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임종석 갈등설 흑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05 11:48:41
  • 호수 11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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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데로 튄 주도권 전쟁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를 시찰하자 이낙연 국무총리와의 갈등설이 불거졌다. 이 총리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소속 한 의원과의 식사자리서 임 실장의 DMZ 시찰에 대해 대노했다는 것. 대권을 정조준하고 있던 이 총리가 임 실장의 DMZ 시찰을 대권행보로 보고 견제에 나섰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반면 두 사람의 갈등설이 보수 진영의 자가발전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DMZ 시찰에 나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비서실장은 국방부장관과 차관, 국가정보원장, 국가안보실 차장 등과 함께 지난달 17일 철원 일대 DMZ를 방문했다. 유해발굴현장을 찾아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지난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서 합의한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 DMZ 내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었다. 대외적으로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알리고 북측에 의지를 보이는 목적으로도 읽혔다.

유해발굴현장
갑자기 방문

임 실장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유해발굴현장 방문을 촬영한 동영상에 직접 내레이션을 입힌 3분58초가량의 영상물을 유튜브(YouTube,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에 게재했다. 영상서 임 실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의 의무”라고 언급했다.

이틀 후인 지난달 28일 한 통신 매체는 같은 달 17일, 이 총리와 만찬을 한 한국당의 모 의원이 “그 자리서 (이 총리가)임 실장이 DMZ를 방문한 것을 두고 크게 화를 냈다”며 “이 총리가 그런 자리서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닌데 상당히 놀랐다. 이 총리가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즉각 야권의 공세가 시작됐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달 29일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비서실장이 왜 대통령까지 제치고 청와대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서서 야단인가”라며 “자기 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서 내려오라”고 일갈했다.


이어 “임 실장은 지난번에도 대통령 외유기관 중 국가정보원장,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을 대동하고 비무장지대를 시찰하더니, 엊그제는 청와대 홈페이지 첫 화면에 화살머리고지를 방문한 유튜브 영상이 방영되는 촌극이 빚어졌다”며 “이게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 측근 실세들의 모습이고 패권 정치의 폐단이다.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 또 다른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다. 촛불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낙연 국무총리

같은 당 하태경 최고위원도 지난달 3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서 “장관들을 동행해서 간 것은 좀 잘못한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황제실장’이란 이미지를 만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어 하 최고위원은 “어쨌든 비서지 않나. 만약 이 총리가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과 동행해 갔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이건 좀 잘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추켜세우는 반면, 문재인정부를 ‘독재시대’라 규정한 같은 당 이언주 의원도 같은 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임 실장이 대통령 부재 시 대통령 권한을 공식 대행하는 국무총리한테 일언반구 보고조차 없이 장관들을 대동하고 폼 잡고 전방시찰을 다녀온 사진을 보고 기가 막혔다”며 “청와대 정부, 청와대 정부 하더니 이제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나라를 비운 새 스스로 대통령 행세까지 하는 듯해서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찬다”고 비난했다. 

임종석 향해
“제2의 차지철”

이 의원은 “비서실장 스스로 자신을 차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부적절하고 우리 헌법상 권력 구조의 정신을 무시한 처사”라며 “장관들 거느리고 폼 잡으니 기분이 좋던가? 과거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흉내를 내고 있는 거냐? 지금 나라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다들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이 방치하면서 국민에게 이런 장면이나 보여주다니 참으로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차지철은 박정희정부서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며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다. 임 실장을 차 전 경호실장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자기 정치’를 강조하려는 야권의 정치적 수사로 읽힌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제1야당인 한국당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같은 달 30일, 국회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서 “임 실장이 왕실장 정치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 유럽순방 중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방부장·차관, 국정원장과 안보실장, 많은 군사지휘관을 대동해 전방부대를 시찰했다. 기고만장하다”고 쏘아붙였다.

김 원내대표는 “그 시찰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본인이 내레이션을 입혀 청와대 왕실장 정치를 이제 본격화했다”며 “임 실장 같은 분은 DMZ 상에서 맥아더 선글라스 끼고 그런 정치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될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자중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임, 선글라스 끼고 DMZ 시찰 왜?
이, 한국당 의원과 만찬 중 대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해당 이슈는 청와대 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문정부의 비선 실세 임종석 교체 요구’ ‘임종석 대통령님 경제 좀 챙겨주세요’ ‘임종석 비서실장 정신차려라’ ‘임종석 실장 사퇴하라’ ‘임종석 사퇴해야 한다’ ‘대통령은 임종석인데 자꾸 문재인에게 청원하니 들어줄 리가 없다’는 제목의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모두 임 실장의 DMZ 시찰이 직책을 벗어났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임 실장의 꼭두각시가 아니냐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즉각 해명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임 실장을 둘러싼 야권의 ‘자기 정치’ 비판에 대해 “임 실장이 자기 정치를 했느냐”며 되물은 뒤 “그 자체에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맞섰다.

임 실장의 DMZ 시찰이 직책을 벗어난 행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철원 화살머리고지를 방문하는 것은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상황을 점검하고 어느 정도 이행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것”이라며 “돌아온 뒤에 동영상 내레이션을 한 것은 임 실장께서 본인이 주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 화살머리고지 부분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청와대 소통수석실이 동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서 임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낙연-임종석 갈등설은 한국당 의원의 증언서 시작됐다. 해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이 총리와의 만찬자리서 그가 임 실장의 DMZ 방문에 크게 화를 냈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그러나 정부 당국은 이날 이 총리가 참석한 만찬 성격의 자리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 총리는 당일 오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창덕궁 달빛기행 문화행사에 참석, 야권 인사와 만찬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과의 평소 관계를 고려했을 때도 갈등을 일으킬 만큼 앙금을 가질 단초가 없었다고 한다. 여권 상황에 정통한 정치권 관계자는 “두 사람은 전남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며 “두 사람이 같이 일한 1년5개월 동안 어떤 갈등의 조짐도 없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반박
“자기 정치 아냐”

더구나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 총리, 임 실장은 매주 일요일 서울 총리공관서 만찬 회동을 가지며 소통하는 사이다. 해당 만찬 회동은 이 총리 주재로 지난 7월부터 열렸으며 세 사람은 이때 주요 국정현안을 자유롭게 논의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당국은 이 총리가 평소 임 실장에 대한 비난성 평가를 한 적이 없으며, 특히 한국당 의원을 만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난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며 언론 보도에 유감을 표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설령 이 총리가 임 실장의 DMZ 시찰에 대해 화를 냈더라도 그건 정치적인 쇼에 가까웠을 것”이라며 “야당 의원이 질문을 하는데 그냥 ‘네 네’라고 답하면 그게 더 뒷말을 낳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앞으로 있을 청와대 대상 국정감사가 열리기 전 이 총리가 임 실장 대신 매를 맞아준 셈”이라고 밝혔다.

당국 “의원과 만찬 일정 없었다”
보수 진영 측 ‘자가발전’ 의심

이 때문에 여권은 오히려 야권이 임 실장을 타깃으로 삼아 이 총리와의 갈등설 이슈를 자가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당 의원의 입을 통해 갈등설이 시작됐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여권은 보수대통합을 앞둔 야권 진영이 주도권 경쟁을 하는 과정서 임 실장을 타깃으로 잡은 것 아니겠냐고 해석한다. 지난달 29일,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임 실장을 ‘차지철’ ‘최순실’에 빗대는 발언이 있은 직후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맥아더 선글라스’ ‘왕실장’이라는 발언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바른미래당과의 보수대통합을 추진 중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은 바른미래당에 잇단 구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 위원은 조강특위 출범 당일인 지난달 11일 기자들에게 “(다른 정당) 일부 중진 의원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통보했다. 곧 일정을 잡겠다”며 보수 단일대오 작업에 착수했음을 알렸다.
 

이낙연 국무총리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비대위의 역할은 내적으로 혁신, 외적으로 보수 대통합이다. 조강특위가 출범했으니 이제 보수대통합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며 “문재인정부의 폭주를 막는 대의에 동의하는 누구라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겠다”고 전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통합과 관련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당 비대위가 보수통합의 군불을 띄우자 손 대표는 “갈 사람은 가라”며 응수했다. 한국당 측이 태극기부대도 통합의 대상으로 지목하자 손 대표는 “태극기 부대까지 통합 대상이라며 수구세력의 몸집 부풀리기에 급급하다”며 평가 절하했다.

임종석 때리고
보수적통 자처

보수대통합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신경전으로 큰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통합을 부르짖는 한국당과 보수의 대안을 자처하는 바른미래당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다. 종합해보면 이낙연-임종석 갈등설은 최근 진보 진영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한 두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보수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힘겨루기로 읽힌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난달 30일 <세계일보>와 통화서 “보수통합 과정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 때리기를 하거나 유력 대권주자를 때려야 하는데 박원순, 이재명 때리기처럼 새롭게 뜨는 임종석 때리기를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승민 접촉’ 진실게임

한국당 측이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에게 접촉해 한국당 합류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 의원 측은 즉각 반박, 양상은 진실공방으로 흘렀다. 한국당 고위당직자가 신뢰할 만한 인사를 유 의원에게 보내 ‘한국당과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고, 유 의원으로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 의원 측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접촉설은) 오보며 유 의원이 그럴 리 없다”고 단호히 일축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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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검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유통·공급책들의 진술도 뒤집혔다.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이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도 수년간 겪은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경찰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과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필로폰 74kg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내 기뻐하던 수사팀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실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고 개입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경찰도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과도한 의혹? 백 경정은 지금까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벌어진 원인으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검찰을 지목했다. 직접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통화했던 녹취를 언급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 경정 수사팀에 지휘권이 없는 인사들이 수차례 연락을 취한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비교해보면 ‘압력을 넣었다’는 맥락은 일치하지만 누가 압력을 행사했고 어떻게 대통령실과의 접촉 등이 이뤄졌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용산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백 경정 팀의 수사에 허점이 있던 걸까?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지원해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측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영등포서 마약수사팀 의견 통일 안 돼 운반책들 “세관 도움 없었다” 주장 번복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했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그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백 경정은 당시 전화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나?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뒤집힌 분위기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 유통·전달책의 첩보로 시작된다. 사정기관에 첩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야당’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형량 거래인 ‘플리바게닝’을 통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때가 있다. 베테랑 수사관들도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다가 헛수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마약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물적 증거가 부족할 때다. 실제 검찰이든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 또는 야당의 정보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 경정팀에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운반책 3명은 최근 급작스레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검경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백 경정이 주장해온 의혹의 뿌리가 흔들린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에 구성된 합동수사단도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재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경정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백 경정의 판단이 100%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이 많았던 건 사실 아니냐.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약 운반책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공항본부 세관 직원은 여러 명이다. 직원 대부분은 백 경정팀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약 공범? 익명을 요구한 세관 직원 A씨는 <일요시사>에 “공황장애에 걸린 직원도 있고 확실하지도 않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경찰도 있었다. 그 자체가 우리가 범죄자라고 전제한 수사”라며 “2년이 지나도 나오는 게 없지 않나. 운반책들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하는데 이젠 진상규명이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마약 운반책들은 백 경정팀 조사에서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진술에서 언급된 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출입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는 진술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관 직원 B씨는 “운반책들이 2023년 1월에 그린 라인을 따라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그린 라인은 그해 5월에야 생겼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수사했다면 운반책들의 진술 중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측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혀 왔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여러 번 초기화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때 수사했을 때 직원 폰을 압수해 분석했는데 초기화된 걸 확인했었고 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직접 초기화한 후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도 했다”며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주장하다가 세관과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관이 마약 운반책들을 뒤에서 은밀하게 도왔다는 의구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상황에 누가 의심을 안 하겠나”고 강조했다. 세관 직원들 “2년간 범죄자 취급···억울” 휴대전화 초기화는? 수상한 점 여전히 존재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은 본래 지난 14일까지였다. 그러다 전날인 13일, 경찰청은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백 경정의 파견 기간을 돌연 2개월 연장했다. 내년 1월14일까지로 늘린 것이다. 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찰청에 백 경정 파견의 연장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동부지검의 요청을 검토한 뒤 경찰청에 연장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했고 본인과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전결권을 부여했다. 그는 합수단에 합류한 지 약 한 달 만인 이날부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사용 권한을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의 바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수사관 4명 중 2명이 원대 복귀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백 경정은 “두 사람이 파견 기한 만료 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파견 만료로 원대 복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경정에게 “개인 사정이 있어 파견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경정은 “계속 수사에 차질을 겪어 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스무명이 넘게 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3명이 수사를 이어가겠나”라며 “팀을 꾸렸으면 적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어렵게 파견 인력을 확보했었다”면서 “백 경정의 충원 의사를 대검에 전달했지만 인력은 보내는 쪽인 경찰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 경정과 동부지검 간 갈등은 끝나지 않는 모양새다. 백 경정은 최근 14일 A4 용지 12장 분량의 자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개인 명의로 배포했다. 그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용 권한을 받았고 파견도 2개월 연장됐다”면서 “조만간 사건번호를 생성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도할 수사 범위에 ▲세관 마약 연루 의혹 ▲검찰의 마약 밀수 사건 은폐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 중 수사 외압 의혹은 합수단 지휘 책임이 있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난달 파견 온 백 경정에게 별도 수사팀을 내줄 당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분야다. 공중분해 위기 지속 영등포경찰서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캐던 백 경정이 스스로 외압 피해자라 주장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경찰 지휘부 등을 고발한 사건이라 직접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커서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며 기존 수사 범위에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상 경찰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회피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