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③> 2007년 뜰 ‘억만장자 4인’

‘쩐주 비상’…기축년 ‘진짜 큰손’들 납시오!

2009년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깔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숨은 갑부들’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흥 부호들이 어떤 기업·사업에 투자할지가 관심거리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쥐고 있는 수조원이 풀릴 경우 ‘돈맥경화’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돈 가뭄으로 한 푼이 아쉬운 기업들도 물밑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베일에 싸인 억만장자들의 자금을 유치하거나 아예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큰손’들도 지금과 같은 불황이 적기라고 판단, 눈을 부릅뜨고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희망으로 가득차도 모자랄 새해가 밝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극심한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 2009년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깔릴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제2의 IMF 외환위기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온다.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은 ‘돈 구하기’에 바쁘다. 은행들이 돈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으면서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금리를 내리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도 시중의 ‘돈맥경화’는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급기야 구조조정을 통한 정부의 부실기업 퇴출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평가 기준은 자금 사정이다.
기업으로선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선 어떡해서든 금고를 채우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이 돈 가뭄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큰돈을 쥐고 있는 ‘숨은 갑부들’들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반대로 투자처를 찾고 있는 ‘큰손’들도 지금과 같은 위기가 막대한 현금을 ‘올인’할 수 있는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불황 때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투자해 경기가 활성화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회사 매각과 주식, 시세차익 등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갖고 있는 알짜배기 부호들이 올해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이민주 전 씨앤앰(C&M)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재벌그룹 총수일가 못지않은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쟁쟁한 재벌들을 제치며 신흥거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국내 부호 리스트에 16위로 이름을 올린 것. <포브스>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이 보유한 금액만 무려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내로라하는 재벌 오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네이버를 창업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33위·5억8500만 달러),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40위·5억1000만 달러)보다는 월등히 앞선 순위다.
1948년 서울 출생인 이 전 회장은 서울고와 연세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1975년 조선무역(현 조선아이앤씨)을 창업했다. 당시 창업비용은 15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조선아이앤씨는 완구제조업체로 현재 이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1988년 한미창투를 창업하면서 ‘투자의 귀재’란 명성을 얻었다. 1990년대 중소 금융기관들을 사고팔기를 반복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모두 매각했다.
이 전 회장은 이때 종자돈을 만들어 2000년 지역 중소 케이블TV 업체를 헐값에 인수해 씨앤앰을 세웠다. 씨앤앰은 경동케이블TV를 모체로 출발해 서울 지역 케이블TV와 중계유선업체를 줄줄이 인수하며 거대 유선방송사로 성장했다.
씨앤앰은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줬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자신(51.92%)과 부인(9.25%) 등 가족이 보유한 씨앤앰 지분 전량을 1조원이 넘는 금액으로 맥쿼리-MBK파트너스(국민유선방송투자)에 매각했다.

이민주·차용규·손정의·한창우 ‘숨은 갑부’ 물밑행보 주목
‘돈가뭄’기업 자금유치 러브콜… “지금이 적기” 투자처 물색


일각에선 환차익 등을 감안하면 이 전 회장의 수중에 2조원이 넘는 돈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 이 전 회장의 환심을 사려는 까닭이다. 실제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A그룹이 최근 극비리에 이 전 회장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회장도 적당한 투자처를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A 등 투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2000억원 가량을 국민유선방송투자에 재투자해 지분 약 20%를 확보한 데 이어 연세대, 카이스트, 명지대, 동국대 등 대학에 모두 200억원을 기부해 ‘큰손’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쩐주’를 잡기 위해 안달인 기업들에게 이 전 회장 만한 타깃이 없다”며 “이 전 회장도 10년 전 IMF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와 절묘한 타이밍으로 대박을 터뜨린 만큼 이번 금융위기에도 투자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에 뒤지지 않는 숨은 갑부는 또 있다. 바로 차용규 전 카작무스 대표다. 차 전 대표 역시 베일에 싸인 인물로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다만 재벌도 아니면서 거부 반열에 오른 ‘성공 신화’만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차 전 대표에게 쏠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마찬가지로 <포브스>가 발표한 국내 부호 리스트에 당당히 7위로 랭크된 것. 재산규모는 13억 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754위·13억 달러)과 같은 수준이다.
차 전 대표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거부로 단숨에 뛰어오른 그야말로 ‘성공 신화’주인공이다. 1956년생인 차 전 대표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1995년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로 배치 명령을 받았다. 삼성물산은 파산상태에 몰린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맡게 되자 그를 현지에 파견했다. 카작무스는 카자흐스탄 최대의 구리 채광·제련 업체다.
삼성물산 지휘 하에 카작무스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위탁경영이 만료된 2000년엔 자산가치 30억 달러, 세계 9위 구리 제련업체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위탁 경영이 만료된 삼성물산에 카작무스 지분 매입을 요청했고 삼성물산은 이를 수락해 2000년 지분 42%를 취득했다.
당시 카작무스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차 전 대표다. 그는 1998년 부장으로 승진한 후 1999년 이사를 거쳐 2000년 공동대표에 올랐다. 말 그대로 ‘고속 승진’이었다. 그러던 중 삼성물산은 2004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철수했다. 지분은 모두 카작무스 파트너들에게 매각했다.
하지만 차 전 대표는 잔류를 선택했다. 카자흐스탄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지 고려인 3세인 블라디미르 김씨와 함께 카작무스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고, 각각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맡았다. 김씨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 지역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만큼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차 전 대표의 ‘인생역전’은 이듬해 일어났다. 2005년 카작무스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 시가총액이 무려 100억 달러(약 13조원)에 육박했다. 그는 2006년 9월 카작무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2007년 초 보유 지분(4.5%·2천1백만주)을 모두 처분했다. 이를 한화로 계산하면 1조원이 훌쩍 넘는다.
이때부터 차 전 대표는 종적을 감췄다. 현재 소재와 근황도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쥐고 있는 1조7000억원도 연기처럼 사라진 상태. 주식 처분으로 확보된 현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오리무중이다.
 항간에선 ‘잠적설’, ‘실종설’이 나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납치설’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그의 재산이 ‘차명 자금’이란 의혹도 있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사실은 없다.
재계 관계자는 “유수의 언론들이 차 전 대표가 거부로 떠오른 뒤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며 “얼굴을 드러내길 싫어하는 언론기피증이거나 부를 축적한 부담이 은둔 생활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재계엔 차 전 대표의 복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A사에 투자한다”, “M&A 회사를 설립하려 한다”, “친정인 삼성물산으로 되돌아간다” 등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차 전 대표는 지난해 국내에 잠시 들어와 지인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라며 컴백 여운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최고 갑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행보도 눈여겨 볼만하다. 재일교포 3세인 손 회장의 재산은 약 7000억엔. 우리나라 돈으로 9조원 정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약 2조4000억원)보다 훨씬 앞선다. 이처럼 손 회장이 일본 최고 갑부로 등극하면서 국내 언론은 물론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누구며, 무슨 사업을 하나’등의 궁금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손 회장은 국내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 다만 그가 재일동포란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1957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손 회장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국계’란 이유로 왕따는 기본. 그렇다고 한국에서 환영받은 것도 아니다.
수많은 좌절과 위기를 이겨낸 손 회장의 성공신화는 결국 M&A를 통해 완성됐다. 그는 1981년 자본금 1억엔과 직원 2명으로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이자 정보기술(IT) 투자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M&A에 ‘올인’해 세계 거부로 우뚝 섰다.
손 회장은 이미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운 것.
그는 2000년 창업한 소프트뱅크벤처스를 통해 2012년까지 최대 2500억원을 국내 IT 분야와 미디어, 콘텐츠, 게임 분야 벤처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손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100% 출자한 한국 내 창업투자회사로 국내 유망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
일본 갑부인 한창우 마루한 회장의 행보도 관심이다. ‘파친코 대부’로 불리는 한 회장은 손 회장과 함께 2005년부터 3년 연속 일본의 30대 부자에 선정됐다. 경남 삼천포 출신인 그는 14세에 일본으로 밀항한 이후 일본 ‘파친코’ 업계를 평정했다.
한 회장의 재산은 1300억엔(약 1조8000억원)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소 수행비서 없이 혼자 다니고 택시를 이용하는 검소함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쌓은 부를 바탕으로 모국과 재외동포들을 위해 지원에 나서고 있는 한 회장은 국내 기업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한 회장에게 지자체의 카지노 투자 요청과 학교, 호텔, 은행 등의 지분 매입 제의, 매물로 나온 기업의 인수 제의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한 회장의 국내 투자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기축년 소띠 CEO는?
“소의해 우리가 뛴다”


재계의 소띠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우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1949년생으로 소띠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도 1949년생이다. 이들은 모두 내년에 환갑을 맞는다.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정몽혁 아주금속 회장, 유흥수 LIG투자증권 사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원종석 신영증권 사장 등은 1961년생 소띠다. 올해 73세로 1937년생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등이 있다.
재계 2·3세 중에도 소띠는 눈에 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씨,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 이경후 씨, 허명수 GS건설 사장의 차남 허태홍 씨, 두산가 박재원 씨 등은 1985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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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