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이 있는 여행 ④하동 평사리들판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풍요로운 들녘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높고 푸른 하늘은 시나브로 땅으로 내려오면서 여름과 몸을 섞는다. 들판의 곡식은 뜨거운 햇볕을 쬐고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누렇게 익어간다. 벼가 고개를 숙이면 완연한 가을이다. 왜 황금빛 들판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하동 평사리들판은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지다. 고소성에 오르면 평사리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자락 형제봉과 구재봉이 들판을 품고, 섬진강이 재잘재잘 흘러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고소성에서 내려와 평사리들판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부부송을 만난다.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소나무 두 그루는 악양면의 상징이자 수호신이다. 가을바람이 황금 들판을 밟고 걸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악양면 평사리들판은 박경리 선생이 쓴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평사리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으면 하동 고소성(사적 151호)에 올라야 한다. 고소성의 입구는 한산사다. 드라마 〈토지〉 촬영장인 최참판댁 입구에서 왼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자동차로 5분쯤 가면 나온다.

 

 

사적 151호 ‘고소성’

한산사는 구례 화엄사와 창건 시기가 비슷하다고 알려진 고찰이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최근 중창하는 바람에 세월의 흔적이 없어 아쉽다. 한산사 앞쪽 전망대에 서면 평사리들판과 섬진강이 나타난다. 고소성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더 높고 깊다. 한산사에서 고소성까지 800 m. 제법 가파른 산길을 20분쯤 오르면 드디어 성벽이 보인다.

 


성벽을 타고 오르면 시원한 바람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바둑판처럼 정돈된 평사리들판 274만여㎡(약 83만평)가 한눈에 펼쳐진다. 왼쪽 형제봉에서 맞은병풍처럼 감싸고, 오른쪽으로 섬진강이 도도하게 흐른다. 그래, 이 장면이다. 악양면 평사리가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낙점된 결정적 이유를 알 수 있는 풍경이다.

 


박경리 선생은 경상도 땅에서 만석꾼 두엇은 낼 만한 들판을 찾고 있었다. 통영 출신이라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전라도 땅에나 그런 들판이 있나 싶어 낙담하다가, 우연히 평사리들판을 보고 ‘옳다구나!’ 무릎을 쳤다고 한다. 배경이 정해지자 소설은 착착 진행됐고, 평사리 뒷산인 지리산의 역사적 무게와 수려한 섬진강이 소설을 더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렇게 탄생한 <토지>는 현대문학 10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꼽힌다. 악양면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4대에 걸친 비극적 사건을 다루며 개인사와 가족사뿐 아니라 역사, 풍속,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소성은 성벽 길이 약 1.5km에 높이 4~5m 규모로, 방어에 유리한 천혜의 자리를 꿰찼다. 동북쪽은 험준한 지리산이 버티고 섰고, 서남쪽은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남해에서 올라오는 배를 감시하고, 상류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좋은 자리다. <하동군읍지>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백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성벽 위에 있는 잘생긴 소나무 그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풍광을 감상하다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저 들판을 직접 걸어볼 차례다. 한산사로 내려와 동정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동정호는 평사리들판 입구에 자리한 연못으로, 두보가 예찬한 중국 둥팅호(洞庭湖)에서 이름을 따왔다. 악양루에 오르니 너른 연못이 한눈에 들어온다. 버드나무가 바람에 치렁치렁한 가지를 날리는 모습이 평화롭다.

 


악양루에서 내려와 평사리들판을 가로지른다. 황금빛 들판 사이에 난 신작로를 500m쯤 걸으면 소나무 두 그루가 다정하다. 부부송 앞에 ‘평사리들판(무딤이들)’ 안내판이 있다. 평사리들판은 악양벌, 무딤이들이라고도 한다. 악양면 토박이들은 홍수가 나서 섬진강 수면이 높아지면 이 들판에 무시로 물이 들어오고, 수면이 낮아지면 다시 빠져서 무딤이들이라고 불렀단다. 토속적 어감이 친근해 “무딤이들 무딤이들~” 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박경리 선생이 마른논에 물이 들어오는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가을철 벼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소리도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지리산 자락 형제봉·구재봉 품고 섬진강 흘러
악양면 평사리들판 상징이자 수호신, ‘부부송’

평사리들판을 둘러봤으니 악양면의 명소를 구경할 차례다. 동정호에서 1km쯤 들어가면 골목을 벽화로 꾸민 하덕마을이 나온다. 골목길갤러리 ‘섬등’은 이 마을의 별칭이 섬등이라 붙은 이름이다. 마을이 섬처럼 동떨어져서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벽화는 작가 27명이 마을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일정 기간 머물며 완성했다. 마을 입구에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신다. 인사드리자 “머 볼 게 있다 왔능교~” 하며 다정하게 맞아주신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니 호젓한 골목이 이어지고, 차 꽃 벽화가 환하다. 골목마다 쇠로 만든 새싹, 농기구, 나무로 만든 황소 등 작품이 집과 어우러진다. 어느 집 열린 대문 너머로 엄마와 아빠, 아이의 장화 세 켤레가 가을볕을 쬔다. 왠지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해진다. 골목을 한 바퀴를 돌아 나와서 아까 뵌 할머니께 꾸벅 인사 올렸다. “할머니 볼 거 많아요. 구경 잘했습니다. 마을이 제 고향 같아요.”
하덕마을에서 1km쯤 더 들어가면 매암차문화박물관이 있다. 도로 옆에 자리한 박물관은 별거 없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잔디가 깔린 아담한 마당과 찻집 건물, 야외 테이블, 제법 넓은 차 밭이 펼쳐진다. 차 밭은 드물게 평지에 있어서 둘러보기 편하다.

 


매암차문화박물관은 1963년 강성호 씨가 다원을 조성해 2000년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 있는 찻집 ‘매석(매암다방)’에서 홍차를 마신다. 이곳은 발효차인 홍차를 전문으로 만든다. 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발효하지 않은 녹차, 반 발효한 청차, 완전 발효한 홍차, 후 발효한 보이차로 구분한다. 세작으로 만든 홍차는 그윽한 맛이 일품이다. 차를 마시고 여유롭게 차 밭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행의 대미 ‘레일바이크’

하동 여행의 대미는 북천면의 하동레일파크로 장식하자. 우선 20분쯤 풍경열차를 타고 옛 양보역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레일바이크가 출발하면 비교적 내리막이 많아 힘들지 않다. 터널 구간 1km가 하이라이트다. 형형색색 LED 전구가 쏟아내는 불빛 덕분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내리막이다. 페달에서 발을 떼고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한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과 화사한 코스모스 꽃밭을 달리는 맛이 통쾌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한산사→하동 고소성→동정호→평사리들판 부부송→하덕마을→매암차문화박물관→하동레일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한산사→하동 고소성→동정호→평사리들판 부부송→하덕마을→매암차문화박물관, 
둘째 날: 하동레일파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하동문화관광 http://tour.hadong.go.kr  

문의 전화
- 하동군청 관광진흥과 055)880-2377
- 매암차문화박물관 055)883-3500
- 하동레일파크 055)882-2244

대중교통 정보
서울-하동,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11회(06:30~22:00)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하동시외공용정류장에서 악양·쌍계사·의신행 버스, 최참판댁 정류장 하차, 약 40분 소요. 한산사까지 도보 약 30분.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하동시외공용정류장 055)883-2663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구례화엄사 IC→섬진강대로→한산사

숙박 정보
- 쉬어가는누각: 화개면 화개로, 055)884-0151, www.쉬어가는누각펜션.com
- 구재봉자연휴양림: 적량면 중서길, 070-8855-8011, www.hadongforest.co.kr
- 아름다운산골: 화개면 범왕길, 055)883-7601, www.harmony-pension. co.kr
- 평사리문학관 전통한옥체험관: 악양면 평사리길, 055)882-6669

식당 정보
- 찻잎마술(고운비빔밥·별천지찜): 화개면 화개로, 055)883-3316, http://blog. daum.net/teafood
- 콩사랑차이야기(두부전골·두부백반): 화개면 화개로, 055) 882-8313
- 솔봉식당(정식·제육볶음): 악양면 악양서로, 055)883-3337
- 흥재첩식당(재첩국): 하동읍 경서대로, 055)884-3903 

주변 볼거리
최참판댁, 평사리공원, 구재봉자연휴양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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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