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도 그 열정을 꺾지 못했던 불굴의 배우이자 연극 연출자 고 박광정(46)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했다.
고 박광정은 지난 3월 폐암 판정 이후 항암 치료를 계속해 왔으나 증세가 악화되면서 지난 17일 오후 10시께 끝내 숨을 거뒀다. 박광정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이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은 채 연극과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와 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고 박광정은 1962년생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연극계에 몸을 담았다. 지난 1992년 연극 <마술피리>를 연출하며 연출자로 연극에 입문한 그는 같은 해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를 통해 연기자로 발을 내디뎠다.
이후 1994년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드라마에 데뷔한 고 박광정은 <단팥빵>, <사랑한다 말해줘>, <아일랜드> 등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주로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감초 역을 맡아 훌륭히 소화해냈다.
최근 MBC 드라마 <뉴하트>에서는 주인공 최강국(조재현 분)의 동료이자 이은성(지성 분)을 뒤에서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영상의학과 의사 김영희 역으로 출현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 고 박광정은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1994년 영화 <세상 밖으로>와 <꽃잎>을 비롯하여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에서 그는 고뇌하는 지식인을 그렸다. 또 <넘버 3>에서 삼류 시인 랭보 역을 맡았던 고 박광정은 주연 못지않은 독특한 캐릭터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고 박광정은 지난해에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15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아 택시기사와 바람이 난 아내를 둔 소심한 남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제1회 국제이머징탤런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 3월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런 폐암 선고를 받고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고 박광정은 이 사실을 일부 지인에게만 알리고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당시 이미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으나 그 와중에도 연극 <서울노트>를 연출하는 등 연기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았다.
고인은 그러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두 아들과 아내, 그리고 그가 목숨과 바꿔서라도 계속하고자 했던 연극을 남겨둔 채 지난 15일 눈을 감았다. 올해 2월 종영한 MBC 드라마 <뉴하트>가 그의 마지막 출연작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