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치매설’ 소문과 진실

끝까지…반성은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출석할 수 없다.”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하 전두환씨)의 재판 불출석 사유다. 전씨의 치매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그가 보였던 행보는 치매설과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를 둘러싼 소문과 진실은 무엇일까. 
 

전두환씨의 알츠하이머 진단 사실은 지난달 26일 공개됐다. 그간 전씨에 대한 정신건강 문제가 간혹 언급되긴 했지만 가족을 통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이하 이씨)는 그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이 같은 입장문을 내놨다. 이씨는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두환씨는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 전날
갑자기 왜?

이씨가 전씨의 알츠하이머 진단 사실을 공개한 시기는 그의 공판 하루 전날이었다. 전씨는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로(사자명예훼손죄) 불구속 기소돼 첫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고 조비오 신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시 사격을 목격했다”며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 상황을 증언했다. 

전씨는 지난해 4월 펴낸 회고록을 통해 그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전씨 측이 첫 재판이 열리기 바로 전날 알츠하이머 사실과 함께 불출석 사유를 밝히면서 진위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일단 재판부는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전씨가 법원에 재판 연기 신청이나 불출석 사유서 등을 제출하지 않고 언론 등을 통해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전씨가 법정에 불출석하면서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과 공소 사실 확인 등의 절차가 진행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 기일을 오는 10월1일 오후 2시30분으로 정하고 전씨의 출석을 요청했다.

전씨 측에 따르면 그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전씨 측에 따르면 그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꽤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공판 하루 전 있었던 입장문을 통해 ‘1995년 옥중 단식’을 언급했다. 이씨는 “(전씨는)1995년 옥중서 시작한 단식을 병원으로 호송된 뒤에도 강행하다가 병실서 쓰러져 28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며 “주치의는 뇌세포의 손상을 우려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 단식 후유증으로 여겨지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면서도 “다행히도 일상생활은 물론 회고록 작성을 위한 구술 등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공판 하루 앞두고 알츠하이머 주장
전측, 2013년 검찰 수사 이후 발병

전씨는 1995년 12월3일 김영삼정부서 통과된 5·18특별법으로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돼 이날부터 단식을 시행했다. 

그해 12월7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전씨는 단식 나흘째 변호사 접견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5공화국의 정통성이 전면 부인되는 현재 상황을 결코 승복할 수 없다”며 “역사적인 비극인 광주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의 당리당략적 이용을 떠나 이번 기회에 반드시 올바른 진상규명이 이뤄져 광주시민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후 계속된 단식으로 건강은 더 악화됐다. 결국 그달 20일 밤, 서울 가락동 경찰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병원서도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30일 병원 측은 응급조치를 시행하면서 그의 단식은 28일 만에 끝이 났다.    

전씨는 단식 후유증으로 국립경찰병원서 73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후 법무부는 1996년 3월2일, 안양교도소에 재수감했다. 

이튿날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전씨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교도소 수감 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병원 소견에 따라 재수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전씨는 1심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심서 형량이 최종 확정됐다. 그 후로 대법원심 이후 약 7개월 뒤인 1997년 12월 김영삼정부 때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단식 후유증?
발병 원인 주장

이씨가 밝힌 것처럼 전씨는 한 달에 가까운 단식을 했다. 또 단식 후유증으로 70일 넘게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씨 주장처럼 그의 건강이 이때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다만 온전치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1997년 말 석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고록 준비를 시작했다. 민 전 비서관은 지난달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2000년부터 구술 녹취를 하는 등 준비를 시작했다”며 회고록 준비시기를 밝혔다. 결국 전씨의 정신 건강은 회고록 준비를 시작할 때까지 양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1995년 옥중 단식’에 이어 ‘2013 검찰 압수수색’을 언급했다. 이 여사는 검찰 수사시기에 전씨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전씨의 건강 악화에 결정적이었다고 봤다.

그는 “2013년 검찰이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해 자택 압수수색을 벌였고, 일가친척 등이 무차별적으로 재산 압류 소동을 겪었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은 2013년 7월 전씨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고 은닉 재산을 수사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전씨 자택을 비롯해 일가 친인척 주거지, 장남 전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의 계열사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씨는 검찰 압수수색 이후 상황을 설명하며 “한동안 말을 잃고 기억상실증을 앓았다”며 “그 일 이후로 대학병원서 알츠하이머 증세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 2013년 검찰 수사 당시 전씨에 대한 치매설 등 그의 건강 이상설이 돌기도 했다. 그해 7월28일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전씨의 한 측근은 “모든 것을 잊고 싶은지 자신의 연희동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의 치매증상 때문에 실제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강 문제없어 보였는데…
행보 특이점 없어 고개 갸웃

또 차남 재용씨는 같은 달 25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서 장남 재국씨, 장녀 효순씨, 외삼촌 이창석씨와 4자 회동을 할 때 “어머니가 ‘아버지가 지나간 일을 기억 못하는 건 오히려 괜찮다. 가슴 아플 일 없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에 대한 치매설 등 건강 이상설이 돌자 당시 민 전 비서관은 그 해 8월6일 보도 참고 자료를 배포했다. 민 전 비서관은 “사리 판단은 분명하고 일상생활도 정상적”이라며 전씨를 향한 논란을 일축했다.

이는 이씨의 입장과 다소 배치된다. 이씨는 “입장문을 통해 압수수색 이후 한동안 말을 잃고 기억상실증을 앓았다”고 밝혔다. 반면 압수수색 이후 상황서 민 전 비서관은 “전씨의 건강은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민 전 비서관은 전씨가 2013년 또는 그 전부터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민 전 비서관은 지난달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알츠하이머를 2013년부터 앓고 있었던 것이 맞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알츠하이머)진단 결과를 받은 건 2013년이고 그 전부터도 그런 식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건 주변사람들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3년 검찰 수사 이후 전 전씨가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치매설과 관련된 보도들이 있었다. 다만 당시 민 전 비서관은 보도 참고 자료를 배포하면서 그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일축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2013년 전부터 전씨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다. 이씨가 주장하는 2013년에 전씨의 알츠하이머 진단이 있었는지 의문이 생기는 까닭이다.

정상→문제
팩트는 뭐?

이씨 주장대로 2013년 전씨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하더라도 이후 그는 눈에 띌만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전씨는 검찰 압수수색 이후 약 10개월 만인 2014년 5월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당시 그는 미납 추징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알려주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당시 전씨는 비교적 정정한 모습으로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전씨는 2015년 10월 모교인 대구공고 체육대회에도 참여해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2016년 20대 총선 당시에는 이씨와 함께 투표장을 찾아 투표하기도 했다. 두 달 뒤인 2016년 6월엔 인터불고 경산컨트리클럽서 열린 대구공고 동문가족 골프대회에 참석했다.

이씨는 전씨가 2013년 검찰 압수수색 이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2013년 이후 해마다 꽤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전씨가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주장에 물음표가 찍히는 까닭이다.

전씨의 행보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전씨는 지난해 연희동 자택서 열린 신년 인사회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씨는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채널A가 지난해 1월2일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전씨는 연희동 자택 신년 인사회서 “경제를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나와 다 까먹고, 보좌관 말도 잘 안 듣고, 잘 모르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설쳐대면서 흔들면 다 망한다”며 당시 불거졌던 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했다.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전씨가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지 4년이 된 시점서 어떻게 박 전 대통령을 기억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민 전 비서관은 지난달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어떻다는 것은 전씨가 70년 동안 알고 지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당시 전씨가 박 전 대통령 자체를 언급한 것 보다 ‘평가’를 내렸다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 당시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을 단순히 안다는 것과 결이 다르다는 해석이다. 

전씨가 당시 상황을 판단할 정도의 인지능력은 있었다는 것이다. 

전씨는 이 자리서 “이번에는 경제를 잘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남북 관계가 심각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경제가 잘 돼야 한다”며 당시 정국을 진단하기도 했다.

회고록 여는 말
어려움 없다더니

한편 지난해 4월 발간된 전씨 회고록에는 전씨의 기억력이 언급돼있다. 전씨는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 편 여는 말에 ‘근년에 이르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까운 일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사리를 판단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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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