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02)항복

의자왕 당에 손들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의자왕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 예식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예식의 눈을 바라보며 일이 크게 어긋났음을 직감했는지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물럿거라!”

의자왕의 고함에 다가서던 병사들이 다시 머뭇거렸다.

진짜 속셈은?

“네 놈의 속셈은 모르겠으나 내 발로 움직이련다.”


의자왕이 은고에게 손을 뻗자 은고가 창백한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령은 이 무슨 일인지 이실직고하라!”

한껏 힘이 들어간 소리에 예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 간이 작아서 무슨 일을 도모하겠다는 말이냐!”

의자왕이 싸늘한 시선으로 예식을 쏘아보았다.

“이 나라가 무능한 왕으로 인해 망했으니.”

“똑바로 아뢰지 못하겠느냐!”  


“나라를 망친 미친놈을 잡아 신라군에게 넘기려…….”

기껏 힘을 주어 이야기한다고는 했는데 뒤가 말려들었다.

“뭐라, 짐을 신라에 넘기겠다!”

예식이 답을 하지 않고 그저 주시만 했다.

“왜 짐을 신라에 넘기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느냐?”

“방금 전 신라의 왕자인 김인문이 사람을 보내와 웅진성의 안전을 보장해줄 터이니 폐주를 넘기라는 제안에 따라 신라에 넘기려 한다.”

“한심한 놈이로고.”

“나라를 망친 주제에 무슨 말이 많으냐. 여봐라, 어서 이놈을 포박하여 끌고 나가거라!”

“이왕 이리되었으니 짐이 한마디만 해주겠노라.”

“말해보라!”

“간사한 신라놈들의 계략에 빠진 모양인데 네가 정령 웅진성의 안전을 기한다면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짐을 넘겨야 할 일이로다.”

“당나라에.”


“이 미련한 놈아, 신라놈들이 약속 지키는 거 보았느냐!”

의자왕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 선선히 병사들의 행위에 응해주고는 은고와 사비성으로 이송되었다.

사비성에 이르자 예식이 김인문이 아닌 소정방과 김유신 등 수뇌부가 함께 하고 있는 곳으로 의자왕을 끌고 갔다. 

한눈에 의자왕임을 감지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예식 일행을 주시했다.

“웅진성 방령인 예식이 폐주를 바치며 항복을 청합니다.”

순간 김유신이 앞으로 나섰다.


“여봐라, 백제의 폐주를 인수하라!”

신라 병사들이 의자왕 곁으로 다가섰다.

“잠깐!”

신라군에게 넘기려…의자왕 “당에 넘겨라”
모척과 검일 소정방에게 사연 남기고 죽다

신라 병사들이 막 의자왕과 은고에게 접근했을 시점에 소정방이 급하게 저지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대장군.”

“누구에게 항복하는지 살피고 조처 취해야 할 일이오.”

유신이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나 소정방이 그를 모른 체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말해보거라, 누구에게 항복하는 게냐!”

“대장군, 비록 백제의 폐주지만 백제가 신라에 항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그러니 당연히 백제의 상국인 당나라에 항복을 청합니다.”

예식이 우물거리자 의자왕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를 살피던 소정방이 미소 지으며 유신을 바라보았다.

“폐주와 아들들 그리고 백제의 신하들은 모두 당의 포로이니 만큼 이곳이 정리되는 대로 당나라로 이송하여 황제폐하께 고하려 하오. 그러니 그리 알고 포로들에 대해 각별하게 신경 쓰시오.”

소정방 이하 당나라 군사들이 백제의 귀중한 보물을 약탈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즈음 백제의 항복 소식을 접한 무열왕이 사비성에 도착하여 크게 주연을 베풀어 군사들을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소 대장군, 짐이 대장군에게 청이 있소.”

주연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무열왕이 소정방에게 잔을 건넸다.

“말씀하시지요, 전하.”

“백제의 모든 포로들을 상국인 당으로 이송함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말을 하다 멈추고 무열왕이 은근한 시선으로 소정방을 주시했다.

“시원하게 말씀 주시지요.”

“하오나 짐의 철천지원수를 직접 처단할 수 있도록 편의 부탁하려 합니다.”

“원수라니요, 나라간 전쟁에 원수가 있을 수 있습니까?”

다분히 의자왕을 의식한 반응이었다.

“백제의 일이 아니오.”

“그러면?”

“오래전 우리 신라의 대야성에서 전투가 있었는데 신라의 장군으로서 신라를 배신하고 짐의 딸과 사위를 잔인하게 죽인 자들이 지금 포로 중에 섞여 있소. 그런 연유로 그 둘을 직접 처단할 수 있도록 배려 부탁하오.”

금시초문이라는 듯 소정방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 원래 신라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대장군.”

“그러면 일단 그 놈들의 면면이나 봅시다.”

무열왕이 감사의 뜻으로 가벼이 목례하고 김유신을 주시했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라 병사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잠시 후 술잔이 돌아가는 중에 두 사람이 포박당한 체 끌려왔다.

“너희들은 누군고?”

“여러 소리 필요 없다. 구차하게 목숨 연명하고 싶지 않으니 어서 죽여라!”

소정방의 은근한 말에 모척이 검일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네 놈들은 살고 싶지 않은 게냐!”

은근했던 소정방의 목소리에 살기가 함께했다.

“구차하게 생명 보전하고 싶지 않소, 다만.”

“말해보라!”

“우리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주기 바랄 뿐이오.”

소정방이 고개를 돌려 무열왕을 바라보자 무열왕의 안색이 붉게 변해갔다.

“대장군, 바로 목을 베지요.”

“그럴 수 없습니다. 장군의 위치에 있는 만큼 목을 베더라도 그 사유를 알아야 합니다.”

무열왕의 제안을 무시하고 소정방이 검일과 모척을 주시했다. 

검일이 모척을 주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열왕의 사위가 자신의 아내를 빼앗고 자신을 죽이려했던 일들을 차분하게 설명해 나가자 소정방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소 대장군!”

“말해보라!”

검일의 설명이 끝나자 모척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소장이나 검일 장군은 군인이오.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을지라도 결코 나라를 배신할 수는 없소이다.”

의리냐 배신이냐

소정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이름이 어떻게든 후세에 알려질 터인데 치졸한 배신자로 남길 수는 없소. 하니 소 대장군께서 반드시 이 사연을 세상에 알려주시오.”

“당연히 그리할 일이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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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