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역대급 폭염 천태만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8.07 15:08:52
  • 호수 1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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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도 사라진 한반도 ‘언제까지 덥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역대 최악의 폭염이다. 입추가 코앞에 왔지만, 더위는 여전하다. 살인적인 폭염으로 정부는 대책에 고심 중이다. 40도를 넘나드는 ‘슈퍼 폭염’은 지나갔지만, 당분간 35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의 중기예보를 보면 오는 12일까지 전국 대부분 낮 최고 기온이 35도 안팎을 오르내릴 전망이다. 지난 1일 오후 1시30분께 서울 최고기온이 38.5도를 돌파했다. 이는 1907년 기상청이 서울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111년 만에 최고 수치다. 전날에는 40도를 넘는 지역이 전국적으로 5곳에 달했지만, 이날은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달 중순 후
기세 꺾일 듯

윤기한 기상청 사무관은 “어제보다 구름이 많아 일사(햇빛)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동풍도 덜 불어 태백산맥 서쪽 지방이 어제보다 덜 달궈졌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북쪽에 위치해 중부지방에 동풍을 불러일으키던 북태평양 고기압은 이번 주말을 지나면서 일본 남부와 제주도 쪽으로 남하할 전망이다. 고기압은 시계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북쪽에 있을 땐 중부지방에 동풍이 불었다.

동풍은 태백산맥을 넘어가 ‘푄현상’을 일으키며 홍천 등 강원도 영서지역과 서울의 기온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고기압이 제주도 쪽으로 이동하면 서울 등에는 동풍 대신 남서풍이 불게 된다. 불볕더위를 일으킨 요인 하나가 제거되는 셈이다.


12일에도 서울, 수원, 춘천, 원주, 대전, 세종, 홍성 등의 낮 최고 기온이 35도로 예측됐다. 같은 날 전국서 가장 낮은 낮 기온은 광주, 여수, 포항, 제주 서귀포 등의 32도로 예보됐다. 평년 최고 기온이 28∼32도인 점을 감안하면 3∼4도가량 높은 수치다. 

폭염이 산업 현장의 시계조차 멈춰 세우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폭염경보 이틀 연속 발동 시 공공 발주공사 전면중단’ 등을 지시하는 지침을 2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냈다. 

행안부는 폭염 시 공공기관 공사 중단을 공식화하는 ‘자치단체 계약집행 운영요령’을 마련해 전 지자체에 이날 긴급 발송했다. 홍수 태풍 등의 경우 이 같은 지침은 있었으나 폭염에 적용하는 건 처음이다. 

폭염 시 공사 일시중지, 중지에 따른 계약기간 연장 및 계약금액 증액 허용, 작업시간대 야간 변경 등 ‘탄력근로제’ 도입 등 내용을 담았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고온 현상
앞으로 더? 8월도 계속 더울 것으로 예상

민간 건설기업도 폭염에 맞서 자체 공사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삼성물산은 아파트 건설현장서 37도 이상은 공사 전면 중단, 35도 이상은 45분 작업 후 15분 휴식 규정을 새로 마련했다. 

GS건설 역시 37도가 넘으면 모든 사업장의 공사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현대산업개발은 폭염경보 발령 시 건강 상태에 따라 고위험군과 위험군으로 나눠 고위험군은 작업중지, 위험군은 40분 작업 후 20분 휴식하도록 했다. 


대림산업은 일부 공사장 근로자들의 점심시간을 1시간 연장했다.
 

농축산물 피해는 확산일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일까지 닭 316만마리, 돼지 1만6000마리 등 가축 339만여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했다. 현재 추정되는 재해보험 지급규모는 2000여곳 농가 180억여원에 달한다. 

사과 복숭아 대추 등 과수·채소는 일소(햇볕에 데임) 피해로 못쓰게 돼 버려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까지 706헥타르(ha) 규모 경작지에서 피해를 봤다. 폭염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양식장 물고기 폐사도 잇따랐다. 

경북 영덕과 포항 양식장 4곳에선 7월31일∼지난 1일 이틀 사이에 강도다리와 광어 2000여마리가 폐사했다. 홍천의 한 양식장에선 메기 3500마리가 폐사했다. 남해 바다 대부분엔 적조주의보가 발령됐고, 낙동강에는 조류경보가 경계 단계로 높아졌다.

도로 균열도 예삿일이 됐다. 지난 1일, 홍천 내부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368㎞ 지점서 도로 표면이 솟아오르면서 깨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폭염 때문에 콘크리트 포장이 팽창하면서 파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한 교각 내 수도배관이 폭염을 못 견디고 터져 도로가 갈라지고 교각이 기울어지는 사고가 났다.

건강 유의해야 
수분 섭취 중요

폭염으로 인한 자연발화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충북소방본부에 따르면 1일 오후 7시37분께 제천시 왕암동 한 원료의약품 제조공장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이 불은 3억5000만원가량의 재산피해를 내고 2시간20분 만에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자연발화에 무게를 두고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날 제천은 오후 2시26분 39.8도까지 치솟으며 서울 홍천 등과 마찬가지로 ‘111년 만의 최고 더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같은 날 파주시의 한 물류창고서도 오후 5시12분께 불이 나 4억50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내고 10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사상 유례없는 폭염 사태에 여야가 재난에 폭염을 포함하도록 하는 법 개정 추진을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다. 폭염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상 '재난'에 넣어 다양한 예방·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는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서 처리하기로 이날 결정했다. 이 법이 개정되면 지자체가 조성하는 재난관리기금 등을 폭염 대처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 의원은 “최악의 폭염이다. 가마솥 더위란 말로도 부족하다”며 “폭염을 재난안전법상 재난으로 포함하는 개정안을 8월에 처리하자”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도 이날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3당의 민생경제법안TF에서 폭염, 혹한, 미세먼지까지 재난의 범위를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이 참여하는 민생경제법안TF는 지난달 31일 회의서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8월 임시국회서 처리키로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 사망자가 작년에 비해 5배나 늘었다. 

지난 2일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5월20일부터 8월1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총 2549명, 사망자는 30명으로 보고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온열질환자는 913명서 2.8배로, 사망자는 6명서 5배로 늘어났다. 

불볕더위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낮 기온이 40도에 근접하는 더위가 이어진 7월29일부터 8월1일까지 나흘 동안에 405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전체 환자에서는 여전히 50대 이상이 61%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20∼40대 청·장년층의 비중도 35%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환자의 47%는 온열질환 위험시간대인 정오부터 오후 5시에 발생했다.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돼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하루 중 최고 기온이 28도일 경우 급성심정지 발생이 가장 낮았지만 1도씩 올라갈 때마다 급성심정지 발생이 1.3%씩 증가했다. 서울대병원 오세일·분당서울대병원 강시혁 교수팀이 2006∼2013년 서울과 6대 광역시 급성 심정지환자 5만 318명을 분석한 연구결과다. 

폭염으로 부터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은 오전 10시부터 뜨거운 열기가 여전한 오후 5시간까지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외출을 했다면 물을 충분히 자주 마셔야 한다. 우리 몸은 수분이 체중의 1%만 부족해도 금방 목이 탄다. 수분이 체중의 5∼6% 부족하면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10%가 부족하면 현기증과 극심한 무력감에 이어 근육 경련이 일어난다. 

마지노선인 10%가 넘어가면 열사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게 된다. 온열질환 사망의 주범은 야외활동으로 인한 일사병과 열사병이다. 일사병은 뙤약볕의 직사광선을 오래 받아, 열사병은 무더위에 체온이 급상승했지만 몸밖으로 열을 내보내지 못해 발생한다. 

당뇨환자
청량음료 피해야

특히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자들이 폭염에 노출되어 체온이 급등하면 사망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열사병은 고온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체온조절을 담당하는 기관에 고장이 생겨 나타난다. 인체의 정상 온도인 37도보다 높은 41도 이상 올라갈 경우, 고열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데 즉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사망하기도 한다. 

열사병이 발병하면 즉시 움직임을 멈추고 서늘한 그늘서 휴식을 취하며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야 한다. 또한 호흡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탈의를 하고 몸에 물을 뿌려준다. 이와 함께 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해 병원 응급실서 전문적인 열사병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사병이 의심되면 서늘한 곳으로 이동해 쉬면서 시원한 음료(염분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는 게 좋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것도 좋고, 증상이 심하면 병원서 수액주사로 수분과 염분을 보충하면 도움이 된다. 주변서 열사병·일사병 환자가 발생하면 그늘로 옮기고 수분을 공급하는 등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는 청량음료보다 냉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 당분이 든 청량음료를 당뇨병 환자가 섭취할 경우 혈당이 높아지고 소변량이 많아진다. 여름에는 땀 배출이 많기 때문에 평소보다 탈수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탈수 증세 시 평소보다 심하게 어지러움을 느끼면 시원한 곳에서 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쉬어야 한다. 

온열질환 사망 벌써 30명…작년 5배
‘물가 비상’ 농축산물 피해 눈덩이

오랜 당뇨병 환자의 경우 말초신경 문제로 발에 감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휴가지서 맨발로 다니는 것은 금물.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 화상을 입을 수 있고, 조개껍집 등에 발을 다칠 수 있다. 야외활동 시 반드시 안전한 신발을 신고, 발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인근 병원을 방문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자율신경에도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뜨거운 외부활동과 차가운 실내 환경에 교대로 노출될 경우 체온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되고 열사병 발생률을 높이게 돼 당뇨병 환자는 급격한 온도변화에 노출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는 혈압에 영양을 미치는 체내 수분과 염분 배출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탈수에 특히 취약한 고혈압 환자는 몸이 말라 체액량이 적은 환자와 평소 짜게 먹는 환자다. 특히 후자의 경우 땀으로 염분이 배출되면 혈압이 떨어져 어지러움을 느끼기 쉽다.

혈압약을 임의로 줄이면 혈압이 오를 수 있어 절대 금물이다. 혈압약은 수일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약을 안 먹는다고 당일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반면, 일시적인 탈수가 해결될 경우 원래 혈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물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만성콩팥병 환자가 고온 다습한 환경서 일 또는 무리한 운동을 하면 체수분과 전해질 손실로 혈압이 떨어져 콩팥으로 가는 혈류가 감소하거나 근육이 깨지면서 급성 신부전을 일으키게 된다. 만성콩팥병 환자의 급성 신부전은 신장 기능 악화를 가속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수분을 섭취해도 안된다. 부종이나 저나트륨혈증이 발생해 어지럼증, 두통, 구역질, 현기증 등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실된 만큼 적절한 수분량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 물을 적게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당분·카페인이 든 음료나 이온 음료보다는 물이 좋다. 투석 환자의 경우 일반인보다 적절한 수분 상태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고혈압 환자
짜게 먹지 말아야

물은 하루 8잔 이상을 마시는 게 좋다. 사람의 하루 평균 수분 소모량은 소변으로 배설되는 수분이 약 1.4리터, 소변 이외로 배출되는 수분이 약 1리터 총 2.4리터에 달한다.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수분도 2.4리터. 사람이 하루 음식으로 섭취하는 수분 양은 1∼1.2리터 정도 되므로 적어도 식사이외에 1.5리터의 수분을 보충해줘야 하는 것이다. 200밀리로 치면 약 8잔쯤 된다. 특히 노인들은 목이 마르다는 느낌이 둔해져 있으므로 일부러라도 조금씩 자주 마시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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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