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스승 곁으로 간 이왕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10 11:40:25
  • 호수 1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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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이 된 플라잉 드롭킥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프로레슬링의 레전드이자 간판스타였던 이왕표가 영면에 들었다. 길지 않은 삶 64세. 하지만 그의 삶은 뜨거웠다.
 

이왕표가 지난 4일,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이왕표는 2013년 ‘세기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과 빅 매치전을 앞두고 담낭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병을 이겨냈지만 수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인해 120kg에 육박하던 체중이 79kg 가까이 감소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도 최근 이왕표는 암이 재발하면서 갑작스럽게 눈을 감았다. 

갑작스런 별세
사회 각계 애도 

이왕표는 임종을 앞두고 “먼저 가게 돼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역도산, 김일 선배님들이 닦아 놓은 길에서 내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가게 된 것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한다”며 “평소에 레슬링을 사랑하고 중계방송해준 배기완 SBS국장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백 국장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각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일 이왕표의 빈소에 방문했다. 이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늘 프로레슬러 이왕표님 빈소. 모두 한 시대를 우리와 함께 하셨기에, 조용히 고별인사를 드렸습니다”고 전했다.  

후배이자 스포츠 해설가인 김남훈도 SNS에 “영원한 프로레슬러 이왕표 회장님께서 다른 세상의 링으로 원정을 떠나셨다. 담도암 등 세 차례 암과 싸우면서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글을 게재했다. 


JTBC 손석희 앵커도 지난 4일 방송서 “프로레슬링의 끝자락에 서 있던 이왕표가 오늘 세상과 작별했다. 과거 ‘저도 헤드록 해줄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오늘은 좀 참아달라’며 다음을 기약했었다”라며 “조금은 민망하더라도 그때 그냥 해보시라고 할 걸 그랬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왕표는 1954년 6월11일에 충남 천안서 태어났다. 이왕표는 선수 생활 초기에는 일본서 활약을 펼쳤고, 1980년대 국내로 돌아와서는 어린이들 사이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운동을 놓지 않으며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2013년 담도암 수술 후 최근 재발
향년 64세…영원한 레슬러 잠들다

190cm의 거구로 링 위를 휘젓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한국 대표 파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김일 도장 1기생으로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40년 동안 1600번의 경기를 치렀다. 7번 아시아 및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신일본프로레슬링(NJPW) 활동 당시 미국 최고의 스타 헐크 호건과도 대결하는 등 한국인으로 국제적인 위상을 지닌 마지막 프로레슬러로 추억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러 ‘박치기왕’이라고 불렸던 김일의 1기 제자였다. 김일은 한국의 영웅이었으며 동양레슬링의 거목이었던 역도산의 제자기도 했다. 김일이 역도산 밑에서 동문수학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벌인 한일 레슬링 대결은 모든 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내 최초의 실내 경기장인 장충체육관서 김일의 레슬링 경기가 열릴 때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여 열광했다. 김일은 반칙을 당해 피투성이가 돼도 박치기 한 방으로 응징해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조마조마하던 국민은 정의가 불의를 이기는 장면에 환호했다.


국민 영웅의 제자였던 이왕표도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왕표는 21살이던 1975년 김일의 제자로 사각의 링에 입문해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서 활동했을 때엔 오니타 아츠시와 데뷔전을 가지고, 후치 마사노부에게 승리하는 등 유망주였다. 김일의 또 다른 제자 역발산과 함께 이왕표의 장기인 ‘플라잉 드롭킥(뛰어올라 두 발을 모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한국레슬링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가 처음 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이왕표는 마치 영화 속 ‘슈퍼히어로’처럼 링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선수였다. 그의 화려한 공중기술에 많은 팬, 특히 어린이들이 열광했다. 

1985년 NWA(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 등극. 1987년에는 NWA 오리엔탈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에도 욕심이 생겼다. 드래곤 스페셜 킥, 파워킥 등 주특기를 강화했다.

1975년 입문
펄펄 날아다녀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프로레슬링은 야구, 축구 등 다양한 프로스포츠의 인기에 밀려 쇄락을 맞이했다. 잊을만하면 불거진 ‘쇼’ 논란은 프로레슬링에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1990년대 GWF(세계레슬링연맹)에 흡수된다. 

이왕표는 미국 남서부의 최강자였던 로드 프라이스를 꺾었다. 1993년 9월,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 빅 존 호크와 GWF(Global wrestling Federation)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겨뤄 이겼다.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것. 
 

이후 부커T, 마이크 어썸 등과 경기를 가지면서 25번의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했으며 GMF 챔피언 벨트를 영구 보관하고 있다. 2000년에는 자이언트 콜린과 겨뤄 루테스, 역도산, 김일 등이 챔피언을 지녔던 WWA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떨어진 뒤에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프로레슬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링을 설치하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경기를 펼치며 프로레슬링 알리기에 나섰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러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종합격투기 단체인 울트라FC를 만들었다. 

2008년에 당시 이종격투기 스타였던 밥샙과의 경기를 발표해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올라가는 등 엄청난 흥행을 예고했다. 이왕표는 밥샙을 이긴 후 전적 1전 1승 0패로 울트라FC의 초대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이후에도 밥샙과 연계해 WWA 흥행에서 프로레슬링 룰로 시합을 가지다가 밥샙에게 패해 벨트를 뺏겼다. 

하지만 이왕표는 2010년에 밥샙을 이기며 또다시 WWA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각본 있는 종합격투기’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엔터테이너로서 판을 짜는 기획력과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대결이었다. 

훨씬 크고 힘이 센 상대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고 맞서 싸웠던 이왕표를 쓰러뜨린 것은 병마였다. 60세가 가까워 질 즈음 은퇴를 생각하고 마지막 경기를 준비했지만 2013년 담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계획한 경기를 모두 취소하고 투병을 시작했다. 수술을 통해 암이 전이가 된 담낭과 쓸개, 췌장 1/3을 제거했다. 2차 수술을 마치고 나니 120kg였던 체중이 80kg로 줄었다. 

아시아 넘어 
세계 챔피언

더 이상 링위에 오를 수 없었고 결국 2015년 5월25일, 장충체육관서 은퇴하며 40년 동안의 프로레슬러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왕표는 선수로는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지만 최근까지 대회 유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꿈꿨다. WWA 협회 총재로 레슬링 시합 주선 및 후배 양성에 힘썼다. 암 때문에 운영을 중단했던 이왕표 레슬링 체육관도 다시 운영할 계획이었다. 

이왕표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체육인의 귀감이었다. 특히 생전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쳤다. 다문화가정, 소년소녀가장을 도왔다. ‘격기도’라는 무예를 만들어 책을 낸 뒤 출판기념회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서 개인 후원 독력에 앞장섰으며 학교 폭력 근절에 앞장섰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서 “폭력을 무예로 오인하는 아이들에게 무인들이 소통에 나서면 효과가 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자신의 각막을 개그맨 이동우에게 기증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3년 KBS2 교양프로그램 <여유만만>서 담도암 수술을 앞두고 “위험한 수술이고, 죽을 확률도 있다고 하니 최후를 생각하게 됐다”며 ‘나 이왕표는 수술 중 잘못되거나 차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 시 모든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다. 나의 눈은 이동우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휴대전화 속 유서를 공개했다. 


이동우는 그룹 틴틴파이브 출신 방송인으로 희귀병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지난 2010년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왕표 각막은 현행법상 이동우에게 기증될 수 없다.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장기이식법)에 따르면 생전에는 특정인을 지정한 장기 기증이 심사를 거쳐 허용된다. 그러나 안구(각막)의 경우 생전 장기기증이 불가능한 장기로 분류돼 사후 기증만 허용된다. 

국민들에게 희망 주고 떠난 ‘나는 표범’
김일 수제자로 프로레슬링 전성기 이끌어

사후 기증의 경우 안구는 기증자가 뇌사 또는 사망 전 장기 적출에 동의한 경우에만 적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족 및 유족이 장기 등의 적출을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본인의 동의는 고인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나 그 외 민법상 유언의 형식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의가 적법하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특정인을 지정해 안구를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장기이식법 제26조는 장기이식대상자 선정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식대상자는 법상 선정기준에 따라 이식대기자 중에서 선정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안구의 경우 병원장(의료기관장)이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병원장이 선정하는 경우 이식대상자 선정사유와 선정결과를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에 통보해야 한다.

즉 사망자가 특정인을 지정해 안구를 이식하려는 유언 등을 남겼다 해도 이는 병원장에 대한 촉구의 의미만 갖게 된다. 단 가족을 지정해 안구 이식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선순위로 이식이 가능하다.
 

의학적으로도 이동우의 질환은 각막 이식으로 치료될 수 없다. 이동우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이라는 질환으로 시력을 잃었다. 이는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광수용체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대표적인 ‘유전성 망막질환’이다. 

문제는 망막 이식을 해도 시력 회복이 어렵다는 것.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의 주인공 임재신씨도 이동우에게 망막 기증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우세준, 주광식 교수팀이 발표한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법에 대한 최신 지견’에 따르면 유전성 망막질환은 인구 3000명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실명하게 되는 ‘난치성 질환’이다. 

우리의 챔프
링과 ‘작별’

현재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 ▲유전자치료 ▲줄기세포치료 ▲인공망막이식의 4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이 중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유전자치료’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제가 유전자치료 분야서 처음으로 미국 식약청 FDA에 의해 승인됐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치료효과도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비록 이왕표의 각막 기증은 무산됐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이왕표의 장지는 고양시 청아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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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는 내란 특별검사팀이 해소하지 못한 건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특별수사본부 외에도 TF팀을 꾸렸으나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상규명 핵심 기관인 정보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상당수가 근거가 빈약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인사도 문제다. 내란에 연루된 핵심 기관임에도 인적 쇄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본부에 조사관들이 상주까지 했는데 밝혀진 게 없다.” 한 정보사령부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정보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차원의 특별수사본부와 헌법존중 TF(테스크포스)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제보와 투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후신인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보사에는 대북공작 전문가들인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가 있다. 휴민트 부대인 HID(북파공작부대)와 이들을 지휘하는 100여단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들은 대북공작 실행 부대로 전략·기획은 특수사업처가 담당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 특수처는 최근 특수·대외·훈련평가 등 3개의 부서를 특수·대외로 개편했다. 신임 정보사령관에는 1988년 이진백 사령관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인 조선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박민영 육군정보학교장이 임명됐다. 참모장은 육사 출신 한모 준장, 정보단장은 하모 준장(3사)이 맡게 됐다. 100여단장이던 육사 출신 정모 준장은 제2작전사령부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당분간 100여단장 자리를 공석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휴민트 조직이 12·3 내란에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특수본의 수사가 끝난 이후 진급 심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보사는 검찰과 경찰, 내란 특검팀 수사에 의해 부서명이 노출돼 기밀이 새 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홍도 격화되고 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에 제보와 투서가 빗발치고 있는 점이 정보사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한 군 관계자는 “‘진급 시즌’ 때문이라고 해도 의혹에 그치는 제보가 많다. 중요한 내용도 있지만 타 부서의 간부를 언급하며 ‘문제가 있어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약물 공작’ 문건 본거지 특수처 압수수색 패스 논란의 인물들 되레 진급 “장군 인사로도 거론”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약물 공작 문건’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건 작성자인 이모 대령(현 속초 HID 부대장)과 군무원 외에도 당시 특수처장이던 A 대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이 확보한 해당 문건은 정보사 특수처 산하 대외 담당실에 존안돼있었다. 문건 작성 및 책임자인 A 대령과 이 대령 모두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수처 간부 중 일부는 수사에 협조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하게 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연결고리가 의심됐으나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는 관련 의혹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실제 담당 조사관들은 정보사 안양 본부에 상주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 공작 문건 외에도 지난해 2월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준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던 ‘2016 계획(가칭)’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으로 있을 때 당시 노상원의 지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대북 중요 임무를 6개월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불합리한 지시가 많았지만 특히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던 지시가 생각난다. 노상원은 요원들에게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보낸 뒤 임무를 끝내면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계획은 노상원 전 사령관이 취임 이후 자신의 비서실장과 특수처장, 사업단장을 해임한 이후 모의됐다. 일반적 공작처럼 북한 내 쿠데타를 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실제 수십명의 공작관들이 강제로 동원돼 노 전 사령관의 비상식적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상원 폭사 지시 ‘2016 계획’도 조사 바짝 붙었는데 빈손…진상규명 어려울 듯 한 국방부 관계자는 “TF에서 해당 사안을 조사했던 건 사실”이라며 “차후 어디서 수사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2016 계획’이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됐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 전 사령관은 2016 계획 외에도 대북공작 관련 보고서를 ‘특수’가 아닌 ‘일반’ 문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제한된 공간에 보관한 후 통제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안양 본부에 가서 보고하는 절차에서 노상원이 직접 100여단을 방문해 보고를 받았다. 시스템이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문상호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반 문서로 분류한 대북공작 문건들은 김용현에게 따로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상원은 사실상 수년간 김용현에게 휴민트들이 작성한 첩보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 간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또 다른 군 정보기관인 777사령부에 대한 ‘인사 차별’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777사령부에 소속된 시긴트(SIGINT·신호정보·820) 전문가들은 휴민트와 같은 820 정보병과다. 다만 ‘인간’과 ‘신호’로 구별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보사는 관행대로 육군 소장이 신임 정보사령관을 맡게 됐지만 777사령부는 공군 준장으로 격하 보직된 데 이어 지휘관의 군종까지 뒤집히는 전례 없는 조치가 단행됐다. 777사령부는 정보사와 다르게 내란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다. 인사만 놓고 보면 두 군 정보기관 간 인사에 차이가 있다는 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주먹구구 인사 국방부 인사를 담당하던 한 소식통은 “777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사”라며 “정보사 육사 출신들의 진급이 대거 배제됐다고 해도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속사정은 다르다. 실질적 지휘 체계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F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16일 조사를 마무리한 TF는 조만간 결과를 검토해 다음 달 13일까지 승진 취소 및 징계성 전보 등 인사 조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적어도 이날까지는 군 정보기관 내 파열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