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개혁의 선구자’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

돛 올린 ‘박원순호’ 정치 개혁 이뤄낼까?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시민후보였던 박 시장의 당선은 그간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을 부추긴 낡은 정치판에 대한 민심의 엄중한 경고로 보여진다. 압도적인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박 시장. 그는 과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정치권의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풍’ 등에 업고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비상
당선 기쁨은 잠시 서울시정 해결 과제 ‘산더미’ 

‘안풍’을 등에 업고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비상했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 시장이 당선된 것. 박 시장은 지난달 27일 당선소감에서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한다”며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지난 1995년 시민의 손으로 서울시장을 직접 뽑은 이래 26년 만에 드디어 이번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이다”면서 “민주주의 정신을 완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민들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이 가라는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선의 기쁨도 잠시. 박 시장이 오는 2014년 6월까지 2년8개월 간 이끌어갈 서울시정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박 시장은 범야권 단일후보로 서울시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무소속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2/3 정도를 차지하는 서울시의회와의 관계정립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시민 편에 서서
상처 보듬을 것”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무상급식 문제와 한강 르네상스 등 디자인 서울의 핵심 정책들이 사사건건 시의회와의 갈등으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민선 5기 서울시 구청장은 전체 25명 가운데 4명만이 한나라당이고 나머지 21명은 민주당 소속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도 106명 중 한나라당 소속은 27명인 반면, 무려 79명의 의원이 민주당 배지를 달고 있어 정책을 펴는데 절대적 협조와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오는 10일까지 의회에 제출해야할 내년도 예산문제가 급선무이다. 우선 현재 4학년까지 시행하고 있는 무상급식 예산을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떤 재원으로 5·6학년까지 늘릴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이미 695억원의 무상급식 예산을 책정해 놓아 서울시가 집행만 하면 되지만 오는 2014년까지 초·중학교 전 학년에게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는 그에게 재원조달 방안은 과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또 선거과정에서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전시성 사업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 진행 중인 사업들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지도 고민거리다. 박 시장은 “전시성 사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향후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살펴보겠지만 ‘중단’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

박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임기 중 7조원의 부채를 줄여야 하고 일자리 창출, 그리고 서민을 위해 약속한 임대주택 8만호를 건설해야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소통과 공감을 중시해 온 박 시장이 향후 시공무원들과 동반자로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보자 펀드’로
새로운 선거문화


박 시장은 당초 서울시장 출마 당시 지지율이 4-5%대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후보단일화로 40∼50%대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막강한 후보로 떠올랐다.

안 원장은 지난달 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박 시장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오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그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고 시민사회운동을 꽃피운 그가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의 40%에 육박하는 지지층 가운데는 보수성향의 사람들도 많았다”며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단일화를 했다고 해서 박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박 시장은 탄탄한 정당 조직력을 갖춘 여야의 후보들을 맥없이 무너뜨리며 60년 정당정치의 역사에 굴욕을 안겨줬다.

재보선에 앞서 범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는 민주당의 탄탄한 조직표를 내세운 박영선 후보를 눌렀다. 이어 지난달 26일 치러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하며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은 나경원 후보마저 꺾었다. 53.40%의 득표율로 46.21%의 득표율을 얻은 나 후보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

그간 국민들은 현 정권 인사의 측근비리와 낙하신 인사실태 등 부패하고 부조리한 정치판에 불신과 혐오를 느꼈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구태의연한 정치판을 국민 스스로가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번 선거에서 시민후보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박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세력은 그 영향력을 입증 받게 됐다. 때문에 그간 민심을 등돌리게 만들었던 낡은 정치판에 대대적인 쇄신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박원순 펀드’로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에 앞장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

특히 박 시장은 서울시장 재보선의 법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시민 펀드’를 벤치마킹해 ‘박원순 펀드’로 선거비용을 모았다. 지난 9월26일 정오부터 개설된 계좌는 47시간 만에 목표액 45억 가량을 모으는 진기록을 남기면서 마감했다.

박원순 펀드는 박 시장 선거캠프 측에서 약정액을 입금하면 원금과 일정액의 이자를 돌려주는 형식으로 고안한 펀드로 ‘정치자금을 시민으로부터 끌어 쓴다’라는 기본개념을 가지고 마련된 안이었다. 현역 정치인이 아닌 후보는 후보자 등록 신청일까지 후원회를 할 수 없다는 선거법 때문에 만들어진 특단의 대책이었던 것.

그간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후보등록 전에는 후원회를 둘 수 없는 현실적 한계점에 따라 번번이 정계 진출을 포기했던 정치신인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준 셈이다.

사실상 그동안 기존 정치인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과 후원금으로 선거를 치렀었다. 이에 반해 박원순 펀드는 젊은 정치신인들에게 ‘돈 없어도 정치할 수 있다’는 모범적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또 판매결과에 따라 후보의 역량을 홍보할 수 있고 선거 초기 바람몰이에도 효과적이어서 일석삼조의 특효가 입증됐다. 게다가 선거자금을 투명하게 모아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새로운 선거문화를 장착시키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은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다. 박 시장은 오랜 기간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한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지난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1975년 서울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겼다.

유학생활 중
시민운동 눈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12기로 수료하면서 법조계에 입문한 박 시장은 대구지검에서 짧은 검사생활을 한 뒤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박 시장은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991년 돌연 유학길에 올라 2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 사무처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소액주주운동 등을 성공시키며 우리 사회의 ‘1세대 시민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는 8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또 2001년에는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를 지냈다.

안 원장이 ‘마음 속 응원자’라며 애정을 나타내며 후보직을 양보할 만큼 깊은 친분을 키운 것은 아름다운가게의 사회공헌 활동이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름다운재단이 본궤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목표로 활동을 벌여왔다.

한때 대권 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시장은 그간 시민사회 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치권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했다.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박 시장은 과연 정치권의 혐오와 불신을 종식시켜 정치판 개혁에도 앞장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프로필>

▲ 1956년 3월2일 경남 창녕 출생
▲ 경기고 졸업
▲ 단국대 사학과 졸업
▲ 사법시험 22회
▲ 대구지검 검사
▲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
▲ 참여연대 사무처장
▲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 아름다운재단 및 가게 총괄상임이사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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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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