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원료 재료 ‘모나자이트 제품’ 주의보

곳곳이 위험…방사능 끼고 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라돈 침대 공포’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라돈이 검출된 원인은 모나자이트란 돌가루를 썼기 때문. 정부 조사 결과 모나자이트는 일부 온열 매트와 건강 팔찌, 화장품 원료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벽돌, 타일 등 건축자재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생활 속 곳곳에 퍼져있는 방사선 노출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공산품의 라돈 검사와 검출 기준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3일, 한 매체서 대진침대에 들어간 음이온 파우더서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진침대에 함유된 음이온 파우더에는 환경부가 정한 실내 공기 라돈 기준(1m³당 200Bq)의 3배가 넘는 620베크렐(Bq)의 라돈이 검출됐다. 라돈은 토양이나 암석, 물 속에서 라듐이 핵분열할 때 발생하는 무색·무취의 가스로 높은 농도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암, 위암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수거 600여개
집단소송 예고

이후 논란이 점차 확산되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조사가 시작됐고 원안위는 5월10일 라돈(Rn) 검출 논란을 일으킨 대진침대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안위는 대진침대 모델 9개에 대해 매트리스 속 커버를 조사한 결과 라돈이 검출되긴 했으나 그 농도가 환경부 권고 기준(1m3당 200Bq)보다 훨씬 적은 1m3당 58.5였고, 방사능으로 인한 피폭량은 연간 최대 0.15mSv로 안전 기준치(1mSv)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안위는 5월15일 2차 조사 결과서 대진침대 매트리스 일부 모델서 라돈 피폭량이 기준치의 최대 9.35배까지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1차 조사 결과를 뒤집었다. 

원안위는 1차 조사 때는 문제가 된 모나자이트가 포함된 속커버만 조사했으나 이후 매트리스 스펀지에서도 모나자이트가 사용된 것이 확인돼 2차 조사에서는 스펀지까지 추가 조사하고 호흡을 통해 유입되는 내부 피폭까지 합산하면서 방사선 피폭량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원안위는 대진침대 매트리스가 가공제품 안전기준에 부적합하다고 판단, 수거 명령 등의 행정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진침대는 음이온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나자이트라는 광석을 사용했는데 이 성분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된 것이 알려지면서 음이온 관련 제품에 대한 위험성도 제기됐다. 즉 모나자이트는 음이온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침대·팔찌·목걸이·벽지 등에 사용되고 있으나 미량 함유된 우라늄과 토륨 등이 1급 발암물질인 라돈과 토론(라돈의 동위원소) 등을 발생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대진침대에 이어 까사미아가 2011년 판매한 매트서도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된 상품은 2011년 당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제조된 세트상품으로, 토퍼 1개와 베개 2개, 바디필로우(몸통베개) 1개 등 총 4개로 알려졌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침대서 연이어 라돈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라돈포비아(공포증)가 확산됐다. 

기준 3배 라돈 검출…전량 수거 명령
사태 수습 안됐는데…제품 추가 발견


지난달에는 기능성 베개 브랜드 ‘가누다’의 베개 커버와 가구업체 ‘에넥스’의 매트리스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 라돈침대 사태가 끝나지 않은 상황서 추가로 라돈 발생 제품이 발견된 것이다.

지난달 18일 원안위는 티앤아이의 가누다 베개, 에넥스 매트리스, 성지베드산업의 더렉스베드에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 정한 가공제품 안전기준(연간 1밀리시버트)을 초과한 방사선이 검출돼 해당 업체에 수거 명령 등 행정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가누다 베개의 경우 지난 5월31일 라돈이 검출된다는 소비자의 제보가 접수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회사 측은 자체 조사·측정을 통해 지난 7월26일 가누다 베개 2종 모델(견인베개, 정형베개)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결정했다.

원안위는 소비자로부터 수거한 6개의 시료를 확보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통해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 베개 커버서만 라돈·토론이 측정됐다. 2종 모델 모두서 연간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모델은 2011년 3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약 2만9000개가 판매됐다. 현재까지 약 1200여건의 자발적 리콜이 신청됐고 900여개가 수거된 상태다.

에넥스도 지난 8월21일 매트리스서 라돈이 검출된다는 소비자 제보를 받고 자체 조사를 통해 8월26일 매트리스 1종 모델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결정했다. 문제가 된 제품명은 ‘앨빈PU가죽 퀸침대+독립스프링매트리스Q(음이온)’이다.
 

원안위가 해당 모델 6개의 시료를 확보해 정밀 분석한 결과 모든 제품서 연간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넘겼다. 해당 모델은 2012년 8월에서 11월까지 244개가 팔렸다. 현재까지 자발적 리콜을 통해 신청된 5건 모두 수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속했지만…
계속되는 공포

아울러 원안위는 지난 6월25일 성지베드산업의 더렉스베드 제품서 라돈이 검출된다는 제보를 받고 해당 시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14개의 시료 중 4개서 연간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업체에 따르면 이 제품은 2013년부터 6000여개가 판매됐고 이 중 모나자이트를 사용한 제품은 1210개다. 그러나 원안위는 “이를 입증할 자료가 불명확하고 매트리스 모델도 구분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원안위는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해 2013년부터 판매된 더렉스베드 6000여개 전제품에 대해 수거 명령 등 행정조치를 실시했다. 제품 수거 시엔 해당 업체가 모나자이트 포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요구할 예정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향후 해당 업체의 결함 제품 수거 등 조치가 조속히 완료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며 “생활용품 등에 추가 결함 사례가 없는지 지속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석 연휴 전까지 ‘라돈침대’ 전량 수거를 약속했던 원안위는 약속과 달리 아직도 600여개를 수거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라돈침대(대진침대) 피해자 집단소송 청구액이 520억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만 이렇다 할 피해자 구제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라돈침대 파문이 일어난 지 5개월간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일관해 원안위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김성태(비례대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3일 원안위의 라돈침대 수거 현황을 조사한 결과 수거 대상 약 6만8000여개 중 미수거량이 600여개(지난 1일 기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미수거량은 대진침대·까사미아 제품 각각 500여개, 90여개 등이다.
 

원안위는 미수거량도 제대로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초 7000여개라고 했던 미수거량은 8월 말 9000여개로 늘었다. 9월 중순에는 다시 2만여개라고 정정했다. 원안위는 지난달 18일 미수거량이 2100여개로 줄었고, 추석 연휴 전 수거 및 해체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우왕좌왕
소극적 대처

처분 작업도 지지부진하다. 라돈침대 원인 물질인 모나자이트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며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을 예고하며 정부에 보상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 의원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인 로덱법률사무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 청구액은 5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신체적 피해 소송건수와 환불 소송건수는 각각 600여건, 5000여건이다. 가습기살균제(약 100억원대)·BMW 차량화재(약 40억∼50억원대) 사건과 비교하면 소송 액수는 생활안전 사건 가운데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피해 질병 인정 범위를 폐암뿐 아니라 폐질환과 백혈병, 갑상선, 피부질환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안위의 관리 소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07년 방사능 온열매트(모나자이트 사용) 사태를 계기로 2012년 ‘생활 주변 방사능 안전관리법’이 제정됐지만, 방사능 원료물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국내의 모나자이트 수입업체는 한 곳이고, 납품한 회사는 50여개에 불과하다.

김 의원은 “정부가 피해자 대책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피해를 숨기며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 차원서 피해자 전수조사와 역학관계를 파악해 피해자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개최된 ‘생활 속 방사능 물질 사용 얼마나 안전한가’를 주제로 한 소비자 포럼서 원안위 생활방사선안전과 채희연 과장은 “소비자 불안을 경감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춘 생활방사선 제품안전 실현을 목표로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의 규제 현황과 문제점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온열 매트, 건강 팔찌, 화장품…
벽돌, 타일 등 건축자재도 나와

그러면서 제도적 개선 방향으로 의심제품 조사를 확대하는 한편 방사선 위해제품 안전조치 실효성 확보 등에 대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식품첨가물과 기구·용기, 의약품·의약외품, 화장품, 의료기기 등 관리 품목에서 음이온 효과를 인정받은 제품은 없다.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과 박종섭 팀장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방사선 관리 업무에 제외돼있어 제도적 개선을 통해 원료물질부터 제품까지 추적·조사할 수 있도록 관련법령을 개정하고 신체 밀착 일상 생활용품에 모나자이트 사용 제한을 검토하는 등 라돈 관리에 관한 범부처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주영수 교수는 “수집된 정보와 수거된 제품에 대해 노출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집단적 피해가 발생할 때 조사 등 법·제도가 만들어져 국가 시스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위원장은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라돈과 같은 방사성물질은 국가가 방조해서 일반 시민들이 피해를 본 상황”이라며 “그동안 생활 속 방사성물질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짚었다.

이어 “유사 침대류 조사, 라텍스 문제 등 공중위생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제품의 특허 관리와 식약처의 모나자이트 사용 의심 또는 유사 성분을 포함한 제품의 유통, 원안위 감마방사선에 대한 측정 등 산업부, 특허청 등 관련 부처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조사의 영역과 책임 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6단독 신상렬 부장판사는 지난 2일 강모씨 등 69명이 대진침대를 상대로 낸 1억38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차 변론 기일을 열었다. 

소비자 측은 “측정기를 갖고 (침대를) 검침해봤더니 기준치를 초과하는 피폭량이 나왔다”며 “중대 과실로 의한 손해배상을 하라”고 밝혔다. 

반면 대진침대 측은 “인과관계가 없다. 판매 당시에도 정해진 법령을 준수했고 과실이 없다”고 책임을 부인했다. 또 “이 사건 외에도 제기된 소송이 많은데 대한민국이 피고로 된 사건도 있다”며 “소관인 원자력위원회 입장을 보면서 (입장을 정하면서)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피해 숨기며
무능한 모습

이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라돈침대 집단분쟁 조정위원회에 대해서도 “대진침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소비자 분쟁 소송은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강씨 등은 각 200만원 상당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이 소송을 제기했다. 2차 변론 기일은 다음 달 13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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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