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키지 못한 약속

다툼 끝에 남은 건 ‘빈손’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여야가 추진키로 한 국정과제들의 실마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감사를 관통한 국회는 ‘정쟁 국회’로 수렴했고, 여야 대치는 심화되고 있다. 10월 국감을 지나 11∼12월 펼쳐질 예산 정국서 그 대립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과제 타결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까닭이다. 국회 전반기 때부터 지적됐던 ‘공전 국회’는 후반기서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핵심 국정과제가 올해 안에 합의되지 못할 경우 국회를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국회의 대결양상은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감사를 지나면서 비롯됐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국당은 이를 두고 ‘문재인정권의 가짜 일자리’ ‘고용세습’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한껏 당기고 있다. 

대격돌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은 한국당과 발맞춰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진상규명을 약속하면서도 정치공세라며 선을 긋는 모양새다. 야 4당의 국정조사 요구로 판이 커지고, 여당이 정면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여야의 대치는 10월을 지나 11월에도 격화될 예정이다. 11월1일부터 실시되는 예산안 심사로 예산 정국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예산안 심사를 두고 일찍부터 험로가 예상됐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470조 예산안에 대해 민주당은 예산안 통과에 주력할 것을 시사했다. 

반면 한국당은 ‘밑 빠진 독에 세금 퍼붓기’라며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이를 앞둔 가운데 여야가 채용비리 의혹으로 불붙으면서 11월 국회에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12월 정기국회의 종료를 채 두 달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서 여야는 선명한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여야 갈등이 지속된다면 핵심 국정과제의 연내 합의는 불투명하다. 

여야가 처리하기로 언급한 국정과제는 ▲개헌 ▲선거구제 개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 정도로 꼽힌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사안들이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1∼12월 예산 정국
“대립 극에 달할 것”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서 실시된다. 정개특위는 지난 24일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날 위원장으로 선출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회의를 주재했다.

정개특위의 활동은 지난 7월26일 특위 구성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대략 석 달 만이다. 지난 7월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특위가 이제서야 첫걸음을 뗀 것이다. 특위의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실제 활동 기간은 두 달 남짓에 불과하다. 이 기간에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합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정치권서도 선거제 개편에 대한 요구가 강한 만큼 극적 타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은 선거제 개편에 긍정적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고, 문 의장은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이다.

바미당과 평화당 그리고 정의당 등은 연일 선거제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현행 소선거구제에 유리한 민주당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최근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현재로서는 개헌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 어려워 선거법이라도 따로 분리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분리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당은 이들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달리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서 논의된다. 사개특위는 정개특위와 마찬가지로 지난 18일 구성됐다. 사개특위와 정개특위는 국회가 이날 구성에 합의한 6개 비상설 특별위원회 중 하나다.

사개특위는 지난 1월 출범해 일련의 사법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도 당시 논의될 사안이었다.
 

야는 “사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협치를 다짐했지만 활동이 종료된 지난 6월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공전을 거듭했던 전반기 사개특위를 두고 ‘3무 특위(무능, 무성의, 무기력)’라는 비판이 있었던 까닭이다.

전반기 사개특위의 활동기한이 6개월 연장되면서 지금의 사개특위가 구성됐다. 그러나 후반기 사개특위도 최근에 이르러서야 활동을 재개했다. 짧은 기간 탓에 시작부터 활동 연장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사개특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19일 tbs 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시간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 연장돼야 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시작 전부터 하게 된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정쟁…국정과제 난항
100일간 정기국회 “협치 무색”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의 처리도 불투명하다. 최근 정부가 평양공동선언문 등을 국회 비준 없이 직접 비준해 야당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는 지난 24일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서 심의·의결됐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달 19일 법제처에 평양공동선언 등의 비준을 위해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 질의했다. 

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 선언의 이행 성격이 강하다”며 “판문점 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어 평양 선언은 따로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서 “남북관계의 발전과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 쉽게 만들어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보다 상위에 있는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시행령을 공포하는 격이자 애를 낳기도 전에 출생신고부터 먼저 하는 상황”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바미당 손학규 대표 역시 같은 날 국회서 “평양공동선언이 판문점 선언보다 구체적 협의를 담고 있다”며 “추상적 판문점 선언은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고 평양공동선언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은 모순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가시밭길

한편 문 의장은 지난 9월3일 정기국회 개회사를 통해 “이번 정기국회 100일을 민생입법의 열매를 맺기 위한 ‘협치의 시간, 국회의 시간’이 되도록 하자”며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검찰개혁,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