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문의 선택’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

일처리 확실하나 조직 장악력 ‘글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경찰 조직을 이끌 새 수장으로 민갑룡 경찰청 차장을 선택했다. 호남 출신에 경찰대를 졸업한 민 후보자는 순경 출신인 이철성 청장과 비교해 색채가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찰 내 손꼽히는 기획 분야 전문가로 경찰 개혁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를 수행할 적임자로 낙점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임박한 시점서 사실상 경찰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5일 민갑룡 경찰청 차장이 오는 30일 임기가 끝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후임 경찰청장에 임명됐다. 민 내정자가 경찰 내에서 수사권 조정 전문가이자 ‘기획통’으로 꼽혀온 만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권력기관 개혁에 속도를 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사권 조정 박차
이주민 청장은?

청와대가 민갑룡 경찰청 차장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한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경찰개혁 과제를 총 지휘해 온 민 내정자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력한 청장 후보였던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을 지명하기에는 드루킹 수사와 관련해  국회의 인사검증 절차를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내 대표적인 전략·기획통으로 인정받는 민 내정자는 경찰청 혁신기획단, 수사구조개혁팀장, 기획조정담당관, 기획조정관 등을 거치며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서 큰 기여를 해왔다. 

이날 청와대는 “민 내정자는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라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경찰 개혁 업무를 관장해왔다”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찰개혁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경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민 내정자는 2016년 말 경무관서 치안감으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 말 치안정감으로 계급을 높여 1년 만에 2계급이나 초고속 승진하면서 차기 청장 하마평에 꾸준히 등장했다. 경찰청장으로 취임하면 2년 동안 3계급을 승진하는 셈이 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지 여부도 고려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경쟁자인 이주민 청장이 인천청장서 서울청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만 해도 차기 경찰청장으로 지목된 인사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이 청장은 유력 후보였다. 그러나 일명 드루킹 사건의 수사를 총괄 지휘하면서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온화한 성품 추진력 갖춘 전략·기획 전문가
짧은 현장 경험·경찰대 득세 우려 이겨내야

6·13 지방선거서 압승을 거두긴 했지만 선거 직후 단행된 인사서 야당의 반발이 뻔한 인물을 낙점하면 자칫 역풍을 초래할 수 있어 청와대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관측이다. 

현 정부가 역대 정권 중 최장인 195일 만에 내각 구성을 마쳤다는 오명을 듣는 만큼 청와대 입장에서는 잡음이 생길 여지가 있는 인물을 애초에 배제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선거 직후 첫 번째 인사인 만큼 여론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 청장을 지명할 경우 잘못하면 정부가 자만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민 내정자는 경찰 내에서 수사권 현실화와 관련한 논리에 가장 해박한 사람”이라며 “청와대와 국회, 검찰과 의견 조율을 하거나 설득을 하는 데 있어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외유내강 스타일
강한 개혁 의지

차기 경찰청장에 내정된 민 후보자는 말수가 적다. 공식 석상은 물론 사적인 자리서도 준비한 발언 외에는 말을 아낀다. 반면 업무 스타일은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경찰 내 현안이 생기면 마음에 들 때까지 보고를 받고 아이디어를 낸다. 세밀한 부분까지 챙겨 부하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경찰 내 대표적인 ‘외유내강형’ 인물로 꼽히는 이유다. 

전남 영암 출신인 민 후보자는 신북고와 경찰대 4기를 졸업한 1988년 경찰에 입직했다. 경찰청 혁신기획단 업무혁신팀장과 수사구조개혁팀장, 기획조정담당관, 국민안전혁신추진TF팀장 등을 거치며 검·경수사권 조정과 경찰개혁 관련 업무를 주도했다. 
 

조직 내 전략·기획통으로 꼽히며 이례적으로 치안감 승진 1년 만에 치안정감까지 올랐다. 

경찰개혁과 검경수사권 조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이 분야 전문가인 민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부와 관계도 두텁다. 민 후보자는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경찰청 수사권조정팀 전문연구관을 지내며 당시 경찰청 혁신기획단 외부위원이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인연을 맺었다.

경찰 내에서는 누구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깊숙이 개입해 온 인물이다 보니 막바지로 접어든 검경수사권 조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한편 검찰과의 수싸움서 쉽게 밀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민 후보자는 경찰개혁에 대해 의지가 강하다. 

그는 지난해 말 경찰청 차장 취임식서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경찰과 시민 간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로버트 필 경의 ‘9가지 경찰 원칙’을 인용해 화제가 됐다. 

민 내정자는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는 19세기 영국 정치인 로버트 필의 ‘경찰 원칙’ 중 일부를 인용하며 “이 정신에 기초해 정의로운 사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평소 ‘경찰은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생각으로 경찰 생활을 해왔다”며 “경찰과 시민이 서로 존중하고, 생각의 차이가 없는 공동체 속에서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경찰의 신성한 소명”이라고 말했다. 

지방청장 점프
경험 부족 약점


현장에선 민 후보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서울 지역서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일 처리가 확실하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이란 평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장 경험이 부족해 조직 장악력이 달릴 수 있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민 내정자는 본청장으로선 드물게 지방청장 경험이 없다. 

지휘관으로서의 이력은 2008년 전라남도 무안경찰서장과 2012년 서울 송파경찰서장으로서의 경험이 전부다. 경찰대 4기로서 치안정감을 단 지 1년도 안 돼서 청장이 된 '초고속 승진' 코스를 둘러싸고 불안한 시선도 있다. 

이주민 서울청장은 경찰대 1기다. 검찰만큼 기수 문화가 강하진 않지만 ‘너무 이르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업무 추진력이 지나치게 강해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선 현장을 잘 모르면서 아이디어를 과하게 밀어붙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각종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것을 두고 오히려 일을 더 만든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청와대 “개혁, 수사권 조정 국면 이끌 적임자”
이주민 청장은 드루킹 부실 수사 논란에 분루


일선 경찰서의 한 과장은 “기획통이고, 경찰에 대한 애정도 큰 사람이다. 수사권 조정엔 확실히 도움이 될 사람”이라면서도 “다만 캐릭터가 너무 팍팍한 느낌이 있다. 소통이 어려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장은 “치안정감 자리서도 일을 실무자처럼 하는 사람”이라며 “모든 것에 대한 모든 보고를 다 받는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강신명(경찰대 2기) 청장 이후 두 번째 경찰대 출신 경찰청장이라는 점과 문무일 검찰총장과 함께 검·경 총수가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흔치 않은 구도도 넘어야 할 산이다. 
 

순경공채로 입직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 출신 청장을 바라보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경찰서장 시절 부하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장직서도 그 부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 21일 문 대통령이 제출한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접수했다. 문 대통령은 청문요청 사유서를 통해 “민갑룡 내정자는 경찰의 수사역량 향상을 이끌어왔으며 경찰청 혁신기획단, 경찰청 차장 등 기획총괄 기능을 두루 역임하면서 최고의 기획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확보하고 국민이 주인인 안전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최고의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청문 요청안에 따르면 민 내정자의 재산은 모두 5억7000여만원이며, 전과 기록은 없다. 

17년 만에 호남인
청문회 없이 임명?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20일 내에 민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국회가 기한 내에 청문회를 열고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한 뒤 국회 동의와 관계없이 임명할 수 있다. 

하반기 국회 원구성이 늦어질 경우 민 내정자는 청문회 없이 임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 후보자가 경찰청장이 되면 김대중정부가 임명한 이무영 청장(1999년 11월 15일∼2001년 11월 9일) 이후 17년 만에 호남 출신 경찰청장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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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