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남북정상회담> 두 정상에 남은 과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0.01 10:21:49
  • 호수 1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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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김-트 서울서 모이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역사적인 9·18남북평양정상회담(이하 평양회담)이 막을 내렸다. 11년 만에 평양서 만난 남북 정상은 평양공동선언문에 합의하며 한반도 평화가 머지않았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발표된 평화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합의였다. 두 정상은 이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비핵화’와 ‘종전’이라는 다음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18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출발했다. 이날 오전 8시6분경 청와대 관저를 나선 문 대통령은 오전 8시23분경 서울공항에 도착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등의 배웅을 받으며 공군1호기에 탑승했다.

숨 가빴던
평양회담

문 대통령은 서울공항서 평양으로 출발할 당시 별도의 성명이나 대국민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다만 이륙에 앞서 환담장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게 “이번 방북으로 북미대화가 재개되기만 한다면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남북이 자주 만나는 게 매우 중요하고 정례화를 넘어 필요할 때 언제든 만나는 관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이 탄 공군1호기는 이날 오전 9시49분경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장에는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직접 마중 나왔다. 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함께 문 대통령 내외를 영접했다.

김 위원장이 공군1호기로 다가서자 공항 곳곳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평양 시민들은 꽃술과 한반도기, 인공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환영인파 뒤로는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가자!’ ‘평양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인사 과정서 문 대통령을 힘껏 포옹한 뒤 뺨과 뺨을 부딪치는 서양식 ‘뺨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김 부부장과 함께 공항에 미리 도착해 대기하던 화동들은 문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건넸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인사와 함께 30초가량 대화를 나눴고, 뒤이어 북한군 의장대 사열을 받은 뒤 나란히 미리 준비된 벤츠 차량으로 걸어갔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서 자신을 반기는 평양 시민 일부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일부 시민은 이에 상기된 표정으로 울먹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깜짝 차량 동승회담’을 가졌다. 앞서 지난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방북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함께 50여분간 함께 승용차를 타고 동승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동승회담은 보좌진 없이 진행돼 과연 그 차량 안에서 두 정상이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관심을 모았다.

파격의 3일
세계도 관심

두 정상을 태운 차량은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영빈관을 에워싼 평양 시민들은 정상들이 탑승한 차가 다가오자 도로 앞까지 달려 나가 꽃을 흔들며 환호했다. 두 정상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카퍼레이드를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영빈관에 도착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별도로 오찬을 가진 후 오후 3시45분부터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서 1일차 회담을 시작했다. 우리 측에서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배석했고 북측은 김 부부장,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담 후 두 정상은 만찬자리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의기투합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 입을 연 김 위원장은 “민족 앞에 약속한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며 평화의 새 시대, 민족번영의 새 역사를 흔들림 없이 이어나가려는 굳은 마음을 안고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 내외분을 열렬히 환영한다”며 “우리들은 좋게 출발한 평화번영의 새 역사를 지속해 나가며 북남관계서 꽃피는 봄날과 풍요한 결실만이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환영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화답으로 “오가는 거리마다 뜨거운 환영을 보내준 북녘 동포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며 “오늘 도착해보니 평양의 발전이 참으로 놀랍다. 대동강변을 따라 늘어선 고층 빌딩과 평양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과학과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김 위원장의 지도력과 성취를 알 수 있었다”고 김 위원장을 추켜세웠다.

재회한 두 정상 “반갑습니다”
평양선언문서 비핵화 의기투합

평양회담 둘째 날인 지난 9월19일 두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서를 발표했다. 합의서에는 ▲핵시설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 협력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 ▲보건의료 협력 즉시 추진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유치 협력 ▲연내 동서철도·도로협력 착공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이 핵심 내용으로 포함됐다.

두 정상이 핵시설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 협력에 합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미국의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 추진에 협력키로 했다.

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해 군사 분야 합의서의 이행실태를 점검키로 했다.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상시적 소통과 긴밀한 협의도 진행한다. 두 정상은 합의서에서 “비무장지대(DMZ)를 비롯한 대치지역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들의 상시 상봉을 위한 상설면회소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개소하는 데도 합의했다. 두 정상은 이 같은 조치가 인도적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가기 위함이라며 “적십자 회담을 통해 이산가족의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파격적인 합의 내용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평양회담 둘째 날 기자회견서 “김 위원장이 올해 안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며 “가까운 시일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올해 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핵화 협력
미국 반응은?

평양선언문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로드맵이 발표되자 세계의 눈은 미국 워싱턴으로 향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인 가운데 미국이 이를 얼마만큼 신뢰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 종전의 키를 쥐고 있다. 미국은 남북과 함께 한반도 종전선언의 당사국이다. 이에 완벽한 의미의 종전을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후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북한과 ‘선 비핵화 조치 후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미국 사이서 중재외교를 펼쳐온 이유다.
 

평양회담 합의서에는 종전선언이 빠졌다. 앞서 두 정상이 지난 4월27일 판문점선언문에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키로 명시한 것과 대비된다. 북미 간 논의사항이자 미국이 부담스러워하는 종전선언 문제를 남북 주도로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단 북측은 미국이 6·12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해 비핵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여기서 상응조치란 종전선언을 의미한다.

만족한 트럼프 종전까지는 “글쎄”
바빠진 폼페이오 북미회담 가시권

문 대통령으로부터 평양회담 결과를 전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24일(현지시각)뉴욕서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실무 작업을 준비 중에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서 11월 중간선거 이전 김 위원장과 워싱턴서 북미정상회담을 갖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폼페이오 장관이 유엔총회 참석차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남을 가져 북미정상회담 조기 개최 가능성을 높였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과 연계해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경우 비핵화와 종전의 당사국이 모두 서울에 모인다는 점에서 두 문제가 동시에 타결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다만 남북미가 비핵화와 종전에 대한 공통된 공감대를 형성해야한다는 점에서 실제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비핵화·종전
동시 타결되나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정상회담 전날인 지난달 23일 미국의 한 언론과 인터뷰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이) 어떤 양보를 할 것인지에 대해 모두 각자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어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간 것 자체를 양보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양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대한 대가로 북한의 핵리스트 신고를 확약받길 원한다. 폼페이오 장관이 조만간 평양을 방문해 이 같은 내용의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옥에 티’ 백화원 욕설 파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18일 평양 백화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지X하네”로 추정되는 욕설이 송출돼 파문을 낳았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남북 정상회담 도중 “XX하네”라고 욕설한 카메라기자를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추석 연휴를 뜨겁게 달궜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정황을 파악 중”이라고 발표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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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