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가 건드린 ‘먹튀 기업들’ 손익계산서

먹고 뱉고, 먹고 뱉고…어느 새 재계 19위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사모펀드 운용사 MBK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코웨이를 웅진그룹에 매각하면서 다시 한 번 눈길이 쏠렸다. 챙긴 수익만 1조원에 넘었다. 200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로 성장한 MBK는 이제 M&A 시장의 단골손님이다. MBK가 건드린 기업을 확인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2005년 설립됐다. 김병주 회장이 설립해 아시아 최대의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MBK는 세계를 무대로 M&A 시장에 발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기준 MBK파트너스는 국내 사모펀드 가운데 가장 많이 액수를 출자했다. 출자 약정액 기준 9조8978억원 수준.

200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

MBK의 투자 자산 규모는 17조원까지 증가하면서 대림그룹에 이어 재계 순위 19위까지 치솟았다. MBK는 업종을 불문하고 금융사부터 유통사까지 가리지 않고 투자했다. 지난 2005년 홈플러스를 7조6000억원에 사들이며 국내 M&A 역사상 최대 인수대금을 치르면서 눈길을 사로 잡기도 했다.

MBK는 전형적인 바이아웃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 했다. 바이아웃이란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한 뒤 재투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한 후 매각하는 투자전략이다. 일각에선 가치 극대화 과정서 고용승계 등을 두고 갈등이 빈번하게 나와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다만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이 인수 후 재투자를 통해 경쟁력 회복 기회를 제공받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MBK는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시장서의 존재감을 넓혀갔다. MBK의 첫 성과는 한미캐피탈이다. MBK의 자회사 오세이지는 2006년 626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한미캐피탈을 한국씨티은행으로부터 매입했다. 

놀랄만한 일은 이듬해 벌어졌다. MBK가 우리은행에 2711억원으로 한미캐피탈을 넘긴 것이다. 1년 사이에 1840억원의 차익이 손에 들어왔다. MBK가 한미캐피탈을 인수했을 당시 재매각에 대한 전망이 나오긴 했지만 1년 남짓 숨을 고르고 재매각에 성공하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미캐피탈은 우리은행 계열사로 편입된 이후 사명을 우리파이낸셜로 변경했다. 이후 KB금융그룹에 편입돼 현재는 KB캐피탈 간판을 달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항상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에는 두산테크팩(현 테크팩솔루션)을 두산그룹으로부터 매입하면서 광폭행보를 보였다. MBK는 유리병, 캔 등 포장용기를 만드는 테크팩(현 테크팩솔루션) 사업부문의 지분 100%를 3920억원에 매입했다.

MBK의 사업수완은 합격점이었다. 매입 이후로 매각 절차에 착수한 2013년 12월까지 점유율 1위를 이어갔다.

코웨이 웅진에 재매각…수익만 1조 넘어
업종·국적 불문 비판에도 거침없는 행보

음료용기업계에선 기술력과 고객사 확보가 중요 경영요소로 작용했다. 당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는 한일제관, 롯데알미늄, 삼광유리, 효성 등 굵직한 기업들이었다. 테크팩은 쟁쟁한 경쟁자 가운데에서도 1위 수성을 지켜냈다.


테크팩의 매각은 험난했다. 당시 MBK가 생각하는 테크팩의 매각가격은 5000억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과의 온도차가 존재했다. MBK는 테크팩의 에비타(EBITDA : 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영업이익)의 9.5배 수준의 매각 대금으로 매입했는데 되팔 때는 10배 수준을 요구했다. 인수를 희망하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롯데알미늄의 인수 의지가 중요했는데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인수를 포기하면서 매각은 난항에 빠졌다.

시장의 분위기를 감지한 MBK는 발빠르게 자금을 회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MBK는 동원그룹에 2500억원에 지분을 넘길 수 있었다. 1300억원의 손실을 보고 매각한 터라 성공적인 인수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두 번째 투자에선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MBK는 렌터카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0년 MBK는 KT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이 가지고 있는 금호렌터카 지분 100%를 2890억원에 인수했다. 출자금은 MBK와 KT가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후 KT렌탈과 합병되면서 MBK는 KT에 이어 KT렌탈의 2대주주가 됐다.

금호렌터카 역시 테크팩과 마찬가지로 업계 1위의 업종이었다. 금호렌터카는 차량 5만 대, 국내 영업망 160곳, 해외 영업망 9곳을 보유한 국내 최대 렌터카 업체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평가였다.

경영은 KT 중심의 행보였다. 하지만 MBK 역시 최고경영자 선임 및 사업전략에 관여하는 등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기업의 가치가 상승했다. MBK는 2013년 당시 가지고 있던 지분 42%를 KT에게 넘기면서 자금을 회수했다. 매각가는 2200억원이었다.

강할 땐 혼자서
약하면 컨소시엄

지분 인수 당시 MBK가 투입한 자금이 약 13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에 8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챙겼다. 당시 1300억원 가운데 40% 정도를 금융권에서 차입한 점을 감안하면 2배 가량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KT로서도 단독 경영체제로 좀 더 공격적인 영업활동이 가능하게 됐다. 2015년 KT는 롯데그룹에 KT렌탈을 1조200억원에 매각하면서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었다. KT가 투입한 자금 대비 5배가 넘는 차익을 남겼다. KT렌탈은 현재 롯데렌털이란 간판을 걸고 사업을 하고 있다.

방송업계에도 MBK 자금이 흘렀다. 종합유선방송회사 씨앤엠의 경우는 잡음도 있었다. MBK가 씨앤엠에 출자한 시기는 2008년이었다.
 

▲ 김병주 MBK

당시 씨앤엠은 알짜 회사로 평가받고 있었다.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직전 해인 2006년 씨앤엠의 매출은 3247억원이었으나 영업이익은 833억원에 달했다. 당시 하나로텔레콤이 1조7313억원 매출에 12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집계된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좋은 회사라는 평가였다.


MBK는 맥쿼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승부수를 띄웠다. 그 결과 최대주주인 이민주 회장의 지분 61.17%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수후 MBK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MBK는 인수금융을 통해 1조4000억원을 조달했는데 상환에 실패,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통해 지분 20%가량을 확보하면서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까지도 매각이 요원한 상황이다.

MBK는 경영 과정서 먹튀 자본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MKB에 대한 신한은행 등의 여신 회수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4년 “매각차익만을 위해 무리하게 경영에 개입해 회사를 부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준 최근 5년간 당기순이익 1647억원의 81.6%인 1344억원을 배당금으로 받아가 ‘먹튀’ 의혹을 받았다. MBK의 매각 진행 과정도 잡음이 일었다.

구조조정과 노동자 해고, 노조 탄압 등으로 인해 노조의 고공농성과 노숙농성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매각 주도권이 채권단에 넘어가면서 씁쓸하게 퇴장하는 모양새가 됐다.

존재감 뿜뿜
평가는 갈려


금융권에서의 투자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2012년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은 본사인 네덜란드 ING그룹의 경영난 영향으로 매물로 나오면서 인수희망자들이 군침을 삼켰다. 당시 인수를 노리던 후보군은 쟁쟁했다. KB금융지주, 교보생명, 한화그룹, 동양생명 등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한 그룹이 다수였다. MBK가 ING생명을 인수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KB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ING생명의 향방이 결정되는가 싶었지만 KB금융지주의 내부 이견으로 인수체결까지 이르지 못했다. 당시 KB금융지주와 ING생명 사이에 논의됐던 매각가격은 2조2000억원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ING생명은 돌고돌아 MBK의 특수목적회사인 라이프투자유한회사 품에 안겼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인수가가 1조8000억원이었던 점이다. 

MBK는 이후 3년간 경영하다 2016년 시장에 내놨다. 그 사이 가치는 꾸준히 상승했다. MBK가 원하는 매각 희망가는 3조원대였다. 하지만 워낙 매매가가 높은 탓에 인수 희망자가 나오질 않았다. 기대할 수 있는 자금은 중국쪽 자본이었지만 사드 보복의 영향으로 거래가 성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MBK는 상장을 통해 자금 회수에 나섰다. 2017년 IPO를 진행하면서 40.85%에 대한 구주 매출을 통해 MBK는 1조1055억원의 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사실 MBK는 거액의 배당을 통해 자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했다.

ING생명은 2014년부터 1000억원, 이듬해에는 1820억원, 2016년에는 1670억원을 배당했다. 지난 3분기 공시 기준으로 지난해에도 574억원의 배당이 있었다. 총 5074억원이다. 지난해 상장된 점을 감안하면 이중 MBK로 흐른 배당금은 484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투입했던 자금의 대부분을 회수한 셈.
 

2018년에 또다시 매각설이 나오면서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이 인수 주체 후보로 떠올랐다. 지난 9월 MBK는 신한금융에 ING생명(오렌지라이프) 4850만주(지분율 59.15%)를 주당 4만7400원에 넘기기로 했다. 매각 대금 총액은 2조2989억원 수준이다.

이미 구주매출과 배당을 통해 출자금 대부분을 회수한 상태서 나머지 지분을 매각하고 받은 금액은 고스란히 MBK의 수익이 됐다. 5년 만에 2조원 넘는 차익을 챙긴 것이다. 업계에선 구주 매출을 통해 ING생명의 몸집을 줄인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놀라운 것은 ING생명의 매각 이후 숨돌릴 틈도 없이 깜짝 딜 소식이 전해졌다. 코웨이 매각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M&A 단골손님서 큰손으로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성장

MBK는 2013년 코웨이를 웅진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1조1900억원 수준이었다. 당시 MBK는 코웨이홀딩스에 3700억원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인수를 진행했다. 인수금융을 통해 4700억원의 자금이 마련됐다. 또 상환전환 우선주를 3500억원 규모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MBK는 인수 이후 꾸준히 자금을 회수했다. 배당을 통해서였다.

인수 시점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배당금으로 웅진코웨이홀딩스로 흘러간 배당금 총액은 3500억원에 달했다.

또  자본재조정 작업을 거쳐 상환전환 우선주 상환 진행을 하는 동시에 인수금융에 대한 차입금을 청산했다. MBK는 웅진그룹의 웅진씽크빅에 코웨이의 지분을 1조6850억원에 다시 되팔았다. 주당 10만3000원의 가치를 인정 받은 셈인데 인수 당시 5만원으로 평가된 점을 감안하면 인수 단가의 두 배를 웃도는 가치를 평가받은 셈이다.

MBK는 3700억원을 들이고 1조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현재 웅진그룹의 코웨이를 두고 우려의 시각이 있다.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것. 거꾸로 해석하면 MBK가 그만큼 유리하게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MBK의 투자 영역은 국내 뿐만 아니다. MBK는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을 인수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은 연간 1300만명의 입장객을 받는다. 일본 지진과 쓰나미 발생 이후 도쿄 디즈니랜드보다 오사카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에 대한 입장객이 증가하면서 경쟁력이 제고됐다. 
 

MBK는 골드만삭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2009년 1조3500억원(1350억엔)에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 지분 100%를 매입했다. MBK가 투입한 자금 비율은 전체 출자금의 23.57% 수준이었다. 인수후 MBK는 자본재조정을 통해 출자금 대부분을 회수했다. 여기에 2015년 미국 기업 컴캐스트 자회사 NBC유니버셜에 지분 51%를 매각하면서 컨소시엄은 1조8300억원의 자금을 회수했다.

여기에 나머지 지분마저 지난해 매각에 성공하면서 1조원에 달하는 매각 차익을 챙겼다.

아직 배고프다?
영향력 확대 중

현재 MBK의 자금이 투입된 있는 기업들은 국내외에 걸쳐 다수다. 따라서 깜짝 거래에 MBK의 이름이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네파(한국), HK저축은행(한국), 영화엔지니어링(한국), 고메다(일본), 뉴 차이나 생명(중국) 등이 매각 대상 후보군이다. MBK의 행보에 따라 향후 M&A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M&A 큰손으로 성장한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MBK를 비롯해 과거 사모펀드에 대한 시각이 먹튀 이미지 탓에 반감이 강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한계 기업에 대한 자본 투자로 기업가치가 제고돼 경쟁력을 회복하는 사례가 늘면서 우호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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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