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례식장 ‘바디백’ 미스터리

메르스 핑계로 유족에 바가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청주의료원은 충북도서 관리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다. 지방의료원은 영리보다는 지역 주민의 보건 관리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청주의료원이 공공병원의 목적을 간과하고 수익 창출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례 과정에 불필요한 이송용 바디백 사용으로 부당이득을 얻고 있다는 의혹이다.

장례식장은 유족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모시는 장소다. 부고를 들은 친지, 지인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유족은 문상객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영정사진 준비부터 시신을 장의차에 안치하는 일까지 장례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너무 비싼
장례 비용

2015년 기준 한국소비자원서 조사한 평균 장사(장례+장묘)비용은 1380만8000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장례비용을 낸 경험이 있는 소비자 6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얻은 평균이다. 

1400만원에 육박하는 장사비에 대해서는 소비자(790명)의 68.7%가 “비싸다“고 인식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비용이 저렴한 장례식장을 찾는다. 지역거점 공공의료원 장례식장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시민들에게 값싼 비용으로 검증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지방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 시도서 34개 지방의료원을 운영하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의료원도 그중 한 곳이다. 1909년 관립자혜의원으로 시작한 청주의료원은 충청북도 도립 청주병원(1925년), 충청북도 도립 의료원(1973년)을 거쳐 1983년 지방공사 충청북도 청주의료원으로 발족했다.

청주의료원은 3만8000㎡ 부지에 병원, 장례식장 등 7개 동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은 청주의료원 의료 외 수익 중 주수입원이다. 

청주의료원 사정에 밝은 한 장례지도사는 “청주의료원은 장례식장 수익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 손병관 청주의료원 원장이 2015년 <충청투데이>와의 인터뷰를 보면 청주의료원은 장례식장 운영을 통해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청주권 장례식장의 40%를 점유했다. 그 배경으로는 다른 장례식장보다 저렴한 비용이 꼽혔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특실을 포함 총 9개 빈소가 있다. 지난해 기준 팀장, 장례지도사, 조리원 등 총 22명이 근무 중이다. 2015년 1435건, 2016년 1487건, 지난해 1287건 등 3년 동안 4209건의 장례를 치렀다. 1년 평균 1403건, 월 평균 117건이다.

한 장례 전문기업 관계자는 “중소 장례식장은 한 달에 30∼40건의 장례만 치러도 장례식장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매달 100여건 이상이면 정말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주중, 주말할 것 없이 늘 유족과 문상객으로 붐빈다.


문제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이 지역 주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다른 장례식장보다 값싼 장례비용을 강점으로 내세워 온 청주의료원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공개한 33개 지방의료원 장례식장 운영 수익 자료에 따르면 청주의료원은 2015년 85억3700만원을 벌었다. 지방의료원 중 가장 높다.

지역 주민에
폭리 취해

대도시에 위치한 인천의료원(40억4300만원), 서울의료원(32억8500만원), 부산의료원(27억2500만원)보다 2∼3배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지방의료원이 장례식장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을 상대로 과도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청주의료원은 장례 1건당 평균 순수익서도 594만원으로 충남 홍성의료원(711만원), 서산의료원(638만원), 대구의료원(627만원)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청주의료원의 높은 수익률 이면에는 합리적 기준 없이 제각각 판매되고 있는 주요 장례용품 가격이 있다.

인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장례용품 중 높은 가격을 차지하는 수의와 관의 경우 구매 가격보다 수의는 평균 3.5배, 관은 평균 2.9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청주의료원의 경우 6만원에 산 오동 2단관의 판매 가격은 18만원에 달했고 3만9000원에 산 2호 수의의 판매 가격은 13만6000원으로 구매가의 3배가 넘었다.

인 의원은 “공공의료원이 장례비용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것은 영리보다 공공성이 우선시되는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며 “공공의료원들이 서민들을 상대로 지나친 영리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에 맞게 합리적인 운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나 감염환자에만 쓰는데
청주의료원은 모든 환자 왜?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과정에 필요하지 않은 용품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됐다. 문제로 지목된 용품은 이송용 바디백. 

F기업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 공급하는 바디백은 시신을 편리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F기업은 현재 사단법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남승현 대표가 운영하는 장례용품 생산업체다.

바디백은 밀폐용 비닐 포장재로, 감염 사체나 부패된 변사체 등의 감염이나 악취를 방지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사용되는 용품이다. 일반적으로 쓰나미나 해일 등 시신이 많이 나온 사고서 사체를 보관하고 병원 등으로 옮길 때 사용한다.

하지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의 경우, 바디백을 시신 안치에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 사체나 부패된 변사체 외에 지병이나 노환 등으로 사망한 시신에도 바디백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를 치른 모든 시신에 바디백을 이용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판매비용으로 유족에게 10만원을 청구했다.


장례식장에 처음 시신이 들어오면 입관 전까지 사체를 안치해둔다. 스테인리스로 된 안치대 위에 칠성판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놓는다. 칠성판은 염습한 시신을 눕히기 위해 관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판을 말한다.

장례지도사들은 칠성판 위 시신의 자세를 반듯하게 만들어 종이끈으로 묶는다. 이 과정을 수시라고 한다. 칠성판은 시신의 자세를 곧은 상태로 고정하기 위한 일종의 부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시 과정을 마친 시신은 입관 전까지 1~2일간 안치냉장고에 보관된다. 

전국 대부분의 장례식장에서 진행하는 일반적인 시신 안치 과정이다.

하지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시신을 바디백 안에 넣은 채로 수시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치대 위에 먼저 바디백을 깔아두고 그 안에 칠성판을 넣어 시신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장례를 치렀던 한 유족은 “안치실에 들어갔더니 바디백이 이미 안치대 위에 세팅돼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신에 습기
지퍼 열어둬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감염 방지 등 위생 관리 차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5년 5월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사태 이후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바디백은 그 일환으로 사용되는 장례용품이라는 주장이다. 

또 시신을 직접 만지는 장례지도사나 유족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십년 경력의 장례지도사나 공중보건학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한 장례지도사는 “전국 각지의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시신 안치에 바디백을 쓰는 곳은 청주의료원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지역 장례식장 관계자 역시 “집에서 사망해 오랜 시간 방치된 독거노인 같은,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옮길 때나 (바디백을)사용하지, 그 외의 상황엔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한 교수 역시 “이송용 바디백만으로는 감염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르스 사태 당시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안다면 감염 방지를 위해 바디백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5년 5월 바레인서 입국한 68세 남성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후 그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메르스 상황 종료’를 발표할 때까지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사망한 환자는 38명. 메르스는 사람 간 밀접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라 전파 속도가 빨랐다.

정부와 병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었다. 확진 환자는 물론 의심 환자도 격리됐다. 이 과정서 사망한 시신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화장 절차를 밟았다. 

당시 장례원칙에 따라 고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은 물론 마지막 가는 길도 볼 수 없던 유족들이 울분을 토했을 정도.

메르스로 사망한 환자는 즉시 비닐로 감싸진다. 외부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비닐로 싼 시신을 바디백에 넣고 이 바디백을 또 다른 바디백에 넣어 이중으로 감싼다. 바디백 표면은 소독하고 건조해 이동한다. 그리고 그대로 밀폐된 관에 배치, 화장 처리한다.

이 과정은 장사법에 따라 고인이 사망하고 24시간 이내 이뤄진다. 염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불에 태운다. 유족들은 화장터에 가더라도 마스크, 장갑, 고글, 보호복 등 개인장비를 착용해야만 배웅이 가능하다. 의심환자로 분류, 격리된 상황이라면 화장터에도 갈 수 없다.

감염 방지라 해명하지만
전문가 “실제 효과 없다”

이에 반해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의 바디백 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는 시신을 바디백에 넣어 안치 냉장고에 보관하는 과정서 결로현상이 생겨 일부 상조회사에서 이의를 제기한 일도 있었다. 

안치 냉장고 온도는 영상 4∼5도로 유지된다. 시신을 담은 바디백 내부 온도와 차이가 있어 물이 맺히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공중보건학 교수는 “시신에 맺힌 물기가 오히려 장례지도사의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이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시신의 머리 부분 쪽 지퍼를 열어둔다는 의혹이 나왔다. 

실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사용하는 것을 본 한 장례지도사는 “얼굴 부분 지퍼를 열어둔 채로 안치 냉장고에 넣는 모습을 봤다. 감염을 방지한다면서 이게 무슨 코미디냐”고 반문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요즘에는 사고사로 사망한 시신에만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하며 이전에는 모든 시신에 바디백을 사용한 사실을 시인했다. 

현재 바디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꾸 민원이 들어가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감염 방지와 위생 관리를 위해 바디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주변 관계자들이 이를 문제 삼자 사용을 일부 중단한 셈이다.

실제 청주시 서원구청은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장례용품별 사용 여부에 대해 정해진 규정이 없어, 바디백과 같은 위생용품 사용은 장례식장 영업자의 재량사항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수의 장례식장이 감염환자나 사고환자 등으로 사망한 시신에만 바디백을 사용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시신의 상태 등을 선별해 무분별한 바디백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일각에선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서 바디백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인센티브 제도’를 들었다. 

청주의료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만의 독특한 제도”라며 “분기별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액의 일정 부분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준다”고 귀띔했다.

바디백 1개의 판매·사용 가격은 10만원. 한 달에 100건 이상 장례를 치르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으로선 바디백으로만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1년으로 치면 1억원이 넘는다. 

이 관계자는 “수의나 관으로 가격을 부풀려 받는 것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질타를 받았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다”며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입장에서는 바디백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성과급은 어느 회사에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면서도 “(바디백 사용은)영리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어 “전국 장례식장서 다 받고 있는 초렴료(시신을 닦고 자세를 잡는 행위)를 우리는 받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 제기에
일부 사용중단

한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바디백 사용에 대해 유족들에게 동의를 얻었다고 말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은 경황이 없어 그저 장례식장을 믿을 뿐”이라며 “고인의 부고 앞에 장례용품을 하나하나 따지는 일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유족의 마음과 메르스라는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효과가 전혀 없는 용품을 팔아 부당이득을 얻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주의료원 ‘칠성판 흑역사’ "처음이 아니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2010년 칠성판 재사용 문제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당시 장례식장 직원의 공익제보로 알려진 내부 사정은 충격적이었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유족들에게 매입단가 2500원의 칠성판을 1만원에 판매하면서 그마저도 재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들에게 1만원씩 돌려줘

당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칠성판을 73개 구매했다고 했지만, 판매는 792개에 달했다. 

719건은 사용했던 것을 다시 사용한 것은 물론, 많게는 10번씩 재사용하며 1만원씩 유족에게 받아 챙긴 것.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그 시기 장례를 치렀던 유족에게 일일이 연락해 칠성판 값인 1만원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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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