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큰 그림 그리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8.10 16:46:59
  • 호수 1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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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 깨지고 풍찬노숙 끝 부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정동영 의원이 민주평화당 신임 당 대표가 됐다. 2007년 현 여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뒤 오랜 풍찬노숙 끝의 복귀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 당 신임 대표로 존립의 기로에 선 민주평화당을 살릴 수 있을까.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이 지난 5일, 창당 후 첫 전당대회를 열어 정동영 후보를 당의 새로운 얼굴로 내세웠다. 정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K-BIZ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서 열린 전당대회서 68.57%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68.57% 최고득표
압도적으로 당선 

정 대표에 이어 유성엽 의원 41.45%, 최경환 의원 29.97%, 허영 인천시당 위원장 21.02%, 민영삼 전 최고위원 19.96%로 각각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이윤석 전 의원은 19.04%로 최하위를 기록,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청년위원장에는 서진희 후보가 57.50%로 승리했고 여성위원장은 양미강 후보가 단독 출마해 당선을 확정지었다.

민평당은 지난 1일부터 전날(4일)까지 당원을 상대로 한 온라인 및 ARS 투표(90%)와 국민여론조사(10%)를 실시해 이를 합산한 결과에 따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6명의 후보자가 나선 민평당 전대의 최대 관심사는 정 대표의 당권 도전 성공 여부였다. 


정 대표는 또 다른 당의 대주주인 박지원·천정배 의원의 출마 반대 요구를 거부하고 당 대표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 의원의 당권도전을 저지하기 위해 유·최 의원에게 반(反)정동영계의 표가 결집하는 양상도 보였다.

이에 민평당 전대는 정동영 후보와 유성엽 후보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선거 초반 정 대표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후 유 의원의 상승세가 매서워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치열한 당권 경쟁이 전개된 결과, 민평당 당원들은 지난 2007년 대권 후보를 지낸 정 후보의 경륜을 선택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서 참패한 당을 정비해 2020년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선 유 후보가 내건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대표 수락연설서 정 대표는 “약자 편에 서는 정치를 하라고 제게 10년 만에 기회를 주셨다”며 “최고위원 네 분과 함께 생사 기로에 선 민평당을 살려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명박에 깨지고 풍찬노숙 끝 부활
박지원·천정배 반대 거부하고 출마

민평당의 창당 첫 전당대회로 열린 이날 행사는 당원 1000여명이 결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초반 정인화 전준위원장이 대회사를 낭독하던 중 당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이 단상을 습격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당은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했다.

여야는 정 대표의 당 대표 선출에 대해 축하하며 연대와 협치를 기대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 신임 대표와 새로운 지도부의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상생과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 한반도 평화와 민생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주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발전적 협치를 기대한다”며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출발하는 새 지도부가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정치로 당면한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도 구두논평을 통해 “정 대표와 최고위원들께 축하드린다”며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평당을 비롯한 야당이 함께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정책의 대전환을 끌어낼 수 있도록 상의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도 “시대적 과제인 개헌과 민심 그대로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민평당과의 협력을 기대한다”며 “갈수록 어려운 민생과 경제를 위해 함께할 정당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정 대표 앞에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다당제 정착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당력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 대표는 민평당의 지지율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판단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지지율은 당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변화보다 경륜
민평당 살릴까 

정 의원은 앞서 당 대표 출마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평당을 잘 모르는 분들은 있어도 정동영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없다”며 “정동영하면 민평당이 연상될 수 있게 만들어 지지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평당의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1∼3%대에 그치고 있다. 낮은 지지율은 6.13 지방선거서 광역단체장 배출에 실패했고, 지지기반은 호남서조차 민주당에 밀리면서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정 의원은 6일 한 언론과 인터뷰서 “반드시 민평당을 대안 정당으로 이끌어 올릴 것”이라며 “지지율이 있는 존재감이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낼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원내 교섭단체 지위 회복 또한 당면한 주요 과제다. 교섭단체 지위를 회복해 정치권 내에서 민평당의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곧 캐스팅보트로서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사망으로 공동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민평당은 이달부터 범여권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무소속 이용호, 손금주 의원은 민평당의 구애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두 의원이 민평당보단 민주당 입당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이번 주 17명의 현역 의원님들과 힘을 합쳐서 모든 수단, 방법을 다해 교섭단체 복원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무소속을 유지하면서 함께 교섭단체만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발 벗고 나서 설득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변화보다 안정적인
지도력 필요 판단

정 대표는 전당대회서 “민평당을 민생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 선거제도 개혁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공약했다. 정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는 보다 다양한 국민들이 제도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이는 곧 민평당이 추구하는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당제를 정착시키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 대표는 “민평당의 존재 이유는 선거제도 개혁”이라며 “국회의원 299명이 모두 기득권의 대표인 현재의 국회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과의 협치 역시 선거제도 개혁을 고리로 삼아야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정 대표는 “(여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받아들이면 뭐든지(여당의 제안을) 200% 받아들일 것이고,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한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민생 현안을 놓고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클릭’을 지켜보고 있지 않겠다. (민주당이)초심을 지키도록 하겠다”며 ‘정의당보다 더 정의로운’ 개혁정당을 표방할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농민과 노동자 곁으로, 630만 자영업자 곁으로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그것이 민평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미서 정 대표 등 민평당 신임 지도부는 지난 6일, 부산 한진중공업을 찾아 첫 최고위원회의를 현장서 열고, 이후 고 김주중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분향소가 있는 서울 대한문을 찾았다.

그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로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장관을 지냈으며, 4선 국회의원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 지지율이…
다당제 구축

1953년 7월27일 전라북도 순창군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주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에 재수로 입학해 국사학과를 전공했다. 학창 시절 반(反)유신독재 투쟁을 벌이다 수감됐다. 

졸업 후 1978년 MBC 문화방송에 입사해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17년간 정치부 기자, 로스앤젤리스 특파원 등을 지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했다. 

1996년 대학 친구이자 총리, 교육부장관 등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권유를 받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이후 제15대 총선서 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돼 15대 국회에 입성,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총재 특보·청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끝까지 완주했으나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밀려 패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고, 이후 동반 탈당파들이 만든 열린우리당에 참여했으며 원내대표를 지냈다.

2004년 총선서 정 대표는 비례대표 22번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4월1일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는 발언으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노인 폄하 발언’이었다.

“존재감 있는 정당 만들 것” 
 1%대 지지율 극복이 과제

이 무렵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가결 영향으로 상승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취임한 한나라당이 역풍을 엎고 돌풍을 일으키면서 위기를 맞았다. 

결국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 대표는 비례대표직을 사퇴했고 열린우리당은 단독으로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으나 기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통일부장관으로 재직하다가 2006년 초 열린우리당 당 의장에 취임, 지방선거를 지휘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했고, 결국 지방선거서 참패하고 만다.

2007년 대선 때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당시 참여정부의 실정 등으로 사실상 여당(노무현의 탈당으로 법적으로 여당은 없었음)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율은 매우 처참했다. 정 대표는 지지율 20%에도 달하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위기 상태였다.

심지어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기 전 여론조사조차 그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50%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달리며 당선 가능성이 유력해 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기도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또다른 범여권의 주자인 이인제와 문국현, 권영길 등과의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비록 막판에 호남 및 범여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며 이회창이 갖고 있던 2위 자리를 탈환, 개표 초반 이명박 후보를 누르고 앞서는 등 역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결국 26.1%를 득표하며 중도정당(제1당) 역사상 최저 득표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이명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해 낙선했다.

대선 패배 이후 한동안 자숙했으며, 바로 이듬해에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는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 출마했으나 정몽준 후보에게 패했다. 2009년 4월29일 재선거서 무소속으로 출마,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때 대선후보
산전수전 겪어 

2010년 2월10일엔 민주당으로 복당한 후 2015년 1월11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서 탈당, 국민모임에 참여, 2016년 2월18일에는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20대 총선서 전북 전주시 병 선거구(구 전주 덕진)에 출마해 현역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전주권 최다표차로 누르고 4선에 성공했다. 2018년 2월5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 반대해 국민의당을 탈당, 2월6일 창당된 민평당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cmp@ilyosisa.co.kr>

 

[정동영은?]

▲1953년 전북 순창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영국 웨일즈대 저널리즘 석사 ▲MBC 정치부 기자·앵커·특파원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의장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통일부 장관 ▲15·16·18·20대 국회의원(전북 전주덕진, 전북 전주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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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를 내면서 지급보증 섰던 롯데건설에 보유지분 25%를 넘겼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사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사는 롯데건설로부터 지분을 일부 양도받은 것으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는 사실상 롯데건설인 셈이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49%)가 됐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