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무릎 꿇은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08 11:19:06
  • 호수 1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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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제발 좀 보고 배워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사죄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로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사과가 충분치 않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합의를 다시 협의해야 합니다.”

지난 2일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부산대를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이 대학 본관 3층서 열린 기자간담회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 뉴욕서 만난 일본 아베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의 사실상 해체를 주장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합의
다시 협의해야”

하토야마 전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의 사과가 한국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 총리는 ‘이 합의를 끝으로 더는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고압적인 태도가 한국인에게 충분한 사과로 전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해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정부 때인 지난 2015년, 한일 간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약 100억원)으로 설립된 재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해 아베 총리를 만난 자리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들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하토야마 전 총리의 학위 수여식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였던 이용수 할머니가 축사를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하토야마 전 총리와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해준 일본 총리는 처음이었다”며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고맙다”고 울먹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완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변국과의 협치를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반도의 종전을 위해서는 북미 간 평화협정을 맺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북한도 핵을 완전히 폐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부산대 명예 박사학위 받고 회견
위안부 사죄 충분치 않다고 주장     
   

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역시 높이 평가할 부분이 있다”며 “한두 번 정상회담으로 모든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주변 국가들이 회담이 지속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전쟁 종식을 위해서는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중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북한도 완전히 핵 폐기를 각오하고 실행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남한과 북한, 미국 등이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소외돼있는 것은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력을 에둘러 비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아시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공동체 구축’을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다. 이날 강연에는 300여명의 학생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만든다면 평화로 쉽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방한해 일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을 위로 했다. 그는 학위 수여식에 앞서 유엔평화공원을 찾아 추모했다. 이어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부산 출신 의인 이수현씨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더불어 3일에는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서 무릎을 꿇은 채 원폭 피해자들의 손을 잡으며 사죄와 위로했다. 합천은 국내 원폭 피해 생존자 2000여명 중 가장 많은 피해자(600여명)가 살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오전 합천군 합천읍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있는 위령각을 참배했다. 참배를 마친 뒤에는 복지회관서 피해자 30여명을 만났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원폭 피해자들에게 먼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토야마 유키오라고 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일본어로 “식민지와 미국 원폭 투하에 의한 이중 피해자인 여러분께 사과 말씀을 드리고 한다”며 “일본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일본 정부가 제대로 배상이나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 상당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일본 고위급 중  
위령각 최초 참배

그는 “2·3세 분들도 피해가 크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여러분의 고민을 들으며 여러분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의 손을 잡으며 위로를 전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합천 원폭 자료관과 원폭 2세 환우 쉼터인 합천 평화의집도 찾았다. 그는 평화의집에서 “일본서 피폭자 후손 문제에 관해 질의했지만 법 정비가 안 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현직에 있지 않아 제약이 있지만 가능한 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현직을 통틀어 일본 고위 인사가 국내 원폭 피해자 위령각을 참배한 것은 하토야마 전 총리가 최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정계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제93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지역구는 홋카이도며, 민주당의 대표로서 2009년 8월30일에 치러진 총선서 압승을 거둬 2009년 9월16일에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됐다. 

2010년 6월2일,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과 함께 사임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1947년 2월 11일 도쿄도 고이시카와 구에서 태어났다. 하토야마 가문은 100년이 넘는 정치 명문가로 일본의 케네디가로 불린다.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조부는 2차 대전 이후 일본 정계를 이끈 토야마 이치로다. 자민당의 산파역으로서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부친은 하토야마 이이치로로 전 외무장관이다.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도 유력 정치인으로 여러 부처의 장관을 지냈다. 또 모친은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업체인 브리지스톤 창업자의 장녀이며,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는 일본의 권위 있는 다카라쓰카 극단 출신이다. 

외가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다. 민주당 창당 때는 동생과 함께 15억엔을 내놓는 등 사실상 ‘오너’ 역할을 해왔다. 

100년 정치명문가
일본판 케네디가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도쿄대 공학부 출신으로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도쿄공대 조교를 거쳐 센슈대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1984년 퇴직 후 부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다케시타(죽하등)파서 정치를 배웠다. 

1986년 자민당에 입문하면서 정계에 진출했고, 당시 홋카이도 선거구서 중의원으로 첫 당선됐다. 1988년에는 '유토피아 정치 연구회' 라는 초파벌적 정치집단을 결성, 리쿠르트 뇌물수수 사건 등의 당내 비리를 폭로했다. 

이 집단은 신당 사키가케로 이어졌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 사키가케에 참여했고, 55년 자민당 체제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호소카와 내각에서는 내각 관방 정무부장관에 올랐다. 이후 성립된 자사사 연립정권 하에서는 사키가케의 간사장을 맡았다. 1996년에는 사키가케를 새롭게 창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 참여해 간사장을 맡았다. 1999년의 당 대표 선거서 승리하며 당수가 돼 1999∼2002년까지 당 대표로 재직했다. 2002년 총선거서 자민당에게 참패를 당하며 당 대표를 사직했으나, 대표 사직 후에도 당내 최대 파벌인 하토야마 그룹의 대표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편 중의원 선거에 계속 당선돼 2005년 총선서 7선을 기록했다.

2007년의 참의원 선거의 대승 이후에도 간사장 직을 유지했다. 2009년 5월에 오자와 이치로 당 대표가 정치 자금 스캔들로 사퇴하면서 열린 당 대표 선거서 오카다 가쓰야를 꺾고 승리해 7년여 만에 당수로 돌아왔다.

대표 취임 후 여러 보궐 선거서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아소 다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했다. 이에 따라 2009년 8월30일에 치러진 총선서 민주당이 총 480석 중에서 308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다. 

원폭 피해자들 찾아 위로
“죄송” 진정성 있는 사과

이로써 1955년 그의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가 54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2009년 9월16일에 열린 특별 국회서 총리로 지명됐다.

총리 취임 이후에는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의 이행을 놓고 자민당 등과 대립, 연립정당인 사민당, 국민신당 등과도 마찰을 빚었다. 
 

주요 공약은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등인데, 이중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인해 미국의 심기를 자극, 대미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주범이 됐다. 5월 말까지 이전지를 확정짓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임한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으며, 1년을 채우지 못한 2010년 6월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문제로 사퇴했다.

이외에도 전 비서의 정치자금 비리 등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큰 정부의 복지수준을 주장하는 데 비해 선거를 이유로 증세에는 반대하는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보였다.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가 내세운 ‘우애 정치’를 정치이념으로 삼고 있다. 한·일 간의 갈등을 고려해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더불어 일제의 식민지 지배행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주장한 몇 안 되는 일본 정치인이다.

2014년 11월19일,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서 ‘아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아시아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한 컨퍼런스서 하토야마 전 총리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일본 정부가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보상 등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애 강조하는 
지한파 정치인 

2015년 8월12일, 하토야마 전 총리는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유관순 열사가 투옥됐던 지하의 여성 옥사 8호실 앞에서 백합 꽃다발을 헌화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5분 동안 머물렀다. 당시 그는 “한 사람의 일본인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며 “고문당하고 목숨까지 잃는 일이 벌어졌던 이 자리서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이런 그의 행보 때문에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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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