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실천예술가’ 임동식

함부르크부터 지금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전복합터미널서 임동식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공주 마을예술 실천가이면서 대전미술을 대표하는 임 작가는 이번 전시서 1980년대 독일 함부르크 유학시절의 드로잉부터 현재까지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무더운 여름, 한 예술가의 삶과 철학이 담긴 전시 속으로 들어가보자.
 

대전복합터미널 dtc갤러리는 지난 13일부터 임동식 작가의 ‘임동식-1980년대 함부르크 드로잉부터 2018 오늘까지’ 전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서 1980년대 독일 함부르크 유학시절의 드로잉과 임동식 특유의 그리기 방식인 ‘소환한 풍경- 다시 그리기’ 등을 통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삶과 철학

‘친구가 권유한 풍경’ ‘비단장수 왕서방’ ‘오름길’ 등 근간의 전시서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전시에 출품된 200여점의 함부르크 드로잉을 통해 임 작가가 그동안 실천해 온 다양한 실험 양식과 실천적 신념들의 연관성 그리고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드로잉은 임 작가가 귀국 후 활발하게 활동했던 자연미술,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서 대부분 실현됐다.

이외에도 오브제 드로잉, 오브제 콜라주, 오려내고 붙이기 드로잉 등 선구적인 형식은 후학들에게 예술 형식의 자율성, 실천적 예술가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안겼다. 실천적 주제들은 임 작가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공동체 예술의 근간이 됐다. 


또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앞세우기 이전에 본래 생래적인 예술과 삶의 합일에 대한 작가의 사유로 심화됐다.

대전미술의 대표 작가
이번 전시서 신작 소개

임 작가의 1980년대 독일 함부르크 유학시절 드로잉을 보면 창의성과 형식의 다양성, 작가만의 독특함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그 시기 문화선진국으로 불리던 독일에 무엇을 배우러 갔다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dtc갤러리 관계자는 “예술형식의 자율성과 예술가의 독립성, 자주성 그리고 각 문화지형적 차이성을 성찰하고 왔다고 보는 게 좀 더 근접한 판단일 것”이라고 말했다.
 

딱 잘라 구분 짓긴 어렵지만 드로잉 작품의 수와 형식에 따라 크게 7개의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생명의 소리 듣기, 꽃 피워보기, 무인도 작업 계획도 등 ‘자연미술 기획 드로잉’ 철사로 배나 낚시 바늘의 모양을 짓고 그 관계성인 물결의 흐름, 낚시 줄과 물고기의 모양을 누르기 기법으로 표현한 ‘사물 드로잉’이 있다.

이외에도 ‘오리고 붙이기’ ‘흔적을 따라 다시 그리기’ ‘이야기 드로잉’ ‘시각과 청각을 위한 작품 드로잉’ ‘마을 슈퍼스타 만들기 프로젝트’ 등이다.

독일 유학시절 드로잉 200점
마을 프로젝트로 대부분 실현


임 작가의 독특한 그리기 방식은 화단에 잘 알려져 있다. 임 작가는 수년 전 그림을 다시 꺼내 비워 내거나 다시 그려 넣기를 자주한다. 그가 만들어낸 화면 속에는 특유의 관찰력과 서정적 감성, 불교적 세계관이 가득하다.

‘고개 숙인 꽃에 대한 인사’ 시리즈에서는 의인화된 자연과 그 대상물에 자신을 낮추며 수평적인 시선을 건넸다. 그러면서 자연의 한없는 경이로움에 대한 예찬과 동경을 보냈다.

친구가 권유한 풍경과 오름길 시리즈를 통해서는 아름답고 추함에 대한 구분을 떠나 경계 없는 풍경을 화면에 담았다. 자신의 관점으로서의 풍경이 아닌 타인의 관점서 바라보는 차이성과 그 미감을 담아보려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황찬연 dtc갤러리 큐레이터는 “임 작가는 동시대 많은 유학생들이 선진문화라는 개념에 경도돼 생래적 차이성을 무시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태도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다시 그리기

이어 “아마도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임 작가의 전시 제목마다 ‘동방소년’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지도 모르겠다”며 “그래서 아직도 그리기의 정직함, 실천하기의 지속성, 멈추지 않고 사유를 확장하기가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30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임동식은?]

1945 충남 연기군 남면 출생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1974)
독일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 자유미술학과 졸업(1988)


▲개인전

‘동방소년 탐문기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2016)
‘자연과 비단장사 왕서방전’ 갤러리세솜, 창원(2014)
‘사유의 경치 2인전’ 이화익갤러리, 서울(2013)
‘비단장사 왕서방전’ 이화익갤러리, 서울(2011)
‘자연예술가와 화가전’ 스페이스 공명, 서울(2010)
‘사유의 경치전’ 이화익갤러리, 서울(2008)
‘친구가 권유한 풍경’ 롯데화랑, 부산/대전(2006)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전, 아르코미술관, 서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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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