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자산신탁 ‘이상한 약관’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10 11:22:43
  • 호수 1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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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인 척…갑질보다 더한 ‘슈퍼 을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갑질보다 더한 을(乙)질이다.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은 계약서상 을이지만, 고객에 갑질한 의혹이 제기됐다. 한자신 신탁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가 정한 불공정한 약관 조항 유형의 대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탁자(고객)와 맺은 한자신(사업자)의 신탁계약서는 약관 형식으로 관리된 것으로 확인된다. 약관이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사업자)가 다수의 고객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의미한다.

을은 을이 
아니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자신의 신탁계약서 견본 2부(분양형·차입형), 한자신이 고객들과 체결한 11건(분양형 6건·차입형 5건)의 신탁계약서를 비교 분석한 결과 견본과 실제 고객들과 체결한 계약서가 모두 같은 형식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신 역시 “신탁계약서가 자사에서 만든 표준계약서”라고 인정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1개의 신탁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분양형 신탁계약서 = 충북 청주시 강서동 주상복합 신축사업·춘천 효자동 생활형 숙박시설 신축사업·전라북도 익산시 창인동 1가 주상복합 신축사업·제주 성산 디아일랜드 마리나 신축사업·대구 두산동 87-6 오피스텔 신축사업·인천 구월동 주상복합 신축사업. 

▲차입형 신탁계약서 = 오산시 원동 복합빌딩 개발사업·수원 호매실지구 오피스텔 신축사업·대구 수성구 두산동 13번지 오피스텔 신축사업·경남 창원시 성산구 가음정동 391-9번지·충청남도 보령시 명천동 516-6일원 공동주택 신축사업 등이다. 

한자신 신탁계약서 11개 입수 분석 
불공정 의심되는 조항들 다수 포착

한자신의 신탁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불공정한 약관 조항 유형의 대표 사례로 보였다. 11개의 한자신 신탁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한자신은 불가역적인 면책 조항으로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해온 사실이 곳곳서 발견됐다. 다음은 ‘충북 청주시 강서동 주상복합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 조항들이다.

▲특약사항 제27조(면책조항) = ①을(乙-한자신)이 본 사업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 처리하는 모든 업무 및 그 결과는 갑(甲-위탁자·고객)에게 귀속’되고, 이에 대해 갑은 ‘일체의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②본 사업과 관련해 을의 귀책사유가 아닌 사유로 을이 부담하는 비용 또는 을에게 손해배상(손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책사유가 있는 갑 또는 병(丙-시공사)이 이를 부담하지 아니할 경우 을은 부담비용 또는 손해배상 상당액을 신탁재산서 우선 충당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하여 수익자는 '일체 이의를 제기치 아니한다.'

▲특약사항 제28조(시공사의 부도, 파산 등) = ① … 을이 판단하는 경우 병은 건축물의 공사를 중지하고, 그 현장을 을과 협의해 지정하는 자에게 즉시 명도해야 한다. 이 경우 을은 공사도급계약을 해지, 해제하고 예정 가격 및 계약 조건을 제시, 을의 내부규정서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따라 시공사를 재선정할 수 있다. 갑, 병, 정(丁-금융기관)은 이에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⑥본조에 의한 공사도급계약의 해지, 시공사 변경 및 그에 따른 사업비의 증가 등 본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을이 행한 일체의 행위 및 그 결과(공사비 정산 포함)에 대하여 갑, 병, 정은 '을에게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특약 못들어”
 위탁자 주장 

▲특약사항 제30조(우선적용 등) = ①신탁계약 본문과 특약사항은 상호보완의 효력을 가지되, 계약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에는 '특약사항이 신탁계약 본문에 우선해 적용된다.' ②본 신탁계약의 내용은 법령에 위배되지 않으며, 을에게 효력을 가지는 법원의 재판,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이나 신탁감독기관의 관련 지침과 지도 등에 위배되지 않도록 (변경) 처리될 수 있음을 '갑, 병, 정은 이해하고 보장한다.' 

▲특약사항 제36조(기타) = ①어떠한 원인에든지 본 신탁계약의 일부 용어 약정 조건, 또는 규정이 불법이거나 무효이거나 집행 불가능하더라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본 신탁계약의 나머지 조항은 유효하고 집행 가능하며 완전한 효력을 갖는다.

▲약관 제31조(관할법원) = ①신탁계약으로 인한 다툼이 발생해 소송이 필요한 경우에는 을의 본점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으로 한다.

‘충북 청주시 강서동 주상복합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 외 나머지 10개의 신탁계약서에도 사업시행자의 권한·시공사 부도 파산·면책조항·우선적용·관할법원 등 동일한 내용들이 나타났다. 각 조항의 순번이나 표기에 있어서 상이함만 있을 뿐 10개의 신탁계약서의 내용은 똑같다. 

신탁계약서만 본다면 ‘갑’인 고객(위탁자)은 ‘을’인 한자신에게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도록 돼있다. 이 때문에 한자신의 신탁계약서가 공정위서 정한 불공정한 약관 조항 유형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을이 전혀 을이 아니다. 한자신 신탁계약서에 나온 특약사항이 모두 불공정한 약관 조항들인 것 같다. 하나 같이 사업자인 한자신의 손해배상범위를 제한한다”며 “‘갑(고객)은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등의 표현이 많은데, 사업자 측의 고의·중대한 과실에 대한 법률상 책임을 회피하는 조항들”이라고 진단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한 약관조항의 유형으로 크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조항 ▲부당한 면책 조항 ▲부당한 계약의 해제·해지 조항 ▲고객의 권익을 침해하는 조항 ▲부당한 채무이행 조항 ▲과중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조항 ▲부당하게 의사표시를 의제하는 조항 ▲부당한 소제기 금지나 재판관할 합의 조항 등으로 나누고 있다. 

어떻게 한자신은 신탁계약을 맺으면서도 수십년간 별탈이 없었던 걸까. 비밀은 특약사항에 있다. 법조계에선 한자신이 약관에 해당되는 일방적 조항을 모두 특약사항에 포함시켜 약관규제법을 교묘히 피해갔다고 지적했다. 

약관규제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에 따르면 사업자가 그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작성, 거래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규제함으로써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 생활을 균형 있게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금감원 위반 지적
공정위 심사 중 

변호사는 “한자신 특약사항이 약관에 들어갔다면, 약관규제법에 따라 모두 규제를 받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걸 개인과 개인의 계약인 특약사항으로 돌림으로써, 약관규제법을 우회적으로 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11개의 신탁계약서가 동일하다. 이름만 특약이지 약관이나 마찬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자신의 모든 신탁계약서에는 ‘특약사항이 신탁계약 본문보다 우선한다’고 돼있다. 이 때문에 한자신은 해마다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한자신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신탁사업과 관련해 105건이 피소돼 송사가 진행 중이다. 대부분 위탁자들로부터 피소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금융감독원도 한자신이 위탁자들에 대한 선관주의·충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대구 수성구 두산동 13번지 오피스텔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맺은 위탁자 정모씨는 “한자신이 신탁계약법을 위반했다”(본지 1160호 ‘한국자산신탁 이상한 영업’참조)며 금감원에 진정서를 넣은 바 있다.

지난 6월 금감원의 답변서를 요약하면 ‘한자신이 신탁법 제32조 선관주의 의무와 제33조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진단했다. 신탁사는 시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수익자의 이익을 보호할 선관주의·충실 의무가 있다. 금감원은 한자신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위탁자들의 신탁재산에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특약으로 약관규제법 교묘히 피했나 

하지만 금감원은 한자신이 신탁계약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바로 특약사항 때문이다. 금감원은 신탁계약서에 있는 특약사항 제19조1항, 제22조6항을 내세워 신탁계약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약사항 제22조는 시공사의 부도, 파산 등과 관련된 조항으로 6항에는 ‘을이 행한 일체의 행위 및 그 결과에 대해 갑, 병 및 정은 을에 에게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한자신이 약관의 성격을 띠고 있는 특약으로 수십년간 선관주의·충실 의무를 합법적으로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한자신이 특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금융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신탁사는 특약 사항에 대해 위탁자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만약에 이런 설명 없이 사인만 했다면 이 계약은 무효”라고 했다.

그럼에도 복수의 위탁자들은 신탁계약서 작성할 당시 한자신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자신과 춘천 효자동 생활형 숙박시설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한 김모씨는 “한자신 본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당시 특약에 관련해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확인을 제대로 안 한 우리도 잘못이지만, 금융기관과 계약할 때 누가 일일이 약관을 다 읽어보느냐. 읽더라도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민원을 청구한 정씨도 “한자신과 특약 사항을 조정하거나 협의하지 않았다. 한자신만 믿고 신탁계약서에 도장만 찍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위탁자 A씨도 “한자신에게 계약서와 관련해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자신 신탁계약서는 현재 공정위에 불공정약관 심사가 청구된 상태다. 공정위 측은 특약(개별 약정)이 약관법 4조에 의한 건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약관법 4조에 따라 특약이 약관을 우선한다. 특약이 약관법 4조에 의해 당사자 간 양해로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한자신은 위탁자와 정당하게 이루어진 계약이라는 입장이다. 

“정당한 계약”
 당당한 한자신

회사 관계자는 “신탁계약서는 표준계약서(약관)다. 특약도 큰 틀에서는 같지만, 위탁자와 협의해서 이루어진 정당한 계약”이라며 “위탁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으며, 법인 대 법인의 계약인데 그걸 읽어보지도 않고 계약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신탁계약서가 공정위서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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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