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다해가 MBC 월화극 <에덴의 동쪽>(연출 김진만)에서 하차하겠다고 선언한 후, 그 배경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인기몰이 중인 <에덴의 동쪽>에서 이다해는 신문재벌가의 딸 민혜린 역을 연기해왔다. 하지만 지난 12월22일 밤 드라마 홈페이지 시청자 의견란에 “그동안 내 연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며 “제가 혜린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시청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겠냐. 더 이상 이런 상태의 심신으로는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중도 하차 의사를 밝혔다.
시청자 게시판에 심경고백
배우·제작자 갈등 표면화
이다해가 중도 하차하게 된 이유를 놓고 방송가 안팎에서 여러 설들이 파다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다해는 항간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출연 분량이나 출연진 혹은 제작진과의 갈등으로 인한 하차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다해가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다해가 연기한 민혜린은 드라마 초반 이동욱(연정훈)과 같은 서울대학교 법대 동기로 등장, 멜로라인을 형성해오다가 최근 들어 이동욱의 형인 이동철(송승헌)과 영란(이연희) 사이에서 미묘한 애정행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드라마는 이동욱과 신명훈(박해진)의 출생 비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혜린의 캐릭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태다.
이다해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인지, 육체적으로 지치고 괴로워 촬영을 하기가 힘들 때도 많았다. 링거나 약을 먹어 봐도 정신적인 괴로움까지 달래긴 힘든 듯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연기자로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제 역할에 충실할 의무가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런 상태의 심신으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말씀을 드릴까 한다”며 자진 하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거짓된 연기 싫어”
특히 “어느 때부턴가 컷 소리와 함께 연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며 “내가 혜린이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시청자들을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여러분 앞에 한 순간도 거짓된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며 하차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다해 소속사 관계자는 “그동안 이다해가 제작진에게 정체성이 없는 캐릭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협의를 했지만 끝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다해 본인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연기자가 드라마 촬영 도중 시청자게시판에 하차 의사를 밝혀 제작진과 갈등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일었다. 이다해 측은 파문이 확산되자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올린 글을 자진 삭제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나연숙 작가가 중도 하차하면서 이홍구 작가로 대본 집필진이 바뀐 것도 이다해 하차의 또 다른 한 요인으로 보인다. 첫 리딩 때부터 함께 해온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배우의 캐릭터를 살려나가기란 어려운 노릇. 결과적으로 이다해가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에덴의 동쪽> 제작진도 이다해와 마찰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갑작스러운 자진 하차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다해가 하차 의사를 밝혀 그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에덴의 동쪽>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작가가 교체되는 등 당초 의도와는 다른 스토리가 전개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이로 인해 혜린 역의 캐릭터가 변하면서 이다해가 회의를 느꼈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건강도 많이 악화된 것 같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이다해 측에서 2~3주 전부터 하차 의사를 조심스레 비쳐왔고, 제작진에서도 이다해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서 자연스럽게 하차하는 스토리 라인을 논의 중이었다. 결국 40회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하지만 조용히 모양 좋게 떠날 수 있었는데,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려 일이 커지게 돼서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에덴의 동쪽>에 출연 중인 한 연기자는 “당초 계획과 달리 극의 전개가 많이 바뀌면서 연기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연장을 하게 될 경우 공중에 뜨게 되는 캐릭터가 많아 연기자들 입장에선 무리한 연장 방송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다해가 하차했다고 하니 동요하는 연기자도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연기자들의 개인 스케줄 문제도 겹쳐있어 연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기자가 드라마 촬영 도중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하차 의사를 밝힌 것은 2005년 <루루공주> 출연했을 당시 김정은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이후 두 번째다.
이다해의 돌연 하차는 씁쓸함을 남긴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배우의 생각과 고민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런 방법은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이다해가 직접 시청자들에게 하차 의사를 밝힌 것은 제작진과 소속사와 해결점을 함께 고민하지 않았다는 흔적이 엿보인다.
배우로서 책임 못한 것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였다면 제작진과 충분히 상의하고 자연스럽게 빠져 나왔어야 했다. 드라마는 비단 배우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힘을 합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다해의 행동은 스스로 드라마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게 한 것이고, 배우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해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 셈이다.
이다해는 40회가 방송되는 1월13일을 마지막으로 드라마에서 모습을 감춘다. <에덴의 동쪽>은 23일 36회가 방송된다. 하지만 MBC <연예대상>과 <연기 대상>으로 인해 <에덴의 동쪽>이 29일과 30일 결방 예정이기 때문이다.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