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없는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없는 나라!
  • 최민이
  • 승인 2009.02.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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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최민이 편집국장] 시절이 하수상한 요즘이다. 북한의 심상찮은 도발 움직임이 아침의 정적을 깨고, 여기저기서 벌어진 사건사고로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가 어떻고, 용산 철거민 참사 수사결과가 저떻고,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어쩌고, 화왕산 억새축제 참사가 저쩌고….’

“차라리 전쟁이라도 한번 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한 60대 노인의 푸념이 여러 사람의 바쁜 발걸음을 붙잡은 아침. 이유인즉, 수년 전 대학을 졸업한 아들 둘이 아직도 ‘백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경제는 자꾸 어렵다 하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정치판은 허구헌날 쌈박질만 하고 있으니, 가진 게 없어 이민은 못 가고 차라리 전쟁이라도 한번 터져 버렸으면 좋겠단다. 그러면 저 위에서 정신 못 차리고 설쳐대는 분들의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일찍이 빈촌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가난과 무지(無知)를 유일한 유산으로 물려받은 노인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에 상경했다고 한다. 배움도 없고 기술도 없었기에 몸뚱이를 밑천 삼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으로 잔뼈가 굵었다는 노인은 거북이등처럼 갈라터진 손바닥을 보여주며 “이것이 여섯 가족을 지킨 훈장”이라고 씁쓸한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해서 팔순 노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限)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세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을 시켰는데, 출가한 딸만 빼고 두 아들은 마땅한 직장도 없이 빈둥빈둥 놀고먹는 신세라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해 노구를 이끌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폐지며 고물을 주워 생계를 연명하지만 차마 생목숨 억지로 끊지 못해 살 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새벽녘 손수레를 끌고 박스를 주으러 나갔다가 차에 치여 병원에 누워있다 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노인은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단다. 예로부터 나랏님은 하늘이 낸다고 했는데 그 하늘이 낸 나랏님이 백성의 가난을 구제하지 못하는 걸 보면 옛말이 하나도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노인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 나와 군대까지 다녀온 어엿한 아들들이 번듯하진 않더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렇지 못할 바엔 차라리 전쟁이나 터져서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산이다. 자신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어디 비단 그만의 얘기일까.  
     
필부(匹夫)의 푸념이라고 여기기엔 너무도 끔찍하고 무서운 얘기 앞에 잠깐 오늘의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실업자 350만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가히 ‘실업대란’이란 표현이 적절한 현실 속에서 정부는 지금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허울좋은 캐치프레이즈만 외치고 있다. 기업하기 좋으면 왜 하루아침에 멀쩡한 기업들이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릴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단 말인가.

기업인들이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고 대통령과 언제라도 통화할 수 있는 휴대전화 핫라인을 가지며 청와대에 초청받아 만찬이나 하는 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본래 취지였다면 맞는 말이다. 현 정부가 내세운 ‘비즈니스 프랜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일부 잘 나가는 몇몇 기업인들에게만 해당될 뿐 전반적인 상황은 그것이 아니다.

기술력도 있고 생산성도 좋지만 자금력이 달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나자빠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체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현실이다. 당국의 정책부재와 까다로운 각종 규제가 낳은 안타까운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회사를 잘못 경영해 망하면 덜 억울할 텐데 마땅히 이끌어주고 뒷받침해줘야 할 정부가 책임을 방관하고 있으니 ‘아래로부터의 붕괴’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바로 실업대란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실업자 350만명 시대에 아예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170만명을 넘어섰다는 통계청 발표는 지금 우리사회의 서글픈 한 단면이다. 여기에 당장 2월이면 쏟아져 나올 대졸 사회초년생들까지 합한다면 가뜩이나 심각한 실업률은 청년실업률까지 더해지면서 사상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전쟁을 들먹이며 푸념하는 노인의 두 아들에게처럼 ‘청년들이여 도전정신을 가지라’고만 충고할 게 아니라 도전할 수 있는 적절한 장과 기회를 열어줘야 할 것이다.

최민이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