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영국신사’ 홍석우 신임 지식경제부 장관

화려한 ‘친정’ 복귀 “집안 살림 잘 부탁해요”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홍석우 전 코트라 사장이 지식경제부 장관에 취임했다. 지난 9월 정전사태 이후 최중경 전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지 한 달 만이다. 이에 따라 홍 장관은 내부 출신 장관이란 영예를 안고 ‘친정’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긴 이르다는 지적이다.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게 그 이유다.

최중경 전 장관 사의 표명한 지 30일 만에 내정
지경부 요직 두루 거쳐…중소기업·무역 분야 두각


청와대가 9·15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후임으로 홍석우 전 코트라 사장을 임명했다. 산통 끝에 단행된 인사다. 정전사태가 발생한 지 42일, 최중경 전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지 30일 만에  단행된 인사다.

인선 배경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30여년간의 지식경제부 업무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높은 식견을 바탕으로 산업·무역·중소기업·에너지 분야 등의 당면 현안을 무난하게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TK, 고려대 인맥
타이틀 모두 피해

홍 장관은 지식경제부의 전신인 상공부와 산업자원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무역정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어지간해서는 역정을 내지 않아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괄괄하기보다는 온후하고 차분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끈다는 평가다.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사실 홍 장관은 지경부 장관 하마평에서 그다지 자주 오르내리던 인물이 아니다. 그동안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을 비롯해 기획예산처 출신인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 한준호 삼천리 회장, 김영학 전 지식경제부 2차관, 오영호 무역협회장 등이 장관 후보자로 거론됐다.

김동선 청장은 2년 넘게 청와대 지경비서관을 지내며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김대기 경제수석 역시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온 데다 합리적 성품으로 무난한 조직 관리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준호 회장은 정전사태 경질 인사에 따른 후속 인사인 만큼 에너지 분야 전문가를 후임 장관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김영학 전 차관 역시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하마평에 올랐다. 옛 산자부에서 자원개발실장을 역임한 오영호 무역협회장도 후보로 언급됐다.

쟁쟁한 후보군 속에서 홍 장관이 발탁된 것은 지경부 전문가이면서도 출신 지역·학교 등에서 여론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홍 장관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TK와 고려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피한 것이다.

게다가 무역·중소기업 전문가로 분류돼 정부의 공생 발전에도 부합된다는 평이다. 공직 생활을 상공부 수출 1과 사무관을 시작으로 주미대사관 상무관, 산업자원부 무역정책과 과장, 부산·울산 지방중소기업청 청장, 대구·경북 지방중소기업청 청장을 맡으면서 무역·중소기업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홍 장관 스스로도 이번 인사를 예상하지 못했다. 코트라 사장에 취임한 지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홍 장관은 청와대가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통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홍 장관은 지난 15일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치렀다. 이어 다음 날인 지난 16일 지식경제위원회는 별다른 이견 없이 ‘적격’ 의견으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지경위는 청문보고서를 통해 “홍 후보자의 30여년 간의 공직생활 경험과 전문성을 감안했을 때 실물경제와 에너지 자원 정책을 총괄하는 지경부 장관으로서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 자원 정책의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홍 후보자가 총괄업무를 경험하면서 전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고, 재산관련 의혹이나 도덕성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경부 출신인 홍 장관의 취임에 지경부는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경부 측 관계자는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지경부가 안고 있는 현안을 잘 아는 내부 출신이 장관이 돼 그만큼 문제 해결에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홍 장관이 결단력이 있어 여러 문제의 정확한 개선 방안을 내놓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홍 장관은 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 이후 8년 만에 내부 출신 장관이란 영예를 안고 친정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긴 이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여간 험난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재산관련 의혹이나
도덕성 문제없다

연일 치솟는 휘발유 가격 안정과 정전사태 재발 방지는 물론 곧바로 닥쳐올 겨울철 전력난 대비가 해결해야할 현안 1순위다. 올 연초부터 중동사태 악화 등 악재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국내 유가시장에 상륙한 고유가는 집권 후반기 국가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서민경제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고유가는 지경부가 올해 내내 머리를 싸매고 해법 찾기에 골몰한 선결 과제다.

정부가 올해 4월 초 정유사에 대한 압박을 통해 3개월간 한시적인 가격인하 결정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7월 이후 다시 기름값이 오름세를 보이면서 휘발유는 7주 연속 상승세를 그리며 기름값 2000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 전 장관이 회계사 출신임을 내세워 정유사의 수익구조를 샅샅이 뒤지고, 주유소 장부를 들춰내가면서 가격 거품을 빼기 위해 팔 걷고 나섰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정전사태로 사의 표명을 한 뒤에는 최 전 장관이 의욕적으로 내놓은 대안주유소 등의 각종 기름값 대책에 힘이 빠지면서 정부 눈치를 보던 업계는 기름값 인상에 거침이 없는 모습이다. 만약 홍 장관이 이런 기름값 난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충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지경부 뿐만 아니라 MB정부 전체에 대한 실망감과 불만감이 팽배해질 수 있다.

전력수급 안정대책 역시 고심거리다. 당초 최 전 장관이 올 연말까지 자리를 지켜 정전사태 피해보상과 대책을 마무리 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예상보다 빠른 교체로 홍 장관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인사청문회 무난…경과보고서도 이견 없이 채택
고유가, 전력수급 안정, 동반성장 등 과제 산적


정전사고 피해자에 대한 손해보상 문제나 재발방지 대책, 전력공급 능력 확보, 한전과 전력거래소 통합 등 전력기관 간 역할 설정 등 민감한 현안에서 전력당국의 수장인 홍 장관이 어떤 업무스타일로 위기를 돌파할지 관심을 모은다.

글로벌 재정위기 이후 갈수록 뚜렷해지는 수출 둔화나 한미 FTA 후속조치 등 현안이 쌓여 있다. 올해 수출입을 포함한 무역 규모는 1조 달러 달성이 확실해 보이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쪼그라드는 등 앞으로 한국 수출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도 큰 관심사다.
동반성장 정책도 추진 1년이 지난 현재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공생발전을 국정기조로 내세우면서 주무부처 수장인 홍 내정자의 어깨를 무겁게 할 공산이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도 문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초과이익공유제 등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갈등의 골이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만큼 홍 내정자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놓을지도 주목된다. 다만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반성장 문제는 원만하게 풀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이밖에 최 전 장관이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을 주도한 산업자원협력실이 향후 홍 장관 밑에선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국가 간 산업자원협력을 확대하고 산업자원협력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설된 산업자원협력실은 최 전 장관이 직접 진두지휘할 만큼 지경부내에서 가장 급부상한 핵심 부서로 꼽힌다.
또 MB정부가 집권 성과로 내세우며 공을 들이고 있는 자원개발정책이나 한전 등 주요 공기업의 적자문제,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도 홍 장관이 고민해야할 숙제다.

부드러운 영국신사
카리스마 보여줄까

한편, 일각에선 ‘부드러운 영국 신사’로 알려진 홍 장관이 이 같은 쟁점들을 결단력 있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있다. 최 전 장관이 기름값 대책부터 대·중소기업 공생 발전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를 대신해 업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만큼 최 전 장관에 비해 홍 장관의 카리스마가 얼마만큼 발휘될 수 있을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물론 그의 뛰어난 소통 능력이 부처 간 협의에서 잘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행시 23회 동기이면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동문으로 친분이 두터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호흡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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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