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법부 개혁, 어디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법은 정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지만 최근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정도를 넘어섰고, 국회의 사법개혁 의지는 요원하다. 사법개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지난해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탄희 판사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지시를 받고 법원행정처 근무를 거부했다. 이 판사는 그 해 같은 달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발령 후 이 판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 좋은 취지로 한 것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판사는 근무 거부 후 겸직해제됐다.

하자고만 하고
요란한 빈수레

이 판사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법관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한 문건의 존재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법 농단 사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후 사법 농단과 관련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 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정운호 게이트’ 및 법원 집행관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 동원, 행정처 비자금 조성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진료 특허소송 관여 ▲상고법원 추진 위한 정치권·언론 로비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 개입 ▲헌법재판소 평의 내용 등 공무상 비밀 유출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제청심판 결정 관여 등 의혹만 1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사법 농단의 핵심 축으로 대법원과 행정처를 꼽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당시 행정처가 이행했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번번이 부딪혔다.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이 ‘줄기각’이란 비판을 받게 된 까닭은 기각률이 일반 사건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로 촉발된 불씨, 사법 농단 
청구·기각 반복…법원-검찰 ‘영장 대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0일,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온전히 발부된 건수는 0건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박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27.3%가 기각됐다. 일부 기각률은 72.7%를 기록했다.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대부분 기각된 것과 달리 일반사건은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이 발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2017년 5년간 일반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평균 90.2%를 기록했다. 

영장이 완전히 기각된 비율은 0.8∼1.0% 사이였고, 일부 기각률은 7.4∼10.4%로 나타났다. 일반사건에 대한 영장기각률이 약 1%인 점을 감안했을 때 사법 농단 수사서 유독 영장 발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전직 수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 횟수와 사유 때문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 이후 사용 중인 차량에 한해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부장판사는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

이후 검찰은 지난 8일,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아닌 주거지에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소재의 한 주거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 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벌써 4번째였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검찰과 법원은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양 전 대법원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법원은 줄기각을 통해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사법 농단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면서 여론의 비판은 거세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서 여야 의원 관계없이 사법부를 향해 거침없이 날을 세운 이유다.
 

지난 10일,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열린 법사위 국감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를 지적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사법 농단 의혹(법관 사찰·재판 거래)과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줄기각, 사법부 개혁 등을 따져 물었다. 

대법원장의 용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국감 질의에선 검찰 출신 의원들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이 영장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검사로 일했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제가 법조 생활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여태까지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을 정조준한 말이었다.

백 의원은 안철성 행정처장에게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고, 안 처장은 “그런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행정처 김창보 차장과 이승련 기획조정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백 의원은 “이런 기각에 대해 어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쐐기를 박았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주광덕 의원도 송곳 질의를 이어갔다.

주 의원은 “법원이 전·현직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있어서 일반 국민에 대한 사건과는 천지차이의 태도를 보이지 않느냐”며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조직 보호,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게 국민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법 농단을 밝히자는 거냐, 덮자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진심으로 사법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 개혁하고 용퇴해야 한다. 사법부를 위해 순장하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평화당 박 의원은 “국민 73%가 특검 도입을, 77.5%가 특별재판부 설치를 지지한다”며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현재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주 의원 역시 “지금 수사로 법원에 기소하면 국민 여론과 같이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역시 긍정적이었다.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지난달 11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검 vs 법
힘겨루기

국회 법사위원들의 특별재판부 주장은 사법부 개혁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의원들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 개혁을 위한 정당 간 협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원 구성 합의를 쉽게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 연말까지 운영될 사개특위는 지난 7월26일 국회 본회의서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다. 국회법상 본회의서 특위구성결의안이 통과되면 5일 이내에 원 구성을 해야 한다. 

지난 7월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국회는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

사개특위원 구성이 이번 달 안에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연말까지 이번 달을 포함해 약 두 달 정도 남았다. 사개특위가 다룰 현안 역시 만만치 않다. 

사개특위는 사법 농단 규명을 비롯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개특위가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회 스스로 사법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8일 SNS, 페이스북을 통해 “행정처 폐지 등 사법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입법 조치를 국회에 요청했다. 조 수석은 “(사법개혁은)사법부가 주도하되, 입법사항인 만큼 국회가 매듭지어야 한다”며 “국회 사개특위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조속한 사개특위 구성을 당부한 것이다.

사개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리 검토 문건 작성 사실 등을 봤다”며 “법원 개혁도 피할 수 없는 사법개혁의 중요한 과제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국감이 종료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연말까지 사법 개혁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국회뿐 아니라 대법원서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를 구성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법원은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재판 중심 사법행정’ 등 개혁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 대법원이 사건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던 만큼 상응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활동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필요 시 6개월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국회-대법원 개혁 투트랙…가능성은?
상황 진척 없어, 국민적 비판 임계점 

위원회는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한 재판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우려 근절 및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통한 사법신뢰 회복방안 마련 등 4대 개혁과제 관련 안건을 심의한다. 위원회는 심의 결과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게 된다.

위원회는 지난 3월1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일까지 총 9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최근까지 행정처의 사무처 변경 권고안과 법관 인사 이원화 완성, 영상재판 등 스마트법원 4.0 사업, 검찰개혁, 판결문 공개 확대 사안 그리고 민·형사 판결서 통합 검색·열람 시스템 도입 등을 도출해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0일 대법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향후 개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위원회서 건의된 사항들을)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곧 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서 법사위 국감이 열린 다음날 사회원로와 시민사회, 민중단체, 정당 등 각계 단체 인사 300여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사법 적폐 청산을 주장했다.

이날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사법 농단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하기엔 기존의 재심제도 조건이 너무나 까다롭다”며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다 결국
흐지부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전관예우 사태가 계속되면 특별 재판부와 특별영장담당 법관을 지명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정기 국회서 반드시 해결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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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