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발등에 불’ 문재인 한가위 구상

밥상머리 민심을 잡아라!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민심의 분수령으로 불리는 추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족 대명절을 앞두고 악화일로의 고용지표, 메르스 발병 등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등에 업고 한가위를 관통하는 모양새다. 여야 역시 민심 행보 총력전에 나서며 지지율 반등을 꾀하고 있다. ‘추석 밥상머리 민심’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본관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추석을 앞둔 상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추석 물가 관리를 비롯해 소상공인 등을 위한 명절 자금 지원 대책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언급했다. 

이어 추석 사이 유동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만큼 안전대책 점검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통상 명절을 앞두고 민생 대책 등을 내놓지만 이번 발표에는 뼈가 있다는 분석이다.

선물 보따리
녹록잖은 상황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취임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당 지지율 역시 힘을 받지 못하는 형국이다. 주변 상황도 만만치 않다. 경제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폭염 등 기상악화로 추석 차례상 비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병 소식으로도 어수선한 상태다. 문 대통령이 여느 때보다 추석 민심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농축수산물 직거래 센터를 방문해 농축수산물 판매 촉진에 힘을 실었다. 농축수산물은 이번 여름에 폭염과 태풍 등을 거치면서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때문에 값도 올랐다.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청와대 연풍문 2층서 열린 ‘추석맞이 농축수산물 직거래 장터’를 찾아 시식을 하고 물품을 구입했다.

문 대통령은 추석 연휴 기간을 이용해 민생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서 “국민들이 해외로 향하던 발길을 국내로 돌린다면 고향과 지역경제에 큰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추석 연휴 동안 ‘한가위 문화·여행 주간’을 지정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문화·여행 주간은 명절 기간에 국내 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주요 문화·관광 시설에 각종 할인 혜택이 제공되고, 지역에서는 특별 행사가 개최된다.

문 대통령은 이를 통해 내수경제 증진에 힘을 싣겠다는 모양새다. 다만 메르스가 추석을 앞두고 발병해 국내 여행이 활기를 찾을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설령 메르스 확산을 조기에 차단한다 하더라도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명절 대책과 함께 여론 다잡기
고용참사·메르스 관통 불가피

그는 추석을 10여일 앞둔 상황서 ‘고용참사’와 마주했다. 그 연유로 국내 여행 독려는 설득력을 이어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증가폭은 전년 동월 대비 3000명에 그쳤다. 지난달 발표된 7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수가 전년 동월 대비 5000명 증가한 것을 두고 고용참사, 고용쇼크란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번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당장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통계청이 고용동향을 발표한 날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정부는 국민들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국민들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반응에 여론은 크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야당 역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고용부진에 대해 “최저임금과 관련이 있다”고 밝히면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란은 거세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소득주도성장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강조하지만 야당에선 이를 경제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고용동향이 발표된 이후에도 기존 경제 정책을 고수했다. 이번 8월 고용동향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반응 역시 지난달과 대동소이하다.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을 쉽게 철회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고용동향 발표가 추석을 앞두고 나온 만큼 부정적 여론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줄곧 주장하는 소득주도성장은 이번 추석 민심 사이서 가장 뜨거운 화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쇼크에
메르스까지

문 대통령이 주안점에 두고 있는 사안 중 하나는 메르스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서 메르스와 관련해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관계 당국과 병원, 의료 관계자들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해 초기 대응이 비교적 잘 됐다”며 방역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메르스의 확산을 막고, 신속하게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이라며 “질병관리본부가 현장 대응과 지휘에 집중하고, 정부는 적극 지원하면서 진행 상황을 국민들께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르스는 이번 추석 명절을 관통하는 최대 이슈로 꼽힌다. 지난 2015년 메르스가 발병했을 때 3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당시 국민들이 외출과 소비를 삼가는 까닭에 경제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의 생명과 경제가 메르스와 엉켜있는 만큼 조기 차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메르스 조기 차단 여부에 따라 문 대통령이 주문한 연휴 대책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정부는 추석을 25일 앞둔 지난달 30일, ‘2018 추석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기상악화로 추석 물가가 오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각종 혜택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추석 민심 다잡기에 발 빠르게 나선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고용쇼크, 메르스 발병과 마주하면서 정책 효과가 불투명해졌다. 문 대통령의 후속 조치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한편 문 대통령은 뉴욕서 열리는 UN총회 참석차 추석 연휴 전날 출국해 연휴 다음 날 돌아온다.
 

여야 역시 추석 민심 다지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여야는 이번 추석 민심을 다잡아 지지율 반등에 나서고자 한다. 특히 추석이 지나자마자 다음달 10일에 국정감사가 예고돼있다. 여야는 연휴 기간 동안 존재감을 확보해 추석 이후 국회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추석 전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예산정책협의회를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예산정책협의회를 통해 당 차원의 지역 지원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민심 보듬기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7일부터 전남과 세종, 충남, 경기, 인천 그리고 경남과 부산 등을 돌면서 예산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은 첫 번째 예산정책협의회를 호남서 열었다. 호남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민주당은 호남서 첫 번째 협의회를 개최하며 텃밭 다지기에 나선 셈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호남에 올 때마다 산업이 너무 약해 일자리도 부족하고 학교 교육도 발전 못하는 어려움을 느낀다”며 “문재인정부서 호남 지역 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전국 시도를 돌며 지방자치단체서 요구하는 예산과 정책 등을 청취하고, 지역 현안을 점검했다. 민주당은 추석 전까지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어 지방분권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시사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이 대표 취임 이후 추석을 맞아 본격적인 민심몰이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야당에선 “여당 대표가 추석을 앞두고 전국을 돌며 국민 세금으로 지원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한편 민주당은 경남도청서 35년 만에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협의회에 참석한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983년 부산서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후, 민주당 지도부가 예산정책협의회를 위해 도청서 회의를 하는 것은 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제는 다시 뛰는 경남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지사는 “경남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평화
안줏거리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추석 전후로 253개 당무감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은 추석 전에 당무감사 계획을 수립해 공고할 방침이다. 감사 결과는 올 연말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당무감사와 함께 ‘인적 청산’이 부상하는 까닭은 당협위원장 교체가 2020년 총선 공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날 당협위원장 교체를 언급한 바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7월 “공천권과 관련해 어떤 권한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면서도 “당 대표로서 당협위원장에 대한 교체 권한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당무감사에서 당협위원장 교체 폭이 얼마나 될 지는 미지수다. 당협위원장이 대폭 교체된다면 당내 반발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며 여당과 정부를 정조준했다. 한국당 김 비대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 재래시장서 ‘최저임금 제도개혁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선포식’을 열었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재래시장을 찾아 추석 민심의 반전을 꾀하겠다는 의지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이 정부에 경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소득주도성장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하는데 그대로 밀어붙인다”며 문재인정부를 비판했다.

한국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서 취업자 증가수가 7월 고용동향 때보다 더 감소했기 때문이다. 고용동향이 추석을 앞둔 때에 발표된 터라 한국당은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일자리 참사 현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경제 정책 실험을 당장 멈추기 바란다”고 즉각 논평을 냈다.

한편 여야는 추석을 앞두고 민생·규제 개혁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일하는 국회’를 강조하며 추석 민심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의원총회서 “어제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8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규제개혁·민생법안들은 오는 20일 처리를 목표로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여야는 8월 임시국회서도 합의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해 ‘빈 손 국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추석 전에는 합의한 대로 법안 통과를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야가 처리하기로 한 법안은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과 지역특구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그리고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이다. 특히 인터넷은행법의 경우 민주당 내에서 시각차가 확연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당내 강경파로 꼽힌다. 제 의원은 지난 1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서 열린 ‘혁신성장을 위한 핀테크 활성화 토론회’서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완화가 금융혁신이라는 것에 대해 수치로 증명된 효과는 전무하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실질적 처리 기한을 20일이 아닌 17일로 보고 있다. 오는 18~20일까지 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때문이다. 여야가 목표로 한 20일을 넘어서면 법안 처리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20일이 지나면 당장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또한 10월 초부터는 국정감사가 예정돼있어 추후 법안 처리를 논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여야가 기한 내 법안 처리를 해내지 못할 경우 추석 민심은 한 발짝 더 멀어질 공산이 크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분수령?
연휴 이후 지지율 상승 기대

추석을 관통하는 여야와 정부는 저마다 민심 다잡기에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하락세를 달리고 있는 지지율의 반등을 꾀하고 있다. 야당 역시 이번 추석을 통해 반전을 이루고자 한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3.5%를 기록했다. 집권 이후 최저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는 지난 10일 CBS 의뢰로 조사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 9월 1주차 주간 집계서 응답자의 53.5%가 긍정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매우 잘한다’에 26.0%, ‘잘하는 편’에 27.5%를 기록했다.

부정적 평가는 40.5%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매우 잘못한다’에 23.6%, ‘잘못하는 편’에 16.9%를 기록했다. 6%는 ‘잘 모름’에 응답했다.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은 40.4%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일주일 전 8월 5주차 주간 집계 대비 1.0%p 하락한 수치다.

민, 전국 순회
한, 인적 청산

한국당은 19.5%를 기록하며 20%대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율 돌풍을 일으킨 바 있는 정의당은 9.9%로 그 뒤를 이었다. 바미당은 7.5%를, 평화당은 2.7%를 기록했다. 이어 기타 정당이 2.3%, 무당층(없음·잘모름)은 17.7%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3~7일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9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식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8.0%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 대통령 추석선물은?

청와대는 추석을 맞아 지난 12일부터 사회 각계 1만여명에게 문 대통령의 추석선물을 보낸다고 지난 7일 밝혔다. 독거노인과 한부모 가족, 희귀난치성질환자 그리고 치매 센터 종사자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게 가장 많은 선물을 보낸다. 국가 유공자에게도 선물을 보낼 계획이다.

문 대통령의 추석선물은 제주도 오메기술과 울릉도 부지갱이, 완도 멸치, 남해도 섬고사리, 강화도 홍새우 등 주로 섬에서 생산되는 농·수·임 특산물로 꾸려졌다.

한편 청와대는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의 유족들이 추석 선물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선물을 보내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추석 선물 계획을 발표한 간담회서 “마린온 유족들에게도 선물이 전달되느냐”는 물음에 “전달될 것이다. 저희 정성이 전해지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마린온 유족측은 이에 앞서 지난달 23일, 청와대가 추석 선물을 보내겠다는 의사에 대해 거부한 바 있다. <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