연만 10여차례 이상이다.

그 중 한국교통대는 교내에 ‘반기문 청년 비전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교통대는 센터를 통해 학생 장학금 수여를 위한 기금 모금과 제2의 반기문을 육성하기 위한 글로컬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기업과의 교류도 눈에 띈다. 지난 2월 연세대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포럼’에 참석한 반 전 총장은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과 대담을 나눴다. 지난 4월에는 한국토요타자동차가 후원하는 행사서 250여명이 넘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중국 베이징서 열린 포럼서도 반 전 총장은 마윈 회장, 리우송 부사장 등 중국 기업인들과 교류를 가졌다.

여의도 정치권은 대권에 대해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잠룡의 도전 의지와 관계없이 상황이 잠룡을 만든다는 데서 기인한 말이다. 즉 대선 레이스가 막을 열었을 때 권력구조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국민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어떤 부분을 원하는지 등이 대권을 차지하는 데 있어 잠룡의 출마 의사보다 더욱 앞선다는 뜻이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차기 대권과 관련해 흥미로운 분석을 들을 수 있다. 바로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히 풀 수 있는 사람이 차기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생활 2개월 만에 한국 복귀 왜?
차기 대권? 북한 이슈에 강한 사람

한 국회 관계자는 “지금 문재인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펴고 있지만, 남은 임기 동안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와 통일을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국민들은 문정부가 다져놓은 북한과의 관계를 누가 결정적으로 풀어줄지에 관심을 보낼 것이다. 이런 예상이 여의도서 가장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반 전 총장이 대권에 여전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반 전 총장 입장서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현재 자천타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인사 중 반 전 총장만큼 외교적으로 성과를 이룬 사람은 없다.

반 전 총장 역시 귀국 후 계속 북한에 대한 언급을 이어오며 북한 이슈에 있어서만큼은 자신감을 보여왔다. 그는 국내외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북한을 언급하며 평화의 시대로 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하버드대가 개최한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한 협상’ 토론회에 참석해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할 수 있다는 논리와 관련해서는 좀 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월6일(현지시각) 뉴델리서의 인터뷰서 그는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라며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통해 체제나 경제 안정을 도모하겠다면 자꾸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 잡으면
대권 잡는다

6월27일 ‘2018 제주포럼’에서는 “한반도 안보 및 한미동맹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급작스러운 결정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앞서 2월21일(현지시간) 유엔안보리 회의에선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한 간 대화는 계속돼야만 하며 그래야만 화해와 평화, 북한의 비핵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 전 총장이 강조하는 한반도 및 세계의 평화가 북한 비핵화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반 전 총장의 북한 관련 발언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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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