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③> 2007년 뜰 ‘억만장자 4인’

‘쩐주 비상’…기축년 ‘진짜 큰손’들 납시오!

2009년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깔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숨은 갑부들’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흥 부호들이 어떤 기업·사업에 투자할지가 관심거리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쥐고 있는 수조원이 풀릴 경우 ‘돈맥경화’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돈 가뭄으로 한 푼이 아쉬운 기업들도 물밑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베일에 싸인 억만장자들의 자금을 유치하거나 아예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큰손’들도 지금과 같은 불황이 적기라고 판단, 눈을 부릅뜨고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희망으로 가득차도 모자랄 새해가 밝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극심한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 2009년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깔릴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제2의 IMF 외환위기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온다.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은 ‘돈 구하기’에 바쁘다. 은행들이 돈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으면서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금리를 내리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도 시중의 ‘돈맥경화’는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급기야 구조조정을 통한 정부의 부실기업 퇴출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평가 기준은 자금 사정이다.
기업으로선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선 어떡해서든 금고를 채우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이 돈 가뭄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큰돈을 쥐고 있는 ‘숨은 갑부들’들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반대로 투자처를 찾고 있는 ‘큰손’들도 지금과 같은 위기가 막대한 현금을 ‘올인’할 수 있는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불황 때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투자해 경기가 활성화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회사 매각과 주식, 시세차익 등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갖고 있는 알짜배기 부호들이 올해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이민주 전 씨앤앰(C&M)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재벌그룹 총수일가 못지않은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쟁쟁한 재벌들을 제치며 신흥거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국내 부호 리스트에 16위로 이름을 올린 것. <포브스>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이 보유한 금액만 무려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내로라하는 재벌 오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네이버를 창업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33위·5억8500만 달러),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40위·5억1000만 달러)보다는 월등히 앞선 순위다.
1948년 서울 출생인 이 전 회장은 서울고와 연세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1975년 조선무역(현 조선아이앤씨)을 창업했다. 당시 창업비용은 15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조선아이앤씨는 완구제조업체로 현재 이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1988년 한미창투를 창업하면서 ‘투자의 귀재’란 명성을 얻었다. 1990년대 중소 금융기관들을 사고팔기를 반복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모두 매각했다.
이 전 회장은 이때 종자돈을 만들어 2000년 지역 중소 케이블TV 업체를 헐값에 인수해 씨앤앰을 세웠다. 씨앤앰은 경동케이블TV를 모체로 출발해 서울 지역 케이블TV와 중계유선업체를 줄줄이 인수하며 거대 유선방송사로 성장했다.
씨앤앰은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줬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자신(51.92%)과 부인(9.25%) 등 가족이 보유한 씨앤앰 지분 전량을 1조원이 넘는 금액으로 맥쿼리-MBK파트너스(국민유선방송투자)에 매각했다.

이민주·차용규·손정의·한창우 ‘숨은 갑부’ 물밑행보 주목
‘돈가뭄’기업 자금유치 러브콜… “지금이 적기” 투자처 물색


일각에선 환차익 등을 감안하면 이 전 회장의 수중에 2조원이 넘는 돈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 이 전 회장의 환심을 사려는 까닭이다. 실제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A그룹이 최근 극비리에 이 전 회장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회장도 적당한 투자처를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A 등 투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2000억원 가량을 국민유선방송투자에 재투자해 지분 약 20%를 확보한 데 이어 연세대, 카이스트, 명지대, 동국대 등 대학에 모두 200억원을 기부해 ‘큰손’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쩐주’를 잡기 위해 안달인 기업들에게 이 전 회장 만한 타깃이 없다”며 “이 전 회장도 10년 전 IMF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와 절묘한 타이밍으로 대박을 터뜨린 만큼 이번 금융위기에도 투자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에 뒤지지 않는 숨은 갑부는 또 있다. 바로 차용규 전 카작무스 대표다. 차 전 대표 역시 베일에 싸인 인물로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다만 재벌도 아니면서 거부 반열에 오른 ‘성공 신화’만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차 전 대표에게 쏠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마찬가지로 <포브스>가 발표한 국내 부호 리스트에 당당히 7위로 랭크된 것. 재산규모는 13억 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754위·13억 달러)과 같은 수준이다.
차 전 대표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거부로 단숨에 뛰어오른 그야말로 ‘성공 신화’주인공이다. 1956년생인 차 전 대표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1995년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로 배치 명령을 받았다. 삼성물산은 파산상태에 몰린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맡게 되자 그를 현지에 파견했다. 카작무스는 카자흐스탄 최대의 구리 채광·제련 업체다.
삼성물산 지휘 하에 카작무스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위탁경영이 만료된 2000년엔 자산가치 30억 달러, 세계 9위 구리 제련업체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위탁 경영이 만료된 삼성물산에 카작무스 지분 매입을 요청했고 삼성물산은 이를 수락해 2000년 지분 42%를 취득했다.
당시 카작무스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차 전 대표다. 그는 1998년 부장으로 승진한 후 1999년 이사를 거쳐 2000년 공동대표에 올랐다. 말 그대로 ‘고속 승진’이었다. 그러던 중 삼성물산은 2004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철수했다. 지분은 모두 카작무스 파트너들에게 매각했다.
하지만 차 전 대표는 잔류를 선택했다. 카자흐스탄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지 고려인 3세인 블라디미르 김씨와 함께 카작무스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고, 각각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맡았다. 김씨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 지역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만큼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차 전 대표의 ‘인생역전’은 이듬해 일어났다. 2005년 카작무스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 시가총액이 무려 100억 달러(약 13조원)에 육박했다. 그는 2006년 9월 카작무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2007년 초 보유 지분(4.5%·2천1백만주)을 모두 처분했다. 이를 한화로 계산하면 1조원이 훌쩍 넘는다.
이때부터 차 전 대표는 종적을 감췄다. 현재 소재와 근황도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쥐고 있는 1조7000억원도 연기처럼 사라진 상태. 주식 처분으로 확보된 현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오리무중이다.
 항간에선 ‘잠적설’, ‘실종설’이 나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납치설’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그의 재산이 ‘차명 자금’이란 의혹도 있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사실은 없다.
재계 관계자는 “유수의 언론들이 차 전 대표가 거부로 떠오른 뒤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며 “얼굴을 드러내길 싫어하는 언론기피증이거나 부를 축적한 부담이 은둔 생활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재계엔 차 전 대표의 복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A사에 투자한다”, “M&A 회사를 설립하려 한다”, “친정인 삼성물산으로 되돌아간다” 등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차 전 대표는 지난해 국내에 잠시 들어와 지인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라며 컴백 여운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최고 갑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행보도 눈여겨 볼만하다. 재일교포 3세인 손 회장의 재산은 약 7000억엔. 우리나라 돈으로 9조원 정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약 2조4000억원)보다 훨씬 앞선다. 이처럼 손 회장이 일본 최고 갑부로 등극하면서 국내 언론은 물론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누구며, 무슨 사업을 하나’등의 궁금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손 회장은 국내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 다만 그가 재일동포란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1957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손 회장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국계’란 이유로 왕따는 기본. 그렇다고 한국에서 환영받은 것도 아니다.
수많은 좌절과 위기를 이겨낸 손 회장의 성공신화는 결국 M&A를 통해 완성됐다. 그는 1981년 자본금 1억엔과 직원 2명으로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이자 정보기술(IT) 투자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M&A에 ‘올인’해 세계 거부로 우뚝 섰다.
손 회장은 이미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운 것.
그는 2000년 창업한 소프트뱅크벤처스를 통해 2012년까지 최대 2500억원을 국내 IT 분야와 미디어, 콘텐츠, 게임 분야 벤처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손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100% 출자한 한국 내 창업투자회사로 국내 유망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
일본 갑부인 한창우 마루한 회장의 행보도 관심이다. ‘파친코 대부’로 불리는 한 회장은 손 회장과 함께 2005년부터 3년 연속 일본의 30대 부자에 선정됐다. 경남 삼천포 출신인 그는 14세에 일본으로 밀항한 이후 일본 ‘파친코’ 업계를 평정했다.
한 회장의 재산은 1300억엔(약 1조8000억원)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소 수행비서 없이 혼자 다니고 택시를 이용하는 검소함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쌓은 부를 바탕으로 모국과 재외동포들을 위해 지원에 나서고 있는 한 회장은 국내 기업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한 회장에게 지자체의 카지노 투자 요청과 학교, 호텔, 은행 등의 지분 매입 제의, 매물로 나온 기업의 인수 제의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한 회장의 국내 투자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기축년 소띠 CEO는?
“소의해 우리가 뛴다”


재계의 소띠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우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1949년생으로 소띠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도 1949년생이다. 이들은 모두 내년에 환갑을 맞는다.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정몽혁 아주금속 회장, 유흥수 LIG투자증권 사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원종석 신영증권 사장 등은 1961년생 소띠다. 올해 73세로 1937년생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등이 있다.
재계 2·3세 중에도 소띠는 눈에 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씨,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 이경후 씨, 허명수 GS건설 사장의 차남 허태홍 씨, 두산가 박재원 씨 등은 1985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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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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