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터지는’ 외교관 성추문 백태

국가 대표로 국가 망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외무공무원의 성 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부장관이 나서 무관용 원칙을 말해도, 처벌 수위를 높혀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해외서 국가 이미지 제고에 힘써야 할 외교관들이 성 관련 사건에 휘말리면서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1월 미투 운동으로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국내 미투 운동의 시초로 알려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법조계서도 성범죄 사건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화·예술계, 방송계, 종교계도 미투 운동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에는 교사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외교부도
성비위 발칵

국내 미투 운동은 ‘설마 검사가 피해자일까?’ ‘설마 선생님이 학생들을?’이라는 의심을 걷어내는 데 일조했다. 누구나 가해자일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미투 운동으로 민낯이 드러난 각계각층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엄중한 처벌 혹은 징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앞다퉈 내놨다.

문제는 이 같은 사후대책에도 불구하고 성 비위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데 있다. 외무공무원들의 연이은 성 비위 사건이 대표적이다. 

앞서 한 외교관의 성 비위 사건으로 처벌 수위가 강화됐고 장관이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지만 근절은 요원한 상태다. 더군다나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외국서 국가 이미지에 신경 써야 할 외무공무원인 점이 더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외교부 산하 해외공관서 외무공무원 2명이 성 비위 문제를 일으켜 귀국 조치된 사실이 확인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지난 3일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이들은 부하직원을 성추행, 성희롱한 혐의로 적발됐다.

해외 공관서 여직원 성추행
무관용 원칙에도 계속 표출

박 의원실에 따르면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 중인 고위 외교관 A씨는 여성 행정직원 B씨를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와인을 마신 뒤 피해자를 끌어안고 무릎에 앉히는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B씨에게 자신의 집에 과일이 많으니 나눠주겠다고 부른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사건 발생 다음날 대사관 동료에게 얘기했고, 사건담당 영사가 피해자와 면담 후 외교 본부에 보고했다. 

당시 A씨의 부인은 한국으로 가서 집에 없던 상황이다.

같은 달 인도 대사관서도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인도 대사관에 파견 나간 4급 공무원이 동료직원에게 “자신이 머무는 호텔서 술을 마시자” “방 열쇠를 줄 테니 오라” 등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한 사실이 드러났다. 
 

동료 직원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해당 공무원의 언행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로 소환 조치된 이들은 대기발령 상태서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재발 방지
다짐했지만…

지난해 7월에는 주 에티오피아 대사관서 근무하는 간부급 외교관 C씨가 여성 행정직원 D씨를 성폭행했다는 제보가 접수돼 외교부서 조사에 돌입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C씨는 사건 당일 D씨와 와인 3병을 곁들여 저녁을 먹은 뒤, 만취해 의식을 잃은 D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튿날 새벽 깨어난 D씨는 상담기관의 조언에 따라 병원 진단서를 받은 뒤 모친을 통해 외교부 영사콜센터에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C씨와 D씨는 사건 이후 귀국해 외교부 감사관실 등에서 조사를 받았다. 

C씨와 D씨는 조사에서 진술이 엇갈렸지만 외교부는 조사를 거쳐 C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징계위원회서 파면을 결정했다.

당시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서 해당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해외근무 외교관에 대한 복무 감찰의 획기적인 강화를 위해 감사관실 내 감찰담당관실 신설 등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외교부 혁신 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조직·인사의 강도 높은 혁신을 통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강 장관 역시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외교부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서 이렇게 심각한 재외공관의 복무기강 문제가 발생하게 돼 정말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미 전 재외공관장에 대해 엄중한 복무 기강 지침을 하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성 비위’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 그리고 관련 규정 법령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외교부서 해당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서 또 다른 성추문이 불거지기도 했다. 피해자가 조사를 받는 과정서 김○○ 전 에티오피아 주재 대사도 성추행을 했다고 진술한 것. 

김 전 대사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외교부가 에티오피아 현지에 특별감사단을 파견해 조사하던 중 그의 추가 혐의를 잡아냈다. 결국 외교부는 지난해 8월, 김 전 대사를 성범죄 혐의로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김 전 대사는 에티오피아 대사로 재직한 2015년 3월 대사 직위를 이용해 여성 1명과 성관계를 맺고 2014년 11월과 지난해 5월 각기 다른 여성 2명을 각각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C씨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D씨는 조사 과정서 ‘김 전 대사에게도 기분 좋지 않을 정도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외교부에 알렸다. 
 

이후 교민사회서도 김 전 대사가 현지에 파견된 외교부 산하 단체 직원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이 부적절했다는 등의 제보가 잇따랐다.

김 전 대사는 지난달 12일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전 대사에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김 전 대사는 대한민국 위상을 드높일 책임이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오히려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피해자를 추행하고 간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사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비교적 대담하게 성폭력 행위에 이르렀다”며 “간음에까지 나아간 점을 보면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실형 선고
법정 구속

앞서 2016년에는 칠레 주재 공관서 일하는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현지 방송을 통해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2016년 12월18일 SNS를 통해 공개된 영상은 칠레의 한 방송사가 함정 취재를 통해 포착한 내용으로, 한국의 박○○ 참사관이 미성년자에게 성적인 표현을 하며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하려는 모습은 물론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미성년자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집안에 끌어들이는 장면 등이 실렸다.

심지어 해당 방송 관계자가 함정 취재를 통해 성추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박 전 참사관이 ‘제발 부탁한다’며 사정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이 영상은 첫 피해 여학생의 제보를 받은 현지 방송사가 다른 미성년 여학생에게 의뢰해 박 전 참사관에게 접근시켜 함정 취재를 벌이는 과정서 포착됐다.

박 전 참사관은 현지 미성년자 여학생에게 휴대전화로 음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도 받았다. 영상이 공개된 이후 문제의 외교관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부터 칠레 교민 사회에 끼칠 악영향까지 부정적인 반응이 폭발했다.


교민사회에도 부작용
징계 절반이 성 문제

외교부는 즉각 박 전 참사관을 국내로 소환했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파면을 의결하는 한편, 검찰에 형사고발 조치했다. 1심서 박 전 참사관은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광주지법 형사11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 전 참사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성추행 횟수가 4차례에 이르고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았다는 게 양형 이유였다. 법원은 박 전 참사관의 범행으로 공무원의 품위와 국가 이미지가 손상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고 피해 가족들이 용서를 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형량을 2년6개월로 감형했다.

2016년에는 중동 지역에 주재하는 현직 대사가 대사관 직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의 대사가 현지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민원이 외교부를 통해 접수됐고, 외교부는 민간 전문가 등에게 의뢰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해당 대사는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드러났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잇단 외교관 성추문에 대해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송구스럽다”며 “과거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태국, 뉴질랜드 등지서도 외교관이 성 문제로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었다. 2012년 태국 방콕 주재 한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현지서 한국인 여교수를 성추행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뉴질랜드에선 분관장이 해외에 다른 부처 공무원과 몸싸움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서 분관장은 성희롱 의혹도 받았다.

한국 외교관 성추문 사건에 있어 가장 큰 흑역사로 꼽히는 ‘상하이 스캔들’도 있다. 상하이 스캔들은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이 중국 여성인 덩신밍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사건을 말한다. 

외교관 성추문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상하이 스캔들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중국 여성과 외교관들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 핵심 인사들의 연락처를 포함한 정부 자료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졌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영사들은 덩신밍에게 한국 비자를 부정 발급해주고, 한국비자 신청대리권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덩신밍이 스파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주 상하이 영사관에 파견해 조사를 벌였지만 해당 사건을 ‘심각한 수준의 공직기강 해이 사건’으로 마무리지었다. 당시 외교부는 상하이 스캔들 사건에 연루된 외교관 전원을 징계했다.

외교관의 성 비위 사건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외교부서 발생한 징계 중 절반은 성범죄 사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지난 4일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원 징계 현황에 따르면 외교부서 발생한 12건의 징계 중 절반인 6건이 성희롱, 성폭력 등 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지난해 징계자 중에는 커피숍서 16차례나 여성을 몰래 촬영한 공무원이 포함됐다. 외교부 소속 김○○씨는 2015년 4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지난해 8월까지 10여회 넘게 여성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서 김씨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23단독 남현 판사는 김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을 40시간 이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외에도 총영사로 재직하며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고위공무원도 징계를 받았다.

몰카 공무원
벌금형 받아

2016년에도 전체 17건의 징계 중 7건이 성 문제로 인한 징계였다. 이 의원은 “전 에티오피아 대사의 성폭력, 주 칠레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등은 주재국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교육 등을 통한 사전예방에 최선을 다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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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