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멋지게 살다간 신성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1.12 09:45:41
  • 호수 1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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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대스타의 파란만장 인생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뉴 스타 넘버원(New Star Number One)’이 하늘의 별이 됐다. 대한민국 영화계 거장 신성일이 별세했다. 최고의 배우로서 국회에 입성해 뇌물로 징역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 고인이 된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일 새벽 향년 81세로 타계한 신성일은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스타였다. 빼어난 외모와 지적이고 반항적이면서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는 1950∼1960년대 기존 배우들과 차별화하며 그를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만들었다. 

시대 풍운아 
영면에 들다

1937년 서울서 출생, 생후 3일 만에 대구로 이주한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다. 무려 3000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당시 고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데뷔 당시 신필름의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으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신성일(申星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신 감독 영화 <로맨스 빠빠>(1960년)로 데뷔한 이후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이었다. 


당시 고인은 170㎝가 넘는 큰 키와 수려한 용모.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청춘영화 대명사가 된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약 36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 영화들이 쏟아졌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인 그해 11월, 서울 워커힐호텔서 엄앵란과 결혼했다. 하객과 팬 4000명의 인파가 몰린 이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 실패 등으로 오랫동안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곁을 지키며 기둥이 돼줬다.

신성일의 전성기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남자 배우로서는 독보적이었다. 100여명 이상의 여배우가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1960년대 신성일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드롱과 비견될 정도였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신성일 회고전’을 맞아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 따르면 1967년 한해에만 신성일이 주연한 영화 51편이 극장에 걸릴 정도였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한국영화 개봉작 1194편 중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잘생긴 외모·반항적 이미지
1950∼1960년대 청춘스타 등극

박찬욱 감독은 이 책에서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했다.

신성일은 무력과 좌절에 빠진 지식인을 연기한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겨울여자>(1977), <장남>(1984), <길소뜸>(1985) 등 1970∼198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태풍>에 특별 출연했고, 2013년에는 <망각 속의 정사>(1993) 이후 20년 만에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 주연을 맡으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만 해도 총 500편이 넘는다.
 

▲ 배우 신성일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화려한 수상 경력도 그의 이력 중 하나다. 그는 ▲제7·9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제7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인기상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 ▲제1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5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조연상 ▲제2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8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15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남우상 ▲제32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이후에도 제41회 대종상영화제 발전공로상,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상 특별공로예술가상, 제17회 부일영화상 영화발전공로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한국 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대구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 계명대학교 연극예술과 특임교수 등 영화 관련 활동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가 배우 외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치활동에 의지가 있었고, 1978년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돼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다가 낙선, 2000년 16대 총선서 한나라당 후보로  67.2%의 표를 얻어 대구 동구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했다. 

그는 정계서 활동하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16대 국회의원이던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5년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8700만원을 선고받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2007년 2월12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출소했다.  

주연만 500여편
‘영원한 스타’

영화계는 50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등 고인이 한국영화에 남긴 업적을 기려 훈장 추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서도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신성일 장례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영화계가 뜻을 모아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장례가 끝난 후 문화체육관광부 측과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김국현 한국배우협회 이사장, 이해룡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 등이 주축이 돼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방문한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장례추진위 관계자는 “유족 측도 영화계와 뜻을 같이하고 있으며, 정부가 고인을 예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신성일씨 빈소(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나종민 차관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돌아가셔서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영화계와 협의해 이분을 예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나 차관은 “영화계와 유족 측에서 훈장 추서를 말씀했다”며 “잘 협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훈장 추서를 결정하는데 두세 달 정도 걸리고, 결정되더라도 영화계에 좋은 계기나 행사가 있을 때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8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르면 공적이 현저히 탁월하고 그 공적에 비해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이 경미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추천이 가능하다. 또 본인의 고의·중과실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경우 규명이 완료된 후 포상을 추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계 활동 당시 뇌물수수 혐의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계가 신성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당대 최고 스타답게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많은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거사를 자서전으로 써낸 적이 있었다. 2011년 발표된 이 자서전서 자신의 엄청난 과거사를 여과 없이, 그것도 상대 여성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개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2011년에 펴낸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서 연극배우와 아나운서로 활동한 고 김영애씨를 1970년대에 만나 사랑한 이야기를 공개, 파장을 일으켰다. 신성일은 출간 기념 간담회서 “아내 엄앵란도 몰랐던 이야기”라며 “(김영애는)내가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여성계를 중심으로 소위 ‘반 신성일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아내 엄앵란
굴곡진 사랑

신성일의 아내 엄앵란과의 굴곡진 사랑도 조명되고 있다. 여러 작품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탓에 1975년부터 별거했음이 한 방송을 통해 밝혀졌다. 신성일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고 김영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털어놨다. 

엄앵란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만큼은 하지 않았다.

2011년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사람들이)심심하면 이혼했다고 한다. 신문에 언급한 대로라면 50번은 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있고 저렇게 사는 것도 있지 어떻게 교과서적으로 사느냐”며 “악착같이 죽을 때까지 (신성일과)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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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채널A <명랑해결단>에서는 “과거 역술인들이 우리 두 사람의 궁합에 대해 제게는 최악이지만 남편에게는 최고라고 했다. 부모님도 결혼을 반대했는데 당시에 신성일에게 푹 빠져 있었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고 말했다. 

고난은 이어졌다. 2016년 엄앵란이 갑작스럽게 유방암에 걸려 부분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투병하게 된 것. 20여년 넘게 집을 나간 신성일이 이를 계기로 돌아와 엄앵란을 간호했다. 이후 신성일도 폐암으로 투병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동지’가 됐다. 

올해 3월 방송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신성일을 향한 엄앵란의 진심이 전해졌다. 엄앵란은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할 큰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엄앵란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것을 나는 못 본다. 내 남편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스캔들과 상관없이 신성일은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도 컸다. 그는 연기를 넘어 1971년엔 <연애교실>로 감독에 입문했고,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70대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건강에 신경 쓴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떨쳐내겠다. 이겨낼 자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학창시절 육상과 평행봉, 유도 등 다양한 운동을 한 그는 병마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회고전을 비롯해 올해 10월 열린 부산영화제에도 참석해 레드 카펫을 밟으며 손하트를 날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지내다 구속 복역도 
2008년부터 영천 한옥서 지내

그는 지난해 부산서 취재진과 만나 “나는 ‘딴따라’ 소리가 제일 싫다. 딴따라 소리 들으려고 영화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투병 이후 인생 2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었다. 그는 “막장드라마 대신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을 기획 중이며, 김홍신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도 영화로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지어 살던 고인은 그곳에서 일년에 한 번씩 소규모 음악회를 여는 등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고인은 마지막 바람들을 끝내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지난 4일 오전 2시30분 경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전남대학교병원서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해 6월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서울과 화순에 있는 요양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증세가 악화되자 전남대학교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영면했다. 

지난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배우 신성일의 한옥 자택 성일가서 추도식이 열렸다. 엄앵란은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며 “남편이 너무 바빠서 같이 베개를 베고 자기도 힘들었는데, (나도 죽고 나면)아주 싫증나게 남편 옆에 붙어서 영면하겠다”고 언급했다.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친지, 주민, 팬 등 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사회는 배우 안재욱이 맡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영천에 오니 별빛밖에 안 보이던데 고인이 여기서 별이 되려고 오셨나 보다”라며 “이제 고인은 떠났지만 이곳 별들의 고향, 영천 하늘서 언제나 찬란한 별이 되어 빛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추도식에서는 생전에 예술을 사랑했던 고인을 위한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이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를 연주했다. 이어 가수 김명상씨가 기타 연주와 함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노래하자 엄영란은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추도식은 평소 고인과 가까웠던 지인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로 구성된 추도위원회 주최로 거행했다. 추도식의 각종 실무는 고인이 2대 이사장과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 사무국이 맡았다. 

“딴따라 소리
제일 싫었다”

고인의 자택 옆 공터에는 신성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 공동추도위원장을 맡은 최기문 영천시장은 “고인이 영천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며 “유족이 동의한다면 고인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지인의 추천으로 2008년부터 영천에 한옥을 짓고 살며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눴다. 영천은 맑은 날이 연간 150일 이상인 만큼 별을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영화의 별 신성일은 그가 사랑했던 별의 도시 영천서 영면에 들어갔다. 자택 정원에 묻힌 그의 묘지 비석에는 ‘배우의 신화 신성일 여기 잠들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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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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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