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자산신탁 ‘이상한 약관’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10 11:22:43
  • 호수 1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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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인 척…갑질보다 더한 ‘슈퍼 을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갑질보다 더한 을(乙)질이다.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은 계약서상 을이지만, 고객에 갑질한 의혹이 제기됐다. 한자신 신탁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가 정한 불공정한 약관 조항 유형의 대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탁자(고객)와 맺은 한자신(사업자)의 신탁계약서는 약관 형식으로 관리된 것으로 확인된다. 약관이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사업자)가 다수의 고객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의미한다.

을은 을이 
아니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자신의 신탁계약서 견본 2부(분양형·차입형), 한자신이 고객들과 체결한 11건(분양형 6건·차입형 5건)의 신탁계약서를 비교 분석한 결과 견본과 실제 고객들과 체결한 계약서가 모두 같은 형식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신 역시 “신탁계약서가 자사에서 만든 표준계약서”라고 인정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1개의 신탁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분양형 신탁계약서 = 충북 청주시 강서동 주상복합 신축사업·춘천 효자동 생활형 숙박시설 신축사업·전라북도 익산시 창인동 1가 주상복합 신축사업·제주 성산 디아일랜드 마리나 신축사업·대구 두산동 87-6 오피스텔 신축사업·인천 구월동 주상복합 신축사업. 


▲차입형 신탁계약서 = 오산시 원동 복합빌딩 개발사업·수원 호매실지구 오피스텔 신축사업·대구 수성구 두산동 13번지 오피스텔 신축사업·경남 창원시 성산구 가음정동 391-9번지·충청남도 보령시 명천동 516-6일원 공동주택 신축사업 등이다. 

한자신 신탁계약서 11개 입수 분석 
불공정 의심되는 조항들 다수 포착

한자신의 신탁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불공정한 약관 조항 유형의 대표 사례로 보였다. 11개의 한자신 신탁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한자신은 불가역적인 면책 조항으로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해온 사실이 곳곳서 발견됐다. 다음은 ‘충북 청주시 강서동 주상복합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 조항들이다.

▲특약사항 제27조(면책조항) = ①을(乙-한자신)이 본 사업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 처리하는 모든 업무 및 그 결과는 갑(甲-위탁자·고객)에게 귀속’되고, 이에 대해 갑은 ‘일체의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②본 사업과 관련해 을의 귀책사유가 아닌 사유로 을이 부담하는 비용 또는 을에게 손해배상(손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책사유가 있는 갑 또는 병(丙-시공사)이 이를 부담하지 아니할 경우 을은 부담비용 또는 손해배상 상당액을 신탁재산서 우선 충당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하여 수익자는 '일체 이의를 제기치 아니한다.'

▲특약사항 제28조(시공사의 부도, 파산 등) = ① … 을이 판단하는 경우 병은 건축물의 공사를 중지하고, 그 현장을 을과 협의해 지정하는 자에게 즉시 명도해야 한다. 이 경우 을은 공사도급계약을 해지, 해제하고 예정 가격 및 계약 조건을 제시, 을의 내부규정서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따라 시공사를 재선정할 수 있다. 갑, 병, 정(丁-금융기관)은 이에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⑥본조에 의한 공사도급계약의 해지, 시공사 변경 및 그에 따른 사업비의 증가 등 본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을이 행한 일체의 행위 및 그 결과(공사비 정산 포함)에 대하여 갑, 병, 정은 '을에게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특약 못들어”
 위탁자 주장 

▲특약사항 제30조(우선적용 등) = ①신탁계약 본문과 특약사항은 상호보완의 효력을 가지되, 계약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에는 '특약사항이 신탁계약 본문에 우선해 적용된다.' ②본 신탁계약의 내용은 법령에 위배되지 않으며, 을에게 효력을 가지는 법원의 재판,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이나 신탁감독기관의 관련 지침과 지도 등에 위배되지 않도록 (변경) 처리될 수 있음을 '갑, 병, 정은 이해하고 보장한다.' 


▲특약사항 제36조(기타) = ①어떠한 원인에든지 본 신탁계약의 일부 용어 약정 조건, 또는 규정이 불법이거나 무효이거나 집행 불가능하더라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본 신탁계약의 나머지 조항은 유효하고 집행 가능하며 완전한 효력을 갖는다.

▲약관 제31조(관할법원) = ①신탁계약으로 인한 다툼이 발생해 소송이 필요한 경우에는 을의 본점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으로 한다.

‘충북 청주시 강서동 주상복합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 외 나머지 10개의 신탁계약서에도 사업시행자의 권한·시공사 부도 파산·면책조항·우선적용·관할법원 등 동일한 내용들이 나타났다. 각 조항의 순번이나 표기에 있어서 상이함만 있을 뿐 10개의 신탁계약서의 내용은 똑같다. 

신탁계약서만 본다면 ‘갑’인 고객(위탁자)은 ‘을’인 한자신에게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도록 돼있다. 이 때문에 한자신의 신탁계약서가 공정위서 정한 불공정한 약관 조항 유형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을이 전혀 을이 아니다. 한자신 신탁계약서에 나온 특약사항이 모두 불공정한 약관 조항들인 것 같다. 하나 같이 사업자인 한자신의 손해배상범위를 제한한다”며 “‘갑(고객)은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등의 표현이 많은데, 사업자 측의 고의·중대한 과실에 대한 법률상 책임을 회피하는 조항들”이라고 진단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한 약관조항의 유형으로 크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조항 ▲부당한 면책 조항 ▲부당한 계약의 해제·해지 조항 ▲고객의 권익을 침해하는 조항 ▲부당한 채무이행 조항 ▲과중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조항 ▲부당하게 의사표시를 의제하는 조항 ▲부당한 소제기 금지나 재판관할 합의 조항 등으로 나누고 있다. 

어떻게 한자신은 신탁계약을 맺으면서도 수십년간 별탈이 없었던 걸까. 비밀은 특약사항에 있다. 법조계에선 한자신이 약관에 해당되는 일방적 조항을 모두 특약사항에 포함시켜 약관규제법을 교묘히 피해갔다고 지적했다. 

약관규제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에 따르면 사업자가 그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작성, 거래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규제함으로써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 생활을 균형 있게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금감원 위반 지적
공정위 심사 중 

변호사는 “한자신 특약사항이 약관에 들어갔다면, 약관규제법에 따라 모두 규제를 받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걸 개인과 개인의 계약인 특약사항으로 돌림으로써, 약관규제법을 우회적으로 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11개의 신탁계약서가 동일하다. 이름만 특약이지 약관이나 마찬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자신의 모든 신탁계약서에는 ‘특약사항이 신탁계약 본문보다 우선한다’고 돼있다. 이 때문에 한자신은 해마다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한자신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신탁사업과 관련해 105건이 피소돼 송사가 진행 중이다. 대부분 위탁자들로부터 피소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금융감독원도 한자신이 위탁자들에 대한 선관주의·충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대구 수성구 두산동 13번지 오피스텔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맺은 위탁자 정모씨는 “한자신이 신탁계약법을 위반했다”(본지 1160호 ‘한국자산신탁 이상한 영업’참조)며 금감원에 진정서를 넣은 바 있다.

지난 6월 금감원의 답변서를 요약하면 ‘한자신이 신탁법 제32조 선관주의 의무와 제33조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진단했다. 신탁사는 시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수익자의 이익을 보호할 선관주의·충실 의무가 있다. 금감원은 한자신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위탁자들의 신탁재산에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특약으로 약관규제법 교묘히 피했나 

하지만 금감원은 한자신이 신탁계약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바로 특약사항 때문이다. 금감원은 신탁계약서에 있는 특약사항 제19조1항, 제22조6항을 내세워 신탁계약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약사항 제22조는 시공사의 부도, 파산 등과 관련된 조항으로 6항에는 ‘을이 행한 일체의 행위 및 그 결과에 대해 갑, 병 및 정은 을에 에게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한자신이 약관의 성격을 띠고 있는 특약으로 수십년간 선관주의·충실 의무를 합법적으로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한자신이 특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금융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신탁사는 특약 사항에 대해 위탁자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만약에 이런 설명 없이 사인만 했다면 이 계약은 무효”라고 했다.

그럼에도 복수의 위탁자들은 신탁계약서 작성할 당시 한자신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자신과 춘천 효자동 생활형 숙박시설 신축사업의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한 김모씨는 “한자신 본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당시 특약에 관련해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확인을 제대로 안 한 우리도 잘못이지만, 금융기관과 계약할 때 누가 일일이 약관을 다 읽어보느냐. 읽더라도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민원을 청구한 정씨도 “한자신과 특약 사항을 조정하거나 협의하지 않았다. 한자신만 믿고 신탁계약서에 도장만 찍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위탁자 A씨도 “한자신에게 계약서와 관련해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자신 신탁계약서는 현재 공정위에 불공정약관 심사가 청구된 상태다. 공정위 측은 특약(개별 약정)이 약관법 4조에 의한 건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약관법 4조에 따라 특약이 약관을 우선한다. 특약이 약관법 4조에 의해 당사자 간 양해로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한자신은 위탁자와 정당하게 이루어진 계약이라는 입장이다. 

“정당한 계약”
 당당한 한자신

회사 관계자는 “신탁계약서는 표준계약서(약관)다. 특약도 큰 틀에서는 같지만, 위탁자와 협의해서 이루어진 정당한 계약”이라며 “위탁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으며, 법인 대 법인의 계약인데 그걸 읽어보지도 않고 계약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신탁계약서가 공정위서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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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