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 주인공 흑금성 스토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8.20 16:57:40
  • 호수 1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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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만나 나눈 대화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흑금성 사건을 조명한 영화 <공작>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개봉 2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도달했다. 흑금성인 박채서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안기부 특수공작요원으로 김정일까지 직접 만났다. 007 영화에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이건 실화다. 
 

지난 1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공작>은 지난 15일 광복절에 47만 596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누적관객수는 309만 9024명에 달한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한 국가안전기획부(현 안기부) 특수공작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보사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1993년 안기부 대북 공작원으로 활약한 박채서씨가 실존 모델이다.

그는 누구?

1990년대 초반,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남북 위기가 절정에 치달았을 당시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 박씨는 북핵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북한 핵심 간부에 대북사업을 제안하며 접근했다. 당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로 경제위기가 심각했던 북한의 자금난을 역이용했던 것이다.

박씨는 북한 간첩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족마저 속이고 제 운명을 바꾸며 조국을 위해 철저히 위장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한 안기부의 북풍 사건에 직면했다. 

결국 조국의 이념이란 미명에도 개인의 신념을 지켰으나 이로 인해 안기부의 버리는 카드가 됐다. 만천하에 정체가 폭로됐으며 이중간첩으로 몰려 온갖 ‘국가안보법 위반’이란 죄명으로 옥살이를 했다. 


스파이 활동은 국제법상 금지된 범죄 행위인 만큼 어떤 나라도 자국의 스파이 행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작>은 국내 일부 정치 세력과 안기부의 이해관계 때문에 스스로 비밀공작원을 공개하고 법정에 세운 충격적 사건의 전말과 치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흑금성 박씨는 한국 첩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공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엔 철저하게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락한 흑금성 사건을 통해 분단국가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냈다. 

박씨는 충북 청원 출신으로 1977년 육군 제3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소위로 임관했고 육군대학 졸업식 때는 참모총장상을 받을 만큼 뛰어났다. 1990년 소령 계급장을 달고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공작단 본부에 배속됐다. 

그는 정보사에서 한미합동공작대(902정보대)에 파견된다. 당시 그는 미국 정보 요원들과 함께 북한 핵개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91년부터 정보사 소속의 한미 합동공작대 A-23팀서 대북 우회 침투 공작에 참여했다. 이 시기 그는 북한 공작 조직이 당면한 자금난을 이용하는 공작안을 기획했는데 이것이 상부에 의해 채택됐다. 
 

그러자 그는 곧 유능한 엘리트서 무능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180도 바뀌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고도 제대로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감찰에 걸리고 말아 결국 1993년 3월 그는 소령 신분으로 제대하고 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박씨는 안기부 203실(해외공작실) 공작원이 되어 대북활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가 참여한 공작은 ‘편승공작’으로 대북사업에 열의가 있는 사업가를 지원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대북활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박씨 공작팀의 눈에 들어온 인사가 광고 프로듀서 출신의 박기영씨다. 박씨는 먼저 박기영씨의 이웃집으로 이사를 간 후 그와 친분 쌓기에 주력했다. 박기영씨가 한국 광고를 북한에서 촬영하려는 방안을 꿈꾸고 있음을 알아냈다. 

박씨는 박기영씨와 그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본을 물색하던 중 미진양행 운영자 정진호씨와와 접촉했다. 박채서, 박기영, 정진호는 1995년 ‘커뮤니케이션 아자(AZA)’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박기영씨는 대표를, 박씨는 전무를 각각 맡았다.

박씨는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한과도 접촉을 시작했다. 회사 설립 이전에는 조총련계를 통하여 북한 국가보위부장 대리인 김명윤과 접촉. 이때 박씨는 북한의 다른 정보기관들이 제안한 거래를 거부하고 오직 국가보위부하고만 거래를 이어나갔다. 

정보사 출신 특수공작원…북 고위층 접촉
정권 바뀌고 이중간첩으로 몰려 실형 살아 

이 때문에 박씨는 국가보위부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북한 관련 정보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회사 설립 전후에는 광명성경제연합회 베이징 대표부의 ‘리철’을 접촉했다. 영화 <공작>서 리명운은 리철을 모티브했다. 그리고 박씨는 북한에게 달콤한 제안을 하나 내밀었다.

흑금성이 내민 제안은 바로 ‘광고 촬영’이었다. 그는 “광고 촬영이 북한에게 돈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구슬렸다. 당시 북한은 90년대부터 동구권의 붕괴, 제1차 핵 위기, 자연재해, 고난의 행군 등의 사건들을 겪으며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었다. 

그런 상황서 북한 지도부는 박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97년 2월 박씨는 리철과 함께 남북한의 관계자들을 끌어 모아 실무회의를 가졌다. 남에서는 박기영씨를 비롯한 아자 직원들, 북에서는 방종삼 총사장을 비롯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 관계자들이 만났다. 
 

며칠 간의 회의 끝에 양측은 2월 14일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서 대북광고사업 조인식을 가졌다. 이를 통해 박씨에게 북한 광고 독점사업권이 넘어오게 됐다.

박씨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게 된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도 직접 만났다. 김정은에게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도 자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은 점차 크기가 커져갔다. 

북한 내 광고촬영 독점권을 얻은 박씨는 삼성 애니콜 광고의 북한 촬영 건도 담당하게 됐고, 북한 내 TV 촬영 독점권과 MBC와의 합작에도 관여했다. 

물론 그는 이런 활동 와중에도 첩보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만났던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도 녹음해 안기부에 보고했다. 북한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남한 쪽 정보도 과감하게 넘겨줬다. 

한편 첩보 활동을 위한 자기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박씨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흑금성의 공작 활동은 1997년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1998년 안기부는 큰 위기에 빠졌다. 바로 제15대 대통령 선거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관련자들이 북한에 총을 쏴달라고 부탁한 총풍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일로 파문이 일고 검찰이 안기부에까지 수사의 손길을 뻗쳤다. 안기부 이대성 전 해외실장은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과의 접촉내용이 담긴 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공개했다. 

흑금성은 대북활동을 하면서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결과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중 신한국당 이인제 의원을 가장 선호했으며, 김대중 후보를 가장 기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박씨는 ‘적(북한)이 낙선시키려 하는 국가 지도자라면 역으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도자가 아니겠느냐’며 김 전 대통령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박씨는 이들에게 북풍을 막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줬다. 

그러나 이런 접촉이 안기부에 노출됐다. 박씨는 당시 의심을 피하고자 김 전 대통령 측과 를 만난 이유를 ‘해외 공작원 정보 보고’ 문건에 적당히 보고했다. 하지만 ‘이대성 파일’로 이 사실이 공개되는 바람이 박씨가 안기부 소속의 공작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활동 재조명


그는 공작 활동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었다. 1998년 안기부에서 끝내 해고됐다. 이후 박씨는 대북활동서 일종의 비선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 간첩행위를 했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전교도소서 복역하다 2016년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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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