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례식장 ‘바디백’ 미스터리

메르스 핑계로 유족에 바가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청주의료원은 충북도서 관리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다. 지방의료원은 영리보다는 지역 주민의 보건 관리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청주의료원이 공공병원의 목적을 간과하고 수익 창출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례 과정에 불필요한 이송용 바디백 사용으로 부당이득을 얻고 있다는 의혹이다.

장례식장은 유족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모시는 장소다. 부고를 들은 친지, 지인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유족은 문상객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영정사진 준비부터 시신을 장의차에 안치하는 일까지 장례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너무 비싼
장례 비용

2015년 기준 한국소비자원서 조사한 평균 장사(장례+장묘)비용은 1380만8000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장례비용을 낸 경험이 있는 소비자 6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얻은 평균이다. 

1400만원에 육박하는 장사비에 대해서는 소비자(790명)의 68.7%가 “비싸다“고 인식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비용이 저렴한 장례식장을 찾는다. 지역거점 공공의료원 장례식장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시민들에게 값싼 비용으로 검증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지방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 시도서 34개 지방의료원을 운영하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의료원도 그중 한 곳이다. 1909년 관립자혜의원으로 시작한 청주의료원은 충청북도 도립 청주병원(1925년), 충청북도 도립 의료원(1973년)을 거쳐 1983년 지방공사 충청북도 청주의료원으로 발족했다.

청주의료원은 3만8000㎡ 부지에 병원, 장례식장 등 7개 동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은 청주의료원 의료 외 수익 중 주수입원이다. 

청주의료원 사정에 밝은 한 장례지도사는 “청주의료원은 장례식장 수익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 손병관 청주의료원 원장이 2015년 <충청투데이>와의 인터뷰를 보면 청주의료원은 장례식장 운영을 통해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청주권 장례식장의 40%를 점유했다. 그 배경으로는 다른 장례식장보다 저렴한 비용이 꼽혔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특실을 포함 총 9개 빈소가 있다. 지난해 기준 팀장, 장례지도사, 조리원 등 총 22명이 근무 중이다. 2015년 1435건, 2016년 1487건, 지난해 1287건 등 3년 동안 4209건의 장례를 치렀다. 1년 평균 1403건, 월 평균 117건이다.

한 장례 전문기업 관계자는 “중소 장례식장은 한 달에 30∼40건의 장례만 치러도 장례식장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매달 100여건 이상이면 정말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주중, 주말할 것 없이 늘 유족과 문상객으로 붐빈다.


문제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이 지역 주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다른 장례식장보다 값싼 장례비용을 강점으로 내세워 온 청주의료원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공개한 33개 지방의료원 장례식장 운영 수익 자료에 따르면 청주의료원은 2015년 85억3700만원을 벌었다. 지방의료원 중 가장 높다.

지역 주민에
폭리 취해

대도시에 위치한 인천의료원(40억4300만원), 서울의료원(32억8500만원), 부산의료원(27억2500만원)보다 2∼3배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지방의료원이 장례식장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을 상대로 과도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청주의료원은 장례 1건당 평균 순수익서도 594만원으로 충남 홍성의료원(711만원), 서산의료원(638만원), 대구의료원(627만원)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청주의료원의 높은 수익률 이면에는 합리적 기준 없이 제각각 판매되고 있는 주요 장례용품 가격이 있다.

인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장례용품 중 높은 가격을 차지하는 수의와 관의 경우 구매 가격보다 수의는 평균 3.5배, 관은 평균 2.9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청주의료원의 경우 6만원에 산 오동 2단관의 판매 가격은 18만원에 달했고 3만9000원에 산 2호 수의의 판매 가격은 13만6000원으로 구매가의 3배가 넘었다.

인 의원은 “공공의료원이 장례비용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것은 영리보다 공공성이 우선시되는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며 “공공의료원들이 서민들을 상대로 지나친 영리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에 맞게 합리적인 운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나 감염환자에만 쓰는데
청주의료원은 모든 환자 왜?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과정에 필요하지 않은 용품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됐다. 문제로 지목된 용품은 이송용 바디백. 

F기업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 공급하는 바디백은 시신을 편리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F기업은 현재 사단법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남승현 대표가 운영하는 장례용품 생산업체다.

바디백은 밀폐용 비닐 포장재로, 감염 사체나 부패된 변사체 등의 감염이나 악취를 방지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사용되는 용품이다. 일반적으로 쓰나미나 해일 등 시신이 많이 나온 사고서 사체를 보관하고 병원 등으로 옮길 때 사용한다.

하지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의 경우, 바디백을 시신 안치에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 사체나 부패된 변사체 외에 지병이나 노환 등으로 사망한 시신에도 바디백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를 치른 모든 시신에 바디백을 이용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판매비용으로 유족에게 10만원을 청구했다.


장례식장에 처음 시신이 들어오면 입관 전까지 사체를 안치해둔다. 스테인리스로 된 안치대 위에 칠성판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놓는다. 칠성판은 염습한 시신을 눕히기 위해 관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판을 말한다.

장례지도사들은 칠성판 위 시신의 자세를 반듯하게 만들어 종이끈으로 묶는다. 이 과정을 수시라고 한다. 칠성판은 시신의 자세를 곧은 상태로 고정하기 위한 일종의 부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시 과정을 마친 시신은 입관 전까지 1~2일간 안치냉장고에 보관된다. 

전국 대부분의 장례식장에서 진행하는 일반적인 시신 안치 과정이다.

하지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시신을 바디백 안에 넣은 채로 수시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치대 위에 먼저 바디백을 깔아두고 그 안에 칠성판을 넣어 시신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를 치렀던 한 유족은 “안치실에 들어갔더니 바디백이 이미 안치대 위에 세팅돼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신에 습기
지퍼 열어둬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감염 방지 등 위생 관리 차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5년 5월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사태 이후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바디백은 그 일환으로 사용되는 장례용품이라는 주장이다. 

또 시신을 직접 만지는 장례지도사나 유족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십년 경력의 장례지도사나 공중보건학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한 장례지도사는 “전국 각지의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시신 안치에 바디백을 쓰는 곳은 청주의료원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지역 장례식장 관계자 역시 “집에서 사망해 오랜 시간 방치된 독거노인 같은,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옮길 때나 (바디백을)사용하지, 그 외의 상황엔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한 교수 역시 “이송용 바디백만으로는 감염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르스 사태 당시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안다면 감염 방지를 위해 바디백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5년 5월 바레인서 입국한 68세 남성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후 그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메르스 상황 종료’를 발표할 때까지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사망한 환자는 38명. 메르스는 사람 간 밀접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라 전파 속도가 빨랐다.

정부와 병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었다. 확진 환자는 물론 의심 환자도 격리됐다. 이 과정서 사망한 시신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화장 절차를 밟았다. 

당시 장례원칙에 따라 고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은 물론 마지막 가는 길도 볼 수 없던 유족들이 울분을 토했을 정도.

메르스로 사망한 환자는 즉시 비닐로 감싸진다. 외부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비닐로 싼 시신을 바디백에 넣고 이 바디백을 또 다른 바디백에 넣어 이중으로 감싼다. 바디백 표면은 소독하고 건조해 이동한다. 그리고 그대로 밀폐된 관에 배치, 화장 처리한다.

이 과정은 장사법에 따라 고인이 사망하고 24시간 이내 이뤄진다. 염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불에 태운다. 유족들은 화장터에 가더라도 마스크, 장갑, 고글, 보호복 등 개인장비를 착용해야만 배웅이 가능하다. 의심환자로 분류, 격리된 상황이라면 화장터에도 갈 수 없다.

감염 방지라 해명하지만
전문가 “실제 효과 없다”

이에 반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의 바디백 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는 시신을 바디백에 넣어 안치 냉장고에 보관하는 과정서 결로현상이 생겨 일부 상조회사에서 이의를 제기한 일도 있었다. 

안치 냉장고 온도는 영상 4∼5도로 유지된다. 시신을 담은 바디백 내부 온도와 차이가 있어 물이 맺히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공중보건학 교수는 “시신에 맺힌 물기가 오히려 장례지도사의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이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시신의 머리 부분 쪽 지퍼를 열어둔다는 의혹이 나왔다. 

실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사용하는 것을 본 한 장례지도사는 “얼굴 부분 지퍼를 열어둔 채로 안치 냉장고에 넣는 모습을 봤다. 감염을 방지한다면서 이게 무슨 코미디냐”고 반문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요즘에는 사고사로 사망한 시신에만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하며 이전에는 모든 시신에 바디백을 사용한 사실을 시인했다. 

현재 바디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꾸 민원이 들어가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감염 방지와 위생 관리를 위해 바디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주변 관계자들이 이를 문제 삼자 사용을 일부 중단한 셈이다.

실제 청주시 서원구청은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장례용품별 사용 여부에 대해 정해진 규정이 없어, 바디백과 같은 위생용품 사용은 장례식장 영업자의 재량사항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수의 장례식장이 감염환자나 사고환자 등으로 사망한 시신에만 바디백을 사용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시신의 상태 등을 선별해 무분별한 바디백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일각에선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인센티브 제도’를 들었다. 

청주의료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만의 독특한 제도”라며 “분기별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액의 일정 부분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준다”고 귀띔했다.

바디백 1개의 판매·사용 가격은 10만원. 한 달에 100건 이상 장례를 치르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으로선 바디백으로만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1년으로 치면 1억원이 넘는다. 

이 관계자는 “수의나 관으로 가격을 부풀려 받는 것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질타를 받았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다”며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입장에서는 바디백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성과급은 어느 회사에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면서도 “(바디백 사용은)영리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어 “전국 장례식장서 다 받고 있는 초렴료(시신을 닦고 자세를 잡는 행위)를 우리는 받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 제기에
일부 사용중단

한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바디백 사용에 대해 유족들에게 동의를 얻었다고 말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은 경황이 없어 그저 장례식장을 믿을 뿐”이라며 “고인의 부고 앞에 장례용품을 하나하나 따지는 일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유족의 마음과 메르스라는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효과가 전혀 없는 용품을 팔아 부당이득을 얻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주의료원 ‘칠성판 흑역사’ "처음이 아니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2010년 칠성판 재사용 문제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당시 장례식장 직원의 공익제보로 알려진 내부 사정은 충격적이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유족들에게 매입단가 2500원의 칠성판을 1만원에 판매하면서 그마저도 재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들에게 1만원씩 돌려줘

당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칠성판을 73개 구매했다고 했지만, 판매는 792개에 달했다. 

719건은 사용했던 것을 다시 사용한 것은 물론, 많게는 10번씩 재사용하며 1만원씩 유족에게 받아 챙긴 것.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그 시기 장례를 치렀던 유족에게 일일이 연락해 칠성판 값인 1만원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