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진 거짓말’로 본 복잡한 파라다이스 집안 탐구

한 지붕 두 가족 ‘카지노 재벌’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낸시랭과 왕진진의 갈등으로 화제가 된 그룹이 있다. 카지노로 유명한 파라다이스 그룹이다. 낸시랭은 왕진진이 자신을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라고 속였다고 폭로하면서 불똥이 튀었다. 눈길이 쏠린 파라다이스 그룹을 확인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과 그의 남편 왕진진은 부부의 연을 맺을 당시부터 현재까지 논란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낸시랭과 왕진진은 지난해 12월27일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왕진진의 과거 범죄 행적 의혹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혀 무관”
난처한 그룹

왕진진은 또 2011년 고 장자연의 지인이라며 고인의 편지를 공개하면서 화제가 됐지만 진위 여부를 두고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왕진진이 파라다이스그룹의 혼외자라는 주장을 펴면서 세간의 눈길은 더욱 집중됐다. 

이와 관련 사기 혐의로 왕진진이 피소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라다이스 그룹과 왕진진과의 관계에 눈길이 쏠렸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사업가 A씨는 “(왕진진이) 지난해 3월 사업자금으로 3000만원을 빌려 간 뒤 1년이 지나도록 돈을 갚지 않고 있다”며 그를 사기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A씨는 “왕진진이 자신을 파라다이스 전낙원 창업주의 아들이라며 5000억원대 소유 도자기로 아트펀드 사업을 하는 재력가라고 속인 후 접근해 3000만원을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논란 속에서도 굳건해 보였던 낸시랭과 왕진진 부부 관계는 의외로 쉽게 깨졌다. 여기서도 어른거리는 것이 파라다이스 그룹이었다.

낸시랭은 왕진진이 파라다이스 전 창업주와는 무관하다면서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낸시랭은 한 언론사를 통해 “왕진진이 진실 고백만 했어도 새로운 삶을 함께할 계획이었다”며 왕진진의 모친과 대화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의 어머니는 왕진진이 ‘내가 낳은 자식이고, 농사짓던 아버지는 전남 강진서 경운기 사고로 돌아가셨고, 전 회장(창업주)은 왕진진의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낸-왕 갈등으로 전씨일가 가계도 주목
왕회장 혼외자? 창업주 이름 오르내려

하지만 왕진진이 다시 언론 등을 통해 반박하면서 진실게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왕진진은 23일 <일간스포츠>에 “낸시랭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공개한 문자 내용은 악용된 부분이 많다. 시골에 계신 (날 키워주신)어머니와 가족들이 모두 어처구니 없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무팀을 꾸려 지금 법적대응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공방을 예고했다.

파라다이스 그룹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전 창업주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오르내리는 상황이 유쾌하지 않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2003년 배우 김상중이 전 창업주의 딸 전우경씨와 혼인이 임박했다라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파라다이스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었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기사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기사 전문에 전 창업주의 딸로 소개된 전우경 양은 초등학교 1학년 생 손녀의 이름”이라고 해명했다. 

최초 보도한 언론사도 해당 기사를 삭제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왕진진의 주장으로 전 창업주의 과거 악몽이 되살아났다.   

본의 아니게 이름이 오르내린 전 창업주는 카지노업계의 큰손으로 지난 2004년 11월3일 작고했다. 전 창업주는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뒤 올림포스 관광호텔 대표이사로 관광업계에 발을 들였다. 

1973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카지노를 인수하면서 카지노 사업의 큰손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세운 파라다이스는 현재 서울, 부산, 제주,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호텔을 설립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1993년 6월 <한국일보> ‘카지노 5개 거느린 <밤의 황제>/전낙원씨는 누구인가’ 제하 기사에 따르면 전 창업주는 워커힐카지노 인수 후 1조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교술이 뛰어나고 재력도 탄탄해 정·관·재계는 물론 언론계 인사 등과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파라다이스 그룹은 관광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서울과 인천, 부산 제주에 각각 1개소, 총 4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파라다이스는 연결기준 매출액 6680억419만원을 기록했다.

배다른 자녀
재산 다툼도 

전 창업주가 타개하고 나자 그가 소유한 상속분을 두고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전 창업주는 생전 두 번 혼인했다. 첫 번째 부인과는 전필립 파라다이스 회장과 전원미씨를 뒀으며, 두 번째 부인 사이에는 전지혜씨가 있다.

전지혜씨는 전 창업주의 상속재산에 대한 공정한 분할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2006년 서울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혜씨는 소장을 통해 “2004년 11월3일 당시 전락원 회장의 사망으로 장남과 장녀, 차녀 등 세 남매가 공동상속인이 됐으나 장남인 전필립씨가 상속재산의 공정한 분할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지혜씨 측은 상속 재산 규모는 예금규모만 최소 수천억에 달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파라다이스 주식과 계열사의 주식을 합하면 상속재산 규모는 더 확대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외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전 회장이 상속재산의 공정한 분할을 거부하면서 실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전 회장이 전 창업주 사망 직후 전 창업주의 유언장이 존재하지 않고 유언에 따라 상속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상속재산을 모두 가져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측은 전 창업주 상속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언론 등을 통해 “지난 2004년 11월3일 돌아가신 고 전 창업주의 상속 재산은 고인이 생전에 작성한 유언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상속됐다”며 “당시 지혜씨도 상속에 대한 이의 제기가 없는 상황에서 전 회장이 법에 따라 상속세를 납부, 성실한 납세자의 의무를 다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상속이 완료된지 2년여가 경과한 시점서 종결된 사안을 지혜씨가 문제시하며 상속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고 전했다.

특히 “피상속인인 전 창업주가 2004년 7월23일 법무법인 공증아래 유언 증서를 작성했다”며 “전 창업주의 재산 상속은 유언 증서의 내용에 따라 한 치 틀림없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당시 소송은 이른바 배다른 남매지간의 소송으로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듬해 열린 선고 공판서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는 지혜씨가 전 회장과, 고인의 큰딸 원미씨를 상대로 낸 상속재산 분할 청구 소송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유언 공증에 참여한 사람들이 필립씨와 친할 뿐 전락원 전 회장과 친분이 없고, 유언을 작성한 장소가 사실과 다르다며 유언장이 무효라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가 상속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착오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착오란 외부 의사표시와 마음속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당사자가 모르는 것인데, 당시 원고의 마음속 의사에 대한 아무런 주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골육상쟁의 법정 다툼이 마무리된 이후 전 회장이 파라다이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전 회장은 파라다이스 그룹 지주사인 파라다이스글로벌의 지분 67.33%를 가지고 있다. 파라다이스글로벌은 주력 계열사 파라다이스를 비롯해 두성, 비노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투어, 파라다이스플래닝, 파라다이스에이치앤알, 파라다이스이앤에이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법정 분쟁 이후에도 지혜씨가 주력 계열사 파라다이스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지혜씨는 파라다이스글로벌, 학교법인계원학원, 파라다이스복지재단 등의 법인을 제외하면 전 회장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혜씨의 지분률은 1.9%로 전 회장의 지분 0.46%를 웃돈다. 이복 언니인 원미씨의 0.29%보다도 많은 지분이다. 한 차례 분쟁을 겪은 후 공존 관계를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기꾼에 걸린
김상중도 등장

파라다이스그룹의 오너 일가 가풍은 은둔형 경영으로 유명하다. 이는 언론에 부정적인 이름이 오르내려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전 창업주는 문민정부 초기인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 탈세 혐의를 받고 검찰의 수사를 피해 3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이후 귀국했으나 서울대병원서 치료를 받으며 검찰에 출석하지 않았다. 당시 전 창업주는 122억원을 탈세하고 1600만달러를 당국의 허가없이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결국 전 창업주는 재판에 넘겨져 1997년 2월 징역 5년 벌금 161억원 및 추징금 120억원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한 뒤 이듬해 8·15 특사로 석방됐다. 

파라다이스 그룹은 카지노 사업을 주력으로 그룹 규모로 성장했기 때문에 사행성 산업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따라다닌다. 이 때문에 언론 등에 대한 노출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창업주부터 시작된 은둔형 경영은 아들인 전 회장이 물려받았다.

하지만 거액의 현금이 오고가는 사업인 만큼 사정당국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파라다이스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국세청은 이달 초 서울 중구 동호로 소재 파라다이스그룹 본사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소속 조사요원들을 투입해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011년 이후 6년 만에 이루어지는 정기세무조사였다. 하지만 지난 2006년과 2011년 국세청으로부터 특별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어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부정적인 이미지 부각
과거 일가 사칭 사건도

특별세무조사는 조사4국이 투입된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서울국세청 조사4국을 투입하는 것은 비자금 조성 등 구체적인 탈세 혐의를 포착했을 경우다. 피조사자에게 통보 없이 조사해 비정기 세무조사라고도 한다. 

세무조사 과정서 탈세 행위 등이 드러나면 세금 추징하고 검찰 고발한다. 이 때문에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재계의 눈길이 쏠린다.

2011년 정기 세무조사에서는 거액의 세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당시 세무조사에서는 파라다이스가 148억원 상당의 추징금 부과 결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라다이스는 공시를 통해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2006년 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의 법인세 신고·납부 내용에 대한 통합세무조사를 받고, 추징금 148억7627만원을 부과 받았다고 밝혔다.  

최근 전 회장은 은둔형 경영자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인 사업과 문화적인 사업 등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PARADISE CITY)’가 지난달 아시아 모던&컨템포러리 예술전시공간인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PARADISE ART SPACE)’를 개관했을 당시도 전 회장은 적극적으로 사업을 설명했다.

당시 전 회장은 “국내외 유수 아티스트의 대표작 소개와 관람객 참여를 유도하는 체험형 전시 기획을 통해 국적을 넘나드는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는 파라다이스그룹이 수집해 온 주요 미술품과 새로운 현대미술 기획 전시를 만날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제프쿤스, 카우스 등 동시대 가장 핫한 세계 유명 미술 작품이 곳곳에 배치돼있다.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은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전필립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부인 최윤정(48)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은 올해 세계적인 영국 미술전문 계간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200대 컬렉터’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이름도 올라있다.

사행 이미지
문화로 쇄신

재계의 한 관계자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성장이면에는 사행성 사업이란 어두운 면이 자리잡고 있다”며 “왕진진의 거짓말 논란은 어둠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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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